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직전의 순간에,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괜히 누군가가 또는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으면서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다. 들리지 않던 서점에 일부러 가고 문구점에선 샀던 만년필을 또 샀다. 바람은 깊숙히 불어 제끼고 만물의 색감은 그보다 깊게 들어오다 옅어진다. 단풍나무에 단풍이 들기전에 흔한 땅것들은 더 찬연히 제 빛깔을 낸다. 큰 것들에 묻히기 전에 일찌감치 이렇게라도 아우성을 친다. 대개는 붉게 더 붉게. 돌밭에 떨어져 있던 붉은 마음이 내 것 같다. 돌밭에 서있으면서도 풀잎 따윈 보지 않는 너는. 나쁘다.
거칠 것 없는 공기 속에서 쓸어진 듯 얇아진 구름을 보면서, 달개비의 노란 꽃술에 반사되는 눈부심을 보면서 단어들을 떠올렸다. 지금 여기 이 빛, 색감, 뉘앙스, 분위기를 가장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무엇일까. 누구일까. 과연 있기나 한걸까? 사람이 느끼는 또는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정조는 참으로 무궁무진하구나. 존재하는 것에 비해 표현하는 것은 얼마나 하찮은가. 덧없고 하찮은 그 표현을 하자고 하자고 죽자고 달려들다 기진맥진. 가만히 들여다보고 하나 하나 꺼내고 싶다는 생각과 비집고 나올까 가만가만 덮어두고 싶다는 생각이 공존했다.
무턱대고 가슴이 아플 때 술 한 잔 하자며 불러내는 단 한 명의 친구에게 울기좋은방을 선물했었다. 책을 읽고 친구가 말했다.
땡땡아. 나는 이 책 참 좋았어. (응 그럴 줄 알았어).
땡땡아, 근데 나는 이 책 읽는데 자꾸 니 생각이 나더라. 심지어 니가 쓴 거 아닌가? (나도 내가 쓴 줄)
<울기좋은방>용윤선 작가의 두번째 산문집 <13월에만나요>를 어제부터 읽고있다. 아무데나 펼쳐지는 데로. 어차피 이 책은 공부하듯 한 순간에 휘리릭 읽을 책은 아니니까. 미리 써놓은 일기장을 읽듯 순간 순간 나를 만나는 가을이 될 것 같다. 바람이 분다. 네가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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