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와 열정, 소망이 얇은 이불을 덮고 잠들어있다.
앞의 문장은 머리를 감다 생각해냈는데 좀 유치하다. 머리 감을 때 생각한건 다 헹궈내야한다.
이것은 이면지에 가끔 끄적이곤 했던 '아무런 이야기나 지껄이기'다.
금요일밤도 아닌데 어깨가 축 처졌다. 양볼도 생기 하나 없이 죽죽 처져 볼썽사납게 됐다.
누가 날 좀 묶어줬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견딜 수가 없다.
플라스틱 통에 담겨져있던 음지 식물을 고추장을 담았었던 항아리에 옮겼다. 이건 숨쉬는 항아리라고.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쓴다면 그 글의 성격은 일관될 수 있을까. 혹은 몇주, 몇시간 단위라면

애인과 통화를 하다 나도 참 푼수구나 싶어 웃었다. 애인도 내가 푼수라며 길거리에서 춤추거나 노래부를 때 그렇노란 얘기를 했다. 징그럽게 일시키는 그 애 회사를 욕하다 느닷없이 오늘 본 잘생긴 남자 얘기를 해서였는데... 그 애와 난 푼수란 개념 자체가 좀 다르다.

원래 계획은 아주 잠깐 페이퍼를 쓴 다음에 임시저장을 해두는거였다. 페이퍼는 안 써지고, 영화나 볼까 하고 개봉작을 훑어보다 모든 영화의 예고편을 샅샅히 다 뒤져봤다. 한국 영화는 코미디, 애로 궁금증형 멜로, 급작스럽게 돌아가는 액션물로 나눠져 있는 듯. 어느 것 하나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볼까 말까. 예언자는 정말 보고 싶다. 물론 이곳 극장에서 상영할리는 없겠지만. 민원이라도 넣어볼까.
그래, 원래 계획은 잠깐 글을 쓴 후에 채털리 부인에 빠져드는거였다. 바흐의 합시코드 연주곡을 틀어놓고, 촛불을 밝히며 책을 읽는 것. 무엇 때문이었을까. 잠자는 시간을 늦춰야겠단 생각이 든건. 자기 전에 방광을 비워도 새벽에 귀신같이 일어나 화장실에 간다. 귀신을 본건지도 모른다. 이히히히

양화소록님과 휘모리님의 글을 보고선 득달같이 달려들어 '그녀의 완벽한 하루'를 찜했다. 보기 드문 재빠른 행동으로 장바구니에 담아 주문까지 해뒀다. 글쎄, 글쎄. 정말 이 책이 읽고 싶은건지 새 책을 갖고 싶은건지 모르겠어서 주문을 취소했다. 대신 아주 잘빠진 필통과 다이어리를 샀다. 집에 있는 책을 다 읽기 전엔 다시는 책을 안 사고 싶다. 마루야마 겐지 전작주의를 한다고 다 사놓곤 하나도 안 읽었다. 마누엘 푸익도 그렇고.

아무렇게나, 아무 이야기나는 점점 누군가에게 읽힐 이야기로 변해가고 있다.

도서관 근처에 있는 분식점의 비빔 국수에 중독됐다. 할머니가 만들어주시는데 면발은 물론이고 새콤달콤한 맛이 끝내주는 국수다. 면발을 잘 삶는 비법같은걸 전수해주면 좋으련만. 친해지면 살짝 여쭤봐야지. 국수집에는 오뎅바가 있다. 바 주위로 사람들이 둘러 앉아서 분식을 먹는다. 며칠 전엔 어떤 할머니가 아이 둘을 데리고 온 여자 분에게 '국산'이냐고 물은 사건이 있었다. 할머니는 국산 발언 이후 자신의 파란만장한 이력을 풀어놓으려다 같이 온 꼬장꼬장한 친구 할머니에게 붙들려 나간적이 있다. 국산 발언 할머니가 나간 후 오뎅 바에 모여앉은 사람들은 한마디씩 성토했다. 대놓고 국산이라고 한다느니, 국산으로 불려진 당사자는 이런 일은 정말 듣보잡이라 어안이 벙벙했다고 하고, 아이들은 자기 엄마에게 국산은 뭐냐고 묻기 시작했다. 이 모든 사태를 옆에서 지켜본 주인 할머니는 이국적으로 예쁘게 생겼단 뜻일거라고 한마디 거들었다. 예전에 거스름돈 100원을 안 남겨준적이 있는 할머니였다.

Vicky Cristina Barcelona에서 크리스티나 역으로 나오는 스칼렛 요한슨은 자유분방하고 매력적이다. 그런데 빅키의 남자친구는 그녀를 두고 튀려고 하는데다 너무 쉬워서 하룻밤 상대로 밖에 안 보인다는 소리를 한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시각은 분명히 다른데 가끔 까먹을 때가 있다. 혹은 과장할 때도. 그래서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은 무조건 부러워하고, 부러워하다 안 되겠으면 무슨 흠이라도 찾아내 깎아내려고 했다. 이 밤엔 그 모든 시도가 너무 터무니없게 느껴진다.

여러잔의 술을 들이킨 동생이 내 방에 드러누웠다. 난 어디서 자라고. 내 방은 손바닥보다는 크다. 난 동생에게 짜증을 냈고, 동생은 헤죽 웃으며 방을 나갔다. 나도 술이 떡이 돼서 아무데나 드러눕고 싶을 때 손바닥만한 방을 내줄 수 있는 언니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조르쥬 바타유의 눈 이야기를 볼 때는 탱고를 들어야지. 조지아 오키프의 전기를 읽을 때는 무슨 음악을 들을까.
채만식이 친일을 했단다. 이건 예전에 밝혀진 것. 이럴 수가. 나만 모르는 일들이 너무 많다.
주례사 비평을 넘어서, 해독. 문학 비평은 집요하게 재미있다.
역지사지 글쓰기는 이제 좀, 스타일을 바꾸든, 공부를 더 하든 쫌!
아빠는 내복의 용도에 대해 말씀하셨다. 집에서 입고 돌아다니는게 아니라 밖에 나갈 때 겉옷 속에 입는거라고. 부녀지간엔 못할 소리가 없다.
배가 고프면 점심이고, 눈이 침침하면 한시간쯤 책을 읽은거다. 섹스를 하고 싶으면?
가장 비범한 재능은 무심함이다.

아, 채털리 부인은 언제 그 남자를 만날까. 나는 언제 잠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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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0-03-05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술에 떡이 되서 막내동생 방에 드러눕는 누나임미다. ㅋㅋㅋㅋ

마누엘 푸익 책은 뭐 읽나요? [천사의 음부]를 서점에 갈 때마다 만지작거리고는 있는데.. [조그만 키스]는 왠지 별로였어요.

Arch 2010-03-07 21:56   좋아요 0 | URL
자기 출국하기 전에 천사의 음부를 내가 다 읽어서 선물할게요. 구판도 괜찮나요?

비로그인 2010-03-06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전 비빔국수란 단어에 자꾸 눈이 갈까요?
아 비빔국수.. 봄되니 잃어버린 시간의 미각이 살아나고 있나 봅니다. ^^

Arch 2010-03-07 21:57   좋아요 0 | URL
비빔국수는 단어 자체도 눈에 쏙 들어오는 것 같아요. 바람결님, 그렇죠? 봄엔 정말 맛난 것만 먹고 싶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