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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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읽었다. 책의 두께만큼이나 읽고 난 뒤의 느낌도 무겁다.  현대 도시 속에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어느 한 사건의 발생에 얽히고 ˜鰕?사람들의 슬픈 이야기가 나를 짓눌렀다. 화자는 지극히 객관적으로 사건을 설명해주고 있지만, 읽는 나는 마치 내 이야기인 양 섬뜩했다고 할까. 워낙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대개 어느 쪽에 공감가고 어느 쪽 스토리라인에 필이 꽂히느냐는 사람마다 다르리라. 나는 개인적으로, 맨 처음 그 문제의 집을 사게 된 집 여자와 그 아들과의 관계에 제일 공감이 많이 갔다. (이해해 주시라, 원래 워낙 책을 읽고도 등장인물 이름을 기억 못한다..-_-;;;)혹시 내가 그렇게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지금은 없지만, 나중에 아이가 생겨 아이와 내가 그런 관계가 되면 어쩌지..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타월팰리스로 상징되는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서울의 스카이라인도 바뀌고, 서울의 집값도 그 고층의 높이만큼 수직 상승하고 있다. 그러면서 점점 사회는 양극화되고 있는데, 모든 매체는 오히려 양극화를 부추긴다. 그리하여 누구나 '로또' 한방을 기대하고, 맘만 먹으면 마치 초고층 주상복합에 들어갈 수 있다는 환상을 갖게 된다. 이게 <이유>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웃나라 일본만의 고유한 일인양 안 느껴진 이유이다. 그리고, 나도 한달에 한번 정도 좋은 꿈을 꾸고 나서 '로또'를 사고, 언젠가 부자가 된다면 강남의 비싼 주상복합에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살고 있기도 하다. 숨길 수 없는 욕망이랄까. 아주 원초적이라고 비난한다면 할 수 없지만, 조금이라도 넓은 집에 조금이라도 안락한 차에 조금이라도 생활 환경이 좋은 곳에서 사는 것은 모든 사람의 바람이 아닌가..

하지만, 그것이 극단적이 되면 이런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카드대란, 신용불량자도 뭐 버티기꾼에게 집을 맡기고 야반도주하는 그 가족도 욕망의 끝 지점에 다다른 순간,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것뿐이었으리라.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입는다는 말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조금은 황망하고 속물적인 나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무렵부터 개인적으로 가족이 굉장히 짐스러워진 시기였다. 그래서, 그 집 아들이 꼭 가족이랑 안 살고 다른 가족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그런 인터뷰 꼭지에서는 너무 절감했달까. 하지만 가족은 숙명처럼 안고 가야하는 그런 문제다. 그 아이도 그걸 알고 있고, 나도 알고 있다. 동방예의지국 운운하는 그런 차원 혹은 유림에서 말하는 그런 차원에서 가족 해체가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정서' 차원에서 가족은 각 개인과 사회, 국가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사회 구성체이다. 그 아이가 떨어져 죽은 그 남자처럼 되지 않게 하려면, 가장 먼저 가정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내 가족의 문제는 또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게 도움을 받아 늘 해결이 된다. 그런 것에 서로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이라면 힘들어도 견딜 수 있으니...그런 점도 이 책을 읽고 새삼 느꼈다(이렇게 쓰고 보니 완전히 이 책은 신년 초 새 마음 새 뜻을 어떻게 품어야 하는가에 대한 길을 제시하는 책이군! ).

이렇게 내 반성을 하고 보니, 이 책이 재미가 없는 그런 '교훈'적인 책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정말 너무나 재미있고, 마치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ㅎ교수 논문 사건과 너무너무 비슷한 부분들이 많아서 꼭 이 책에 나온 사건도 지금 YTN을 틀면 속보로 나올 것 같은 그런 현장감이 압권이다. 스토리는 스토리 대로 제대로 탄탄하게 구성되어 가면서, 속도감과 현장감도 적절한 그런 책. (내가 읽은) 우리 나라 소설에선 보기 드문 방식의 서술 기법이라 정말 흥미로웠다. 영화로 만들어져도 정말 대단하겠다는 생각도 들고. 굉장히 전형성을 띠고 있는 인물을 생생하면서 우리 주변의 누구처럼 생각나게 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전형적'이라는 게 드라마나 소설, 영화 등에서 약간은 비호감을 드러내는 단어임을 고려한다면, 이 책처럼 '전형적'인 인물들을 '자연스럽게' 그리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장점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하지만 조금 안타까운 게 있다면, 그래서 그 애기 엄마는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 떨어져 죽은 그 사내의 가족들은 나타나지 않았을까...뭐 이런 뒷 이야기들이 계속 궁금(우리도 왜 어떤 사건 나고 나면 그 사건의 낙숫거리들을 계속 궁금해 하지 않나 그런 차원에서)한데 그런 건 안 나와 있다는 점이다. 이건 해설자의 글(이 글은 없어도 되었을 거 같긴 한데)에도 나오지만, '가족'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소설 형식의 장에 나타나는 인물들이라 굳이 집어넣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올해들어 갑자기 너무 바빠져서, 1월달이 절반이 지나도록 읽은 책은 이 책 한권뿐이다. 그래도, 첫 출발을 괜찮은 책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뻤다.

PS: 사실 이 리뷰를 올리기 여러 번 망설였다. 책은 진작에 올렸으나 개인적으로 일본 소설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_-;;;(무라카미 하루키도 안 읽었다 -.-;;) 게다가 리뷰를 올리려고 하니 쟁쟁한 리뷰어들이 이미 거처간 게 아닌가! 책은 리뷰 쓰는 사람으로 당첨되서 공짜로 받아놓고 리뷰를 올릴 수도, 안 올릴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해 부담감만 엄청나져 버렸다. 결국, 서평 올리는 날짜보다 약 2주가 지나고서야 이 책의 리뷰를 이렇게 올리고 말았다. 연체료 내고도 찜찜한 그런 기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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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홍세화 > [TV책을말하다]188회 2005 올해의 책

[TV 책을 말하다 제188편] 2005년 12월 26일 2005 올해의 책

2004년 12월 1일부터 2005년 11월 30일까지 출판된 수많은 양서들 가운데 인문, 사회, 경제, 경영, 문학, 과학, 예술 등의 분야에 걸쳐 선정된 10권의 책을 통해 2005년 출판계의 트랜드를 알아본다. 각계의 전문가의 확고한 기준 아래 선정된 10권의 책을 알아본다.

김호기 - 2005년 한 해 우리 문제를 논하는 책의 현재성! 전문성!
정재승 - 2005 한 해를 대표하는 상징성! 매력적인 글쓰기!
표정훈 - 꼼꼼한 사료 분석을 넘어서는 독창성! 올해의 키워드!
허병두 - 어린 학생들도 읽을 만한 재미와 가독성! 독자와의 공감!
장정일 - 단독 저자가 보여주는 주제의 일관성과 완전성!









1. 대담 (도정일, 최재천, 휴머니스트)
"굉장히 어려울 것 같은데 예제도 굉장히 많고 굉장히 재밌고 한 번 잡으면 계속 보게 된다."

2. 위기의 노동 (최장집, 휴머니스트)
"우리나라의 가장 커다란 점이 하나는 성장이고, 다른 하나가 사회적 양극화다. 양극화는 노동의 문제다."

3. 블루오션 전략 (김위찬, 르네 마보안, 교보문고)
"블루오션 전략은 올해의 키워드이므로 올해의 책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4. 고래 (천명관, 문학동네)
"나름대로 성취도도 있고, 메시지도 분명한 듯하고, 일단 이야기를 끌어내는 솜씨 자체가 상당히 좋았던 것 같다."

5.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진중권, 휴머니스트)
"정보화 시대, 디지털 시대, 지금 현지에서 과연 놀이와 상상력 그리고 우리의 삶 예술 이런 것들이 어떻게 연관되느냐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많은 자료 풍부한 자료를 통해 제시해주는 책이다."









6. 과학과 종교 사이에서 (김용준, 돌베개)
"김용준 선생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서 해방이후 우리 자연과학에서 한 시대를 대표했던 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분이 정말 찬찬히 자기 삶을 돌아보는 이런 책도 나름대로 올해를 빛낸 책 중의 하나로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7. 한국전쟁 (박태균, 책과함께)
"여러 가지 쟁점들을 굉장히 쉽게 그러면서도 굉장히 꼼꼼하게 다룬 책이다."

8. 한국 속의 세계 (정수일, 창작과비평사)
"시각의 방향성도 좋고, 그것이 좀 쉽게 쉽게 풀려서 굉장한 어떤 석학의 아주 쉬운 그런 인문 같은 것으로 저는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9. 강의 (신영복, 돌베개)
"고전이 현대에도 살아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10.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푸른숲)
"대중적인 오디언스를 고려한다면 베스트셀러 중에서 올해의 책으로 끼어도 손색이 없는 책이다."

* TV 책을 말하다 올해의 책 후보도서

■ 인문

1. 강의 (신영복, 돌베개)
2. 국보이야기 (이광표, 작은박물관)
3. 우울한 열정 (수잔 존택, 시울)
4. 도덕교육의 파시즘 (김상봉, 길
5. 대화 (리영희, 한길사)
6. 제국주의와 남성성 (박형지, 설혜심, 아카넷)
7. 니체전집 (니체, 책세상)
8. 분서 (이지, 한길사)
9. 호모노마드 (자크 아탈리, 웅진)
10. 아케이드 프로젝트 (발터벤야민, 새물결)
11. 미의 역사 (움베르트 에코, 열린책들)
12. 6인 6색 21세기를 바꾸는 상상력 (한겨레 신문사)
13. 위대한 패배자 (볼프슈나이더, 을유문화사)
14. 불량직업 잔혹사 (토니로빈슨, 데이비드윌콕, 한숲)
15. 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다키이히 로오미, 황금가지)
16.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잭 웨더포드, 사계절)
17. 불의 기억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따님)
18. 우리 말의 탄생 (최경봉, 책과함께)
19. 사랑의 선물 (방정환, 우리교육)
20. 의궤 (김문식, 신병주, 돌베개)
21. 대담 (도정일, 최재천, 휴머니스트)
22.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전국역사교사모임, 휴머니스트)
23.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푸른숲)

■ 문학

1. 다니 (김용규, 김성규, 지안)
2. 기발한 자살여행 (아르토파 실린나, 솔)
3. 쨍한 사랑 노래 (박혜경,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4. 카스테라 (박민규, 문학동네)
5. 잘가라 서커스 (천운영, 문학동네)
6. 달려라 아비 (김애란, 창작과비평사)
7. 시계가 걸렸던 자리 (구효서, 창작과비평사)
8. 고래 (천명관, 문학동네)
9. 첫만남 (최윤, 문학과지성사)
10. 파문 (김명인, 문학과지성사)
11.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 (아사르 케말, 문학과지성사)
12. 장국영이 죽었다고? (김경욱, 문학과지성사)
13. 비밀과 거짓말 (은희경, 문학동네)
14. 우리는 달려간다 (박성원, 문학과지성사)
15. 연을 쫓는 아이 (칼레드 호세이니, 열림원)
16. 시골 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박경철, 리더스북)

■ 사회

1. 우리 강물이 되어(유시춘 외, 경향신문사)
2.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 (최재천, 삼성경제연구소)
3. 위기의 노동 (최장집, 휴머니스트)
4.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날기 전에 인터넷을 생각한다 (포스터, 이제이북스)
5. 대한민국은 군대다 (권인숙, 청년사)
6. 레오스트라우스 (박성래, 김영사)
7. 우승열패의 신화 (박노자, 한겨레신문사)
8. 우남 이승만 연구 (정병준, 역사비평사)
9. 결코 피할 수 없는 야스쿠니 문제 (다카하시 데쓰야, 역사비평사)
10. 대중독재의 영웅만들기 (권형진, 이종훈 외, 휴머니스트)
11. 아픈 아이들의 세대 (우석훈, 뿌리와이파리)
12. 한국 전쟁 (박태균, 책과함께)
13. 한국 속의 세계 (정수일, 창작과비평사)

■ 과학

1. 통섭 (에드워드 윌슨, 사이언스북스)
2. 권오길 교수의 생물에세이전집 (권오길, 지성사)
3. 나의 생명이야기 (최재천, 황우석, 김병종, 효형)
4. 새 : 한국의 새와 함께한 45년 (유범주, 사이언스북스)
5. 과학과 종교 사이에서 (김용준, 돌베개)
6. 조상 이야기 : 생명의 기원을 찾아서 (리처드 도킨스, 까치)
7. 과학은 열광이 아니라 성찰을 필요로 한다 (이충웅, 이제이북스)
8. 과학의 탄생 (야마모토 요시타카, 동아시아)
9. 광대한 여행 (로렌 아이슬리강, 강)
10. 시간을 찾아서 (최덕근, 서울대학교)
11. 일렉트릭 유니버스 (데이비스 보더니스, 생각의나무)
12. 디자인이 만든 세상 (헨리 페트로스키, 생각의나무)
13. 악마의 사도 (처드 도킨스, 바다 출판사)
14. 기호와 공식이 없는 수학 카페 (박영훈, 휴머니스트)

■ 경제

1. 블루오션전략 (김위찬, 르네 마보안, 교보문고)
2. 쾌도난마 한국경제 (장하준, 정승일, 부키)
3. 부의 탄생 (번스타인, 시아)
4. 2010 대한민국 트렌드 (LG경제 연구원, 한국경제신문사)
5. 아시아 경제 공존의 모색 (박번순 외, 삼성경제연구소)
6. 괴짜 경제학 (스티븐레빗, 스티븐더브너, 웅진닷컴)
7. Icon 스티브 잡스 (제프리영 외, 민음사)
8. 트렌드를 창조하는 자 (이노베이터, 김영세, 랜덤하우스중앙)
9. 참여 정권 건설족 덫에 걸리다 (박태견, 뷰스)
10. 유일한 평전 (조성기, 작은씨앗)
11.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철수, 김영사)

■ 예술

1.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 (김지하, 실천문학사)
2.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진중권, 휴머니스트)
3. 악인열전 (허경진, 한길사)
4. 근대성의 침략과 20세기 한국의 음악 (전지영, 북코리아)
5. 사랑의 이미지 (정진국, 민음사)
6. 글렌 굴드 (피터 F. 오스왈드, 을유문화사)
7. 화전 (최열, 청년사)
8. 인생이 그림 같다 (손철주, 생각의나무)
9. 한국 팝의 고고학 1960, 1970 (신현준 외, 한길아트)
10. 한국의 美를 다시 읽는다 (권영필 외, 돌베개)
11. 혁명과 웃음 (김승옥, )
12. 생각하는 그림들 (이주헌, 예담)
13. 구수한 큰 맛 (고유섭, 다할미디어)
14. 포토 저널리즘 (케네스 코브레, 청어람 미디어)

* 올해의 책 선정위원

1. 김호기 - 연세대학교 및 동 대학원 사회학과 졸업. 독일 빌레펠트 대학 사회학 박사학위 취득. 현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2. 장정일 - 소설가. 시인. 현 동덕여자대학교 강사.
3. 정재승 - 물리학박사. 카이스트 물리학과 졸업. 예일 대학 박사 후 과정 수료. 현 카이스트 바이오 시스템학과 교수
4. 표정훈 - 출판평론가 및 도서평론가. 출판칼럼니스트, 번역가, 작가
5. 허병두 - 서강대학교 및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대표. 현 숭문고등학교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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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그곳에선 시간도 길을 잃어 - 황경신의 프로방스 한뼘 여행
황경신 지음 / 지안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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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이끌려, 약간의 충동구매를 한 이 책은 그 유명한 <PAPER>의 황경신이 프로방스 지역을 여행하고 돌아온 여행기였다.

얼마전 4년만에 여행다운 여행을 하고 돌아온 나는 최근 여행병(다시 여행가고 싶은..)에 도져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오히려 일상이 힘들고 지루하고 괴롭고 그랬던 찰나였다. 마침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 이 책을 출퇴근 시간에 다 읽어버릴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황경신의 문장의 힘도 있었겠지만.

여행은 여행 자체가 매력이 아니라, 돌아왔을 때 만나는 일상의 '재발견'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주 잠깐(1년짜리 세계 여행도 인생 자체에서는 그리 긴 시간은 아니다)의 벗어남은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우회로에 불과하다. 지금의 나를 버리고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떠나지만 사실 돌아오면 또 그 자리에 있는 나를 볼 수 있는 게 여행 아닌가. 그래서 어쩌면, 여행은 쉽게 자주 가기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너무 자주 내 자신의 어쩔 수 없는 삶의 운명에 대해 지치거나 포기하거나.. 더 힘들어질 테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여행을 갔다온 뒤의 일보다 가기 전 설레임과 갔을 때의 새로움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된다. 사실 여행은 일상과 만났을 때 그 의미가 있는 일인데...(나만 그런가? --;)

이 책은 단단한 일상의 단조로움의 벽을 깨지 못하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아주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인생, 뭐 있어!'라는(물론 감성적 글쓰기의 저자는 이렇게 과격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긍정적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 가장 우울하고 힘들고 괴로운 시점이라고 생각되지만, 지나고 나면 그 나쁜 일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느껴지는 것, 그게 일상이고 우리네 모든 사람의 삶이라는 것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풍경과 햇살 같은 엽서용 사진은 없지만, 이 책이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는 색감인 저녁 노을빛은 우리가 복잡다단한 세상사를 관조하게 만드는 그런 효과를 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은  나는 짧은 시간 안에 최근의 내 개인적인 힘들고 어지러운 내 심사를 단단히 조일 수 있었다. 마치 여행을 갔다 온 것 마냥 말이다.

아주 잠깐, 이 책의 부제처럼 '한뼘'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서 남루해 보였던 내 일상이 프로방스의 빛나는 햇살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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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11-27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고 나면 그 나쁜 일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느껴지는 것...
산다는 일이 그렇지요.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한뼘 정도 프로방스의 시간을 느껴 보고 싶군요. ^^

레이첼 2005-11-28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잘 봐주셨다니 감사해요. 부끄부끄 ^^;
 
퍼플라인 1
볼프람 플라이쉬하우어 지음, 김청환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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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플 라인>은 두 권이다. 그리고 각 권당 페이지도 300p가 넘으며 종이 무게도 꽤 나간다.  <다빈치 코드>의 성공 이후 이런 류의 예술사적 재미와 추리물의 재미를 주는 책들이 많아져서 행복한 나로서도 이런 책은 꽤 부담스럽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독자들을 고려한 판형과 책 무게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 책의 첫번째 아쉬운 점이다.

또 이 책은 어떻게 보면 뒤에 실린 에필로그와 결말만 읽어도 이 책 두 권을 다 읽은 느낌이 날 정도로 추리가 약하다. 흡입력이 약하단 이야기. 그림에 대한 비밀스러움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로웠으나 이를 풀어가는 데 삽인된 많은 이야기들은 산만하다는 생각. 이런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게 원문 탓일까, 번역 탓일까. 개인적으로는 번역 탓이라고 생각된다. 문장이 매끄럽지 않고 번역투의 말투가 많아서 읽을 때 목에 걸리길 자주 했다. 그래서 또 안타깝다.

그것이 내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는데도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가장 큰 이유다. 사람들은 <다빈치 코드>에 대해 폄하하기도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왜 <다빈치 코드>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다빈치 코드>와 비교보다는 슈발리에의 <진주귀고리 소녀> 같은 느낌으로 포지셔닝 했어야 했다. 그런데 슈발리에의 작품과 이 작품의 다른 점은 앞서 보았듯이 이 책은 방대한 역사까지 곁들여 산만하단 생각이 들고 슈발리에의 작품은 단 하나의 코드로 그림에 대한 비밀을 살폈기 때문일까. 슈발리에의 소설이 좋았던 것은 무언가 고급한 소설을 읽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도 강한데(지적 자극도 있고), 이 책은 지적 자극은 충분하나  무언가 고급하다는 독자의 욕구를 채워주진 않는다. (흠, 이게 뭔 소리야! --;;)

어쨌거나, 재미있게 읽었으나 아쉽게도 2% 부족한 책이었다. 내용이나 그 밖의 좋은 점은 다른 알라딘 리뷰어들이 많이 써주었으니 나는 단점만 지적해보았다. 아, 그리고 덧붙여 '퍼플 라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역자 후기나 작품에 대한 국내 미술평론가의 또 다른 평을 실어주었거나 했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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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강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과문한 나는 로알드 달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으로 유명한 동화작가(?)인 줄 알았더랬다!!! (<맛>을 읽고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읽어볼 예정이다. 이런 성인 취향의 고급스러운 유머가 아동물에는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너무 궁금하다)

로알드 달의 단편을 모아놓은 이 책은 처음부터 너무너무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 진행을 보여준다. 그런데 아주 스피드하게 최고로 흥미가 고조되게끔 독자를 유인해놓고는 길어야 반 페이지, 짧게는 두어 문장쯤으로 최대의 반전을 선보인다. 그러니 독자는 꼭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그런 흥분을 할 수밖에. 그러면서도 온갖 인간군상들의 면면을 낱낱이 꼬집고 있으니 통쾌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10편 밖에 안되는 이 단편 소설들의 중간쯤을 읽다보면 어느새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그 반전이 공포스럽게 여겨진다. 나에겐 이런 점이 없는가..이런 생각이 자꾸 들면서 말이다. (쓰고보니 약간 과장이다 ^^;)

아무튼, 이 소설을 읽고 띠지에 붙은 "명품" 어쩌고 하는 말에 100% 아니 200% 동감한다. 정말 '고급'한 이야기란 이런 것이구나를 느낄 수 있다.

더운 여름, 짜증나는 여름, 수준이하의 온갖 것들이 괴롭히는 여름,

이 책 한권이 당신의 여름나기를 도와줄 것이다.

정말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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