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홀릭 1 - 변호사 사만타, 가정부가 되다
소피 킨셀라 지음, 노은정 옮김 / 황금부엉이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  뒷 이야기가 궁금해 새벽까지 책 읽은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책 읽다가 내릴 역을 놓쳐 회사 지각도 하고...

전형적인 도시 여자, 성공지상주의 전문직 여성 사만타 스위팅은 이름 비슷한 뉴요커  '사만다'(<섹스앤더시티>의 주인공 중 한명)와 달리 인생을 즐길지도 모르고,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가 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러다 실수로(결국 나중에 실수가 아니게 되지만..->더 이상 밝히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다) 어느 시골의 가정부가 된다. 요리도 할 줄 모르고, 빨래며 청소, 다림질도 할 줄 모르는 하버드출신 변호사 사만타가 졸지에 앞치마 두르고 시골 졸부 부부를 시중드는 가정부가 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사만타는 주변의 도움으로 멋지게 가정부로서도 성공(?)하고, 자신을 도와준 정원사이자 펍의 사장인 나다니엘과도 사랑에 빠지게 된다.

결국, 이 책을 한마디로 말하면 1권은 사만타가 시골에 정착하고, 로맨스가 싹트는 이야기이고, 2권은 사만타가 자신의 실수도 해결하고, 로맨스도 완성시킨다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섹스앤더시티>의 미란다가 떠올랐다. 미란다 역시 변호사로 일만 하다가, 아기를 낳고 결국 결혼에 이르러 맨해튼을 떠나 브룩클린으로 이사를 하며 치매 시어머니를 모시고 가정을 이루고 살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섹스앤더시티>의 캐리나 샬롯, 사만다보다는 가장 현실적인 여성 미란다를 떠올린 것은 미란다와 사만타가 둘다 변호사여서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전문직'이라고 생각하는 변호사라는 어마어마한 직장을 우선시하던 그녀들이 결국 사랑(혹은 가정으로 대변되는 스위트 홈의 이미지)을 택하는 방식 때문이다.

미란다는 아기와 가정도 포기하지 않고, 직장과 타협한다. 성공 대신 '타협'을 선택한다. 보수를 줄이고, 평판을 기대하지 않으면서 그동안의 성과를 가지고 일하는 시간을 조금 줄인다. 이것은 뉴요커가 아니라 전세계 어느 도시의 기혼(가임기) 여성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세상은 녹녹지 않지만, 이 정도의 타협은 가능한 것이 또 세상이니까. 그러나, <워커홀릭>의 사만타는 이분법적으로 사랑과 성공이라는 두 가지 중에서 사랑만을 선택한다(물론 그녀의 사랑 나다니엘의 상황이 그녀를 더욱 사랑을 선택하게끔 할 수밖에 없었지만). 너무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딱 드는 순간, 나는 책이 재미가 없어졌다. 아니다, 재미가 없어졌다기보다 맥이 풀렸다. 최종적으로 사랑을 선택하는 것은 이 '일밖에 모르던 순수한' 아가씨 사만타가 2권 끝부분이기 때문에 재미는 끝까지 있었고 흥미있었으니까, 맥이 풀렸다는 말이 딱 맞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덮는 그 순간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 결론에 맥이 빠졌는가.

재미가 없었나? 그건 아니다. 내가 사만타보다 (물론 전문직은 아니지만) 워커홀릭인가? 그것도 아니다. 그럼 난 왜 이 결론에 맥이 빠졌나. 내가 페미니스트라서? 나는 페미니즘을 조금 알고, 지지하지만 페미니스트라고 하기엔 아직 보수적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미란다를 떠올리고, <워커홀릭>의 결말이 마음에 안 든 것은 내가 사만타처럼 더이상 20대가 아니고, 30대의 기혼 여성이기 때문이다. 사만타의 선택은, 그녀가 29살이 아니었다면 절대 할 수 있었던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29살은 아직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지만, 30대가 되면 더 이상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전세계적으로 <섹스앤더시티>가 성공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들이 20대를 지나 30대가 되면서, 한 여성으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의 궤도를 조금씩 수정해가면서 어쨌든 일과 사랑 모두가 공존하는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그녀들이 명품녀이긴 해도).

내 사랑이 사만타처럼 인생을 뒤바꿀만큼의 사랑은 아니었지만, 나도 결혼하여 살다보니 요즘 드는 생각은 정말 이 세상의 많은 소설, 시, 드라마, 영화...등등에서 나오는 것처럼 '목숨을 걸 만큼' 사랑이 중요한가라는 의문이 든다. 나도 결혼하기 전에, 30대가 되기 전에는 사랑은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다보니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더라. 나는 그게 일이라고 생각한다(그렇다고 가정주부의 역할을 무시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모르는 사회에 분노하는 것이다). 일이 꼭 거창한 변호사 같은 일이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의 옮긴이는 39살도 인생을 바꾸는데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썼지만, 나는 그게 29살일 때의 선택과는 또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남편과 애들 떼놓고 39살에 무언가 인생 바꿀 만한 일을 하는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결국, 나는 이 책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맥이 풀린 것이었다. 아니면 내가 이제 완전히 현실적인 인간이 된 것일 수도(나이 먹은 게 갑자기 너무 느껴진다). 난 정말 이 책의 결말이 사만타가 런던에 다시 돌아가 변호사로 멋지게 컴백하고 다시 사랑을 택하길 바랬다.(아, 갑자기 <대장금>이 떠오른다. 장금이는 결국 수랏간 최고상궁도 되고, '대장금'도 되고, 사랑도 한다. 그래서 그 드라마가 멋진 것이었다).

나는 사만타가 앞으로도 평생 행복했으면 좋겠다. 29살에야 인생의 행복을 조금 느낀 그녀가 실망하지 않고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뼈속부터 변호사인 그녀가, 정말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그래서 만약 그녀가 34살에, 아니면 36살에 이런 상황이 되었다면 이런 선택은 안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현실이니까. (어느 바보가 시골에서 가정부하겠다고, 회사 파트너 자리를 거부하겠는가. 차라리 그돈이면 남친을 데려다놓지. 0_0->드디어 속물 발언? ㅡ_ㅡ;) 하긴, '순수하고 성실한' 사만타는 어쩌면 내 염려와 상관없이 행복하게 제2의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쨋든 결말은 마음에 안들었지만, 이 책의 흡입력은 대단했다. 전작 <쇼퍼홀릭>의 권수가 여러권이어서 안 읽게 되었는데, <쇼퍼홀릭>도 읽어야겠다. 이 책은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 같은 느낌이 많이 들어서 곧 영화화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 한국의 TV드라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읽을거리가 될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이 2006-05-11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화 예정이랍니다. 언제 개봉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요. ^^
<쇼퍼홀릭> 시리즈는 또 다른 재미, 더 큰 흡입력이 있지요.

레이첼 2006-05-12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영화화 될 것 같았어요. (딱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스타일). 그런데, 이런 내용을 소설로 읽으면, 재미없는데 영화로 보면 재미있는 이유는 뭘까요 -.-;;; (예쁘고 잘 생긴 배우들 때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