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와 박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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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속죄가 가능할까, 그 죄의 사함을 받을 수 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제법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가 오인받아 대신 형을 살거나 사건이 미결되어 살인범이 법적으로 처벌을 받지 않았다면, 그런데 그 사람이 교도소에서 십몇년 복역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반성을 했다면, 그 사람은 용서받을 자격이 있는가. 또 다른 경우,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 누군가를 감싸주고, 지켜주려 하는 탓에 진범이 반성 없이 그림자 뒤로 숨고, 애먼 사람이 희생을 감내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면 그 감싸주는 것은 과연 옳다고 할 수 있는가. 최근 발표되었던 다른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들은 사실 일정 부분 실망스러운 점들이 많았는데, (예상 가능한 스토리와 피로감이 느껴지는 감동 요소들) 이번 작품은 많은 생각을 이끌어내며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다. 추천할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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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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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여자, 술, 그리고 맹렬한 노동! 일과 술과 사랑에 자신을 던져넣고, 하느님도 악마도 두려워 하지 말지어다… 그것이 젊음이라는 것이다!” 조르바는 본질적인 자유, 그 자체다. 그는 우리가 갇혀있는 도덕과 관습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을 사는, 야만적이고 솔직하고 가장 인간적인 인간이다. 격식에 매달려 펜대나 휘두르는 우리는 알 수 없을 그 진정한 해방감. 틀에서 벗어나기를 두려워하는 자들은 끝끝내 알수 없을 진리에 가 닿는 진정한 현자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언어란 본디 그 사회의 뿌리에 직접적으로 얽혀있어서, 그 사회의 짜여진 망 밖으로는 자유롭게 표현이 어렵다. 그래서 조르바는 이 한계를 부딪힐 때면 노래로, 춤으로 표현을 한다. 그는 매일 보던 바다도 처음 보는 것처럼 경이로워하고, 모든 것을 질문하고 사유한다. 나는 그야말로 조르바에게 푹 빠져버렸다. 그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버린 바람같은 존재이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나는 꽤나 관습에 얽매인 사람으로, 사회가, 그리고 내 자신이 나 스스로에게 부여한 그 틀안에서 벗어나고자 늘 발버둥을 치지만 끝끝내 비겁하게도 내 발로는 그 원 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나가는, [그리스인 조르바] 속 화자와 같은 사람이다. 이상주의적이고, 뇌에서만 나오는 말들로 헛된 것들만을 가슴속에 품고 산다. 그래서 화자가 조르바를 보고 느꼈던 그 감동을, 그 감정의 폭풍우를 강하게 겪었던 것 같다. 조르바가 얻은 그 지혜가, 삶에 대한 생각들이 질투나고 부럽다.

“꺼져가는 불가에 홀로 앉아 나는 조르바가 한 말의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의미가 풍부하고 포근한 흙냄새가 나는 말들이었다. 그 말들은 그의 존재 깊숙이에서 나왔고 그래서 아직 사람의 온기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의 말은 종이로 만들어진 것들에 지나지 않았다. 내 말들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거의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것이었다. 나의 말에 어떤 가치라도 있다면 다만 그 핏방울 덕분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돈, 사람, 고가선, 수레를 모두 잃었다. 우리는 조그만 항구를 만들었지만 실어 내보낼 물건이 없었다. 깡그리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그렇다.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마치 어렵고 어두운 필연의 미로 속에 있다가 자유가 구석에서 행복하게 놀고 있는 걸 발견한 것 같았다. 나는 자유의 여신과 함께 놀았다.”


존재 그 깊은 곳에서 부터 나오는 그 말들을. 언젠가 나도 내 핏자욱이 가득 묻은, 흙냄새가 나는 말을 하게 될 수 있을까. 언젠가 나도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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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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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by 정유정


정말 소름끼치게 빠져들었다. 손을 벌벌 떨어가며 읽었을 정도. 뒷감당이 되지 못할까봐 책장을 미리 넘겨 엔딩을 보고 올까 숱하게 고민했다. 자기를 끝끝내 피해자라고 굳게 믿고 주변을 자신의 “행복관”에 맞춰 다 입맛대로 수정하는 이를 보고 나는 뭘 느꼈나, 두려움? 끔찍함? 너무나도 공포에 휩싸인 나머지 엄마가 짜놓은 그 직사각형 안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않는 지유가 느끼는 감정을 약간은, 발 끝에도 못미치겠지만 약간은 나도 느끼는 것 같았다. 

소위 ‘가스라이팅’을 하며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상대방을 이끌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아예 끝을 내버린다. 상대방에게 손상을 입혀버린다-휘말리면 안되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알게모르게 그런 걸 꽤나 경험하고 있는데, 정유정 작가의 작가의 말을 보면 그녀 자신도 겪었던 그런 상황을 토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 것 같다. “그들은 사이코패스보다 흔하다는 점에서 두렵고,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지만 정작 자아는 텅 비어있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며, 매우 매혹적이라는 점에서 위험한 존재다. 그들에게 매혹된 이는 ‘가스라이팅’에 의해 길들여지고, 조종되고, 황폐화된다. 때로는 삶이 통째로 흔들린다.” 정말 가슴을 부여잡으며 심장 박동을 느끼면서 읽을 만한 책을 찾는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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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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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빌라]
By 백수린

픽션에 걸맞는 표현은 아닐지언정, 이 책은 상당히 솔직하다. 우리 머릿 속 스쳐지나가는, 남에게는 드러내기 부끄럽고 수치스럽다고 느낄 수 있는 생각들을 그러모아 풀어내려나간 느낌이다. 소설 속 “나”는 대개 안전한 버블 안에 있고, 이 버블 밖이 궁금하고 터트리고 나가고자하는 일순간의 욕구가 일지만, 그 버블 밖의 냉혹함과 막연함을 감내하지 못하는 겁쟁이가 되어버려 내가 가진것에 안주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손쉽게 동정해버린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작가가 내 머리 속을 파헤쳐서 읽어본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솔직하고 좋았다.

“어떤 이와 주고받는 말들은 아름다운 음악처럼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고, 대화를 나누는 존재들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세계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용감한 게 아니야. 단지 그런 척하는 거지. 척을 하다보면 그래지기도 하니까”

“나는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댄 채 그렇게 한동안 서 있었다. 구겨진 신발 위에, 양말도 없이, 까치발을 한 채로. 돌이켜보면 그 것이 내 인생의 결정적인 한 장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나는 평생 이렇게, 니가지 못하고 그저 문고리를 붙잡은 채 창밖을 기웃거리는 보잘것없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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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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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idnight Library]
By Matt Haig

우리는 종종 쉽게 후회에 빠져들어 허우적거리게 된다. 이때 이런 선택을 했었다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늘 우리는 지금보다는 달랐을 그 길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휩싸여 지금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 지금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감사하게 여기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가만히 앉아 생각해보면, 내가 외골수처럼 고개를 수그리고 내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는 사이에도 내 주변에 감사할 일은 항상 가득하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 사실을 우리는 늘 잊고 산다. 그걸 어찌보면 진부하게, 하지만 약간은 버거울 정도로 와닿도록 해주는 게 이 책인 것 같다. 평행세계의 개념을 각자의 머릿 속 피사체에 결합시켜 만들어내는 go-between place는 결국 우리는 항상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이고, 마음만 먹으면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싱크홀에서 벗어나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이 책은 그런 건강하고 꼭 필요한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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