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분과 약주를 드시던 아빠.

-아빠 진지 드셔야지. 지금 차릴까.

이랬더니 웃으시면서 동생오면 드신다고 하셨다. 그러자 친구분께서 왜 그러느냐고 지금 먹지않냐고 했더니 울 아빠.

-쟤가 차리면 거지 밥상이고, 둘째가 차리면 왕자 밥상이라.

란 말씀을 하셨는데,

 아빠, 소근소근 말씀하셔도 다 들리거든! 그러니까 내가 밥 차리면 꽤 너저분하고 맛깔스러움은 애초의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데다 왜인지 찬밥 대우 받는단 말씀이신데 이건 순전히 오해다. 난 그저 설겆이할 그릇을 덜려고 조금 큰 그릇(거의 냄비)에 담아서 내는 것 뿐인데, 접시에 안 담아서 내는 것 뿐인데. 아저씨께서는 당황하셔서 그래도 저렇게 해야 나중에 살림 잘 한다는 소릴 인사치레로 해주셨다. 아빠 정말 그렇게 생각해?

 우리 아빠가 전에 내 외모에 대해서 하신 말씀도 웃겼는데 내가 하도 부엌데기처럼 지저분하게 하고 돌아다니자(머리는 안 감기 일쑤고, 옷은 치리-아빠가 즐겨 사용하는 표현-한데다 옷에 뭔가가 잔뜩 묻어있는) 심각하게 하신 말씀이

-너는 미운 얼굴은 아닌데 안 꾸며서...

라면 말끝을 흐리시길래

-그럼 나 꾸미면 좀 낫나?

이랬더니 차마 다른 말씀은 안 하시고 좀 씻고 다니란 얘기만 살짝 흘리셨다.

 어느 날인가는 생머리를 좋아하는 아빠 취향을 유감없이 드러내시면서 볶은 내 머릴 보곤 인물 버렸단 소릴 하시는거다. 그래서 그게 딸한테 할소리야라며 따졌더니

-내가 솔직한 사람이잖아.

이러시고.

 암튼, 예전엔 아빠한테 공부 조금 잘한걸로-이건 순전히 시골 학교에 다녀서이다.- 잘 우려먹고 다녔는데 요샌 말짱 갈굼만 당한다. 그래도 큰딸 포에버 모드는 가끔 나오셔서 어제는 갈비를 재는 엄마 옆에서 뭐를 넣어야 맛있다는 둥, 이건 이렇게 해야하는 둥 참견을 하시다 엄마가 그렇게 잘 알면 밤이나 좀 까란 소리를 하자, 갑자기 바쁜체를 하시는거다. 그래서 내가 큰소리로 '아, 난 밤 넣은 갈비 먹고 싶은데 밤을 깔줄 알아야지'라고 말하자 그럼 니가 까 이러시면서 칼 들고 생밤을 까시는거다. 물론 늘 그렇듯이 밤이 말라서 못까겠다며 느닷없이 버럭 화를 내는걸로 큰딸 포에버는 약간만 티내셨고.

 내년엔 아빠 환갑이시다. 그런거 할 필요 뭐 있냐고 말씀은 하시지만 그게 또 그게 아닌거다. 아, (지갑에 물주며) 이게 빨리 자라야 내년 아빠 생신 때 친척들이랑 밥이라도 먹는건데.-마지막은 개콘용 유머입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늘빵 2008-11-17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깐 설거지도 못하고, 밥도 못하고, 머리도 안 감고, 옷도 막 입고 다니고... 그외 기타 등등 ( '')

Arch 2008-11-17 22:22   좋아요 0 | URL
어머! 아프님과 제가 좀 오해가 있는 것 같군요. 설겆이는 못하는게 아니라(설거지가 맞나요?) 잘 하는데 설렁설렁 설렁탕 우리듯 하는거고, 밥은 좀 질어서 그렇지 먹을만은 해요. 머리는 남자 만날때는(여자 만날때도 가끔씩은, 울 아빠는 좀 무성적이죠.) 감고, 옷은 아, 이 부분에서만 의견일치가 있군요. 밥상을 좀 '그지같이' 차린다는 것 정도? 그지같이라고 하고, 이렇게 구구절절 구질구질 변명을 늘어놓으니 그외 기타 등등에서 방점을 찍어야할 것 같아요.

바람돌이 2008-11-17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지 밥상 왕자밥상 ㅎㅎ
거의 우리집이네요. 저도 먹는거 뭐 대충대충 이러는데 제 여동생은 솜씨도 솜씨려니와 깔끔하고 맛깔스럽게 차려내는 것 까지 잘하거든요. 뭐 그래서 편한 것도 있어요. 저한테는 아예 기대를 안하니... 시니에님도 편하시죠? ^^

Arch 2008-11-18 10:04   좋아요 0 | URL
당근이죠. 그래서 감수해야하는 부분 물론 있죠. 앞서의 갈굼 대상 일순위는 따놓은거고 가끔 실력 발휘라도 해볼라치면 무참하게 무시당하고, 행여 맛이 어쩌네 했다가는 주변에서 '저, 음식도 못하고 더럽고.. ' 막 이런 레이저 쏘임을 당하고.. 살림을 잘한다는거 대단히 멋진데 거의 모든 분야에서 못하는 저로선 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