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호는 「한용운 시와 기다림의 세계」에서 시적 화자의 기다림이 “윤리나 규범에 따르는 타율적인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성립되는 자발적인 기다림”이라고 규정한다. 더 나아가서 “자유정조”는 “사랑이나 연애의 자유를 인정하는 동시에 정조의 자유도 아울러 드러낸 것”이며 “모든 관계의 자유스러움 가운데에서도 스스로 기다려지는 님에 대한 사랑은 분명히 자발성의 원리에 근거한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정효구에 의하면 이러한 자발적인 기다림의 의미는 위의 시의 세속적 정조와 진정한 사랑의 차이, 세속적 사랑과 진정한 정조의 차이의 입체적 조망 위에서 도출된다. 그리하여 “화자 자신의 님을 향한 기다림이야말로 ‘진정한 정조’와 ‘진정한 사랑’의 결합물로서 세속의 그것과는 너무나 다른 곳에 있음을 사유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독해에 대한 재해석을 보여주는 근래의 ‘문화사 연구’는 「자유정조」의 특징인 자발적인 기다림에서 전근대적인 특징을 발견한다. 『님의 침묵』에서 사랑의 “관건은 평생토록 그 사랑을 지속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면 이것은 한용운의 시가 근대적인 개인의 상호적인 계약관계를 가능하게 해주는 자유연애의 이상보다는 “전통적인 반려애”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정조」는 우리 사회에서 자유연애에 관한 담론이 가장 활발하게 제기된 1910년대 중반에서 192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나온 근대(자유연애) 담론에 대한 전근대(자유정조)의 반격으로 볼 여지가 있게 된다.
이러한 비판은 한용운의 텍스트 특히 소설 『죽음』을 통해서 구체성을 얻는다. 소설 『죽음』은 ‘조도전대학 문과를 나와 낭만주의 시인을 자처하는 정성열’에 대항하는 주인공 영옥을 통해 ‘자유정조’론의 단초를 제시하고 있다. 근대 전환기에 서구적 사랑의 감정은 열정적 파토스를 중심에 둔다면 『죽음』의 주인공 영옥은 서로에 대한 인격 탐색의 시기인 연애기를 거치고 그 결과로 결혼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소설 『죽음』의 서사를 ‘자유연애’와 ‘자유정조’의 담론 충돌로 해석하고 이를 『님의 침묵』의 ‘동양적 연애’와 연결하는 문화사 연구의 독법은 구체성을 얻는다.
자유연애가 근대적인 사랑의 ‘열정’과 관련 있는 데 비해 자유정조는 전근대적인 ‘반려애’와 연결된다는 기존 문화사 연구의 입론과 달리 이번 연구는 낭만주의의 특징인 자유의지와 근대적인 사랑을 관련지어 논의하겠다. 자유의지가 근대성의 요소로 정립되는 데는 낭만주의의 아버지 중 하나인 칸트 철학의 역할이 컸다. 칸트는 “자유의지가 인간을 자연의 다른 대상들과 구별해준다” 그리고 “자유롭다는 것은 따라서 어떤 도덕적 가치들에 자유롭게 헌신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자유연애는 선택의 자유를 강조하는데 이는 이중적으로 볼 수 있다. 『님의 침묵』의 「군말」에서는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조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밧지 안너냐”고 한다. 한용운은 칸트와 량치차오를 따라서 “자유로운 진정한 자아와 부자유스러운 현상적 자아의 구분”을 지지한다. 이러한 구분에 따르면 현상적 자아가 좇는 ‘자유’는 자연필연성에 지배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부자유’일 따름이다. 진정한 자아만이 자연필연성을 초월하여 현상적 자아를 반성적으로 되돌아보고 자유롭게 법칙을 수립하고 스스로 그 법칙에 복종한다. 한용운과 그의 시대의 동아시아 지성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량치차오는 ‘자유’에 대해 상세히 논의한 바 있다. 량치차오는 공덕과 사덕을 나누어 공덕 편의 한 항목으로 ‘자유’를 다음과 같이 논의하고 있다. “아아! 오늘날의 청년은 누구나 시끄럽게 자유를 떠들어댄다.” “참된 자유는 반드시 복종할 줄 안다. 복종이란 무엇인가? 법률에 복종하는 것이다. 법률이란 내가 제정함으로써 나의 자유를 보호하고 또한 나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는 한용운의 시 복종에서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야요”라는 싯구에 영감을 주었다. 다만 복종의 “당신”이 량치차오의 “법률”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량치차오가 빠져든 국가주의의 경로를 이탈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용운의 시 「자유정조」는 자유연애의 자유(세속적 사랑)가 자유정조의 자유(진정한 정조)로 인도되어야 한다는 시적 사유를 표현한다. 이러한 시적 사유를 『죽음』 등의 소설에 대한 근대-전근대 담론의 충돌이라는 해석틀에 의해 도전받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연구는 「자유정조」 해석에 한용운의 비문학 텍스트 『불교유신론』을 중첩시켜서 문화사 연구자들의 주장의 주요 논거로 놓인 소설 『죽음』을 재해석하는 데까지 나아가겠다. 이렇게 볼 때 한용운의 시 「자유정조」는 자유연애를 자유정조로 인도하는 사상적 실천이라는 점이 드러나며 이는 칸트의 <자기애의 원리 논증>에 의해 정당화된다.
<자기애의 원리 논증>
인간은 선하거나 악하다
도덕법칙을 최상준칙으로 삼은 인간만이 선하다.
따라서 ‘자기애의 원리’를 최상준칙으로 삼은 인간은 악하다.
1920년대 자유연애 담론의 ‘자유’, 특히 소설 『죽음』에서 정성열이 실천한 ‘자유’는 이러한 ‘자기애의 원리’를 최상준칙으로 삼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한용운에게서 자유연애 담론의 ‘자유’는 도덕법칙의 원리로 인도되어야 했는데 이를 한용운의 「자유정조」가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칸트는 인간의 행위를 준칙모델에 따라 설명한다. 준칙모델에 따르면 행위자는 욕구와 더불어 자신의 상황과 결단을 반영하여 준칙을 세우고, 그 준칙에 따라서 행위한다. 준칙을 세운 행위자는 자신의 준칙을 개별 상황에서 일회적으로 사용할 뿐만이 아니라, 비슷한 상황에서 규칙으로 전범적으로 사용한다. 또한 칸트는 인간의 모든 동기는 ‘자기애’와 ‘도덕법칙’이라는 두 가지 동기로 수렴된다고 보았다. 자기애와 도덕법칙 중 자기애를 도덕법칙보다 우선시하겠다고 결정한 인격은 악하며, 도덕법칙을 우선시하겠다고 결정한 인격은 선하다. 악한 인간이란 ‘자기애의 원리’를 최상준칙으로 삼겠다는 근본 결정을 내린 자이다.
칸트가 도덕법칙을 최상준칙으로 삼은 인간만이 선하다고 한 <자기애 원리 논증>의 두 번째 전제는 선의지와 도덕적 가치 논의로부터 정당화된다. 어떤 행위나 어떤 인격이 ‘선’이라는 도덕적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선의지를 지녀야 한다. 선의지를 갖는 것은 선하며, 선의지가 결여된 것은 선하지 않다. 따라서 비-도덕법칙을 최상준칙으로 삼는 인간은 도덕적으로 선하지 않다.
간략하게 살펴본 ‘자기애의 원리 논증’은 인간이 자기 자신과 타인을 단지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고 동시에 목적으로 대할 것을 명령하는 ‘인간성 정식’으로 수렴된다. 선한 인간의 최상준칙은 도덕법칙이므로 그는 인간성 정식을 자신의 최상준칙으로 삼을 것이다. 반면 악한 인간은 자기애를 도덕법칙보다 우위에 놓는 최상준칙을 가질 것이다.
한용운의 시 「자유정조」가 당대의 자유연애 담론과 충돌한다면 그것은 ‘자기애의 원리’를 최상준칙으로 삼은 자유연애를 도덕법칙의 원리로 인도하기 위해서라고 해석할 수 있다.
기존의 문화사 연구는 ‘자유연애’가 근대적 연애 담론이기 때문에 이와 충돌하는 한용운의 시 「자유정조」와 『님의 침묵』을 잠정적으로 ‘전근대인 한용운의 표상’의 일부로 치부하고 있다. 하지만 동아시아 근대 지성 한용운의 『불교유신론』 을 재검토해 보면 한용운의 시가 근대적 문제에 응전해온 칸트-량치차오의 사상을 전유하여 개조하고 있었으며 이는 『님의 침묵』의 중핵을 이루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근대인 한용운이 서양의 물질 문명을 인식하는 것은 이중적인데, 한편으로는 무명 즉 현상적 자아에 얽매어 있는 “야만적 문명” 이라는 점과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한계 인식을 통해 진아 즉 미래의 도덕 문명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계기라는 점을 동시에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칸트 철학이 “존재 영역에 대한 이분법적 조망”으로 보는 폐해를 낳을 수도 있지만 “이 경계 설정을 통해서 인간적 실천의 당위성”을 이야기하는 아포리아에 근접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