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 사람들은 묻는다. 엄마는 뭐하고 이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냐고. 엄마가 아프냐, 엄마가 없냐. 사적인 질문에는 D가 말한대로 알바 아니다, 아이들이 나를 좋아한다 정도로 말하면 된다. 퉁명스러움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더 부채질하지만 역시 내 알바 아니다. 가끔은 애들 엄마가 게으르다거나, 바쁘단 얘기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주 가끔씩 그들이 알아듣기 쉬운 이야기를 해준다.
토요일 일요일은 공식적으로 내가 옥찌들을 보는 날이다. 동생의 일은 주말에 더 바쁘다. 난 꽤 오랫동안 아이들이랑 지내왔고, 이제 어디 가면 경력으로 쳐도 몇 호봉은 되겠다 싶을 정도로 아이들 보는데 익숙하다. 그런데도 난 여전히 아이들이랑 지내는게 어렵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아닌 일에 목소리를 높이고, 떼를 쓰고, 욕심을 내고, 싸운다. 내가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일에. 나는 소리를 지르고, 다시 또 소리를 지르고, 매를 들고, 아이들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나는 괜찮은 어른도 아닐뿐더러 쓸모 있는 양육자도 아니다. 쓸모없는 양육자는 가끔씩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생각으로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밥을 먹을 때면 할아버지와 아이들의 신경전이 시작된다. 나와 엄마는 아빠와 아이들이랑 같이 밥을 먹을 때면 늘 체한다. 어떨 때는 뱃속에 화가 가득차서 어쩔 줄 몰라 할 때도 있다. 가끔씩은 부러 아이들을 혼내기도 한다. 하지만 매번 효과적이진 않다. 오늘은 특히나 더 그랬다. 무식한 할아버지와 그보다 더 형편없는 이모와 아무 힘이 없는 할머니를 둔 아이들.
누군가 그랬다. 자신이 어떤 것들을 선택하기만 하면 되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어서 무척 암담해졌다고. 어디에 살든, 누구와 살든 내가 선택하는건줄 알았다. 하지만 양육과 가사는 가족 구성원에 따라 n분의 1로 쪼개지는게 아니었다. 늘 좀 더 못 참는 쪽이 모든 일을 떠맡기 마련이었다. 언제까지 엄마에게만 못 참는 역을 하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러자 좀 울적해졌고, 하루 종일 배가 아팠다. 결국 핑계란 것도, 결국 나하기 나름이란 것도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했다.
동생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원래 술을 좋아했고, 좀 더 좋아하게 됐으며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아마 내가 동생이라면 벌써 도망쳤을거다. 불 꺼진 방에서 앞으로 아이들과 살아갈 날들을 꿈꾸기보다 셈해야하는 처지라면 아마 난 몇 백번이고 도망쳤을거다. 내가 동생이었다면 어느 날에는 서러워 집에 발조차 들이밀고 싶지 않았을거다. 내가 동생이라면, 내가 동생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