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복잡한 직함을 갖고 있는 김태훈의 칼럼을 본적이 있다. 정확한 출처는 모르지만 요점은 데이트 비용에서 여남이 불공평하다는 얘기인데 문제제기 수준에서 그친게 아쉬웠지만 나름대로 대다수의 남자들이 제기하는 문제의 테두리 근방은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조금은 편협하고, 겉핥기식으로. 이건 절대로 글을 쓰면서 확인해본 출처가 조선일보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문화면의 조선일보는 괜찮다는식의 얘기가 아니다. 나는 조선일보가 의제를 독점하거나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줄세우기 시키는 점을 탐탁치않게 생각한다.  

 데이트 비용에 대한 과거의 내 행적은 지극히 아치스러웠다. 액면 그대로 동냥아치. 정말 돈 잘 벌고 편한 친구라고 하더라도 그 아이가 한번 사면 내가 한번 사는게 당연한건데 데이트에선 그렇지 않았다. 데이트를 할때면 대부분 남자가 비용을 지불했고, 난 모른척 하거나 생각해주는척 싼걸 고르는걸로 그나마 도리는 했다는식으로 자위를 했다. (그 자위, 아니다.) 물론 꾸준히 가난한데다 불안정한 임금 노동자란 입장도 있었지만 앞서 말했듯이 친구한테는 안 그랬다.  

 '왜'에 대해 궁여지책으로 김경의 '뷰티풀 몬스터'에서 본 낸시 랭에게서 팁을 얻었다.

  - 여자들은 남자를 만나기 위해 꾸미고, 남자를 즐겁게 한다. 나를 만나는 남자들은 행복하다. 

 낸시 랭처럼 애교있거나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지도 못하는 내가 저 논리를 따르는건 어불성설이었다. 역시 결국 며칠 안 가서 뽀록이 나고 말았다. 저 말에서 함의하고 있는바를 충족시키는 여자라도 문제는 남는다. 여자가 자기만족을 위해 꾸미는 것과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꾸미는 비용의 경계는 무엇이며, 비용의 문제가 관계 안에서 지불되는걸로 그들은 합의를 했을까라는 점. 합의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교환한 가치는 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그렇다면 데이트 비용은 어떻게 부담해야할까. 가시적으로 데이트 비용문제가 나왔지만 데이트에 있어서 제반 여건들과 사회가 조장하는 데이트 신화까지 아우르지 않는다면 단순하게 누가 더 내냐 덜 내냐로만 시야를 한정하는건 문제가 있다란 생각이 든다. 능력 여하에 관계없이 여성 임금이 낮은 이유, 데이트를 하면서 여성들이 전적으로 부담하는 감정이나 기타 비가시적인 노동 비용의 문제, 데이트를 지나 결혼을 하는 관계에서 여성이 분담해야하는 여러가지의 악조건 노동(가사, 육아, 상대 부모에게까지 잘해야하는). 실질적으로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더 낼지 모르겠지만 '직접적인 돈'외의 영역의 비용은 간과되고 있다. 

 사회적 조건이 여남에서 차이가 나니까 데이트를 할 때 비용은 남자가 좀 더 호혜적인 차원에서 부담을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고정화된 비용 부담이 단순하게 '여자들이 얄미운 족속'이기 때문이 아니란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게다가 비용 지불은 반드시 반대급부인 대가를 요구하게 된다. 대개의 경우 대가는 성적 관계로의 돌입이고, 갈수록 뻔해지는 이벤트의 면면은 어떤 절차처럼 '좀 더 화려하고 획기적으로 섹스를 한다'는 것을 의욕적으로 어필하고 있다. 

 내게 본래부터 없던 애교가 어느 날 갑자기 더 사라져 민망하게 엉덩이를 눌러붙이고 있기 겸연쩍어 데이트 비용에 대해 적극적으로 변한건 아니다. 여전히 난 부지불식간에 상대방이 좀 더 큰 비용을 내길 원하고 있으며 부담을 하면서도 그냥 뭉개고 있었으면 좋았겠다란 생각을 안 하는건 아니다. 하지만 염치가 없는데다 앞서 말한 대가에 초연할 수가 없었다. 사랑하니까 모든걸 다 해주고 싶다란 입에 발린 소리가 무척 매혹적임에도 '모든걸 다 해주기'만 할 수 없는 남자, 인간의 심리를 나이만큼은 아는 까닭이다.

 나를 지나간 언니들은 더 멋지고 반짝반짝 빛이 난다. 그녀들은 자신이 먹고 입는 것만큼이나 사람들에게 베풀기를 좋아하고, 비용에 있어서도 얌체처럼 굴지 않는다. 도리어 '돈 문제'를 얘기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신성한 데이트에서 돈 얘기를 하는건 자칫 이른바 '현실적'인 입장으로 돌변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비용 부분을 분명하게 하려는 의지로 읽힐때면 연인 관계의 신성함과 현실 사이에는 공허한 경계만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와 관련된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일들을 발설할때면, 특히나 다짐이나 선언들을 말할때면 뒷통수가 간지럽다. 다음에 알라디너와 데이트를 할 때 내가 글에 쓴 것처럼 할까란 의심도 들고 과거의 행적을 '아치스럽다'라고 뭉퉁그려놓듯 퉁치는 것도 글쎄. 나를 비껴난 일들에 대해서 말하고, 생각을 정리한다면 더 좋지 않을까란 생각도 드는 야심한 밤의 아치이다.  

 누구 버릇 남 못준다고 꾸준히 그럴게 분명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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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6-22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본적으론 능력에 따라 벌고 필요에 따라 나누자가 저의 모토입니다..
커다란 얘기로야 능력에 대한 올바른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문제제기가 있고 아주 중요한 문제지요. 여성적 노동에 대한 사회적 저평가는 큰 이슈지요.
개인적으로야 뭐 없을 땐 빌어먹고 있을 땐 좀 뜯겨주고 ㅎㅎㅎ
전 한때 '아 인간관계를 늘리고 늘려서 한끼씩 돌아가며 친구들 집에 빌어먹고 살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해본걸요 ㅎ

Arch 2009-06-23 10:46   좋아요 0 | URL
그거야 저의 모토이기도 하지만 늘 뜯어먹는 쪽이라..^^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 한끼씩 돌리고 돌려서 동그라미처럼 연결되는건. 횡설수설 글인데 여성 노동의 저평가, 짚어내실줄 알았어요.

비로그인 2009-06-22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늘 제게 편지를 쓰던 남자가 제게 물어본 적이 있어요. `나는 늘 편지를 쓰는데 넌 왜 답이 없지?' 제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네가 편지를 쓰면, 내가 그걸 읽어주잖아.'
이런 식의 대화가 그와 나 사이에 오갔어요.

'난 네게 전화를 하는데, 왜 넌 안 해?'
'네가 전화를 하면, 내가 받아주잖아.'

'왜 나만 데이트 신청을 하지?'
'네가 만나자고 하면, 내가 만나주잖아.'

그 등식에 따르면 이 대화도 성립하지요.

'왜 나만 데이트 비용을 지불하지?'
'네가 돈을 내면, 그 돈을 내가 써주잖아.'

Arch 2009-06-23 10:52   좋아요 0 | URL
쥬드님^^ 네에,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전 좀 켕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