한동안 같은 팀 사람들과 인사조차 안 하고 지낸적이 있다. 내가 일하기 전에 몇 달 동안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을 안 줬다. 한명은 잔소리로, 다른 한명은 성질을 부리며 내가 얼마동안 버틸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 같았다. 환상 속 아치라면 그들이 부리는 텃새를 불굴의 의지로 헤쳐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아치는 눈치있거나 적응력 뛰어난 인간이 아니었다. 왜 나만 그들 비위를 맞추냐 싶어 말 안 하고 버티기 일쑤였다.
먼저 삐걱댄건 일이었다. 각자 분야가 따로 있기는 하지만 협의해야 풀어질 수 있는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하면 안 부딪히고 넘기나로 정신이 집중되니 일이 제대로 돌아갈지 않았다. 그 다음은 심리전. 감정 노동이 싫어 피한 관계에서 감정적으로 더 버겨워지는건 아이러니였다. 상대방의 무심한 행동을 악의로 받아들이는건 기본이고, 혹시 나를 골탕먹이려고 하는건가, 저건 무슨 의도일까를 해석하는데 지칠줄 모르는 에너지를 낭비했다. 그렇게 지내다 어느 날 아침엔 돈 벌어서 뭐하나, 일해서 뭐하나란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이 나서 아픈‘척’ 병가를 냈다.
직장 동료와 잘 지내는 법이라던가, 뭐가 문제라면 내가 바꿔야된다는식의 자기계발서식 조언은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싫었고, 선선한 관계가 아니라 친한 사이가 돼야 일을 할 수 있다는 강요된 분위기가 싫었다. 까라면 까야는데 왜 내가 까야는지도 모르겠고, 말이랍시고 전해주는 윗사람들의 얘기가 죄다 험담인 것도 싫었다. 왜 내 험담을 다른 사람한테 하고, 또 그걸 이 사람들은 태연하게 전해주는걸까. 험담의 내용이란 것도 일적인게 아니라 사람들이랑 잘 못어울린다는건데 그게 나한테만 책임을 물어서 되는 일일까.
병가를 낸 다음날 초췌한 몰골로 출근을 했다. 둘 중 한명이 다가와 괜찮냐는 말 대신 작정한 듯 다시 누군가가 내 얘기를 했다며 그 말들을 전해줬다. 환장할 것 같았지만 꾹 참고 내 할 일만 했다. 그들이 먼저 퇴근한 후 뒷정리를 했다. 책상에 앉아 다시 이 일을 계속하냐 마냐고 고민하고 있는데 그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술집에 있으니 와서 얘기를 하자고 했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 가보고 후회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물론 이보다 더 할 건 없겠단 만만함도 있었다. 급하게 술을 먹었는지 낯이 붉은 그들이 나를 맞았다. 맞았다기보다는 힐끔 쳐다보기만 한 것 같아 내심 불편했지만 꾹 참고 자리에 앉았다. 술이 몇 번 돌고 그들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너는 이런 점을 고쳐야 한다, 내가 너를 밀어내려고 했는데 쟤 때문에 참았다, 여기는 조직이니 네가 적응해야 한다.'
한참 내 어떤 점이 잘못됐는지를 듣다가 나도 할 말이 있어 입을 여는데 그만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창피했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 아닌 건 나도 잘 안다. 어쩌면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별로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정도로 엉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나를 자꾸 엉망으로 만든다. 어쩌면 요리조리 잘 피해가면서 요령껏 살아와 별탈없이 지내왔는데 이제서야 진면목을 들켰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견딜 수 없는지도.
맨 처음 이 페이퍼를 썼을땐 서로 꿍한걸 술로라도 풀려는 그들 때문에 서운하거나 안 맞는 부분도 내가 노력하려고 다짐한다는류의 글을 쓰려고 했다. 그들 역시 낯가림 심하고 사람 어려워하는 사람들이고, 내가 유별나게 그들과 안 맞을 수도 있는거니까. 그런데 이 글을 처음 쓴지 한참이나 지난 지금으로선 잘 모르겠다. 자신들이 기분 좋을 때만 껌처럼 던져주는 살가움에 고마워하며 괜찮다고 하기엔 뭔가 불편해지고 말았다. 불편한 사람들끼린 그냥 불편하게 지내면 안 되는걸까. 직장에선 불편함을 가식적인 웃음으로 무마해야하는걸까. 이런게 올 한해 내가 풀어야할 미션이라면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