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번은 해줬다. 그런데 자꾸 지가 할걸 미룬다.   
그러다 오늘 또 복사 해달라고 하길래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 제가 복사순인가요, 누구씨가 하세요. 
  누구씨, 복사기 사용법을 모르는 듯 애처롭게 복사기 앞에서 우물쭈물댄다. 에휴, 해줄걸 그랬나.


 우리 J씨, 자판기 앞에 있는 커피를 치켜들며(그렇다 우리 회사는 비품만으로 보면 대기업을 능가한다.) 이거 누구거야, 누구거야 하면서 정신없이 굴었다. 다행히 주인이 나타나 커피를 수거해가자 조용해진 J.
- 아니 왜 그렇게 다급해요.
- 커피 식을까봐.
아~

제품 관련해서 시험 성적서를 의뢰해서 결과지를 받았는데 뭔가 맘에 안 드는지 J씨를 부른 사장. 돌아온 J씨에게 뭐라고 했냐고 묻자, 
- 결과를 분석해서 반박하래. 그 사람들 그 분야 전문가들이고 공학 박사인데. 그러더니 장비를 사서 직접 검사를 하라는데 견적 뽑아보니까 17억이 나오는거야.
- 그래서요?
- 장비값이 그렇다고 말하니까 아무 말도 안 해. 말이 되냐고.
J씨 표정이 얼마나 진지하고 심각했는지 도리어 이 상황이 희극적으로 느껴졌다.  

 ㅎ씨가 무척 예쁜 옷을 입고 왔다. 타이트한 치마에 브래지어가 살짝살짝 비치는 흰색 블라우스. 오호, 체인이 돋보이는 하이힐도 신었다. 예쁘다고 해주려고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ㅎ씨 약간 우울해보이던데... 지금이라도 말해줄까? 

 신문사에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무슨무슨 상 등등을 준다고 공문을 보내는 경우가 있다. 신중하게 검토해서 우리 회사에만 보낸다고 하지만, 지면을 빌려주는 대가로 협찬금을 요구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오늘도 신문사에서 팩스가 왔다. J씨는 아치가 한번 서면 형식으로 인터뷰를 보내보라고 하길래 이러저러한 비용이 든다고 말을 해줬다. 그러자 J씨
- 하긴, 우리가 혁신이며 기술이랑 맞는 회사는 아니지. 특히 리더는 무슨.
 한다. 역시 J씨는 날 실망시키지 않는다.

 방금, 스캔하는 자리에 J씨가 앉아있길래 스캔을 부탁했더니 한참 지난 후에 왜 스캔이 안 되냐며 툴툴거리는거였다. 보니까 스캔할 것도 안 넣고선. 
- 어쩐지. 내가 스캔을 누르는데 계속 하얀 종이 밖에 안 보였어. 
한다. J씨, 뭔가 좀 답답할 것 같아..

 살짝 조는데 J씨가 어슬렁거리며 와선 뭐하냐고 묻는다. 좀 잔다고 했더니, 작금의 회사 상태가 어떤줄 알고 자는거냐고 잔소리를 늘어놓는 대신 뭔가를 건네주며 앞으로 이런게 보이면 즉각즉각 사장에게 보여주라고 한다. 뭔지 보니까, 뭐 해외 시장 개척단 이런거. 응? 왜요?
-  사장 해외로 보내버리게. 사장 돌아다니는거 좋아하잖아.

 야근을 한다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짜장면을 시킨 무리들. 야근이고 뭐고 아주 신나 있다. 짜장면 네개를 들고 뒤뚱뒤뚱 걸어가는 J씨 뒤를 쫓아가며 '나는, 나는, 우린 입이 아니냐고.' 하자,
- 아니, 우리에겐 인부들이 있어. 아홉시까지 일할거야?
 가고 해서 할말 없게 만든다. 껴서 먹을걸 그랬나?

배고프다.

 손님이 와서 J씨에게 누군지 물었다.
- 몰라, 나도 처음 보는 놈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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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9-07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지금이라도 말해주세요.
전 하얀색 셔츠에 속옷을 잘못입어서 오늘 자신감이 바닥이예요.
평소엔 화장실에서 뿌듯하게 바라보곤 하는데 오늘은 화장실에 가기도 싫어욧!!

Arch 2009-09-07 13:32   좋아요 0 | URL
ㅋㅋ 근데 뜬금없이 저기요, 이러고 저러고 이러면 푼수없을 것 같지 않아요? 원래 푼수 아치였지만.
저도 화장실 뿌듯과이긴 한데, 잘 입은 속옷 하나 멋진 겉옷 하나 안 부럽긴 하지만 휘모리님이라면 괜찮으니까, 자신감 쭈욱 끌어올려요!

다락방 2009-09-07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칭찬은 미루지 말고 바로바로 해줘요!! 절대 참지 말아요, 그게 칭찬이라면.

사장 해외로 보내버리게. 캬~ 갈수록 J씨가 맘에 들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