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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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읽었다. 책의 두께만큼이나 읽고 난 뒤의 느낌도 무겁다.  현대 도시 속에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어느 한 사건의 발생에 얽히고 ˜鰕?사람들의 슬픈 이야기가 나를 짓눌렀다. 화자는 지극히 객관적으로 사건을 설명해주고 있지만, 읽는 나는 마치 내 이야기인 양 섬뜩했다고 할까. 워낙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대개 어느 쪽에 공감가고 어느 쪽 스토리라인에 필이 꽂히느냐는 사람마다 다르리라. 나는 개인적으로, 맨 처음 그 문제의 집을 사게 된 집 여자와 그 아들과의 관계에 제일 공감이 많이 갔다. (이해해 주시라, 원래 워낙 책을 읽고도 등장인물 이름을 기억 못한다..-_-;;;)혹시 내가 그렇게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지금은 없지만, 나중에 아이가 생겨 아이와 내가 그런 관계가 되면 어쩌지..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타월팰리스로 상징되는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서울의 스카이라인도 바뀌고, 서울의 집값도 그 고층의 높이만큼 수직 상승하고 있다. 그러면서 점점 사회는 양극화되고 있는데, 모든 매체는 오히려 양극화를 부추긴다. 그리하여 누구나 '로또' 한방을 기대하고, 맘만 먹으면 마치 초고층 주상복합에 들어갈 수 있다는 환상을 갖게 된다. 이게 <이유>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웃나라 일본만의 고유한 일인양 안 느껴진 이유이다. 그리고, 나도 한달에 한번 정도 좋은 꿈을 꾸고 나서 '로또'를 사고, 언젠가 부자가 된다면 강남의 비싼 주상복합에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살고 있기도 하다. 숨길 수 없는 욕망이랄까. 아주 원초적이라고 비난한다면 할 수 없지만, 조금이라도 넓은 집에 조금이라도 안락한 차에 조금이라도 생활 환경이 좋은 곳에서 사는 것은 모든 사람의 바람이 아닌가..

하지만, 그것이 극단적이 되면 이런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카드대란, 신용불량자도 뭐 버티기꾼에게 집을 맡기고 야반도주하는 그 가족도 욕망의 끝 지점에 다다른 순간,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것뿐이었으리라.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입는다는 말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조금은 황망하고 속물적인 나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무렵부터 개인적으로 가족이 굉장히 짐스러워진 시기였다. 그래서, 그 집 아들이 꼭 가족이랑 안 살고 다른 가족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그런 인터뷰 꼭지에서는 너무 절감했달까. 하지만 가족은 숙명처럼 안고 가야하는 그런 문제다. 그 아이도 그걸 알고 있고, 나도 알고 있다. 동방예의지국 운운하는 그런 차원 혹은 유림에서 말하는 그런 차원에서 가족 해체가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정서' 차원에서 가족은 각 개인과 사회, 국가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사회 구성체이다. 그 아이가 떨어져 죽은 그 남자처럼 되지 않게 하려면, 가장 먼저 가정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내 가족의 문제는 또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게 도움을 받아 늘 해결이 된다. 그런 것에 서로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이라면 힘들어도 견딜 수 있으니...그런 점도 이 책을 읽고 새삼 느꼈다(이렇게 쓰고 보니 완전히 이 책은 신년 초 새 마음 새 뜻을 어떻게 품어야 하는가에 대한 길을 제시하는 책이군! ).

이렇게 내 반성을 하고 보니, 이 책이 재미가 없는 그런 '교훈'적인 책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정말 너무나 재미있고, 마치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ㅎ교수 논문 사건과 너무너무 비슷한 부분들이 많아서 꼭 이 책에 나온 사건도 지금 YTN을 틀면 속보로 나올 것 같은 그런 현장감이 압권이다. 스토리는 스토리 대로 제대로 탄탄하게 구성되어 가면서, 속도감과 현장감도 적절한 그런 책. (내가 읽은) 우리 나라 소설에선 보기 드문 방식의 서술 기법이라 정말 흥미로웠다. 영화로 만들어져도 정말 대단하겠다는 생각도 들고. 굉장히 전형성을 띠고 있는 인물을 생생하면서 우리 주변의 누구처럼 생각나게 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전형적'이라는 게 드라마나 소설, 영화 등에서 약간은 비호감을 드러내는 단어임을 고려한다면, 이 책처럼 '전형적'인 인물들을 '자연스럽게' 그리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장점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하지만 조금 안타까운 게 있다면, 그래서 그 애기 엄마는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 떨어져 죽은 그 사내의 가족들은 나타나지 않았을까...뭐 이런 뒷 이야기들이 계속 궁금(우리도 왜 어떤 사건 나고 나면 그 사건의 낙숫거리들을 계속 궁금해 하지 않나 그런 차원에서)한데 그런 건 안 나와 있다는 점이다. 이건 해설자의 글(이 글은 없어도 되었을 거 같긴 한데)에도 나오지만, '가족'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소설 형식의 장에 나타나는 인물들이라 굳이 집어넣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올해들어 갑자기 너무 바빠져서, 1월달이 절반이 지나도록 읽은 책은 이 책 한권뿐이다. 그래도, 첫 출발을 괜찮은 책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뻤다.

PS: 사실 이 리뷰를 올리기 여러 번 망설였다. 책은 진작에 올렸으나 개인적으로 일본 소설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_-;;;(무라카미 하루키도 안 읽었다 -.-;;) 게다가 리뷰를 올리려고 하니 쟁쟁한 리뷰어들이 이미 거처간 게 아닌가! 책은 리뷰 쓰는 사람으로 당첨되서 공짜로 받아놓고 리뷰를 올릴 수도, 안 올릴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해 부담감만 엄청나져 버렸다. 결국, 서평 올리는 날짜보다 약 2주가 지나고서야 이 책의 리뷰를 이렇게 올리고 말았다. 연체료 내고도 찜찜한 그런 기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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