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네스잔은 신기도 하여 자꾸 맥주 생각이 나게 한다. 금요일 밤, 전날과 다음날과도 다르게 시원한 맥주 한잔 하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들썩. 지인들을 소환해 집에서 조촐한 모임이라도 갖으려고 했더니만 불발이 되고, 복분자와 얼음을 믹서에 갈아서 먹는데 자꾸 맥주 생각이 간절해진다. 딱 한잔만 여한없이 딱 한잔만 먹으면 금세 행복해서 발을 맨땅에 통통 굴려대며 징징 나 이렇게 금요일에 기분이 좋아도 되냐고 할판인데, 그래서 술술 노래라도 흘러나와 그만 먹은 술보다 더 취해 쳉쳉 먼 하늘 보며 넋나간 웃음이라도 흘릴텐데......

기네스잔은 그립감이 좋다. 다섯 손가락으로 살며시 잡아도 금세 다정하게 안겨온다. 새끼 손가락을 살짝 엄지 방향으로 돌려도 너끈하다. 자, 이제 준비가 됐으니 날 부드럽게 마시기만 하면 된다는 투다. 복분자와 얼음 알갱이는 폴라포 포도맛이 난다. 그런대로 나쁘진 않다. 이 밤에 초췌한 몰골을 24시간 형광등이 쨍한 곳에 들이밀고 맥주 사먹을 맛이 나야 말이지. 기네스잔이라면 복분자 샤베트 10잔이라도 문제없다. 뭐든 자꾸 먹다보면 감각은 무뎌지고 이내 취하는건 똑같을테지.

 작년까지만해도 어느 순간 일정량의 알코올이 필요할 때가 오리라곤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인생이 적당한 것처럼 주량도 적당했고, 적당할 정도로 마신 술은 내게 적당한 만족감을 줬다. 적당함을 벗어나는건 지금이 적당하지 않다는 뜻일까? 실은 적당한 세계는 곧 붕괴되니 어서 기네스잔이라도 잡으란 마음의 소리를 무의식 중에 느낀걸까?

 혼자 마시면 술은 당췌 늘지를 않는다.  한손엔 복숭아를 다른 한 손으론 시를 쓴다는 시인이 키츠였던가, 그가 표현한 농밀한 감각의 순간을 따라갈 수야 없어 '첫 맥주 한 모금'은 들레르 씨에게 맡기겠다.
  

첫 맥주 한 모금
                             필립 들레르

 

 중요한 것은 딱 한 잔이다. 그 다음에 마시는 맥주는 마시는 시간만 점점 더 길어지고, 평범해 진다.

그 다음 잔들은 미지근하고, 들척지근하고 지리멸렬하게 흥청댈 뿐이다.

마지막 잔은 어쩌면 끝낸다는 환멸의 감정 덕택에 어떤 힘같은 것을 되찾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맨 처음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첫 잔은! 목구멍이라고?

첫 잔은 목구멍을 넘어가기 전에 시작된다. 입술에서부터 벌써 이 거품 이는 황금빛 기쁨은 시작되는 것이다.

거품 때문에 맥주는 더 시원하게 느껴진다. 그리고는 쓴 맛을 걸러낸 행복이 천천히 입천장에 닿는다.

첫 잔은 아주 길게 느껴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벌컥벌컥 금방 마셔 버린다.

첫 잔은 본능적인 탐욕을 채우기 위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맥주 첫 잔이 주는 기쁨은 하나의 문장처럼 모두 기록된다.

이상적인 미끼 역학을 하는 것은 지나치게 많지도, 지나치게 적지도 않은 적당한 맥주의 양이다.

맥주를 들이켜면, 숨소리가 나고, 혀가 달싹댄다.

그리고 침묵은 이 즉각적인 행복이라는 문장에 구두점을 찍는다.

무한을 향해서 열리는, 믿을 수 없는 기쁨의 느낌..

동시에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가장 좋은 기쁨은 벌써 맛보아 버렸다는 것을. 우리는 술잔을 내려놓는다.

네모 난 압지로 만들어진 컵 받침 위에 올려 놓은뒤, 저만치 밀어놓기까지 한다.

우리는 맥주 색깔을 음미한다. 가짜 꿀, 차가운 태양, 우리는 모든 지혜와 기다림을 동원해서 지금 막 이루었다가

또 지금 막 사라져 버린 기적을 손에 넣고 싶어한다. 우리는 유리잔 바깥에 씌어 있는 맥주 이름을

만족스럽게 읽어본다. 컵과 내용물이 서로 질문을 던져대고, 텅빈 심연속에서 서로무언가 말을 주고 받을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우리는 순금의 비밀을 간직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 비밀을 주문으로 만들어 영원히 소유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태양이 와서 빛의 방울을 흩뿌려 놓은 하얀색 작은 테이블에 앉아있는 실패한 연금술사는 황금의 외양만을 건져낼 수 있을 뿐이다. 이제 맥주를 마실수록 기쁨은 더욱더 줄어든다. 그것은 쓰라린 행복이다. 

우리는 첫 잔을 잊기위해서 마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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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9-20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커피도, 첫 한모금이 최고

무스탕 2008-09-20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소주도, 첫 잔이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