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군자 같은 소리입니다.

어찌 사람으로 태어나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릴 수 있겠습니까. 그건 인간이 아니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성적으로 그렇게 배웁니다.

경전에서, 고전에서, 철학적 사유나 명상을 통해,

사회 생활 속에서...그렇게 배웁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바보가 참 된 사람인냥 모델을

완성하지요. 아이를 혼 낼 때도 "그게 왜 니 탓이

아니야?"라고 야단치죠. 속담에도 있습니다.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욕한다.' 속담은 아니지만

'내가 하면 ** 남이 하면 **' 남 탓 하는 사람을 

비아냥거리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게도 됩니다. 싸움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죠.

그냥 한 발 물러나면 좀 편해지긴 하거든요.

성경에도 '변론하지 말라'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가타부타 말하지 말고 참으라는 것이죠. 순진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진실은 언제든 밝혀진다는 드라마적인

생각이죠. <왔다! 장보리>처럼요. 그런데 정말 현실에서는

진실이 묻힐까요? 나의 억울함이 힘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정말 묻힌다는 말입니까?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러나 사람인 관계로 희망적으로, 긍정적으로, 밝게

생각하는 순진함도 필요한 것 아닌가 합니다. 그것이 또한

개인을, 가정을, 사회를 밝게 한다고 믿고 싶네요.

그러한 희망으로 여러분들은 열심히 일하고, 저 같은

사람들은 책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품고 사는 것이죠.

사회에 도움되는 책을 말이죠.

 

성경에 '아론'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모세의 형이죠.

언젠가 이 사람이 모세가 없는 틈을 타 백성의 협박으로

금송아지, 즉 우상을 만듭니다. 직접 말이죠. 모세가

왜 그랬냐고 화를 냅니다. 아론 왈, "백성들이 하라고 해서

금붙이를 모아 불에 던졌더니 송아지가 되서 나오더라."

이건 아니죠. 그는 백성들의 제사장이었습니다.

 

제가 그를 비난해도 되는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와 무엇이 다른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너나 잘 하세요."에 딱 맞는 상황이네요.ㅎㅎ

모든 것이 내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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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고난, 고통..뭐 이런 얘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럼 왜 이런 불편한 개념들이 생겨나는 것일까요?

 

교회를 다닌 지 꽤 됐습니다. 제대로 한번 다녀보자(?)

한 지는 얼마 안됐습니다. 무엇이 제대로인지는..머..ㅎㅎ

얼마전 예배에서 목사님 설교에서 인상 깊었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나를 벗어 던져 버려라." 제 식대로 이해하면,

모두들 아시겠지만 '내려놓기', '버리기' 등으로

생각됩니다. 근데 표현이 좀 센 편이죠. 하여튼

이어지는 말씀은 이렇습니다. 내가 나의 옷을

벗어 던져 버리려는 과정이 고통이고 고난이라는

것이죠. 말 되죠?

 

말이 좋고 편해서 내려놓고, 버리기지 그게 정말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죠. 아니 굉장히 어려운 과정이죠.

나의 옷을 벗고, 하나님의 옷을 입는 과정은 말 그대로

험난한 수련의 연속입니다. 그 과정은 각 종교마다,

명상법마다 반드시 등장하는 개념입니다.

 

나를 버리면 나는 누구의 또는 어떤 의지로 움직이는가?

내가 아니고 다른 어떤 의지로 움직인다면 나는 과연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이 따릅니다. 생각하기 싫은 저는

'그 또한 나'라고 생각하지요.^^

 

다른 각도의 이해이긴 하지만, 내려놓기, 버리기, 옷을 벗어

던져 버리기는 모두 같은 의미이며, 힘들고 지난한 과정이고

그로 인해 삶은 고통이고 고난과 수난의 연속인 것이죠.

이 단계를 넘어서면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보여집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 진정한 해탈로, 진정한 마음의 평화 말이죠.

 

갑자기 서편제에서 한의 소리를 갖게 하기 위해 딸의 눈을 멀게 한

아버지(김명곤)의 대사가 생각납니다.

"한(恨)의 소리를 낼 수 있다면 그 한을 뛰어 넘는 소리를 내어야 한다."

삶은 힘듭니다. 누구에게나요.

 

그래서 요즘 제가 더 힘든가 봅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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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밤에 영화 '서편제'를 보고야 말았네요. 몇 번 볼 기회가

있었는데 보다가 잠 들거나 못 보거나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기억나는 것은 '지루하다' 또는 '졸리다'였던 것 같습니다.

신기하게도 이번에는 밤을 새서 봤는데도 졸리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든 것인지, 이 책 때문인지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네요.

 

'계몽(啓蒙)'. '꿈 몽'인 줄 알았더니 '입을 몽', '날릴 몽'

뭐 그러네요. 제 식대로라면 꿈에서 깨다 정도인데 실제로

의미가 더 세네요. '날려버리다' 쯤(?). 하여튼 우리나라에서

계몽주의는 한 때 전국을 강타했었죠. 국민계몽주의 소설인

'상록수'는 누구나 아시잖아요. 여기서 '안다'라는 것은

'읽었다'와는 좀 다른 것이죠. 물론 읽으신 분들이 많으시리라

생각되지만요. 어쨌든 계몽주의에 대해서 뭐 크게 그렇게

나쁜 인상은 없었으나, 이 책에서는 엄청 뭐라고 하시네요.

계몽주의를 이루었던 진화론(즉 자연과학으로써의 진화론이

아닌 정치사회적으로 약간 왜곡된 진화론), 민족의 탄생,

기독교의 영향, 우리의 대표적 정서로 자리매김한 '한(恨)'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개념들이죠. 이제 100년 조금 넘었다네요.

이런 개념이 생긴지 말이죠. 그것이 '전통'이 된 것이죠.

반 만 년 역사를 훑고 지나온 것보다 더 강하게 말이죠.

 

달라이 라마가 말했다는 티벳족에 관한 설명이 인상에

남습니다. 티벳족은 정말 극한 상황을 빼고는 항상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는다고 하네요. 더불어 저는 우리 나라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도 고생했다면 좀 했다고 볼 수 있는데

늘 풍자와 해학으로 대표되는 그 특유의 여유를 보여왔다고

생각되는데 말이죠. 한 일본인의 이론으로 촉발된 정서인

'한'이 대표적 이미지가 되었다니...

 

이 책을 읽고 '서편제'를 보니 좀 달리 보이는 것 같습니다.

질펀한 대사들도 좀 들어오고, 졸리지도 않고, 예전에

못 느꼈던 재미도 느끼고요. 그러나 좀 씁쓸함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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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글날이네요. 그것도 모르고 그냥 10월이려니

했는데 어쩐지 한글 관련 책이나 기사가 자주 보이더라구요.

덕분에 <B끕 언어> 관련해서도 한겨레 기사에 실렸네요.

정확히는 저자인 권희린 선생님 인터뷰가 실린 건데,

기자님은 책제목도 실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괄호 안에 네시간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과정에서 제목이

누락된 것 아닌가 하네요.^^;;;

 

어떤 매체든 꼭 한글날만이 아니라 1년 365일이든 주 1회든

기획 기사든 칼럼이든 한글에 관련해서 또는 말 습관에 관해서

지속적으로 실는 게 어떨까 합니다. 그 즈음 해서 전 언론에서

그 때만 다룰 것이 아니고 말이죠. 교육 단체에서도 평소에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잘 몰라 함부로 말 할 수는 없지만,

기사에 실린 선생님들처럼 평소에 관심을 두면 어떨까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꼭 때만 되면 몰랐다는 듯이, 정말 심각

하다는 듯이 기사가 쏟아지니까 말이죠. 어쩌면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생각하게도 됩니다.

 

어느 덧 1년이 지나 화제가 되었던 책을 선생님 소식과

더불어 다시 유력 일간지에서 보게 되니 반갑고 감사합니다.

하여튼 <B끕 언어>가 한글에 대해서도 비속어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활용되기를 바랍니다.

욕심일까요?

 

2014.10.07 한겨레 기사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6585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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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없다'라고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거의 치매에 가까운

기억력으로 그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쨌든 '현재'라는 찰나적 시간을 인식하는 순간 과거가 되버리므로

과거와 미래만이 존재할 뿐.

 

같은 이유로 톨스토이는 반대의 결과를 얘기합니다.

과거는 흘러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관계로

우리는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죠.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고

열심히 현재를 살아가자는 말이죠. 그렇게 열심히 살다보면

죽음이 다가옵니다. 여한이 없기에 두려움도 없습니다.

어쩌면 새로운 시작이기에 가슴이 뛰는 경험도...(너무 갔나요??)

 

이렇듯 책은 인생 성찰에 관한 아포리즘으로 되어 있습니다.

식상할 수도 있으나 독자의 처한 상황, 환경, 나이, 생각에 따라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진리는 생각보다 단순하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기 때문이죠.

사랑하라, 지금 현재를 즐겨라, 죽음은 두려움의 존재가 아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많이 듣고 많이 읽은 구절들입니다. 어느 때는 구닥다리 격언들처럼

들리지만, 어느 순간 매우 공감되는 문구이기도 하지요.

 

깨달음이란 어쩌면 새로운 것을 아는 것이 아니고,

이미 알았던 것을 새롭게 인식되어지는 것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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