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 바람이 되어라 2 - 준비!
사토 다카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제자리에!, 
바닥에 손을 짚고 블록에 발을 얹고 스타트 자세를 취한다.

준비!,
엉덩이를 들고 모든 동작을 멈춘다.
심장이 두근두근...사위가 고요해지고 총성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땅~~!!
총성이 울리고 상체가 들리지 않게 낮게 앞으로 한발짝 힘차게 내딛는다. 
그리고 달린다. 바람을 가르고, 한발한발 내딛으며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느낌이 들때까지 머리가 하얘지도록 달린다. 
옆레인에 신경 쓸 필요없이 끝까지 있는 힘껏...

100m 달리기는 그렇게 기억된다. 초등학교 시절 육상부였던 나는 그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어느 순간 내 앞을 치고 나가는 이도 있었을 것이고, 남보다 내가 더 빠르게 뛰었는지도 모르겠다. 순위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으나, 달릴 때의 그 느낌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된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때 멈추는 그 느낌...기분 좋은 그 느낌이 언젠가부터 그 자리를 계속 뛰는 듯한, 앞으로 단 한발짝도 나아가지 않는 꿈을 꾸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육상부를 그만두었다. 중학교 때였던것 같다.

100m는 그렇게 혼자만의 레이스 성격이 강했다. 나만 충실히 훈련하면 향상되는 기록,
(그 어릴땐 남자아이보다도 빨랐었는데...), 내 몸이 만들어 내는 기록...

그리고 이어달리기...400m계주는 4명이 배턴을 주고 100m씩 이어달리는 것이다. 
결코 혼자만 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지만, 나만의 구간에서는 내가 승부를 내야한다. 
’야’하는 기얍과 함께 건네지는 배턴을 이어 받아(실수로 떨어트리는 낭패를 당하면 지고마는, 따라잡기 힘들게 만드는, 어쩌면 그것이 매력이지도 모르겠다) 있는 힘껏 코너링을 하고, 직선주로 달리면서 골인을 한게 된다.

초등학교 6학년 마지막 운동회에서 나는 계주 대표선수였다. 청군인지, 백군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시골 초등학교라 2개반밖에 없는지라 1반과 2반이 나뉘어서(1학년~6학년까지 모두) 한편이 되었다. 6학년 여학생들이 4명씩 뛰었던 것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그 중 나는 6학년 1반 4번째 주자, 즉 마지막 주자였다. 3명이 이어 달리고, 마지막 나에게 배턴이 터치 될 때까지 우리는 지고 있었다. 
이 계주로 그날의 우승의 향방이 갈리는 중요한 게임이었다. 
마지막 코너링에서 나는 상대편 아이를 따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코너로  추월해야할까, 생각도 잠시 아웃 코너로 멀찍이 돌아서 그 아이를 추월했고,
(라인을 밟을까봐 조금 겁나서 그렇게 했던 것 같다)  
있는 힘껏 직선주로를 달려 골인 테이프를 끊었다. 
우리의 우승이었다. 
전교생의 함성소리가 운동장을 꽉 채웠다. 
그 순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감격을...
나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운 그 순간을....

책을 읽으며, 유난히 애착이 가고 빠져들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이다. 
내가 겪었던 일들이기도 하기에...
미우라 시온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를 읽으며 느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내 감정이 더욱 많이 이입되는 듯 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늦게 육상부에 입부하게 되는 우리의 신지,
(사실 고등학교 1학년 입문하게 되는 것은 늦은감이 있다)
그리고 천부적인 소질을 지닌 그의 소꿉친구 렌...
그들의 이야기는 내가 좋아하는 장르적 요소가 다 있었다. 
성장소설
, 스포츠소설, 그 중의 육상소설로 만들어 내는 작가의 힘,
그것도 3권으로 꽤 길게 장편을 써 내려가는 작가에게 감동했다. 
0.01초 차이에 승부가 나는 단거리 스프린터들의 성장과 
4명의 배턴연결을 하는 이어달리기를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는 인생과 연결 짓는 멋진 구성과 스토리는 참 멋지고 감동적이다.

"우리는 할 수 있어, 최고의 레이스"...
그들 스스로의 다짐이 인생에서도 최고의 레이스를 할 수 있다는 격려와 응원 소리 같다.

"활자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곤란한 영 콤마 몇초 단위의 성장을 훌륭하게 문장화, 
소설화 하는데 성공한 쾌작"(미야베 미유키)

라는 극찬이 감언이 아니다. 페이지가 술술 잘 넘어간다. 
만면에 웃음이 띠고, 그들의 레이스를 머리속에 그리며 나 또한 그들과 함께 달린다. 
한발한발 내딛으며 속력이 점차 빨라진다. 그리고 바람이 느껴진다.
한순간 바람이 된 듯한...이 어찌 멋진 순간이 아닌가... 
청춘의 뜨거운 열정이 살아 숨쉬는 그들처럼 내 가슴도 요동친다. 쿵.쿵.쿵...  

인생은, 세계는, 이어달리기 자체다. 
배턴을 넘겨서 타인과 연결 되어 간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달리는 구간에서는 완전히 혼자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아무도 대신 해 주지 않는다.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이 고독을 나는 좀 더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나를 좀 더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곳은 말이 없는 세계일 것이다, 아마도.
<3권 24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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