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가을 <노르웨이의 숲>을 세 번째로 읽었다. 첫 경험은 대학 때였는데 겨우겨우 읽고 뭐 이런..하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하루키를 아웃 시켰던 것 같다. 나랑 비슷한 성향의 일곱 살 아래 여동생이 대학시절 하루키에 입문하고 지금껏 빠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며, 역시 세대 차이인가? 생각했던 하루키. 동생의 덕생활을 보며 그 이유를 찾고 싶기도 했고, 비교적 최근의 하루키 장편들은 책대화에 끼기 위해? 읽어 두려 했던 것 같다. 동생 덕에 그 후에 비교적 초장기 소설들을 몇 권 읽은 것 같기도 하나 기억이 나지 않으므로 패스하고. 어쨌든 2년전 읽었던 <노르웨이의 숲>은 재밌었다. 지금 읽어도 헉, 하는 부분이 있는데 20대의 내가 감당하지 못했음은 넘 당연한 일. 하지만 지금은 하루키의 소설들이 좋다. 소설보다 좋은 것은 산문이긴 하지만, 다시 읽은 <노르웨이의 숲>은 하루키의 어떤 전형성, 산문에서와 다른 인간 하루키, 기존의 일본 문학과는 또 다른 색채감. 감각적인 스타일..등등이 있었다.
몇 년 전 <먼북소리>을 다시 읽은 걸 계기로 하루키 에세이들에 한동안 심취해서 <달리기를 말 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언니집에서 빌려다 읽었는데, 좋아서 반납 않고 계속 내 책꽂이에 보관중이다. 이 책으로 하루키에 대한 호감도 급상승한 듯. 뮤지션 장기하님께 직접 선물받은 <발렌타인 데이의 무말랭이>도 불면 꺼질세라 아껴가며 읽었고... 맛있는 두부집 근처에 살고 싶다는 두부집 에피소드가 아주 인상적이어서 그 후로 휴일 아침에 두부 한 모로 식사를 하기도.ㅋ
<위스키 성지여행>을 읽으면서는 위스키 성지여행을 꿈꾸었고, 산문집들 곳곳에서 와인과 세계 곳곳의 각종 술들의 상식을 접했다. 그리스에 가게 된다면 패대기 쳐서^^;; 말랑해진 문어를 구운 안주에 우조를 마져 보리라. 지중해 깊고 푸른 바다를 보며..비바람 속에서 달리기도 해보리라..지금으로선 현실 불가능한 꿈을 꾸게 해준 것도 하루키의 산문이었다.


<노르웨이 숲>을 검색하면서 2년전 독서일지를 비공개로 써 둔 것을 발견했다. 지금 기억하지 못하는 그 때의 기분들과 강의를 듣고 기억에 남는 말들이 비교적 꼼꼼히 기록되어 있어서 새삼 추억을 복기하다가 하루키, 뭐 읽었지? 하며 대충 모아보니 빠수준은 못 미쳐도 제법 몇 권 읽었다. 하루키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올 해 읽은 책 중에 손꼽을 정도로 좋았고, 1Q84는 딱히 이해되진 않았지만 그 후의 소설들은 나오자마자 사봤던, <남자 없는 여자들>은 읽고 나서 괜찮다 하루키 이런 소설 쓰면 앞으로 읽어 주겠어 했던 최초로 이상하게 않았던 기분은 이전의 이십대 초반이나 십대의 이야기에 내가 공감하지 못했던 탓이기도 했겠다는 생각이 지금에야 든다. <다자키 쓰크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도 묘하게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내 이야기는 아니지만 친구들의 이야기로는 충분히 공감 할 수 있었던 그런 기분이 되었었다.
연말을 앞두고 다시 예쁜 <노르웨이 숲>이 나왔다. 무슨 한정, 기념이란 명패를 달았다.
단지 표지에 현혹되어 클릭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 문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