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슬픈 날이다. 나에게 ''산은 푸르고 물은 흐른다''는 화두를 던져주신 숭산 스님이 열반해서 다비식이 열리고 있지만 가지 못했다. 전화 통화만 했지 찾아뵙지 못했는 데 용기를 많이 주셨다. 같이 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 팬들에게 고맙고 한달 남은 한해를 잘 마무리하고 새해에는 원하는 일들이 모두 이뤄졌으면 좋겠다.”

불자 메이저 리거 박찬호(31.텍사스)가 숭산 스님의 다비식이 열린 12월 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숭산 스님의 `산은 푸르고 물은 흐른다''는 화두를 챙기듯 초발심으로 재기를 다짐했다.

한국에 올 때마다 남몰래 새벽 4시에 일어나, 숭산 스님이 주석하던 서울 수유리 화계사에서 108배를 올렸다는 박찬호. 미국 현지 불자들의 소개와 숭산 스님의 미국인 상좌 현각 스님이 쓴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라는 책을 통해 숭산 스님을 알게 되었다는 박찬호는 그러나 숭산 스님의 병환으로 자주 친견하지는 못했다. 대신 가끔 화계사에 들러 주지 성광 스님과 차를 마시며 참선과 깨달음에 대해 가르침을 받는 정도였다.

어릴 적 고향 공주에서 절을 참배하고 참선도 해 본 박찬호는 숭산 스님의 가르침을 통해 시즌 성적이 좋지 않을 때 더욱 참선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월간 중앙> 2001년 2월호에서 박찬호는 참선의 효능에 대해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참선을 하면 바른 기운이 돌고, 기운이 강해집니다. 또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을 지키는 방법도 알게 돼요. 저는 감기도 안 걸리고, 앨러지도 없어졌어요. 사실 투수는 시즌 동안 감기몸살 한번 안 걸리기가 힘들거든요. 감기 한번 걸리면 선발 한번 빼먹고 앞뒤로 한번씩은 제대로 못던져요.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죠. 지금도 잠자기 전에 30∼40분 정도 매일 참선합니다. 많이 할 때는 한시간 정도까지 하죠."

참선은 그에게 집중력 증진과 함께 승패에 연연하는 집착심을 내려놓고 매순간 마주한 일에 최선을 다하는 노하우도 터득하게 해주었다.

“아주 미세한, 작은 부분이잖아요? 그 작은 것 때문에 괴로워할 필요가 뭐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면서 지난 일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법을 알게 됐어요. 그게 곧 안타, 홈런을 맞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죠. 그러면서 집중력이 생겼어요. 내가 걱정하고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은 이 공 하나다. 안타든 승패든 현실을 축소시켜 지금 이 시점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죠. 제가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잖아요? 그러면 인터뷰에만 집중하는 거예요. 인생의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게 되고 더 보람과 의미를 느끼고…. 참선이 나한테 준 것은 이런 거예요.”

성적 부진이란 아픔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고,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데 더욱 관심이 많아진 박찬호. 그 텃세 센 미국 본토 야구에서 조금도 굴하지 않고 정상을 향해 힘차게 정진하는 그의 강인한 정신력과 불굴의 투지에는 불교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다. 박찬호가 중앙일보 이태일 기자에게 보내온 편지에는 불자다운 마음가짐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리고 필요한 건 정신과 마음이지요. 야구는 정신력이 중요한 정신적 게임이니까요. 어느 정도 준비가 돼 있느냐에 따라 우리는 바른 생각을 할 수 있고, 바른 생각은 바른 행동을 만들지요. 바른 생각이란 긍정적인 생각+자신감이지요. 긍정적인 생각과 자신감은 늘 즐거움을 만들 듯이 야구에서는 꼭 필요한 마음가짐이지요. 자신감! … 상대 타자를 아웃시켜야 된다는 자신감도 좋지만, 근본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지요. 경기 전 타자에 대해 연구하다 보면 어떤 공을 던져야 할지 알게 되고, 마운드에 올라서면 오로지 어떤 공을 던질까 생각하고, 구질이 결정되면 오로지 1구만 생각해 1구에 집중했을 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요. 사생활의 안정도 절대적이지요. 인간의 근본은 좋은 가정, 좋은 사생활의 습관에서 얻어지고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편안한 마음과 육체는 안정된 생활에서 얻을 수 있고, 그러면서 만사에 자신감이 생겨나지요. 요즘 내가 마음 공부에서 얻은 생각들이죠. 나의 영원한 목표는 최고의 1구를 던지는 거예요.… 나의 목표는 삼진도 아니고 승리도 아니며 20승도 아니고, 비록 공 하나지만 1구 1구를 집중하는 것이지요.”

마음의 평정을 잃을 때면 커다란 염주알을 손으로 굴린다는 박찬호. 돌고 도는 염주알처럼 내년 시즌에는 그간의 부진을 털어내고 다시 ‘코리안 특급’으로 한국에 돌아 올것을 기대해 본다.

현대불교 200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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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12-10 10:39   좋아요 0 | URL
기특하네요... ^^ 내년엔 정말 좋은 성적 낼 수 있길...

혜덕화 2004-12-11 08:29   좋아요 0 | URL
추천합니다.

로드무비 2004-12-11 20:33   좋아요 0 | URL
박찬호가 책을 많이 읽는다는 얘기 들은 적 있어요.

바위 위에서 명상하는 모습이 믿음직합니다.^^

니르바나 2004-12-20 09:11   좋아요 0 | URL
박찬호 선수가 처음에는 외모에서 느껴지는 느끼함에 쉬 정이 안 갔더랬습니다.

그러나 그야말로 세련된 인터뷰와 작은 일에도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응원하기로 마음먹고 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내년에는 성적도 잘 내고, 책도 많이 읽고, 선행도 쭉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