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한용운 연구는 민족주의에 인식이 제한되어 한용운의 진보의 사상이 갖는 구체성을 다각도로 논의하지 못했다. 한편 근래에 활발하게 전개된 민족주의 비판 흐름은 한용운의 불교 사상의 외부 영향 특히 일본의 영향을 강조하고 있다. “불교를 철학적이며 동시에 종교적 성질을 가진, 따라서 철학적 종교로 규정하는 것은 엔료의 영향을 반영한다는 지적을 비롯해서 한용운의 문명 인식은 메이지 일본의 근대지가 (...) 착종된 형태라는 비판과 신화적인 이미지”, “과대평가를 재점검하자는 주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 장에서는 한용운의 진보 사상이 민족주의로 환원되지 않는 보편성을 갖고 있으며 그것은 일본 메이지 사상의 일방적 수용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겠다.

조명제는 한용운은 유신론에서 미개(야만)-문명이라는 시각에 입각한 서구 근대의 문명론을 수용하였으며, 거의 전편에 걸쳐 문명론의 시각이 드러나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지적은 한용운이 일본 메이지기 사상으로부터 연원한 사상의 연쇄에 의해 착종된 사고에 빠졌다는 주장의 한 예시이다.

조명제는 서양 말에 공법 천 마디가 대포 일문만 못하다는 말이 량치차오가 1899년에 발표한 자유서의 문야삼계지별에서 온 것이라는 점, 그것은 또한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지개략 2장 서두에서 왔다는 점을 지적하며 문명-미개(야만)이라는 문명론의 도식과 언설은 후쿠자와 유키치-량치차오-한용운으로 이어진 사상연쇄의 전형적인 내용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용운은 이러한 문명론을 오히려 야만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한용운의 진술 맥락은 아래와 같다.

 

서양 말에 공법 천 마디가 대포 일문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이런 것은, 굳이 말한다면 야만적 문명이라고나 해야 할 것이니, 적어도 도덕과 종교에 입각해 있는 사람이라면 이를 찬양하지는 않을 것이다.”

 

위의 인용에서 보듯 한용운은 서양의 문명론을 야만적 문명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일각에서는 한용운의 인식이 야만적인 서구의 문명론을 제대로 거부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거나, 그 때문에 곧잘 전통으로의 회귀에 빠진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선이는 한용운이 야만적 문명을 목도하면서도 문명이 더욱 진보하면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주의적 입장을 견지하였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불교=근대라는 등식을 전제로 삼은 한용운이 근대를 비판할 자리를 스스로 제거한 데서 기인한다고 분석한다. 또 다른 지면에서량치차오가 도덕주의를 구현할 방안으로 강고한 국가주의를 설정했다면 한용운은 국가주의를 넘어서서 도덕과 종교를 최종 심급으로 상정했다.”고도 진술하는데 이런 주장을 종합하면 근대=불교=도덕이 모두 현재의 지평면에서 논의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 인용했듯이 한용운은 오히려 근대=야만적 문명이라는 등식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것을 미래의 도덕 문명으로 전환시키는 실천에 불교가 참여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아래의 인용을 보자.

 

다만 문명의 정도가 날로 향상되면 종교와 철학이 점차 높은 차원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며, 그때에야 그릇된 철학적 견해나 그릇된 신앙 같은 것이야 어찌 다시 눈에 띌 줄이 있겠는가? 종교요 철학인 불교는 미래의 도덕 문명의 원료품 구실을 착실하게 할 것이다.”

 

여기서 분명해지는 것은 현재=서구적 근대=야만에서 미래=도덕 문명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한용운의 입론이며 이를 위한 실천으로 불교(참선)가 필요한 것이다. 이는 앞에서 일견한바 불교=근대이기 때문에 근대를 비판할 수 없었다는 입론과는 차이가 크다. 한용운은 내가 믿는 불교에서 그러면 불교의 사업은 무엇인가. 가론 박애요 호제입니다. 유정무정, 만유를 모두 동등으로 박애·호제하자는 것입니다. 유독 사람에게 한할 것이 아니라 일체의 물을 통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이 제국주의니 민족주의니 하는 것이 실세력을 갖고 있는 오늘날에 있어서 이러한 박애, 이러한 호제를 말하는 것은 너무 우원한 말이라 할지 모르나 이 진리는 진리이외다. 진리인 이상 이것은 반드시 사실로 현현될 것이외다.”

사상 연쇄론은 일본, 중국, 한국의 사상을 단선적으로 그리고 시간순으로 실체화하지만 이와 달리 한용운은 식민주의의 현실적인 동시대인으로서 다양한 가능성들을 복합적이고 능동적으로 취사선택하여 주체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었다. 그 중요한 사례로서 일본으로부터 연원하지 않는 사상 연쇄의 역동성의 예로 벤자민 키드(Benjamin kidd, 1858~1916)의 사상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벤자민 키드는 당대 일본에서 크게 관심을 끌지 못했다.콩트가 최초로 윤곽을 잡고 다윈이 정련한 생물학에 대한 관심이 당대 최고의 논리적 형식을 획득한 벤자민 키드의 사상을 량치차오는 1901~1903년경에 서구 계몽주의에 대한 비판적 점검이라는 큰 기획 아래 주목한 것으로 보이며 진화론혁명자 키드의 학설19021016신민18호에 발표하고 음빙실문집에도 수록하였다. 한용운이 음빙실문집을 탐독한 것은 잘알려진 사실이다.

벤자민 키드는 인간의 진보를 가능케 하는 근원적인 힘이 초이성적인 것, 즉 종교에 있다는 논의를 펼침으로써 사회진화론을 계몽주의의 자장 바깥으로 끌어냈다고 한다. 키드는 스펜서류의 진화론에 대항하여 인간사회의 진보는 초이성적인 요소 특히 종교적 힘에 의해 추동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반이성주의적 진화론은 1890년대 다위니즘과 종교와의 화해라는 세기말적 현상에 부응한 것으로 이후 베르그송, 윌리엄 제임스 등 직관주의 철학의 전조였다. 키드는 다윈의 경쟁과 선택의 원리를 적용하되 그 중심부에 종교적 요소를 배치했다.

한용운의 종교요 철학인 불교는 미래의 도덕 문명의 원료품 구실을 할 것이라는 도덕주의는 세기말 제국주의니 민족주의니 하는 것이 실세력을 갖고 있는 시대에 너의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하라는 칸트적 계몽주의가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키드와 공유하였다. 키드의 종교진화론현재적 이기심이 근대 문명의 진보를 제한하고 있으므로 종교를 발전시킨 문명이 근대 이후의 문명 진보에 더 적합하다고 본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한용운의 사상은 일본-중국-한국으로 이어지는 사상 연쇄착종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교정될 필요가 있으며, 한용운의 불교개혁 운동은 불교에 한정된 개혁운동이 아니라 불교를 통한 문명진보운동이었다. 이 과정에서 노정된 도덕주의는 단순히 전통 회귀로 볼 수 없다. 다음 장에서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하여 한용운의 시와 선외선사상이 희박한 언표로서 상호작용하는 양태를 짚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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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논의를 기반으로 하여 소설 죽음을 다시 검토해 보자.

소설 죽음에서 정성열은 여자의 정조는 반드시 최초의 정식혼인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자가 어떠한 사람을 사랑하든지 한 남자에 대한 사랑을 변치만 않으면 그것이 정조입니다. 그뿐 아니라 철학적으로 본다면 편협한 정조라는 것은 문제입니다.”라고 자유연애 사상을 제시한다. 이는 1930년대에 정조가 취미라는 나혜석의 주장을 선취한다. 이에 대해 주인공 최영옥이 그것은 여자를 인격으로 보지 않고 기계로 보는 것입니다라고 답변한다. 지금까지 문화사 연구는 이에 대해 자유연애론에 대한 전근대적인 거부의 혐의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서 볼 때 최영옥의 답변은 자유연애 담론이 인간성 정식을 취하지 않고 자기애의 원리를 선택할 때 여성을 도덕법칙을 최상준칙으로 삼은 인격이 아니라 자기애의 원리에 속박된 기계로 만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한용운의 삶과 사상의 일관된 근대지향성으로 볼 때 자유정조는 전근대적 반려애가 아니라 칸트의 인간성 정식에 근거를 둔다고 보는 것이 좀 더 타당한 것이다.

소설 죽음에서 최영옥이 인격기계를 대립시키는 것은 선의지를 따르는 초월(반성)적 자아와 자기애의 원리를 따르는 현상적 자아의 대립을 형상화하는 표현이었다. 그것이 님의 침묵에서 시적인 표현을 얻을 때 초월적 자아가 자유로운 선택을 통한 정조자유정조로 나아가는 시 자유정조가 탄생한 것이다. 현상적 자아가 스스로를 초월하기 위해서 필요한 태도 님을 기다리면서/괴로움을 먹고 살이 찝니다//어려움을 입고 키가 큽니다는 싯구는 이후 자기애의 원리를 거부하며 초월적 자아로서 존재 역량을 길러낸 한용운의 중핵을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5장 결론

한용운의 시는 문학의 자율성의 원리에 따라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근래의 문화사 연구는 근대성의 원리에 근거해 연애의 시대에 나온 기성세대의 반명제로 가치화하여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하지만 문화사 연구의 비판적 접근에 대한 반론은 식민주의의 현실적인 동시대인”(디페시 차크라바르티)으로서 가다듬어온 한용운의 사상적 실천 속에 이미 기입되어 있었으며 이는 시 인과율, 자유정조등에서 텍스트화된다.

이번 연구는 근대인 한용운이 칸트-량치차오의 근대적 모색을 경유하여 그것의 한계 극복을 당시 주류적이던 사랑의 문화표상과의 충돌 속에서 형상화해냈음을 문화사 연구의 직접적인 비판을 받고 있는 두 편의 시 인과율, 자유정조를 모델로 하여 제시하였다. 앞으로 이번 연구를 발판으로 하여 님의 침묵시집 전반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전개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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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호는 한용운 시와 기다림의 세계에서 시적 화자의 기다림이 윤리나 규범에 따르는 타율적인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성립되는 자발적인 기다림이라고 규정한다. 더 나아가서 자유정조사랑이나 연애의 자유를 인정하는 동시에 정조의 자유도 아울러 드러낸 것이며 모든 관계의 자유스러움 가운데에서도 스스로 기다려지는 님에 대한 사랑은 분명히 자발성의 원리에 근거한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정효구에 의하면 이러한 자발적인 기다림의 의미는 위의 시의 세속적 정조와 진정한 사랑의 차이, 세속적 사랑과 진정한 정조의 차이의 입체적 조망 위에서 도출된다. 그리하여 화자 자신의 님을 향한 기다림이야말로 진정한 정조진정한 사랑의 결합물로서 세속의 그것과는 너무나 다른 곳에 있음을 사유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독해에 대한 재해석을 보여주는 근래의 문화사 연구자유정조의 특징인 자발적인 기다림에서 전근대적인 특징을 발견한다. 님의 침묵에서 사랑의 관건은 평생토록 그 사랑을 지속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면 이것은 한용운의 시가 근대적인 개인의 상호적인 계약관계를 가능하게 해주는 자유연애의 이상보다는 전통적인 반려애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정조는 우리 사회에서 자유연애에 관한 담론이 가장 활발하게 제기된 1910년대 중반에서 192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나온 근대(자유연애) 담론에 대한 전근대(자유정조)의 반격으로 볼 여지가 있게 된다.

이러한 비판은 한용운의 텍스트 특히 소설 죽음을 통해서 구체성을 얻는다. 소설 죽음조도전대학 문과를 나와 낭만주의 시인을 자처하는 정성열에 대항하는 주인공 영옥을 통해 자유정조론의 단초를 제시하고 있다. 근대 전환기에 서구적 사랑의 감정은 열정적 파토스를 중심에 둔다면 죽음의 주인공 영옥은 서로에 대한 인격 탐색의 시기인 연애기를 거치고 그 결과로 결혼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소설 죽음의 서사를 자유연애자유정조의 담론 충돌로 해석하고 이를 님의 침묵동양적 연애와 연결하는 문화사 연구의 독법은 구체성을 얻는다.

자유연애가 근대적인 사랑의 열정과 관련 있는 데 비해 자유정조는 전근대적인 반려애와 연결된다는 기존 문화사 연구의 입론과 달리 이번 연구는 낭만주의의 특징인 자유의지와 근대적인 사랑을 관련지어 논의하겠다. 자유의지가 근대성의 요소로 정립되는 데는 낭만주의의 아버지 중 하나인 칸트 철학의 역할이 컸다. 칸트는 자유의지가 인간을 자연의 다른 대상들과 구별해준다 그리고 자유롭다는 것은 따라서 어떤 도덕적 가치들에 자유롭게 헌신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자유연애는 선택의 자유를 강조하는데 이는 이중적으로 볼 수 있다. 님의 침묵군말에서는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조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밧지 안너냐고 한다. 한용운은 칸트와 량치차오를 따라서 자유로운 진정한 자아와 부자유스러운 현상적 자아의 구분을 지지한다. 이러한 구분에 따르면 현상적 자아가 좇는 자유는 자연필연성에 지배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부자유일 따름이다. 진정한 자아만이 자연필연성을 초월하여 현상적 자아를 반성적으로 되돌아보고 자유롭게 법칙을 수립하고 스스로 그 법칙에 복종한다. 한용운과 그의 시대의 동아시아 지성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량치차오는 자유에 대해 상세히 논의한 바 있다. 량치차오는 공덕과 사덕을 나누어 공덕 편의 한 항목으로 자유를 다음과 같이 논의하고 있다. “아아! 오늘날의 청년은 누구나 시끄럽게 자유를 떠들어댄다.” “참된 자유는 반드시 복종할 줄 안다. 복종이란 무엇인가? 법률에 복종하는 것이다. 법률이란 내가 제정함으로써 나의 자유를 보호하고 또한 나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는 한용운의 시 복종에서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야요라는 싯구에 영감을 주었다. 다만 복종의 당신이 량치차오의 법률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량치차오가 빠져든 국가주의의 경로를 이탈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용운의 시 자유정조는 자유연애의 자유(세속적 사랑)가 자유정조의 자유(진정한 정조)로 인도되어야 한다는 시적 사유를 표현한다. 이러한 시적 사유를 죽음등의 소설에 대한 근대-전근대 담론의 충돌이라는 해석틀에 의해 도전받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연구는 자유정조해석에 한용운의 비문학 텍스트 불교유신론을 중첩시켜서 문화사 연구자들의 주장의 주요 논거로 놓인 소설 죽음을 재해석하는 데까지 나아가겠다. 이렇게 볼 때 한용운의 시 자유정조는 자유연애를 자유정조로 인도하는 사상적 실천이라는 점이 드러나며 이는 칸트의 <자기애의 원리 논증>에 의해 정당화된다.

 

<자기애의 원리 논증>

인간은 선하거나 악하다

도덕법칙을 최상준칙으로 삼은 인간만이 선하다.

따라서 자기애의 원리를 최상준칙으로 삼은 인간은 악하다.

 

1920년대 자유연애 담론의 자유’, 특히 소설 죽음에서 정성열이 실천한 자유는 이러한 자기애의 원리를 최상준칙으로 삼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한용운에게서 자유연애 담론의 자유는 도덕법칙의 원리로 인도되어야 했는데 이를 한용운의 자유정조가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칸트는 인간의 행위를 준칙모델에 따라 설명한다. 준칙모델에 따르면 행위자는 욕구와 더불어 자신의 상황과 결단을 반영하여 준칙을 세우고, 그 준칙에 따라서 행위한다. 준칙을 세운 행위자는 자신의 준칙을 개별 상황에서 일회적으로 사용할 뿐만이 아니라, 비슷한 상황에서 규칙으로 전범적으로 사용한다. 또한 칸트는 인간의 모든 동기는 자기애도덕법칙이라는 두 가지 동기로 수렴된다고 보았다. 자기애와 도덕법칙 중 자기애를 도덕법칙보다 우선시하겠다고 결정한 인격은 악하며, 도덕법칙을 우선시하겠다고 결정한 인격은 선하다. 악한 인간이란 자기애의 원리를 최상준칙으로 삼겠다는 근본 결정을 내린 자이다.

칸트가 도덕법칙을 최상준칙으로 삼은 인간만이 선하다고 한 <자기애 원리 논증>의 두 번째 전제는 선의지와 도덕적 가치 논의로부터 정당화된다. 어떤 행위나 어떤 인격이 이라는 도덕적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선의지를 지녀야 한다. 선의지를 갖는 것은 선하며, 선의지가 결여된 것은 선하지 않다. 따라서 비-도덕법칙을 최상준칙으로 삼는 인간은 도덕적으로 선하지 않다.

간략하게 살펴본 자기애의 원리 논증은 인간이 자기 자신과 타인을 단지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고 동시에 목적으로 대할 것을 명령하는 인간성 정식으로 수렴된다. 선한 인간의 최상준칙은 도덕법칙이므로 그는 인간성 정식을 자신의 최상준칙으로 삼을 것이다. 반면 악한 인간은 자기애를 도덕법칙보다 우위에 놓는 최상준칙을 가질 것이다.

한용운의 시 자유정조가 당대의 자유연애 담론과 충돌한다면 그것은 자기애의 원리를 최상준칙으로 삼은 자유연애를 도덕법칙의 원리로 인도하기 위해서라고 해석할 수 있다.

기존의 문화사 연구는 자유연애가 근대적 연애 담론이기 때문에 이와 충돌하는 한용운의 시 자유정조님의 침묵을 잠정적으로 전근대인 한용운의 표상의 일부로 치부하고 있다. 하지만 동아시아 근대 지성 한용운의 불교유신론을 재검토해 보면 한용운의 시가 근대적 문제에 응전해온 칸트-량치차오의 사상을 전유하여 개조하고 있었으며 이는 님의 침묵의 중핵을 이루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근대인 한용운이 서양의 물질 문명을 인식하는 것은 이중적인데, 한편으로는 무명 즉 현상적 자아에 얽매어 있는 야만적 문명 이라는 점과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한계 인식을 통해 진아 즉 미래의 도덕 문명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계기라는 점을 동시에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칸트 철학이 존재 영역에 대한 이분법적 조망으로 보는 폐해를 낳을 수도 있지만 이 경계 설정을 통해서 인간적 실천의 당위성을 이야기하는 아포리아에 근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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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근대인의 자유의 이행으로서의 자유정조

 

인간의 이성이 대면하는 (관계 범주의) 이율배반이 자유의 원인성이 있는 희망의 세계로 열려 있다는 칸트의 인과율개념은 동아시아 근대지성인 한용운의 시적 사유에 의해 사랑의 열도(熱度)를 획득했다.

이러한 (관계범주의) 이율배반을 대면하는 근대적 개인은 당신이 지금의 이별을 영원(永遠)히 깨치지 않는다 하여도 당신의 최후(最後)의 접촉(接觸)을 받은 나의 입술을 다른 남자(男子)의 입술에 대일 수는 없습니다.”고 말할 때의 고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정미라는 데카르트나 칸트가 자신을 절대적인 존재로 정립하는 고독한 주체의 사유 속에서 주관주의적이며 자율적인 능력만을 감지해냄으로써 주체를 모든 타자와의 관계로부터 단절된 고독한 개별적 자아로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고독은 량치차오와 한용운에 의해서도 이미 주목되고 있던 문제이다. 이 문제를 당시 량치차오가 해결하는 방식을 먼저 검토해 보자. 량치차오는 칸트가 성리학보다 낫지만 불교만은 못하다는 논지를 이렇게 제시한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진여는 일체의 중생이 공유하는 본체로서, 한 사람이 각자의 개별적 진여를 갖는 것이 아니다. 반면에 칸트는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진아를 갖는다고 말하며, 이 점에서 불교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한 명의 중생이라도 성불하지 못하면 나도 성불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이는 본체가 단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교는 보편적 구원의 정신이 심원하고 간곡하다. 칸트는 우리가 진정으로 선한 사람이고자 한다면 곧 선한 사람이 되며, 이는 본체의 자유로움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수양의 의미가 더욱 실질적이며 쉽게 진입할 수 있다.”

 

량치차오는 진아의 고독을 보편적 구원의 문제로 해결한다. 이는 칸트 이후 근대 사상의 흐름에서 가능한 중국적 사유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량치차오는 개별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 보편으로서 진여를 통해 칸트 이후 형성된 독일 관념론에 조응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량치차오가 말하는 진여헤겔이 말하는 절대정신처럼 그것은 세계가 작동하는 법칙이면서 또한 주관이다.”

한편 한용운은 량치차오와 또 다른 사유의 결을 보여준다. 량치차오가 진아=진여의 헤겔화를 경유해서 국가주의에 빠져든 것과 달리 한용운은 불교적 사상에서 상즉상리의 원리를 가져와 진아=진여의 국가주의는 거부하고서도 진여와의 관계가 가능함을 주장한다.

 

양계초가 부처님과 칸트의 다른 점에 언급한 것을 보건대 반드시 모두가 타당하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왜 그런가. 부처님은 천상천하에 오직 나만이 존귀하다 하셨는데 이것은 사람마다 각각 한 개의 자유스러운 진정한 자아를 지니고 있음을 밝히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진정한 자아와 각자가 개별적으로 지닌 진정한 자아에 대해 미흡함이 없이 언급하셨으나, 다만 칸트의 경우는 개별적인 그것에만 생각이 미쳤고 만인에게 보편적으로 공통되는 진정한 자아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못하였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부처님의 철리(哲理)가 훨씬 넓음을 알 수 있다./부처님이 성불했으면서도 중생 탓으로 성불하시지 못한다면 중생이 되어 있으면서 부처님 때문에 중생이 될 수 없음이 명백하다. 왜 그런가.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셋이면서 기실은 하나인데, 누구는 부처가 되고 누구는 중생이 되겠는가. 이는 소위 상즉상리(相卽相離)의 관계여서 하나가 곧 만, 만이 곧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부처라 하고 중생이라 하여 그 사이에 한계를 긋는다는 것은 다만 공중의 꽃이나 제 이()의 달과도 같아 기실 무의미할 뿐이다.”

 

위의 인용에서 보듯이 한용운은 량치차오와 달리 칸트가 물자체는 알 수 없다고 한 것을 완전히 거부하지 않는다. ‘진아=진여(물자체)’는 성립하지 않지만 진아와 진여는 상즉상리의 원리에 기반해 일정한 관계를 유지한다. 이를 통해서 한용운은 량치차오와 달리 칸트가 자유의 원인성이 지켜지는 예지계를 주장할 때 발생한 근대인의 고독을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위안을 줄 수 있었다. 칸트의 고독을 해소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그 자체로 칸트 이후 지성사의 보편적 흐름에 동아시아적인 고유성을 기입하고 있었다.

진여와의 상즉상리의 관계에 대한 한용운의 가르침은 1920년대의 근대 청년에게는 일정한 동시대성을 갖고 있었다. ‘미래를 종교로 삼은 전위주의 진여의 신앙은 현재에 대한 충실성을 가능하게 하는 희망을 내장한다는 점에서 칸트 이후의 고독에 위안을 제공한 것이다.

이러한 사정에 대해서 임화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렇다고 또한 내어다 볼 수 있는 미래의 길에 나타난다면 용이하게 시인은 그리로 향하여 질주할수있는 것이다. 우리 조선의 모더니즘은 비록 관념우에서 일망정 다행히도 그러한 길을 가지고 있던 예술이다. 감성의 활발한 도약은 현대에대한 비평의 정신으로 능히통어할수 있었을지 모르며 또한 반대로 그러한 정신이 감성의 활발한 도약에 원천이었을지도 모른다.”

 

위의 인용에서 임화는 자신의 청년 시대를 내어다 볼 수 있는 미래의 길을 믿고 그리로 향하여 질주할수있었던 시대로 회고하고 있다.

한용운의 상즉상리의 가르침은 1920년대 연애의 시대와 다른 근대성의 층위에서 작동하고 있었으며 이는 님의 침묵의 시적 사유의 중핵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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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칸트적인 인과율 개념과 한용운의 시 인과율이 만나는 지점을 제시하여 한용운이 대면한 근대의 이율배반을 드러내겠다. 먼저 인과율에 대한 일반적인 분류에 따르면 인과 이론은 발생인과론과 계기인과론으로 나눌 수 있다. 발생 인과론에서는 원인은 결과를 발생하게 하는 능력으로 간주되며, 원인은 그 결과와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계기 인과론은 원인이 어떤 사건이나 상태의 앞에 오는 것으로서 우리가 그 뒤에 그런 종류의 결과가 오리라고 기대하는 심리적 경향을 획득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원인이라고 단지 불려진다고 본다. 따라서 발생인과론은 인과관계를 맺고 있는 사건이나 상태들 사이의 관계는 그것 안에 내재해 있고, 원인과 결과는 서로 독립적이 아니며 결과는 원인없이 일어날 수 없는 데 비해 계기인과론은 인과관계를 그 관계를 맺고 있는 원인과 결과의 바깥에 있는 것으로 본다. 계기인과론의 관점에 따르면 원인과 결과의 결합이라는 사건은 원인과 결과라고 불리우는 사건을 아무리 분석해도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비슷한 사건을 반복적으로 관찰한 후 생기는 일종의 정신적인 습관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한용운의 인과율에 대한 선행연구는 인과율=불교=동아시아 문화 일반이 지닌 전통지나간 업보에 따른 결과는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의 나의 행동에 따라 얼마든지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보는 한 발생 인과율에 부합하는 해석이다. 하지만 흄과 함께 칸트 철학은 계기 인과론에 기반하고 있다.

이제 칸트 철학이 계기 인과론에 근거한다는 점을 환기하면서 이 개념이 순수이성의 이율배반에서 맡은 역할을 파악해 보자. 칸트는 변증론에서 순수한 이성이 네 개의 범주-,,관계,양상-에서 완전성의 이념에까지 사고를 계속해 감으로써 부딪치게 된 네가지 이율배반을 다룬다. 여기서 양, 질 범주에 따른 이율배반을 수학적이라 하고 관계, 양태 범주에 따른 이율배반을 역학적이라고 한다. 칸트는 수학적 이율배반이 형이상학적 우주론으로 성립할 수 없다고 본다. 그 대신 역학적 이율배반은 서로 이율배반이 되는 정립과 반정립이 각각 이종적인 세계에 대해서 타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 경우 정립과 반정립은 일정한 관점에서는 다 같이 참일 수 있는 것이다. 칸트는 이에 정립은 사물 자체의 세계, 곧 예지의 세계에 대해 타당할 수 있고, 반정립은 현상의 세계, 곧 감성의 세계에 대해 타당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인과율은 역학적 이율배반의 관계 범주에서 확인된다.

관계 범주에서 이성은 현상의 발생의 절대적 완벽성을 생각하고 그때 이성은 이율배반에 부딪친다. 이를 정립과 반정립으로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정립: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인과성은, 그로부터 세계의 현상들이 모두 도출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아니다.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유에 의한 인과성 또한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

반정립:자유는 없다. 오히려 세계에서 모든 것은 오로지 자연법칙들에 따라서 일어난다.

 

칸트에 따르면 자유란 자연 경험 중에는 있을 수 없는, 기껏해야 공허한 사고의 산물일 따름이다. 그러니까 세계가 오로지 감성의 세계인 자연뿐이라면, 그 안에 자유가 있을 자리는 없다. 그러나 생각 가능한 세계, 곧 예지의 세계에서라면 자유의 원인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칸트는 이러한 방식으로 자유의 개념을 구출하여 도덕의 세계가 가능한 희망의 세계를 열고자 했다.

이처럼 인과율은 칸트의 이율배반 개념에서 형이상학이 불가능한 근대를 희망의 세계로 이끌기 위해 핵심적인 중요성을 갖는데 이는 한용운이 주목한 무명과 진아의 구분과 연결된다. 한용운이 근대 사상으로서 불교의 인과율에 대한 한용운의 사유는 시 인과율에서 그 단초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인과율은 사랑의 감정을 다루고 있다. 사랑은 무명(에 빠진 중생)이 휘둘리는 감정을 대표한다. 칸트는 사랑과 같은 감정을 경향성(Neigung:기울어지는 성질,성향, 애착) 개념으로 다루었다. 칸트에 따르면 감정은 시간 속에서 유동적으로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철학의 대상이 아니다.

무명의 사랑은 감정인 이상 옛 맹세를 통해 영원성을 얻지 못한다. 인간의 이성은 관계 범주에서 현상의 발생의 절대적 완벽성을 생각할 때 이율배반에 빠지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아는 예지의 세계에서 자유의 원인성에 의해 영원불멸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논문은 한용운의 인과율을 동아시아 문화 일반이 지닌 전통의 원리(이선이), 혹은 전통적인 불교 교리 이해(남정희)로 해명하기보다는 량치차오-칸트를 경유한 사상으로서의 불교로 보려 한다. 한용운의 시에서 표상되는 사랑의 갈등은 무명과 진아로 분할된 근대인이 대면해야 하는 역학적 이율배반을 감각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한용운의 시 인과율은 역학적 이율배반과 관련한 개념적 사고를 자유로운 유희 속에 있는 상상력과 지성간의 조화로운 관계로 표현한 것이었다. 현상계에서 당신은 옛맹세를 깨치고 가고 있다. 현상계의 인간인 무명은 자유의 원인성이 아니라 경향성에 휘둘리는 감정을 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지계에서 옛맹세는 자유의 원인성에 따라 지켜질 수 있다. 따라서 시적 자아는 인간 이성의 역학적 이율배반을 대면하면서 무명을 따르지 않고 진아를 따르는 선택을 당신의 최후의 접촉을 받은 나의 입술을 다른 남자의 입술에 대일 수는 없습니다라는 싯구와 같이 감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인과율의 시적 원리는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에서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는 절창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 나아가서 인과율의 시적 원리는 님의 침묵에 대한 전반적인 해석의 실마리인 자유의 비밀을 함축한다. 가령 군말에서 제시되고 있는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라는 테제는 자유 연애에 대한 단순한 반명제가 아니라 자유 연애의 이율배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를 통해 무명의 사랑에 대한 초월, 반성이 가능하다면 인간의 이성은 자유의 원인성이 있는 예지계를 열어제칠 수 있다는 시적 사유가 1920년대의 한용운에 의해서 주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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