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를 한번도 해보지 않았을땐 대부분 첫경험에 대해 상상하곤 한다. 누구와 어떻게 어디에서 할까. 뭐 육하원칙을 비켜난데도 상관없다. 단지 내 역사에 기록될 첫경험은 대체 어떤식일까란 궁금증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난 첫경험보다 그 후의 일들을 앞서서 걱정하고 있었다.

 내가 섹스에 환장하게 되면 어떡하지?

 얼음중독말곤 중독 증세가 없는 난 섹스를 시작하기도 전에 섹스중독을 겁내고 있었다. 중독의 속성상 ‘적당한 외면에서 나오는 품격’-다다이스트 마르셸 뒤상에 관한 책에서- 도 유지할 수 없을 뿐더러 그건 일테면 온갖 상징으로 엉클어진 여자의 지위에 관한거였기 때문이다.


 밝히는 년은 치우기 안 좋아하는 성격이래도 걸레란 소릴 들어야만 하고 수순처럼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한다. 섹스를 한번도 안 했던 내가 간접적으로 사회적인 폭력을 예감했던 것은 예민한 오지라퍼의 재간일 뿐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알게 모르게 그런 기제들은 여자의 사고와 행동을 제약한다. 그렇다고 이게 면면히 모든 상황에서 적용되는건 아니다. 예컨대 성적인 담론이 왕성하게 교환되는 자리에서 태연하게 자신은 그다지 성욕이 없다고 말하는 여자는 십중팔구 생뚱맞은 반응을 마주할지도 모를 일이니까.


- 아니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네요.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지 못했나봐요.


 이어지는건 어떻게 자기는 안될까 싶어 끈적거리는 눈빛. 

 
 혹은,

-미개척지가 상당한 수준인가본데.


 라는 진단. 종알대는 입에다 주먹을 먹이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비폭력주의자이다.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든 신이 주신 섬세한 감각의 소유자로서 성생활이 화려하든 여잔 늘 이분법의 수사에 걸려들어 있다.

창녀와 성녀의 극점을 말하는게 아니다.

 밝히지는 말되 너와 하는 상대와는 느껴라. 느끼지 못하면 느끼는 척이라도 해라. 여성은 사회적 관념을 수동적으로 답습하면서 성적인 역할극은 제대로 해내란 말씀이다. 슈퍼우먼은 결혼 전에도 통용되는 코드.

 무심코 던져대는 말들에 한번씩 발끈하는건 이 때문이다. 그게 어떤식으로 상처가 되는지 니가 아냐란 감정적이니 대응만은 아니다. 나도 고달프지만 그렇게 말하는 너도 대충 무슨 소린지 알거 아니냔 인간적 호소다. 뭐 대개는 자궁의 습기가 많은 히스테리 정도로 씨부려 감정적으로 개거품 물며 덤비게 하지만.


 나는 좋은게 좋은거다란 말을 정말 싫어한다.

 
 좋은게 좋은 것이 되기 위해선 좋은 것이 선결이 되어야는데 한번도 그 부분을 제대로 환기시킨 적이 없다. 나도 좀 별론거 알지만 뭐 어쩌겠어, 한번 웃고 넘어가는거지란 태도가 읽혀지는 말, 총칼 들고 싸울 정도로 격한게 아니라 버럭대며 대들 수도 없는 일. 정말이지 잠깐만 생각하면 될 일인데도 말이다. 헌데 아무 것에도 눈뜨지 않고, 암흑을 태초의 진리처럼 맹신하는 긍정적인 마인드라...... 긍정의 힘을 믿긴 하지만 이건 별로다.


 나 역시 긍정적이고 사회순응적인 지표를 행운처럼 이마에 붙이고 다녔다. 하지만 요게 자꾸 내 맘을 헝클어 놓는다. 주체적이란 단서가 붙어 막 되먹게 몸을 굴리진 않으나 여전히 남성욕구에 부합하는 여성성과 안락한 가정을 요새처럼 지키는 여성성. 다양한 욕구와 감정들이 엉키고 분발하고 누락된다.


 정해진 길은 없지만 가고자하는 방향은 있다.

사랑에 씌워진 환상성과 관음적인 시선을 벗어던지고 솔직하게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는 마음가짐 갖기. 개별적인 성을 존중하며 다름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강박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고 조화롭게 발전하는 관계.
이거 좀 이상하다고 인식하는 순간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진 분명해진다. 그건 이렇게 해라란 강권이 아니라 이건 어때란 질문 내지는 대안.
 

 첫경험을 우습게 시작했던 난 나날이 밝히고 밝히는 여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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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2009-05-21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적당한 외면에서 나오는 품격'을 외면하기는 정말 힘들지요. 저 같은 경우는...

뷰리풀말미잘 2009-05-21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추천!

무해한모리군 2009-05-21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나도 밝히는 여자가 되고 싶소..
그러나 현실은 내눈에 섹쉬한 남자가 발견되지 않이하는 고통.. 삼고에 더해 삶의 네번째 고통으로 넣어주소서..

Arch 2009-05-21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처럼님, 그러니까요. 저도 배우고 싶은 태도 중에 하나예요.

미잘, 씨익^^

휘모리님, 음... 밝히는 여자에 대한 개념과 어떤 대상에 홀리느냐는 상관없는 것 같아요. 왜 내가 굳이 '밝히는 여자'운운을 했는지는 글에 잘 나와있으니까요.

무해한모리군 2009-05-22 09:16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성이 아니라 모든 관계가 상호 존중과 자기 감정에 솔직하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저 요즘 나의 고충은 의욕상실과 게으름에서 비롯된 관계맺기 부제에 있는듯해서 단 댓글이라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