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거스미스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코르셋처럼 한껏 조여왔다가 그리고 틈틈이 엉켜있는 끈 풀기를 반복한다. 1940년대라는 시대에서라야 가능하고 그래서 더 매력적인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미약한 숨결이 내 곁을 스쳐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만큼 긴장되고 조금씩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세라 워터스의 소설은 자꾸만 손이 가는 초콜릿과도 같았다.  

랜드 스트리트라는 추잡하고 도둑들이 들끓는 곳에서 수는 석스비 부인의 도움으로 바르게 자라난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사고 팔기를 반복하고, 가짜인 물건을 만들어내어 팔기도 하는 그 곳에서 유일하게 팔리지 않은 수. 하지만 아주 오랜만에 나타난 젠틀먼, 리버스의 등장으로 사태는 단번에 뒤집어 진다. 리버스가 짠 계획에 따라 브라이어 저택, 릴리 씨의 손녀 모드 릴리의 하녀로 들어가 리버스와 모드가 결혼하도록 도와주면 3천파운드를 준다는 얘기에 수는 동의한다. 석스비 부인을 떠나있어야 한다는 걱정이 그녀를 고민하게 만들었지만, 돈을 얻어 돌아올 그날을 기대하면서. 그때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길고도 복잡한 그 이야기가. 

하지만 정작 브라이어에 도착해 모드 릴리를 숙녀로 모시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은 수가 처음에 작정하고 갔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그저 한번 사기쳐서 돈만 얻어내면 되겠다는 원래의 마음과는 다르게 수에게는 리버스가 점점 비열하고 잔인한 인간으로 비쳐지고, 모드는 안쓰럽기만 하다. 원래의 계획을 없던 것으로 되돌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수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한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 수는 그저 리버스를 뒤따르기로 한다. 결국에는 리버스와 모드가 결혼한 후, 모드를 정신병원에 넣어버리자는 원래 계획에 따라 병원에 도착하고, 모드와 그동안 쌓아왔던 감정의 끈을 모두 놓아버릴 마지막 순간 크리스티 박사는 갑자기 수의 손목을 잡아 끈다.  

이후, 여러 반전을 거듭하며 전개되는 이 소설은 극적인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가 서서히 떨어지고, 다시 긴장되는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그저 순조롭게 흘러갈 것만 같던 이야기들이 뒤집어지는 반전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 책이 더 흥미롭고 매력적인 건 시대극이기 때문이다. 숙녀로 모셔지는 모드의 드레스와 페티코트, 그리고 손을 보호하는 장갑 등 그녀를 매력적으로 만들어줄 소품들. 그리고 그 시대에 금기되어 있었을 성에 관한 그림과 글들을 연구하고 그 일들을 자신의 숙녀인 모드에게 반강압적으로 도와줄 것을 명령하는 릴리 씨. 또, 이야기의 중반부로 치닫아 나오게 되는 정신병원에서의 일들 또한 약간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이야기의 소재와 극의 소품들, 대사들 하나하나가 깊이 있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들 중에서도 수와 모드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그 당시에는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여겨졌을 동성애에 관한 소재 때문이다. 서로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자기 자신들도 모른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둘의 감정에 대한 묘사가 참 사실적이면서 아름다웠다. 노골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면서도 감정의 깊이를 드러낸다. 오해와 불신으로 이어지는, 어쩌면 클리셰일지도 모를 사랑의 감정의 단계는 그로 인해 특별한 것이 되어버린다. 우아한 시대극 한 편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소설 속에서 넓고 잔잔하게 퍼지는 런던의 템스강처럼 한동안 가슴속에 흐를듯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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