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섹스를 꼭 제대로 해야겠다거나 남들보다 뒤떨어지 말아야겠단 강박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등이 휘어지고, 입에서 여러 해 묵혀두었던 단내가 날 정도로 절정에 이르는 오르가즘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그래서 상대방이 느끼는 순간 같이 느끼는 것이나, 죽을 때까지 안 끝날 것처럼 이어지는 오르가즘은 좀 탐이 났다. 맹렬한 욕망은 아니고 호기심 생길 정도? 물론 한번쯤 해볼만하지 않나 싶은 호기로움도 있었다.
남자가 섹스를 하기 전 다단계의 층위를 두고 여자에 대한 환상을 키워갈 때 난 주로 오르가즘에 대한 환상을 꿈꾸었던 것 같다. 처음은 별로였고, 여러번 해도 희안하게 별로였다. 그냥 빨리 이런건 끝내고 편하고 따뜻하게 자고 싶단 생각만 있었다. 오르가즘은 나한테 해당 안 되는 일이라고 밀쳐두니 되려 맘도 편안해지고 뭐 그냥 그렇게 살아도 되겠거니 했다.
그런데 나도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아, 이게 그 오르가즘인가'라고 생각 했던건 자위를 하면서부터였다. 성기결합으론 당췌 느껴지지 않던 게 약간 버릇을 들이고 조심스런 탐색과 오랜 연습을 하자, 말 그대로 느끼게 된거다.
무척 좋은 느낌이었다. 여름 낮, 나무 그늘이 있는 평상에서 달게 잠을 자다 깨어났을 때 한줄기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는 것처럼 시원하고 나른했다. 포근한 이불을 몸으로 꼭 껴안고 잠들락 말락한 상태일 때처럼 따뜻했다. 하지만 환상을 키워갈 무렵의 '끝내주는 오르가즘'은 아니었다. 아 좋다. 한동안 딱 그만큼 그저 아 좋다 정도. 몸에서 뭔가가 들끓고 폭발하듯 터지는게 아니라 아, 딱 그 정도.
왜 나는 성기결합을 통해서 G-스팟이니 여타의 스팟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 그것을 결정적인 오르가즘으로 이어가지 못할까. 난 왜 섹스를 하면서 울었단 여자들처럼 되지 못할까.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적당한 상대를 못만났거나 섹스 할 때도 씨잘떽없는 생각을 해대는 머리탓인걸까?
그러다 권터 아멘트의 섹스북을 읽다가 머릴 퉁치는 충격을 받았다. 난 한번도 ‘질 오르가즘을 못느끼시는군요’란 질문에 ‘네. 저는 전체적인 느낌으로 오르가즘에 도달하거든요’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대신 뻘쭘하게 제가 좀 섹스를 못해서란 얼토당토 않는 반응을 보였었다. 헌데 그런 질문이나 내 속에 내재된 답변은 상당히 폭력적인 문법이란걸 깨달았다.
아무도 남자에게 당신은 페니스축 오르가즘이나 음낭 오르가즘, 회음부쪽 오르가즘, 항문 오르가즘, 귀두 오르가즘을 느끼냐고 묻지 않는다. 사정했으면 그 기분이 어떻든간에 오르가즘을 느낀걸로 짐작한다. 하지만 여자의 경우엔 괜찮았어 좋았어란 질문에 글쎄란 답변을 보내면 기다렸다는 듯이 불감증이냔 반응을 보여온다. 내가 하는 방식으로 자위를 하면 분명 느껴고 난 상당히 예민한 몸인라고 생각하는데도 질오르가즘이 없단 이유로 난오르가즘 결핍된, 늘 적당한 상대를 못 만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찌나 줄줄 늘어지는 여자 오르가즘에 대한 흉흉한 소문은 많은지.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섹스가 끝내주게 좋았단 여인네들의 이야기를 질투해왔다. 여자들의 입이 아니라 누군가를 통해 걸러진 말들 말이다. 그냥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반응하는 것 뿐인데. 강렬하고 계속되는 오르가즘보다 잔잔하고 시원한 나의 것도 좋은데. 이걸 부족함으로 아니까 뭔가 더 채워야할 것 같고 어서 도달하고 싶어 안달이 났었던거다. 그렇다고 샐쭉해져선 내가 못느끼는건 너의 성의없는 손놀림 덕분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좋고 나쁘고는 있다지만 자기 몸을 다른 누군가가 정확히 '알아서 해줄거란' 생각은 글쎄, 너무 무책임하지 않을까. 아마도 나만의 방식으로 느끼는걸 같이 즐겨보잔 권유는 해볼지 모르겠다.
세상에 섹스를 잘하는 사람은 없다. 잘 맞는 상대가 있을 뿐. 그게 하룻밤이든 정기적인 관계이든 너무 사랑하는 사이든 몸으로 소통하는건 대화만큼이나 친숙하고 따스한 정서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당위가 끼어들면 상당히 무거워지지만 적어도 살아가면서 이건 좋은거 같아란 자신만의 기준은 있어야하지 않을까. 섹스에 있어선 아마도 나와 상대방의 취향을 맞춰가는 방식으로 나아갈 것 같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건 섹스 자체만큼이나 나의 몸과 나와의 관계, 여름 바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