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산에 다녀왔어요. 포토샵으로 정리하려고 했는데 설치가 안 돼서 사진부피가 좀 많이 나가네요. 스크롤 압박을 괘념치 않고 올립니다. 언제는 그런거 신경 썼냐고 그러면 따로 말은 안 했지만 서재의 성격에 대해서 가끔 고민 땡겼다고, 살짝 말해주고 싶어요.

 새벽부터 기상을 해서 생활용품을 들쑤시고 다니던 옥찌들과 다정하게 밥을 먹고(낯간지러운 수사군요!) 전 설겆이를 하고, 옥찌들에겐 신발 정리를 부탁했어요.


표정이 왜 그래~ 민! 웃으랬더니 어설프게 말이죠. 지민인 신발정리 솜씨가 일품이에요.

 같은 동네에 사는 사촌 오빠네 지연이도 데리고 월명산으로 오르기 직전. 민이는 뭔가 짠하고 보여줄 것 같은 폼인데요. 얼마 전에 읽은 독일에서 양육책에는 아이들을 위해 많은 장난감을 사주는 것보다 자주 볼 수 있는 친구가 더 좋다는 말이 나오더라구요. 지연인 민이랑 같은 네살. 둘다 막내라 샘은 많지만 투닥거리면서도 잘 놀아요. 옥찌 보고 아이들과 손을 같이 잡으라니까 귀찮게 이런걸 시킨다는투이긴 했지만, 은근히 뿌듯해하는게 느껴졌어요. 언니라 이거죠.

 옥찌가 동생들 손을 잡으며 뭐라고 한줄 알아요?

-와, 이모. 애기들 손이 부드러워.

 자기도 애기이면서. 옥찌 손은 더, 부드러운걸.



 산에 오르면 나무만 우릴 반겨주는게 아니에요. 다른 곳에서라면 그냥 스쳐지나갔을 사람들이 뻥튀기를 아이들 손에 쥐어주고, 아이들이 멍멍이가 지나간단 소릴 하자 성큼 강아지 등을 잡고 한번 만져보라는 아저씨까지. 물론 그 분들이 저희가 오길 기다렸다가 반겨주는건 아니지만 매번 참 감사한 일들이 일어나거든요. 멍멍이라며 같이 멍멍대던 민은 강아지가 가까이 다가오자 무섭다며 누나 뒤에 숨고, 지연이가 쭈뼛거리며 강아지를 만져봤어요. 지희는 조심스럽게 강아지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얘도 부드럽다며 자기 손등을 쓸어보구요.





 전에 드팀전님도 쓰셨지만, 아이들이랑 다니면 모든게 아이의 속도에 맞춰져요. 벤치가 나올때마다 쉬고, 물 마시고, 가져간 과일 나눠먹고. 어제는 모두들 기분이 좋았어요. 가는 곳마다 살살 녹아버릴 것 같은 웃음소리가 새어나왔죠.

 혹시 아세요? 아이들끼리 하는 말을 들어보면 코끝이 찡긋, 귀여워 몸이 배배 꼬인다는 걸. 어른스럽게 말하는 것도, 실은 자기가 다 할줄 아는데 실수한거라며 둘러치기를 하는 것도, 세상에서 제일 빠른건 자기라며 늘 한걸음만큼 앞서는 것도. 전 요놈봐라, 이렇게 기특한 것보다는 이렇게 아이들이 자라고, 자기안의 세계에서 관계맺기로 나오는구나 싶어져 좀 신기해요. 저 역시 그랬을걸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구요.






 옥찌는 책을 보다가 종이를 달래서 그림을 그리며 이모는 뭐하고 동생들은 뭘한다고 그림 일기 비슷한걸 쓰고, 민인 사진기를 들이대자 책 뒤로 숨었어요.


 월명산 중간쯤에 청소년 수련원이 있어요. 그곳엔 어린이 도서관이 있긴한데 일반 도서관과 가까워 아이들이 떠들면서 책을 보기엔 좀 무리가 있죠. 딱 10분, 저렇게 골똘한 것도, 책을 고르며 신나하는 것도, 글자를 읽어주는 것도. 정말 10분. 그후로는 도서관 기물 탐색과 다른 사람들이 보는 책에 최대한의 호기심을 갖기 시작하고, 아, 뛰어다니지만 않으면 다행이죠. 그래서 제가 책을 조금 더 읽으려고 욕심이라도 낼라치면 잔소리쟁이 이모로 돌변해버려요. 이럴땐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재미있을만큼만 있자란 생각으로 맘을 비워야돼요. 하지만 도서관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그게 쉽지 않잖아요. . 내가 갖고 있는 책이면 반가운 마음에, 읽고 싶던 책이면, 낯선 책이면 낯선 책대로 이유도 가지가지. 쭉 책만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데... 알라디너라면 분명 공감 할 것 같아요.

 아이들이랑 이것저것 먹고 다시 산을 내려오는데 요녀석들이 자꾸 말짓을 피우는거에요. 그래서 제가 장난으로 너희들 자꾸 이러면 여기서 집짓고 살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옥찌가 어떻게 집을 짓냐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나무를 꺾어다가 짓는거라고 했더니 옥찌왈 -  그럼 나무가 아프잖아.

 옥찌, 나무 안 아프면 집 지으려고 한거야? 나뭇가지 떨어진걸로 지으랬더니 걔넨 좀 작아서 안 되겠다네요. 어떻게 제가 옥찌를 감히!



 산에서 내려와 롯데리아에 갔어요. 동네 롯데리아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있거든요.수염을 만들면서 아이스크림을 먹는게 귀여운 민. 롯데리아의 모든 음식은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너흰 싼 음식을 먹으니까 이 정도 맛으로 만족해야해!'라는 느낌이 들어요. 모든 것에서 조미료와 가짜의 냄새가 나니까요. 따지고보면 그렇게 싼것도 아닌 주제에. 그래도 남의 영업장에서 아무것도 안 먹기는 좀 뭐해서 다른 것에 비하면 탈지분유 맛이 강하지만 그나마 좀 낫겠다 싶은 아이스크림을 사줬죠. 아이들 노는 동안 전, 좀 잤어요. 빨리 떠나라며 굳이 소리를 울리게 지어놓은 롯데리아에서, 참 대단한 수면 욕구! 아마 식성 다음이라죠.



 우리 애기들, 신나게 놀고 어쩌고 했는데도 3시 밖에 안 됐더라구요. 씻기고 낮잠을 재우려했는데 너무 말똥말똥한거 아닌가요?

 잠에서 깬 지연이는 집에 가고, 전 옥찌들과 밥을 먹었어요. 후식으로 수박을 먹자고 옥찌가 말했죠. 수저로 수박을 파서 먹는게 편해서 같이 수박을 파다가 잠시,- 정말 잠시였다구요.- 전화를 받고 왔는데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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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나 치열하고, 어찌나 집중을 하는지 차마 혼내지도 못하고, 내가 뭘 안 먹이나 싶은 자책도 들고. 실은 이런 생각은 좀 나중에 든거죠. 보자마자 그냥 웃겨서, 수박통을 머리에 뒤집어 쓴 것보다 백배는 실감나서 으하하 웃었더니 옥찌가 눈으로 레이저를 쏘며 말하더라구요.

 

-봐, 이모가 우릴 이렇게 만들었어.

 옥찌! 앞으론 수박을 잘 사주는 이모가 될게. 밥맛 없을까봐 군것질 잘 못하게 하는 것도 때론 이런 사태를 발생하게 해요. 이거, 학대로 보이면 어떡하지... 조마조마 

 오늘, 옥찌가 자기 전에 백설공주를 같이 읽었는데요. 누워서도 자꾸 공주 얘기를 해달라고 하는거에요. 그래서 지희 공주와 이모 공주, 민이 공주 얘기를 했죠. 한참 얘기를 잘 듣던 옥찌가 그런데 민이도 공주야? 그러길래 응, 민인 좀 귀엽잖아. 남잔데도 공주야? 공주, 왕자는 되고싶으면 다 될 수 있어.라고 했는데... 사실 좀 헷갈려요. 옥찌가 공주랑 왕자랑 행복하게 살았단 얘기를 듣고 싶다는걸 아는데도 사실은 다들 친구맺고 특히 난쟁이 중에 제일 막내인 반달이랑 공주가 더 친했다고 얘기할때도요. 

<꼭 들어맞는 양육법은 없지만, 고민하되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는 진정성이 있다면 거기서부터 시작하는거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내용이 그나마 위로가 된다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요. 좀 더 다양하고 깊게 생각을 해봐야겠단 생각이 요즘 더 많이 들어요.

 밤이 깊었네요.

 모두들, 오늘 하루도 애썼어요. 

 내일 잠에서 깨면 좋았던 꿈의 느낌이 어렴풋이 남아있길,

 몽롱한 그 느낌이 포근한 냄새로 콧잔등을 살짝 휘감길,

 내일도 당신들이 한뼘쯤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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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8-26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런 행복한 페이퍼라니!!
잠에서 깨면 좋았던 꿈의 느낌을 어렴풋이 남길려면 어서 자야겠군요.^^

nada 2008-08-26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하 수박 사진 처절해요. 한참 웃었네요.
"이모가 우릴 이렇게 만들었어" 같은 말을 정말 옥찌가 한단 말인가요?
난 애기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참말로 신기할 때가 많아요.

Arch 2008-08-26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헤헤^^ 그 느낌으로 오후까지 무사하신거죠? 꽃양배추님! 옥찌가 말한건, 너희들 집에서나 이러지 어디가서 이러면 이모가 좀 난감해지겠다니까 대답으로 한소린데 절실하게 적확했죠~ 저도 요녀석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참말로 신기해요. 마치 드르륵, 머리에서 톱니가 맞닿아 돌아가는 느낌처럼.

hnine 2008-08-26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두려워 피하고 싶은 말이 그 책에도 역시 나오는군요. <일관성>이라는 말이요. 어느 육아책이나 안빠지고 나오는 말, 저처럼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에게 침이 되는 말이지요.
사진 속의 아이들도, 사진에 안보이는 시니에님도 참 좋아요 (사랑스러워요 할려다가~ ^^)

Arch 2008-08-26 22:12   좋아요 0 | URL
hnine님! 당연히 두렵죠. 특히 기억력이 날로 좋아지는 옥찌가 이모, 그거 전에 말하고 다른데 할때면 뜨끔해서 원. 아직 그 침은 살짝만 아파요. 큰틀로 보면, 그것보다 작은건 옥찌들에게 거짓말쟁이 이모로 찍혀 갈굼 당하다 항복하면 그나마 좀 나으니까. hnine님 그런데 그 말, 네 사진은 없수?로 들리는데 맞는건가요? ^^ 제가 어둠 속에서 정말 아름다워서 말이죠. 촛불이 없는 곳에선 최고구요.

L.SHIN 2008-08-27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 좋은데요 ^^

Arch 2008-08-27 20:21   좋아요 0 | URL
뭘로 이모를 곯려줄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