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락화락 버닝해야하건만 사실 그사세 시청에도 굴곡이 있었다. 나는 충성을 지키기 위해 시청률이 안 나오니 닥본사를 해야할까 싶었던걸 시청률 조사 대상이 아니란걸로 위로 삼으며 IPTV로 줄곧 시청을 해왔다. 그러다 지난주엔가 어어, 아니 감히 내가 빨리감기를 할줄이야 하는 순간이 왔는데 정지오의 아버지가 방송사로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는 대목에서였다. 아버지와의 관계,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인 지오와 잘 살지만 약간 천박한 엄마를 둔 준영의 대비를 보여주려는 장치이며 곧이어 아버지와 지오의 화해를 위한 발판인건 알았지만 장면장면이 참 재미없고 소모적이란 느낌만 들었다. 준영이 규호의 B팀을 맡는 것도 일이 그렇게 되려고 하려는건 알겠는데 지오의 '얼른 돈 벌어서 너네 엄마맘에 들었으면 좋겠다'란 말 때문이란 것도 선뜻 이해가 안 갔다. 연애나 결혼에 대한 다른 시각을 지상파에서 기대하는건 무리겠지만 그런 기운을 풍겼는데 대뜸 '집안'이라니. 작품에 나온대로 PD는 갈등을 만들면 일이 쉽게 풀린다는걸 위해 부러 설정한 상황이 아닐까 싶은, 튀는 몇몇 장면 때문에 극의 몰입도가 좀 떨어졌다.

 전에 굿바이 솔로를 볼때도 그랬다. 다른 이야기,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 이제껏 내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이야기를 죄다 쏟아놓았던 초반의 속도와 감각이 뒤로 갈수록 용두사미. 갈등은 효과적이지 않고, 등장인물의 감정선도 설득력이 없어보였다. 그래서 다시 이번회차를 볼까말까하다가 이왕 빨래도 개울겸 틀어놨다.

 이번회에선 (9회던가) 이혼한다는 엄마의 전화를 무시하는 준영과 그런 준영을 이해 못하는데다 자꾸 긁어부스럼 만드는 지오의 얘기가 주축을 이룬다. 지오는 그림 좋다고 드라마인게 아닌 것처럼 자신과 가장 가까운 엄마도 이해 못하면서 무슨 드라마를 하냐고 준영을 몰아세운다. 준영은 모든게 심각한데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죽었다 깨나도 자신은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선배는 그렇게 인간에 대한 이해에 철저하냐고 쏘아붙인다. 준영은 엄마의 손길을 그리워하면서도 엄마와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지긋지긋한 순간들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데 안도한다. 갈 곳이 없어 방황하던 준영은 이석우 작가집에서 윤영과 김군이랑 진실게임을 하게 된다. 이런 유치한걸 왜하냐며 툴툴대던 준영은 곧 서로 친해지게 되면서 털어놓는 비밀이나 치부에서 힌트를 얻는다. 처음 말하는게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쉬운거라는, 가까워지려면 정말 비밀을 말해야할까는 여전히 보류 중.

 모든 것이 내 맘대로 되지않고, 세상이 작당한 듯이 자신을 따돌린다고 느낀 날, 준영은 누군가를 붙잡고 엉엉 울고싶어 아빠를 찾는다. 지오가 엄마가 아닌 아빠를 처음 봤다면 참 좋았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준영이 사랑하는 아빠, 어린 딸에게 보들레르의 시를 읽어줬던 자상하고 멋진 아빠. 잠시 울고나면 괜찮을줄 알고 찾아간 아빠의 집에서 준영은 다른 여자 목소리를 듣는다. 그 길로 다른 PD의 환송회를 하는 자리로 온 준영. 모두들 웃고 떠들며 신이나 있는데 준영 눈에 눈물이 고인다. 입으로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것처럼 웃고 있는데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다. 지오는 준영에게 마음으로 묻는다.

-준영아, 무슨 일 있는거야?

 몇개의 복선으로 미루어볼 때 난 준영의 엄마가 불륜을 저지른줄 알았다. 그런데 원망해야할 대상이 아빠로 바뀐 순간 그녀의 마음의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다. 가장 믿고, 사랑했던 것에서 밀쳐진 기분, 그녀가 조금씩 이제서야 이해되기 시작했다. 굳이 준영이 너를 사랑한다거나 스스로에게 묻는 씬이 없어도 알 수 있었다. 이토록 그야말로 드라마같은 드라마라면 끝이 용두사미든 계속 탁탁 튀는 소리가 나든 상관없어지고 말았다. 앞으로 아마도 준영과 지오는 이 문제로 어쩌면 내가 원하는 갈등국면에 접어들고, 그러면서 서로 좀 더 그들이 아닌 서로의 삶에 젖어들어가겠지. 그러다 어느 날엔가는 서로의 키가 한뼘쯤 자란걸 느낄 수 있을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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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8-11-27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사세.. 이번주 까지 저는 재미있게 보았는데, 예고편보니 너무 뻔한 내용으로 전개될까봐 좀 불안한데요? ^^;;;
설마 지오가 불치병에 걸리는 건 아니겠죠? 그런 스토리는 아니길 바랬는데.. 흐...

Arch 2008-11-27 09:49   좋아요 0 | URL
불치병은 아니고 눈 때문에 일하는데 지장이 생기는 것 정도, 그래서 아무데서나 나서는 지오의 성격과 조금 얌체같은 준영의 성격이 부딪히지 않을까 싶은데요. 불치병은 소재의 문제가 아니라 식상함의 문제같아요. 가시장미님도 보시는군요. 히~

웽스북스 2008-11-28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현빈이, 얼른 돈 벌어서 너네 엄마맘에 들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 건 정말 지극히 현실적이지 않나요. 얼마나 초라하겠어요. 자기 자신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데 공중에서 연애모드로 안내려올 수는 없으니까. 나는 그부분 정말 마음 아프던데 ㅜㅜ 제 그사세 시청은 요즘 물이 오르고 있어요.

Arch 2008-11-28 22:56   좋아요 0 | URL
근데 난 부러 갈등을 만드는 느낌이 든게 10회에서 아버지가 현빈을 바깥에 세워두고 소똥 냄새 안 나게 막 씻기는 장면 있잖아요. 이거랑 맥락을 같이 하는데 뭐라고 할까. 좀 오바스러운 느낌 있잖아요. 그리고 이제 좀 가족에서 벗어나는 연애를 해도 되지 않을까란, 지극히 드라마적인 생각도 들었구요. 오늘 10회에 예고 보니까 가시장미님 말씀대로 불치병 맥락일 것 같은데... 뻔한 내용 안 나올거라고 생각해요. 노희경에 표민수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간의 캐릭터 때문에 함부로 식상해지진 못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