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천 마법사가 어떤 데이터를 근거로 내 취향을 골라내는지 모르겠다. 여성학/남성학은 수긍이 가는데 <건강>에 관한건 좀 의아하다. 물론 요새 영양과 대사 능력, 호르몬에 대한 책들을 읽고 있지만 따로 페이퍼나 리뷰를 쓴 것도 아닌데. 내가 쓴 열 손가락에도 안 드는 리뷰 중 하나가 건강에 관련된 책이어서일까. 그렇다면 에세이나 잡문을 추천해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알게 돼서 즐겁다. 물론 당장 사지는 않을테고, 사고 싶어서 안달나진 않겠지만 눈도장 찍어놨으니까 언젠가 읽게 되겠지.

 추천 마법사에서 나랑 비슷한 취향의 서재를 알려주는건 좀 귀엽다. 어렴풋하게 이 사람은 나랑 비슷하단 생각을 했지만 -역시 어떤 근거로 선정한지 분명하지 않다.- 콕 집어서 알려주니까 신선하다.

 마법사야, 앞으론 잡문도 많이 추천해주렴.

* 얼마 전에 읽은 한윤형의 <키보드 워리어>에서 강준만 선생님에 대한 내용을 읽었다.
 한윤형은 진중권이 이문옥 서울 시장 후보에 대한 관점을 강준만에게 물어보는 것으로 시작된 논쟁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수십 년간 제도정치권 내에서 빛과 그늘을 모두 맛보았던 김대중과는 달리, 아웃사이더 체질의 노무현을 옹호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논변은 어느 선량하면서 고생을 많이 한 무명 군소후보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알았을 때에도, 그(강준만)는 민주당이라는 제도권 정당이 지니는 현실성을 무시하는 진중권의 논의를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비록 그 자신이 그 지점을 정연하게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과연 그 자신의 생각대로 강준만은 컨텍스트의 남자였다. 그에겐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구축된 감각적인 판단이 있었고, 옳지 않은 것들에 대한 분노도 있었다. 진중권이 논리적 일관성을 위해 존재론적 모순을 선택했다면, 강준만은 존재의 일관성이 논리적 비일관성을 설명해 버리는 사람이다. 두 사람의 전략을 비교하다보면 일관성이라는 말이 결코 쉽지 않은 어떤 강박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절로 깨닫게 된다.'
 
 강준만 선생님이 민주당, 호남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열린 우리당 창당 과정에서 강준만 선생님이 욕을 먹고, 결국은 실패한 기획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은 것 정도가 내가 아는 것의 전부. 정말, 정치는 어렵고 역사는 복잡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흔적을 좇아가는 독서는 필요보단 재미의 요소가 더 많다. 이번 경우는 안티조선에서 시작한, (미잘 말에 의하면) 인터넷 무림 세계에 관한 것이니 말할 필요도 없다.

* '초등학교 3학년 시절, 교과서에 실린 동시를 처음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어렸을 때부터 여백이 없어 새까맣게 백지를 사용하고 또 그 위에 덧칠을 하도록까지 절약 교육을 받았던 내게, 교과서에 실린 동시는 인쇄가 잘못된 이상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종이의 낭비가 심했던 것이다. 어려서 시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몇 개의 단어와 짧은 시행이 거느린 드넓은 여백은 신비한 풍요를 품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시인이 되기로 했(다.)' 는 시인은 공무원이 돼서 퇴근 후 독자로 사는 삶을 꿈꿨단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책을 읽는 독자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저자가 됐다.

'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으면서, 독서에 관한 내 관념은 몇차례나 바뀌었다. 젊었을 때는 그저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드는 수단으로 책을 읽었다. 그때 책은 아파트 평수를 넓혀 가는 것과 같이, 내 개인적인 재산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다른 사람과 이해와 사랑을 나누는 방법으로 책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지식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책을 통해 타인과 관계를 맺어 가게 된 것이다. 무엇엔가 중독된다는 말은 곧 외로움으로 통하지만, 책에 중독된다고 해서 외로워지지는 않는다.'

 그 저자의 이름은 장정일이다.

* 장정일의 독서일기 7권을 읽고 있다. '아담이 눈뜰 때'나 '보트 하우스'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그의 책은 특별하거나 너무 싫지 않은, 딱 고만고만한 정도였다. '생각'을 읽으면서 '정말 이런 생각을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어느 부분에선 내가 나 아닌 것으로부터 단속했던 생각들이 무척 신기했다. 그래도 확 좋진 않았다. 안티 미스코리아 운동을 두고선 당사자가 말하게 해야지, 누가 대신 하는건 무리라는 얘기가 좀 불편했고, 자본대 반자본의 이분법적인 도식은 좀 뻔했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난 후에 그의 책의 충실한 독자가 되기로 했다.

  독서 일기만큼이나(특히 엉터리 책을 읽고 난 후, 자제하는 듯하면서 어깃장 놓는 방식은 유쾌하다) 그가 읽은 '책에 대한 책'의 내용도 좋다. '서재 결혼시키기'에서 '전작주의자의 꿈' 등 책에 대한 책은 항상  나를 설레게 한다. 맘에 드는 작가가 좋아하는 책의 지도를 그려볼 수 있고, 어떤 흐름으로 책을 읽었는지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물론 신간 소개나 출판사 소개로 책을 선택할 수 있지만, 그건 왠지 '그저 책'일 뿐 '읽고 싶은 책'의 아우라가 안 풍긴다.

 아니 프랑수아의 <책과 바람난 여자>에선 책과의 물성애에 빠진 그녀가 책을 사랑하는 방법을,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에선 권력과 지식을 남성들이 독차지하던 시절에 '책 읽기'로부터 차단된 여성이 나온다. <꿈 꾸는 책들의 도시>는 너무 두꺼워서 읽기를 망설였는데 혹할 것 같은 내용이 아니라 이참에 깨끗이 단념하기로 했다.


* 아빠는 냉장고 청소를 하신다. '나도 해야되냐'고 여쭸더니 '안 하느니만 못한다'며 깨끗이 거절하셨다. 그래서 집안일 하는 대신 페이퍼를 쓴다. 그러니까 이 페이퍼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대체 이런 음식을 반년 가까이 냉장고에 '처'넣어놓은 누군가를 규탄하는 아빠의 욕설과 얼음 가득 담긴 텀블러 덕에 씌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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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8-27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아직 한번도 읽어보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제 읽어볼까 싶어지네요. Arch님 덕에 말이죠. 물론 더 흥미가 가는 책들은 [책과 바람난 여자],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이긴 합니다만.

- 고백하자면, 이 글을 두 번 읽었는데 왜냐하면 처음에 빨리 읽느라고 '아니 프랑수아'를 얼핏 '아프락사스'로 읽었기 때문이에요. 하하하핫;;


- 약올리자면, 나는 커피빈의 '아이스 모카 캐러멜 라떼' 기프티콘을 생일 선물로 받아서 가지고 있어요. 아직 안 바꿔 먹었어요. 먹고싶죠? 하하핫

(다섯시간 후) [책과 바람난 여자]는 품절이네요. 흐음.

Arch 2010-08-27 20:07   좋아요 0 | URL
* 우리 다락방은 왜 이렇게 예쁘게 말해요, 응? ^^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의 그림은 괜찮았는데 글은 별로였고, 책과 바람난 여자는 장정일에 의하면 책에 대한 한편의 수다로 읽힐 수 있대요.

* 아니 다락방도 아니고 저 글자를 어떻게 아프락사스로 읽혔을꼬~

* 아니아니 저는 커피빈 커피는 별로에요. 얼음이 좋다는거죠. 조그만해가지고 입에서 아삭아삭 씹히는거 말예요. 터미널에서 버스 탈 때면 텀블러에 얼음 넣어갔고 나와요. 몰래, 도둑질 하듯이.

도서관엔 있을지 몰라요. 왜 이렇게 빨리 품절되나 몰라.

2010-08-27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8 15: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30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pjy 2010-08-29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이 냉장고청소에 꼿힙니다....왜 항상 욕과 시작해서 욕과 끝나는지 저도 모르겠더라구요ㅋㅋㅋ

Arch 2010-08-30 14:08   좋아요 0 | URL
그건 해본 사람들이면 누구나 공감할걸요. 그래서 전 손도 못대고 있는데 부지런한 아버님께서 그만^^ 전 오래 살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