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과의 만남 행사 후기

 먼저 조심스럽게 밝혀둘 것은 난 오래 전부터 류승완 감독을 좋아했던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건 류승완 감독과의 만남에 대한 얘기에서 사견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혀두는건 '단지 그를 만나기 때문에'란 이유로 그 순간의 모든 의미가 꿈처럼 황홀해질만한건 아니란 소릴 하고 싶어서이다. 그가 우스개소리로 자기 영화를 본 사람보다 무릎팍 도사를 본 사람이 더 많단 사실이 아이러니라고 말했지만 나 역시 그의 영화보다 인간 '류승완'을 더 먼저 봤다. 그래서 다른 작품보다 '다찌마와 리'를 보면서 이 사람, 정말 영화를 만들면서 얼마나 행복할까, 이 영화를 얼마나 만들고 싶었을까란 생각에 장면이나 대사와는 상관없이 킥킥대며 웃었다. 이번 만남은 킥킥댐의 연장선에서, 직접 그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는 희망에서 신청한 것이었다. 물론 설마 당첨되겠어란, 경품 추천에서도 144번 들고 있으면 143번과 145번이 죄다 불려나가는 저주받은 운이라 가벼운 맘에 신청한 면도 있었다.

 상상마당 6층으로 올라가려고 계단문을 열었다. 엘리베이터에는 사람이 밀려있었고, 아직 시작까지는 시간이 남아서 천천히 걸어볼 생각이었다. 계단에 전시된 작품은 오후 햇살을 받아 쨍하고 빛났다. 가픈 숨을 몰아쉬며 6층에 도착. 스텝으로 보이는 분이 관계자냐고 해서 아니라고 했더니 데스크 가서 확인을 받으라고 했다. 안내가 아니라 지시였다. 뭐, 계단 출입이 정신사나울 수도 있지. 알라딘에서 왔다고 말하고선 자리에 앉았다. 파랑색의 등받이는 커녕 엉덩이 간신히 붙일 수 있는 의자. 징조는 스물스물 다가왔다.

 모임의 얼개는 명로진씨의 EBS라디오 프로그램의 공개방송 형식으로 진행이 되었고, 마음산책이 후원하는듯 했다. 사전에 고지받은게 없었으므로 전에 최규석씨의 북콘서트와 비슷할거란 생각이었다. 사전에 질문자를 정하자며 손을 들어보라고 하면서 하는 소리가 녹차 티백이랑 많이 있단 소리였는데 아마도 대부분의 질문자들이 저자의 사인본을 탐을 내는걸 감안할때 꽤 저렴한 제안이란 생각이 들었다.

 류승완 감독이 도착하고, 공개방송이 시작되었다. 류승완 감독은 시종일관 진솔한 대답을 해주었다. 그게 이미지 메이킹이라면 짝패에선 접할 수 없었던 느닷없이 발전한 연기로 밖에 볼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액션키드였지만, 약간 어리둥절해보였다.

질문 몇가지.

Q 어려서부터 감독이 되려면 어떻게 하나요?

A 어렸을때부터 영화를 찍으면 되죠.(우문현답이란 이런거지)

Q 레이몬드 챈들러란 사람이 그런 말을 했죠. 당신이 그런 얘길 해줄거란걸 나도 알고, 당신도 안다.

A 다찌마와리가 아니면 못써먹을 대사죠.(무슨 맥락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Q 책을 내니 영화와는 어떻게 다른가

A 소설 속 세계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Q 직업병이 있다면

A 보통 겪는 일이 아니라면 저장하고 확장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명로진은 자신이 한 영화감독과 야간산행을 한 이야기를 하며 그걸 자기 영화에서 써먹었단 부연설명을 하는데 난 갑자기 바람난 가족의 장면이 생각났다.)

Q 역시 류승범에 관한 질문

A 직업으로서 갖을 수 있는 선을 긋는다. 공식적인 캐스팅은 회사대 회사이므로 항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좀 더 싸게 한다거나 그런건 없다. 일하는 방식은 크게 차이가 없다. 현장에서의 위계질서를 존중하는 편이다.

(영화를 하는 목적에 대한 질문)

A 없어도 되는 일을 하는거라면 뭔가 더 절박하게 있어야할 이유를 찾게 된다.

Q 1년에 신간이 6만종 이상 쏟아져 나온다. 아무래도 책을 내면서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맞는 질문은 아닌 것 같다.)

A 우선은 살림에도 보탬이 되고, 제가 우리 애들 얘기도 쓰려다가 그건 좀 그래서(웃음)

(질문은 거의 명로진씨가 했는데 추가열씨도 축하공연 하면서 짝패를 보면서 충남 보령의 사투리를 완벽하게 재현해냈다고 좋아했다. 류승범 감독도 방청객의 질문에 답하면서 충청도만의 '좋은 말 같기도 하고, 아닌 말 같기도 한' 사투기가 좋다는 소회를 밝혔다.)

 류감독은 홍콩 느와르와 갱스터 영화를 봐오며 개인이 몸부림쳐도 이겨낼 수 없는 비극성에 주의를 기울였다고 한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설렁설렁 일하면서 최고의 경지를 보여준 레마빈과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말도 했다. 현존하는 배우로는 숀펜.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지만, 난 류승완이라면 언젠가는 숀펜과 같이 영화할 것 같단 예감이 들었다. 앞으로도 탐색기간이 꽤 갈 듯하고 맷집을 기르는 자신만의 시간이란 얘기도 했다. 류승완 감독의 작품을 보다보면 통쾌한 신남의 여운이 오래가지 않고 류감독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의 최대치를 끌어내지 못했단 생각이 들곤한다. 아마도 그런 느낌의 한부분을 감독 역시 놓치지 않았을거란 생각이다.

 방청객과의 대화에선 어느 분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본 방청객이 외상후 스트레스처럼 후유증으로 고생을 하다가 디즈니 영화를 보며 치유했단 소리에 모두들 박장대소했다. 류승완 감독을 볼 생각에 일주일을 설렜다는 한 남자분은 박찬욱 감독의 작품 중 이 영화의 이 상황은 나 같으면 이렇게 바꿔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면에 자신이 조감독으로 일했던 삼인조의 몇몇 장면이 그렇다며 크게 모험을 도발하는 발언은 하지 않았다. 로드리게즈처럼 아이들도 볼 수 있는 스파이키드같은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 사실 다찌마와 리를 보는 아이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어서 연령층을 계산할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고. 스폰지밥 시리즈를 좋아하고, 그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책과 관련된 질문에선 '책을 잘 안 보시는 분은 영화라도 보시고, 책을 잘 보시는 분은 영화도 가끔 보세요.'라고 해서 깔끔한 끝맺음을 보여줬다.

 사실 여기까지는 메모를 해서 간신히 추린 것이고, 류승완 감독과의 만남에서 처음에 언급한 징조에 대해서 얘기를 해볼까 한다.

 꾸준히 신경을 거슬리는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상상마당 상주 스텝들의 소음과 북캐스터인지 마스터인지 모를 분의 인상씀, 방청객을 개의치 않는 그토록 소중한 방송을 하고 있다는 자의식 과잉. 라디오 방송을 듣는 사람 입장에서 소음이 나면 귀에 거슬리는건 이해한다. 그렇다면 공개방송 전에 상상마당측과 사전 조율을 하던가 양해를 구했어야 한다. 얘기 도중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류승완 감독 위쪽의 에어컨을 조절한다고 무려 세번이나 왔다갔다하는데 대체 에어컨 바람을 세게 나오려고 하는건지 끄려는건지 저게 그토록 중요한건지 생각에 정작 류감독의 말은 듣지도 못했다. 그걸 보는 앞서 말한 분은 인상을 쓰며 라디오 스텝을 쳐다보고, 간간히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 그럴때마다 스텝들 보라며 눈짓 손짓을 하는 진행자. 그럴거면 차라리 스튜디오 녹음을 하지 왜 굳이 통제도 안 되는 상황에서 방청객에게 불편함을 주며 진행을 할까란 의문이 들었다.

 '니네 류승완 감독 보는데 이 정도도 감수 못해?'란 뻐김이 감지되는건 내가 유독 몰입이 더딘 인간이어서일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분명 팬심을 자극하면서도 팬심은 흔들리지 않을거란 허무맹랑한 계산이 들어있을거란 생각이다. 그렇지 않다면 '초대석'인데 어디서 공수해온지 모를 의자에 '거 신선하지 않은 질문 할거면 하지 말라'는 소리나 듣고 있는게 제대로된 방청객 대우인지 묻고 싶다. 그걸 농담이라고 하는거라면 농담의 공감대라도 마련해놓던가. 농담은 뜬금 없었고, 나는 좀 주눅드는 기분으로 다리는 바꿀 때마저 이건 어떤 소리를 내서 진행자들을 불편하게 할까란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세심한 배려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스튜디오 진행이 아니었던만큼 상식적인 선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녹음해야한다는 정도.

 류승완 감독과의 만남은 내용이 형식에 의해서 얼마나 뭉개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흔한 사례로 기억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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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9-30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팬심 훼손하는 민이 망가진 사진 기대하고 온 1인. 아, 나 팬심 훼손당했어요 ㅎㅎ

형식이 전부라고 믿는 것도 문제지만, 형식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특히 기본적인 예의에 해당하는 형식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말 싫어요.

Arch 2008-09-30 09:06   좋아요 0 | URL
민이가 요새 어찌나 말도 잘 듣고, 어여쁜지 악의적인 팬심용 사진은 못올리겠지 뭐예요. 으흐흐...가끔 이불에 지도를 그려 울화통 터지게 하지만. 웬디양님 말 들어보니까 그렇게까지 아주, 아니었단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아쉬운게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