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이 이 세상에서 살때 입던 헌옷을 벗고 저 세상으로 가신 지 어언 10년이 된 모양입니다.
어려운 말로 원적 10주기를 추모하는 책이 몇권 보이기에 말입니다.
스님 살아 생전에 진 말빚을 갚기 위해 세상에 펴낸 저서들을 다 거둬들여 달라는 유언으로
한때 책 한권에 10억을 호가(呼價)하며 야단법석을 떨었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헛웃음이 날 만 합니다.
사람의 말과 글은 그가 죽으면 현저히 빛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죽은 자의 생기없는 말과 글에 감동받기가 힘들기 때문이겠죠.
대표적인 경우가 정치인들의 요란스러웠던 언동입니다.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들의 소설이나 수필집이 사후 관리가 안되는 경우가 많은데
법정스님의 글은 어제 오늘 다시 찾아 읽어보아도
마치 첫사랑 그녀와의 키스처럼 제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감동이 있습니다.
쾌청快晴
지루한 장마비 개이자
꾀꼬리 새목청 트이고
홈대에 흐르는
물소리도 여물다
나무 잎새마다
햇살 눈부시고
매미들의 합창에
한가로운 한낮
산山은
그저 산山인 양 한데
날개라도 돋치려는가
이내 마음 간지러움은-
이런 날은
'무자無子'도 그만 쉬고
빈 마음으로
눈 감고
숨죽이고
귀만 남아 있거라
불일암에 말간 햇살이 내려 앉던 스님의 시처럼 쾌청했을 그날,
아주 오래 전 피아니스트 백건우씨 부부가 법정스님을 찾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윤정희씨 것으로 보이는 구두를 보면.
스님은 평소 클래식음악, 특히 바흐의 음악을 즐겨 들으신다고 했습니다.
백건우씨 부부와 교분도 두터웠나봅니다.
그래서 최근에 들은 배우 윤정희씨가 치매로 아프다는 백건우씨의 전언은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이었습니다.
2019년이 저물어가는 12월 모서리에 서서
아쉬운 마음을 최근에 나온 스님의 추모집과 회고담을 읽으며 음악을 듣습니다.
스님이 자주 하시던 말씀대로
모두모두 안락安樂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