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호는 한용운 시와 기다림의 세계에서 시적 화자의 기다림이 윤리나 규범에 따르는 타율적인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성립되는 자발적인 기다림이라고 규정한다. 더 나아가서 자유정조사랑이나 연애의 자유를 인정하는 동시에 정조의 자유도 아울러 드러낸 것이며 모든 관계의 자유스러움 가운데에서도 스스로 기다려지는 님에 대한 사랑은 분명히 자발성의 원리에 근거한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정효구에 의하면 이러한 자발적인 기다림의 의미는 위의 시의 세속적 정조와 진정한 사랑의 차이, 세속적 사랑과 진정한 정조의 차이의 입체적 조망 위에서 도출된다. 그리하여 화자 자신의 님을 향한 기다림이야말로 진정한 정조진정한 사랑의 결합물로서 세속의 그것과는 너무나 다른 곳에 있음을 사유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독해에 대한 재해석을 보여주는 근래의 문화사 연구자유정조의 특징인 자발적인 기다림에서 전근대적인 특징을 발견한다. 님의 침묵에서 사랑의 관건은 평생토록 그 사랑을 지속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면 이것은 한용운의 시가 근대적인 개인의 상호적인 계약관계를 가능하게 해주는 자유연애의 이상보다는 전통적인 반려애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정조는 우리 사회에서 자유연애에 관한 담론이 가장 활발하게 제기된 1910년대 중반에서 192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나온 근대(자유연애) 담론에 대한 전근대(자유정조)의 반격으로 볼 여지가 있게 된다.

이러한 비판은 한용운의 텍스트 특히 소설 죽음을 통해서 구체성을 얻는다. 소설 죽음조도전대학 문과를 나와 낭만주의 시인을 자처하는 정성열에 대항하는 주인공 영옥을 통해 자유정조론의 단초를 제시하고 있다. 근대 전환기에 서구적 사랑의 감정은 열정적 파토스를 중심에 둔다면 죽음의 주인공 영옥은 서로에 대한 인격 탐색의 시기인 연애기를 거치고 그 결과로 결혼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소설 죽음의 서사를 자유연애자유정조의 담론 충돌로 해석하고 이를 님의 침묵동양적 연애와 연결하는 문화사 연구의 독법은 구체성을 얻는다.

자유연애가 근대적인 사랑의 열정과 관련 있는 데 비해 자유정조는 전근대적인 반려애와 연결된다는 기존 문화사 연구의 입론과 달리 이번 연구는 낭만주의의 특징인 자유의지와 근대적인 사랑을 관련지어 논의하겠다. 자유의지가 근대성의 요소로 정립되는 데는 낭만주의의 아버지 중 하나인 칸트 철학의 역할이 컸다. 칸트는 자유의지가 인간을 자연의 다른 대상들과 구별해준다 그리고 자유롭다는 것은 따라서 어떤 도덕적 가치들에 자유롭게 헌신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자유연애는 선택의 자유를 강조하는데 이는 이중적으로 볼 수 있다. 님의 침묵군말에서는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조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밧지 안너냐고 한다. 한용운은 칸트와 량치차오를 따라서 자유로운 진정한 자아와 부자유스러운 현상적 자아의 구분을 지지한다. 이러한 구분에 따르면 현상적 자아가 좇는 자유는 자연필연성에 지배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부자유일 따름이다. 진정한 자아만이 자연필연성을 초월하여 현상적 자아를 반성적으로 되돌아보고 자유롭게 법칙을 수립하고 스스로 그 법칙에 복종한다. 한용운과 그의 시대의 동아시아 지성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량치차오는 자유에 대해 상세히 논의한 바 있다. 량치차오는 공덕과 사덕을 나누어 공덕 편의 한 항목으로 자유를 다음과 같이 논의하고 있다. “아아! 오늘날의 청년은 누구나 시끄럽게 자유를 떠들어댄다.” “참된 자유는 반드시 복종할 줄 안다. 복종이란 무엇인가? 법률에 복종하는 것이다. 법률이란 내가 제정함으로써 나의 자유를 보호하고 또한 나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는 한용운의 시 복종에서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야요라는 싯구에 영감을 주었다. 다만 복종의 당신이 량치차오의 법률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량치차오가 빠져든 국가주의의 경로를 이탈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용운의 시 자유정조는 자유연애의 자유(세속적 사랑)가 자유정조의 자유(진정한 정조)로 인도되어야 한다는 시적 사유를 표현한다. 이러한 시적 사유를 죽음등의 소설에 대한 근대-전근대 담론의 충돌이라는 해석틀에 의해 도전받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연구는 자유정조해석에 한용운의 비문학 텍스트 불교유신론을 중첩시켜서 문화사 연구자들의 주장의 주요 논거로 놓인 소설 죽음을 재해석하는 데까지 나아가겠다. 이렇게 볼 때 한용운의 시 자유정조는 자유연애를 자유정조로 인도하는 사상적 실천이라는 점이 드러나며 이는 칸트의 <자기애의 원리 논증>에 의해 정당화된다.

 

<자기애의 원리 논증>

인간은 선하거나 악하다

도덕법칙을 최상준칙으로 삼은 인간만이 선하다.

따라서 자기애의 원리를 최상준칙으로 삼은 인간은 악하다.

 

1920년대 자유연애 담론의 자유’, 특히 소설 죽음에서 정성열이 실천한 자유는 이러한 자기애의 원리를 최상준칙으로 삼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한용운에게서 자유연애 담론의 자유는 도덕법칙의 원리로 인도되어야 했는데 이를 한용운의 자유정조가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칸트는 인간의 행위를 준칙모델에 따라 설명한다. 준칙모델에 따르면 행위자는 욕구와 더불어 자신의 상황과 결단을 반영하여 준칙을 세우고, 그 준칙에 따라서 행위한다. 준칙을 세운 행위자는 자신의 준칙을 개별 상황에서 일회적으로 사용할 뿐만이 아니라, 비슷한 상황에서 규칙으로 전범적으로 사용한다. 또한 칸트는 인간의 모든 동기는 자기애도덕법칙이라는 두 가지 동기로 수렴된다고 보았다. 자기애와 도덕법칙 중 자기애를 도덕법칙보다 우선시하겠다고 결정한 인격은 악하며, 도덕법칙을 우선시하겠다고 결정한 인격은 선하다. 악한 인간이란 자기애의 원리를 최상준칙으로 삼겠다는 근본 결정을 내린 자이다.

칸트가 도덕법칙을 최상준칙으로 삼은 인간만이 선하다고 한 <자기애 원리 논증>의 두 번째 전제는 선의지와 도덕적 가치 논의로부터 정당화된다. 어떤 행위나 어떤 인격이 이라는 도덕적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선의지를 지녀야 한다. 선의지를 갖는 것은 선하며, 선의지가 결여된 것은 선하지 않다. 따라서 비-도덕법칙을 최상준칙으로 삼는 인간은 도덕적으로 선하지 않다.

간략하게 살펴본 자기애의 원리 논증은 인간이 자기 자신과 타인을 단지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고 동시에 목적으로 대할 것을 명령하는 인간성 정식으로 수렴된다. 선한 인간의 최상준칙은 도덕법칙이므로 그는 인간성 정식을 자신의 최상준칙으로 삼을 것이다. 반면 악한 인간은 자기애를 도덕법칙보다 우위에 놓는 최상준칙을 가질 것이다.

한용운의 시 자유정조가 당대의 자유연애 담론과 충돌한다면 그것은 자기애의 원리를 최상준칙으로 삼은 자유연애를 도덕법칙의 원리로 인도하기 위해서라고 해석할 수 있다.

기존의 문화사 연구는 자유연애가 근대적 연애 담론이기 때문에 이와 충돌하는 한용운의 시 자유정조님의 침묵을 잠정적으로 전근대인 한용운의 표상의 일부로 치부하고 있다. 하지만 동아시아 근대 지성 한용운의 불교유신론을 재검토해 보면 한용운의 시가 근대적 문제에 응전해온 칸트-량치차오의 사상을 전유하여 개조하고 있었으며 이는 님의 침묵의 중핵을 이루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근대인 한용운이 서양의 물질 문명을 인식하는 것은 이중적인데, 한편으로는 무명 즉 현상적 자아에 얽매어 있는 야만적 문명 이라는 점과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한계 인식을 통해 진아 즉 미래의 도덕 문명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계기라는 점을 동시에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칸트 철학이 존재 영역에 대한 이분법적 조망으로 보는 폐해를 낳을 수도 있지만 이 경계 설정을 통해서 인간적 실천의 당위성을 이야기하는 아포리아에 근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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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근대인의 자유의 이행으로서의 자유정조

 

인간의 이성이 대면하는 (관계 범주의) 이율배반이 자유의 원인성이 있는 희망의 세계로 열려 있다는 칸트의 인과율개념은 동아시아 근대지성인 한용운의 시적 사유에 의해 사랑의 열도(熱度)를 획득했다.

이러한 (관계범주의) 이율배반을 대면하는 근대적 개인은 당신이 지금의 이별을 영원(永遠)히 깨치지 않는다 하여도 당신의 최후(最後)의 접촉(接觸)을 받은 나의 입술을 다른 남자(男子)의 입술에 대일 수는 없습니다.”고 말할 때의 고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정미라는 데카르트나 칸트가 자신을 절대적인 존재로 정립하는 고독한 주체의 사유 속에서 주관주의적이며 자율적인 능력만을 감지해냄으로써 주체를 모든 타자와의 관계로부터 단절된 고독한 개별적 자아로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고독은 량치차오와 한용운에 의해서도 이미 주목되고 있던 문제이다. 이 문제를 당시 량치차오가 해결하는 방식을 먼저 검토해 보자. 량치차오는 칸트가 성리학보다 낫지만 불교만은 못하다는 논지를 이렇게 제시한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진여는 일체의 중생이 공유하는 본체로서, 한 사람이 각자의 개별적 진여를 갖는 것이 아니다. 반면에 칸트는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진아를 갖는다고 말하며, 이 점에서 불교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한 명의 중생이라도 성불하지 못하면 나도 성불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이는 본체가 단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교는 보편적 구원의 정신이 심원하고 간곡하다. 칸트는 우리가 진정으로 선한 사람이고자 한다면 곧 선한 사람이 되며, 이는 본체의 자유로움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수양의 의미가 더욱 실질적이며 쉽게 진입할 수 있다.”

 

량치차오는 진아의 고독을 보편적 구원의 문제로 해결한다. 이는 칸트 이후 근대 사상의 흐름에서 가능한 중국적 사유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량치차오는 개별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 보편으로서 진여를 통해 칸트 이후 형성된 독일 관념론에 조응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량치차오가 말하는 진여헤겔이 말하는 절대정신처럼 그것은 세계가 작동하는 법칙이면서 또한 주관이다.”

한편 한용운은 량치차오와 또 다른 사유의 결을 보여준다. 량치차오가 진아=진여의 헤겔화를 경유해서 국가주의에 빠져든 것과 달리 한용운은 불교적 사상에서 상즉상리의 원리를 가져와 진아=진여의 국가주의는 거부하고서도 진여와의 관계가 가능함을 주장한다.

 

양계초가 부처님과 칸트의 다른 점에 언급한 것을 보건대 반드시 모두가 타당하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왜 그런가. 부처님은 천상천하에 오직 나만이 존귀하다 하셨는데 이것은 사람마다 각각 한 개의 자유스러운 진정한 자아를 지니고 있음을 밝히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진정한 자아와 각자가 개별적으로 지닌 진정한 자아에 대해 미흡함이 없이 언급하셨으나, 다만 칸트의 경우는 개별적인 그것에만 생각이 미쳤고 만인에게 보편적으로 공통되는 진정한 자아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못하였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부처님의 철리(哲理)가 훨씬 넓음을 알 수 있다./부처님이 성불했으면서도 중생 탓으로 성불하시지 못한다면 중생이 되어 있으면서 부처님 때문에 중생이 될 수 없음이 명백하다. 왜 그런가.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셋이면서 기실은 하나인데, 누구는 부처가 되고 누구는 중생이 되겠는가. 이는 소위 상즉상리(相卽相離)의 관계여서 하나가 곧 만, 만이 곧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부처라 하고 중생이라 하여 그 사이에 한계를 긋는다는 것은 다만 공중의 꽃이나 제 이()의 달과도 같아 기실 무의미할 뿐이다.”

 

위의 인용에서 보듯이 한용운은 량치차오와 달리 칸트가 물자체는 알 수 없다고 한 것을 완전히 거부하지 않는다. ‘진아=진여(물자체)’는 성립하지 않지만 진아와 진여는 상즉상리의 원리에 기반해 일정한 관계를 유지한다. 이를 통해서 한용운은 량치차오와 달리 칸트가 자유의 원인성이 지켜지는 예지계를 주장할 때 발생한 근대인의 고독을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위안을 줄 수 있었다. 칸트의 고독을 해소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그 자체로 칸트 이후 지성사의 보편적 흐름에 동아시아적인 고유성을 기입하고 있었다.

진여와의 상즉상리의 관계에 대한 한용운의 가르침은 1920년대의 근대 청년에게는 일정한 동시대성을 갖고 있었다. ‘미래를 종교로 삼은 전위주의 진여의 신앙은 현재에 대한 충실성을 가능하게 하는 희망을 내장한다는 점에서 칸트 이후의 고독에 위안을 제공한 것이다.

이러한 사정에 대해서 임화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렇다고 또한 내어다 볼 수 있는 미래의 길에 나타난다면 용이하게 시인은 그리로 향하여 질주할수있는 것이다. 우리 조선의 모더니즘은 비록 관념우에서 일망정 다행히도 그러한 길을 가지고 있던 예술이다. 감성의 활발한 도약은 현대에대한 비평의 정신으로 능히통어할수 있었을지 모르며 또한 반대로 그러한 정신이 감성의 활발한 도약에 원천이었을지도 모른다.”

 

위의 인용에서 임화는 자신의 청년 시대를 내어다 볼 수 있는 미래의 길을 믿고 그리로 향하여 질주할수있었던 시대로 회고하고 있다.

한용운의 상즉상리의 가르침은 1920년대 연애의 시대와 다른 근대성의 층위에서 작동하고 있었으며 이는 님의 침묵의 시적 사유의 중핵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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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칸트적인 인과율 개념과 한용운의 시 인과율이 만나는 지점을 제시하여 한용운이 대면한 근대의 이율배반을 드러내겠다. 먼저 인과율에 대한 일반적인 분류에 따르면 인과 이론은 발생인과론과 계기인과론으로 나눌 수 있다. 발생 인과론에서는 원인은 결과를 발생하게 하는 능력으로 간주되며, 원인은 그 결과와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계기 인과론은 원인이 어떤 사건이나 상태의 앞에 오는 것으로서 우리가 그 뒤에 그런 종류의 결과가 오리라고 기대하는 심리적 경향을 획득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원인이라고 단지 불려진다고 본다. 따라서 발생인과론은 인과관계를 맺고 있는 사건이나 상태들 사이의 관계는 그것 안에 내재해 있고, 원인과 결과는 서로 독립적이 아니며 결과는 원인없이 일어날 수 없는 데 비해 계기인과론은 인과관계를 그 관계를 맺고 있는 원인과 결과의 바깥에 있는 것으로 본다. 계기인과론의 관점에 따르면 원인과 결과의 결합이라는 사건은 원인과 결과라고 불리우는 사건을 아무리 분석해도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비슷한 사건을 반복적으로 관찰한 후 생기는 일종의 정신적인 습관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한용운의 인과율에 대한 선행연구는 인과율=불교=동아시아 문화 일반이 지닌 전통지나간 업보에 따른 결과는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의 나의 행동에 따라 얼마든지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보는 한 발생 인과율에 부합하는 해석이다. 하지만 흄과 함께 칸트 철학은 계기 인과론에 기반하고 있다.

이제 칸트 철학이 계기 인과론에 근거한다는 점을 환기하면서 이 개념이 순수이성의 이율배반에서 맡은 역할을 파악해 보자. 칸트는 변증론에서 순수한 이성이 네 개의 범주-,,관계,양상-에서 완전성의 이념에까지 사고를 계속해 감으로써 부딪치게 된 네가지 이율배반을 다룬다. 여기서 양, 질 범주에 따른 이율배반을 수학적이라 하고 관계, 양태 범주에 따른 이율배반을 역학적이라고 한다. 칸트는 수학적 이율배반이 형이상학적 우주론으로 성립할 수 없다고 본다. 그 대신 역학적 이율배반은 서로 이율배반이 되는 정립과 반정립이 각각 이종적인 세계에 대해서 타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 경우 정립과 반정립은 일정한 관점에서는 다 같이 참일 수 있는 것이다. 칸트는 이에 정립은 사물 자체의 세계, 곧 예지의 세계에 대해 타당할 수 있고, 반정립은 현상의 세계, 곧 감성의 세계에 대해 타당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인과율은 역학적 이율배반의 관계 범주에서 확인된다.

관계 범주에서 이성은 현상의 발생의 절대적 완벽성을 생각하고 그때 이성은 이율배반에 부딪친다. 이를 정립과 반정립으로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정립: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인과성은, 그로부터 세계의 현상들이 모두 도출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아니다.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유에 의한 인과성 또한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

반정립:자유는 없다. 오히려 세계에서 모든 것은 오로지 자연법칙들에 따라서 일어난다.

 

칸트에 따르면 자유란 자연 경험 중에는 있을 수 없는, 기껏해야 공허한 사고의 산물일 따름이다. 그러니까 세계가 오로지 감성의 세계인 자연뿐이라면, 그 안에 자유가 있을 자리는 없다. 그러나 생각 가능한 세계, 곧 예지의 세계에서라면 자유의 원인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칸트는 이러한 방식으로 자유의 개념을 구출하여 도덕의 세계가 가능한 희망의 세계를 열고자 했다.

이처럼 인과율은 칸트의 이율배반 개념에서 형이상학이 불가능한 근대를 희망의 세계로 이끌기 위해 핵심적인 중요성을 갖는데 이는 한용운이 주목한 무명과 진아의 구분과 연결된다. 한용운이 근대 사상으로서 불교의 인과율에 대한 한용운의 사유는 시 인과율에서 그 단초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인과율은 사랑의 감정을 다루고 있다. 사랑은 무명(에 빠진 중생)이 휘둘리는 감정을 대표한다. 칸트는 사랑과 같은 감정을 경향성(Neigung:기울어지는 성질,성향, 애착) 개념으로 다루었다. 칸트에 따르면 감정은 시간 속에서 유동적으로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철학의 대상이 아니다.

무명의 사랑은 감정인 이상 옛 맹세를 통해 영원성을 얻지 못한다. 인간의 이성은 관계 범주에서 현상의 발생의 절대적 완벽성을 생각할 때 이율배반에 빠지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아는 예지의 세계에서 자유의 원인성에 의해 영원불멸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논문은 한용운의 인과율을 동아시아 문화 일반이 지닌 전통의 원리(이선이), 혹은 전통적인 불교 교리 이해(남정희)로 해명하기보다는 량치차오-칸트를 경유한 사상으로서의 불교로 보려 한다. 한용운의 시에서 표상되는 사랑의 갈등은 무명과 진아로 분할된 근대인이 대면해야 하는 역학적 이율배반을 감각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한용운의 시 인과율은 역학적 이율배반과 관련한 개념적 사고를 자유로운 유희 속에 있는 상상력과 지성간의 조화로운 관계로 표현한 것이었다. 현상계에서 당신은 옛맹세를 깨치고 가고 있다. 현상계의 인간인 무명은 자유의 원인성이 아니라 경향성에 휘둘리는 감정을 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지계에서 옛맹세는 자유의 원인성에 따라 지켜질 수 있다. 따라서 시적 자아는 인간 이성의 역학적 이율배반을 대면하면서 무명을 따르지 않고 진아를 따르는 선택을 당신의 최후의 접촉을 받은 나의 입술을 다른 남자의 입술에 대일 수는 없습니다라는 싯구와 같이 감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인과율의 시적 원리는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에서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는 절창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 나아가서 인과율의 시적 원리는 님의 침묵에 대한 전반적인 해석의 실마리인 자유의 비밀을 함축한다. 가령 군말에서 제시되고 있는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라는 테제는 자유 연애에 대한 단순한 반명제가 아니라 자유 연애의 이율배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를 통해 무명의 사랑에 대한 초월, 반성이 가능하다면 인간의 이성은 자유의 원인성이 있는 예지계를 열어제칠 수 있다는 시적 사유가 1920년대의 한용운에 의해서 주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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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 연구에서 한용운의 시 인과율에 대한 문화사적 이해와 불교 교리에 근거한 이해는 공히 제도로서의 결혼 혹은 사랑의 맹세를 지키면 당신이 곧 돌아올 것이라는 신념으로 수렴되고 있다.

이러한 선행연구는 최초의 근대 청년한용운의 불교 이해를 동양 전통으로 수렴시킨다는 문제를 갖는다. 하지만 한용운이 1910년대에 불교의 근대화에 헌신해 왔다는 상식에 기대지 않더라도 님의 침묵이 발간된 다음 해에 신여성을 향해 녀성해방 운동은 녀성 자신의 운동이라야 함니다 남자에게 피동되는 운동은 무의미하게 되며 또 무력하게 됨니다.”라고 하여 1920년대 문화청년에게 오히려 더욱 진보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요청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러한 한용운의 사상과 실천에 주목해 보면 유독 한용운의 문학은 신여성의 자유연애론에 대한 반작용, 사랑의 맹세를 지키는 균형감각, 옛맹세는 지켜야 한다는 신념 등의 다소 소박한 보수성(‘동아시아 문화 일반이 지닌 전통’)으로 이어진다는 해석이 타당한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하에 본고는 한용운의 불교 이해의 근대성에 주목하겠다. 인과율에 대한 선행 연구는 한용운의 불교유신론의 진보성을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한용운의 불교 이해에 영향을 미친 량치차오에게서 불교는 근대에 재발명된 신종교였다. 량치차오의 음빙실문집은 기독교를 비판하면서 불교를 중국의 종교로 선택해야 함을 주장한다. 그는 종래의 불교에 가해졌던 비판들, 가령 미신이라거나 염세적이라는 등의 내용을 거부하면서 불교가 국민정신을 통일하고 문명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종교라고 본다. 량치차오의 이러한 관점은 불교를 통한 근대화의 가능성을 만해에게 열어준다. 만해의 조선불교유신론에는 량치차오에 대한 언급이 5번 나온다. 당시 량치차오의 음빙실문집을 읽는 일은 그 자체로 근대적인 체험이었는데 이는 근대 국민국가를 건설하는 개화운동의 실천의 일부로 중요시되었다

량치차오는 19032월부터 19042월까지 신민총보근세 최고 철학자 칸트의 학설4회 연재하며 이후 량치차오의 음빙실문집에 수록한다. 량치차오식으로 전유된 칸트는 한용운의 사상에도 흔적을 남기는데 이 점은 한용운의 불교유신론불교의 성질편에서 확인된다.

 

우리의 일생의 행위가 다 내 도덕적 성질이 겉으로 나타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 인간성이 자유에 합치하는가 아닌가를 알고자 하면 공연히 겉으로 나타난 현상만으로 논해서는 안되며 응당 본성의 도덕적 성질에 입각하여 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니, 도덕적 성질에 있어서야 누가 조금이라도 자유롭지 않은 것이 있다고 하겠는가. 도덕적 성질은 생기는 일도, 없어지는 일도 없어서 공간과 시간에 제한받거나 구속되거나 하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도 미래도 없고 항상 현재뿐인 것인바, 사람이 각자 이 공간, 시간을 초월한 자유권(본성)에 의지하여 스스로 도덕적 성질을 만들어 내게 마련이다. 그러기에 나의 진정한 자아를 나의 육안으로 볼 수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그러나 도덕의 이치로 생각하면 엄연히 멀리 현상 위에 벗어나 그 밖에서 있음을 보게 된다.”

 

위의 인용에서 보듯 한용운은 불교의 성질을 칸트의 초월철학을 전유한 자유의 문제로 해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한용운에 대한 지성사적인 이해를 전제로 이번 논문은 한용운의 문학활동은 자유연애론에 대한 반명제라는 각도에서 조명하거나 그 귀결점은 전통적인 반려애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랑의 형식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 것도 사실이다.”는 평가와 다른 접근을 시도하겠다.

권보드래, 이선이가 대표하는 문화사적 접근의 요점은 한용운의 시가 연애의 시대의 자유연애론에 대한 반명제로서 전근대적(동아시아적) ‘반려애로 수렴된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한용운의 시에서 불교적 인과율동아시아 문화 일반이 지닌 전통의 원리로 해석한 것은 근대 사상으로서의 불교에 대한 이해를 누락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근대전환기에 보여준 한용운의 도덕적 우위를 옛 맹세는 지켜야 한다는 신념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소박한 인과율 이해와 관점을 공유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교를 근대사상으로 정초하려 한 동아시아 근대 전환기 지성의 한 전형인 한용운의 구체성은 간과할 수 없다. 한용운은 량치차오를 매개로 하여 칸트 철학을 이해하는 한편 불교 사상을 통해서 량치차오와 차별화된 방식으로 칸트 철학을 개조하려 하고 있다. 이번 장에서는 먼저 한용운이 주목한 칸트 철학이 동아시아의 전통적 사고에 어떤 자극을 줬는지 확인하겠다.

 

이에 비겨 주자의 명덕설 같은 것은 (...) 이 명덕이 기품의 구애와 인욕의 가림을 받는다 하며, 자유로운 진정한 자아와 부자유스러운 현상적 자아의 구분에 있어서 한계가 명료치 않았으니, 이것이 칸트에 비겨 미흡한 점이다.”

 

위의 인용은 성리학에 비해 칸트가 자유로운 진정한 자아와 부자유스러운 현상적 자아의 구분을 명료하게 한 점에 주목한다. 칸트의 자연필연성에 속박된 현상적 자아와 자유로운 초월적 자아의 구분을 량치차오-한용운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지식인은 불교에서의 무명과 진아의 구분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는 칸트 철학이 존재 영역에 대한 이분법적 조망이 경계 설정을 통해서 인간적 실천의 당위성을 비로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과 대응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선행 연구에서는 낭만적 사랑의 열정이 근대적 주체를 생산하는 계기인 데 비해서 한용운의 인과율은 서구적 근대의 수용과정에서 균형을 맞춰주는 전통에 비견되고 있었다. 이는 현상계와 본체계에서 무명과 진아가 분리된다는 한용운의 인식을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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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에 수록된 한용운의 시를 사랑시로 읽을 때 이 시들은 근대적 사랑의 실제와 한계를 현시한다. 1920년대는 소위 연애의 시대였는데 당시 연애는 오늘날의 남녀간의 사랑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한국어에서 사랑하다는 원래 생각하다는 뜻이었지만 그다지 자주 쓰이는 표현은 아니었다. 기독교의 전래이후 사랑은 신의 사랑이라는 뜻으로 널리 쓰이게 되었고, 신에 대한 사랑과 비슷한 용례로 국가에 대한 사랑이 함께 쓰이기도 했다. Love의 번역어로서 사랑이 남녀의 사랑으로 쓰이게 되는 것은 1920년대로 보인다. 하지만 1920년대에는 복합적인 의미를 갖는 사랑이 아니라 남녀간의 사랑에 한정한 연애가 더 많이 쓰였다. 근대전환기 근대적 개인의 출현은 사랑(연애)이라는 화두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연애는 인생 최고의 선이요 미이며 예술이라는 진술이나 아아 강렬한 자극 속에 살고 싶다는 토로가 보여주듯이 근대 문학은 사랑의 움직임에 대한 문서고이다. 본고는 이러한 문서고에서 한국 근대시사의 주류적 경향에 거스르는 사랑시로 한용운의 시를 살펴보겠다

(중략)

이번 논문은 한용운이 최초의 근대 청년인 동시에 1920년대 연애의 시대에 기성 세대의 대표성을 갖고 있었음에 주목한다. 소위 세대론에 기대면 왕년의 청년이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어떤 갈등이 야기되는지 예단하게 되기 쉽다. 하지만 한용운은 근대성의 복합적인 측면의 중요한 일부를 견지하면서도 새로운 청년 문화와 대화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어른이었다.

이번 논문은 한용운의 시 인과율자유연애를 매개로 하여 이러한 대화의 성과를 밝히고자 한다.

.2장 근대인이 대면한 이율배반으로서의 인과율

 

근대전환기 청년 지성으로서 한용운의 진보적인 태도는 당대에는 가장 선진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님의 침묵이 나온 1920년대에 한용운은 40대의 기성세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20년대의 문화 청년들에 비해 보수적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근래의 문화사적 연구는 이러한 상식적 추정에 근접하는 해석을 보여준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1910년대 중반에서 1920년대까지는 우리 사회에서 자유연애에 관한 담론이 가장 활발하게 제기된 시기이며 자유연애 담론과 근대적 독자층의 형성은 님의 침묵이 집필되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한용운의 문학활동은 자유연애론에 대한 반명제라는 각도에서 조명할 수 있다는 것은 근래의 문화사적 해석을 대표한다.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는 연애와 결혼 특히 자유연애와 자유결혼 그리고 자유이혼을 근대적으로 학습해야 할 내용으로 인식했다. 근대적 사랑은 다른 어떤 기준에도 의존하지 않는 열정을 요청하며 이러한 열정이 근대적 주체를 탄생시킬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용운의 문학활동을 자유연애론에 대한 반명제라는 각도에서 조명할 때 관건은 평생토록 그 사랑을 지속할 수 있는지 여부에 있으며 이것은 한용운의 시가 근대적인 개인의 상호적인 계약관계를 가능하게 해주는 자유연애의 이상보다는 전통적인 반려애와 유사하다는 다음의 비판으로 연결된다. 한용운은 전통적인 사랑의 정서와 새롭게 유입된 사랑의 방식을 접목시켜 우리 나름의 근대적 사랑의 윤리를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시도로서의 의미는 컸지만, 그 귀결점은 전통적인 반려애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랑의 형식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문화사 연구의 흐름 속에서 인과율은 구체적인 비판점을 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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