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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홀리데이 - 세상에서 가장 슬픈 목소리 ㅣ 현대 예술의 거장
도널드 클라크 지음, 한종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새벽, 듣지도 않던 라디오를 귀 기울여 듣던 중 "I'm a fool to want you"를 들을 수가 있었다. 참 오랫동안 알고 싶던 곡을 우연히 알게 되었던 그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빌리 홀리데이를 좋아하게 된 것은.
하지만 아는 게 많아질수록 모르는 게 많아진다는 그 말을 제대로 한다. 그녀의 얼굴과 노래, 그 목소리만을 알 수 있었지, 나는 그녀를 몰랐다. 이렇게 살아가는 동안 온갖 슬픔이 함께 했을 줄은. 알고 있던 것들 만큼 모르는 게 배로 많아지는 그런 느낌이 든다. 대부분의 정해진 시간동안 귀에 들리는 노래로서 그녀를 느낄 수도 있었지만, 그녀가 부르는 그 노래는 어쩌면 그녀를 알수록 더 깊고 농후하게 전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예술이라는 게 가치 있는 이유는 아마 그 그림을 그린 작가나, 노래를 부르는 동안 쏟아낸 감정이 그 결과물에 녹아있기 때문이 때문이다. 그만큼 빌리 홀리데이를 알면 알수록 그 곡들을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단지 노래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 그녀를 더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해두는 게 낫겠다. 아니 그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 인생의 일부밖에 되지 않는 텍스트들을 손안에 펼쳐 보이면서도 나는 벅찼다. 책으로나마 느끼고 싶은 그녀에 대한 온갖 글들이 빼곡히 적혀 있는 내가 원하던 것을 들고 있는데도. 막상 대하기가 힘들었다. 나만 느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이란 언제부터인가 이정도의 분량과 내용을 담아야 되는지 정해놓은 것처럼 고정관념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꼭 그래야하는 것은 아니라는 틀에 박히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틀. 아마 나는 그 생각에 지배당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도 굴하지 않고 읽어내려갈 수 있던 것은 그녀에 대한 생생한 기록과 더불어 그녀의 삶이 무척 매력적이라고 느껴지는 순간부터였다.
800페이지에 달하는 글의 대부분은 빌리 홀리데이 주변 사람들의 인터뷰의 기록이다. 시대의 이해를 바탕으로 읽혀지는 글읽기는 역사를 아우르는 시대소설보다 더 흥미로웠다. 그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이해도를 증폭시켜주는 느낌이 더한다. 시간이 흘러 시대가 변할수록 사람들의 가치관과 이해관계는 변하게 마련이다. 그 사람이 존재했던 시간 그 자체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다르게 보일 수도, 더 값지게 보일 수 있는 일들을 나는 경험하고 있는 중이었다. 흑백 차별이 존재하고 그 속에서 어렵게 살아갔던 그녀를 아주 가까이서 보고 있는 느낌. 노래 하나를 단서로 그녀의 모든 것을 알아버리려고 하는 집착증에도 가까운 글읽기처럼 말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바로 이거다. 영화 <시네마 천국>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 그대로. 저 시대에 태어났으면 아무런 정보없이 누구나 함께 야외에 의자 하나씩 가지고 앉아 영화를 보면서 얼마나 크게 온전히 나의 감정으로만 영화를 느낄 수 있었을까. 그리고 한 번 더. 담배 연기 자욱한 어느 바(Bar)의 피아노 옆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빌리 홀리데이를 볼 수 있었다면. 지나치게 안타까운 생각만이 스친다.
글 속에 녹아 든 그녀에 대한 기록에 대해 내릴 수 있는 평가란 아무 것도 없다. 책의 첫 페이지에 쓰여진 ‘살아 있는 자를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죽은 자에게는 진실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저 글을 모두 읽은 후, 전보다는 그녀를 아주 조금 더 알 수 있게 되었다는 만족감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녀가 남겨놓은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녀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동시대를 함께 살며 내 옆에 있었던 아주 친근한 사람처럼 그녀를 기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묘비 앞에 서서 추모를 하는 이유는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잊지 않기 위해서라는 말처럼, 나는 잊지 않으려고 그녀의 삶을 내 눈 을 지나 가슴속에 담는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하지만 남겨진 모든 기억들이 내 속에 남아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