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 떨어져 있을 때 참 보고 싶어요. 그런데 보잖아요. 그럼 그냥 그래요. 왜 보고 싶었나 싶고.
그는 자기 얘기냐며 한번 더 되묻고선 그러니까 아치가 날 보고 싶어하네 이러면서 자꾸 놀렸다.
고백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에 사는 것 같다. 자꾸 보고 같이 있어서 즐겁다면 당연히 좋아하는거지 굳이 맘을 다잡아 고백하는게 좀 겸연쩍다. 고백하고나서 달라질 것도 없다. 우린 전처럼 사이 좋은 동네 친구이고, 서로에게 허용되는게 어떤건지 잘 알 정도로 상식적인 사람들이니까. 서로 맘이 다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조금씩 멀어지는게 인지상정. 허기질 때면 내 옆에서 종알거리며 떠들어줄 그가 생각나기도 하겠지만 그게 그렇게 심각하고 고통스럽진 않을 것 같다고 쓰려고 했는데, 그건 좀 오만했다.
이건 아주 먼 얘기고 우선은 정서 불안처럼 자꾸 여름 다 가기 전에 아치가 비키니를 입어야 한다며 해수욕장에 가자는 그를 좀 말려야 했다.
- 저 배가 아직 안 들어갔어요. 그리고 수영해야하는데 비키니는 좀 오바다.
그는 자기가 선교사들이 수영하는걸 봤는데 다른 나라 사람은 배 나와도 비키니 잘만 입더라고 내 기인지 자신의 의도인지를 모르겠는걸 자꾸 북돋았다. 아우 참, 아우 참하면서 내 할일을 하는 틈틈이 그의 말을 흘려듣자니 왠지 이 정도의 거리가 참 좋다란 생각이 들었다.
비키니를 꼭 입어야하나 걱정할 필요도 없고, 자기 말하는데 나는 내 일에 몰두하고 있어서 서운하지 않을까란 염려는 붙들어맨, 누군가는 열심히 선교사 얘기를 하고 다른 사람은 그냥 흘려들으면서 가끔 눈을 봐주며 씽긋 웃어주는 거리.
* 연극적인 상황이었다. 다른 때의 나라면 이건 나와 맞지 않는 일이고, 좀 웃긴다고, 너 되게 위선적이란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고백 대신 살짝 웃으며 넘어갔다. 그 일이 나에게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기도 했고, 사사건건 날을 세우는 것보다 지나치는게 훨씬 더 나을거라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기를 쓰면서 상대방과 나의 간극을 줄이려고 노력한다거나 왜 그게 잘못된 생각인지 꼬치꼬치 따져대는걸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도리어 서로의 차이를 메울 수 있는 시간조차 허락할 수 없을 정도로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사사건건에는 '나는 이토록 너에게 최선을 다한다'란 진심이 담겨있다고 착각했다. 내가 편해지려는 최선이었지 상대방에게 필요한 최선은 아니었다.
* 남자가 생선을 발라주면 어떤가란 웃기지도 않은 주제가 나온적이 있다. 한 남자가 자기는 여자 친구한테 생선 발라주고 고기 구워주는게 좋다란 말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좀 웃기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단순히 취향 문제인줄 알았는데 같은 자리에 있던 여자분들은 그렇지 않았나보다. 여자가 손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해주는건 여자 고유의 주체성을 훼손한다는 얘기를 하는데 나는 자꾸 웃음이 나왔다. 변덕스러운 자아지만 그깟 생선 발라주는 것으로 쉽게 좌지우지 되진 않는다던가, 대체 누군가를 좀 챙겨주는 것과 주체성은 무슨 상관이며, 선뜻 '여성 노동'을 하는 남자를 칭찬해주지는 못할 망정 몰아세우면 되겠냐고, 그건 꼭 부엌 들어가면 꼬추 떨어진다고 겁주는 할머니들 같다는 얘기를 하려다 말았다.
대신 여자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남자에게
- 저는 생선 발라주는 남자 좋아해요. 술잔 비면 술 따라주고, 자꾸 예쁘다고 하는 사람도 좋아요. 고기는 잘 못먹지만 밑반찬 아낌없이 챙겨주는 남자도 좋아해요. 비올 때면 둘 다 우산 있어도 우산 하나로 같이 쓰자고 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꾹꾹 눌러담은 문자 말미에 하트 숑숑 보내주는 사람도 좋아해요.
라고 말하려 했으나 '아치, 술이 과했구나'라며 약올릴 것 같아 꾹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