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하다. (늘 처음엔 이렇게 자신만만이다) 빨래통에 있는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버튼 몇개 누른 다음에 세제를 조금 넣는다. 세탁기를 돌린 다음 건조대에 널면 된다. 메뉴얼 한줄짜리도 안 되는 초간단 빨래하기지만 예기치 못한 경우들이 생기기 마련.

* 세제를 안 쓸 경우

  빨래 비누를 쓴다고 설치던 시절, 빨래를 세탁기에 넣은 다음 물을 받았다. 그런 다음 세탁기를 끄고, 비누거품 잘 날 것 같은 소재의 옷을 들어 비누칠을 했다. 허리 아프다. 허리 아픈 것에 비례비례해서 손이 아프고, 겨울엔 손이 시렵다. 이 방법으로는 안 되겠어 양동이에 물을 받아 비누를 녹여보거나 초벌 빨래라는 고단수들의 작업방식을 흉내내봤다. 비누는 쉽사리 녹지 않았고, 초벌 빨래는 실제 빨래만큼 힘들었다. 비누 대신 밀가루와 베이킹 파우더를 세탁기에 넣은적도 있다. 몇 번은 성공했고, 내심 나의 정보 접근성 뭐 그런 것에 쾌재를 불렀다. 결국 냄새(뭔가 탁한, 텁텁하고 시금털털한)와 찬물에 뭉친 가루 때문에 가족들에게 발각되어 한동안 세탁기 접근금지 명령을 받았다.

  텔레비전에서 소개되는 살림의 여왕들의 솜씨대로라면 양파망에 빨래 비누를 잘게 썰어 돌린 다음에 헹굼시 꺼내면 되는 손쉬운 방법도 있다. 하지만 난 여왕이 아니라 아치라서 똑소리나는 설명만큼 일이 간단하지 않았다. 비누는 잘 안 썰어지고, 양파망의 매듭은 종종 엉켜버린다. 간신히 양파망을 건져내더라도 워낙 무신경해 탈수 다 끝나고 재세탁 후에야 발견하니 헹굼물을 지나치게 낭비한다.

* 섬유유연제를 넣을 경우

  나는 섬유유연제보다 더 와 닿는 피죤이란 상품의 냄새를 안다. 외출했다 들어와 방에 은은하게 배어있는 냄새와 갓 구운 빵이 아니라 갓 세탁된 옷에서 나는 ‘새물내’의 향긋한 버전인 피죤 냄새를 좋아하기까지 한다. 피죤을 넣으면 정전기가 생기지 않고, 목욕을 잘 안 하더라도 남들을 속일 수 있는 냄새를 풍길 수 있다. 하지만 이 녀석을 넣을 경우엔 헹굼을 한번 더 하고, 번거롭게도 세탁 과정을 예의주시해서 마지막 헹굼시 잽싸게 넣어줘야한다. 귀찮은 일이다. 귀찮지 말라고 세탁기에는 섬유 유연제를 따로 넣는 투입구가 있지만 우리집 세탁기는 첫 헹굼시 피죤을 내려 향이 오래 남지 않게 된다. 그래서 안 썼더니 빨래에서 텁텁한 냄새가 난다고 식구들이 난리도 아니었다. 정전기나 냄새가 문제라면 식초는 어떨까 싶어 넣어봤는데 늘 양조절에 실패하고 말았다. 지금은 햇볕에 빨래를 바짝 말리면 냄새가 근사하단 식으로 피죤 안 넣는걸 퉁치고 있는 중이다. 여가 시간이 늘어난 가족 구성원이 생기는 경우에 금세 발각되고 말 임시방편.

* 빨래 말리기

 난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빨래를 건조대에 말리는걸 보고선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가사 활동 제2편, 빨래를 말려볼까요'란 책이 있는줄 알았다. 어쩜 양말은 밑에, 속옷은 가지런히, 좀 두껍거나 구겨지면 안 되는 옷은 옷걸이를 이용하고, 모든 빨래는 털어서 널기까지. 나로선 대체 왜 그토록 오랫동안 빨래를 너는데 시간을 투자하는지 정녕 몰랐다. 내가 가사를 할 때의 원칙은 무조건 빨리, 최대한 효율적이고 빨리, 효육적이지 않아도 빨리이니까. 빨래를 왜 터는지조차 모르는 내가 빨래를 널 때면 바로 티가 났다. 뭔가 지저분하고, 빨지 않은 옷 같고, 빨래들이 애처롭게 건조대에 거추장스러운 소매를 걸치고 있는 형국이니 말 다 했다.
 한동안 시간이 났던 집안의 유일한 성인 남자, A. 내 무지막지한 이력을 알고 있는 A가 젠체하며 빨래를 너는데 Oh my God! 이건 뭐, 예술 작품 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였다. 색깔을 맞춘걸까, 빨래의 형태를 통일 시켰나. 오바도 조금 이해해준다면, 햇살 아래서 태연하게 말라가는 빨래들은 정말 행복해보였다. 풋풋하고 정갈하게 건조되는 빨래는 오후의 노동 끝에 마시는 한잔의 차에 어울릴만한 멋들어진 배경처럼 빛이 났다.

* 모양내서 빨래 개우기

 이것 역시 이제껏 알 수 없는 분야였다. 내가 가사를 하는 방식은 '어차피'란 부사로 수렴된다. 어차피 더러워질거, 어차피 꺼내 입을거, 어차피 뱃속에 들어가면 섞일거. 빨래 개우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옷장에 잠시 있다가 펼쳐질거 뭐하러 모양내고, 시간 걸리게 각을 잡냐는식이었다.
 살림의 고수 B를 보고난 후, 가사가 맘 먹기에 따라서 얼마나 자신의 독자적인 상상력을 펼쳐보일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두꺼운 종이를 써서 옷집에서처럼 각을 잡은 티셔츠, 어찌어찌 낸 구멍에 끝을 집어넣어 감쪽같이 동그랗게 말린 양말, 정리하기 편하게 말린 속옷, 수건을 접는 일정한 비율에 관한 설명까지.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래서 배운대로 집에 와 해봤다. 뭔가 정돈되고 깔끔해진 느낌. 살림꾼이란 호칭을 친히 붙여주고 싶을 정도로 우쭐해지는 기분은 덤이었다. 물론 며칠가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갖고 있는 가사에 대한, 어차피, 빨리, 더 빨리에 집착하는데다 신념까지랄 것도 없는 생각을 고수하는게 한결 편하다는걸 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토록 섬세하고 예술적인 행위라도 매번 같은식으로 매일 반복하는건 견딜 수 없다는걸 안다. 혹은 행여 주부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내 일이 될 수 있을지 모를 가사를 혼자 감당하는건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미리 가사 부적응자 내지는 가사 테러범 정도의 이미지를 씌워놓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몇가지 필요와 욕구는 있다. 책상이 폭탄 맞은 직후처럼 어질러져있을 때면 절실하게 살림 잘하는 방법들을 배워보고 싶다거나 가사를 잘 한다는 손쉽고 가벼운 칭찬을 들어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가사 노동은 그 정도로 호락호락한 녀석이 아니라는것쯤은 안다. 돌 하나 한번 잘못 건들면 와르르 무너지는 위태로운 성처럼 좀 더 잘하려는 의욕은 나는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목적도 보람도 발전도 없는 집안일의 지긋지긋한 현장만 남겨놓을 뿐이다. 물론 집안일을 무척 잘 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는걸. 하지만 유지와 망가짐의 경계선에 존재하는 수많은 시간과 겉잡을 수 없는 피로감에 대해선 별다른 얘기가 없는걸로 봐서 일면 강요된 희생이란 생각도 든다. 누구나 다 할 수 있지만,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일. 누구나 해야하지만, 왠만하면 피하고 싶은 일. 가사 노동은 늘 위태로운 경계에서 좀 더 맘 약하거나 떠맡겨지기 쉬운 사람의 몫이 된다.
 
 나는 빨래를 한다. 엉망진창 뒤죽박죽 세탁기 금지명령까지 받으며 빨래를 한다. 이건 내가 가사 노동을 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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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0-01-18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래 말기랑 빨래 개기를 잘 하면 따로 다림질을 할 필요가 없어요. 그만큼 가사일을 덜 수 있다는 거죠.

Arch 2010-01-20 00:28   좋아요 0 | URL
아, 다림질 영역이 따로 있었죠. 그거게 말입니다. 조선인님 프로필 사진 바뀌셨네.

조선인 2010-01-20 20:53   좋아요 0 | URL
한 2주 정도 원두 없이 버텼더랬어요. 그러다 어느날 확 돌아버려서... 이것저것 지르고 마지막으로 저 머그까지 질렀어요. 호호호

Arch 2010-01-20 23:07   좋아요 0 | URL
조선인님은 버티면 안 되겠어요. 머그잔 정말 절묘해요^^

마늘빵 2010-01-18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내가 배워야 하는...

Arch 2010-01-20 00:29   좋아요 0 | URL
^^ 얼른 배워보아요.

2010-01-18 1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0 0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1 0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1 0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1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1 16: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1 2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