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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금렵구 20 - 완결
유키 카오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웬만한 만화광이라면 '유키 카오리'라는 작가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화려한 그림, 동화와 동요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 고정관념을 깡그리 부숴버리는 예측불허의 인물들……. 사람들이 잊고 지나친 내용을 콕 집어 비판하는 스토리가 일품이랄까.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많아 싫어하는 독자더러 있긴 하지만 난 그녀의 만화를 보는 동안 어느새 그 사람의 '마니아'가 되어 있었다.

내가 유키 카오리라는 작가를 처음 만난 건 2000년 초겨울. 그 때 지금은 없어진 모 만화책방에서 만화책을 뒤적거리다가 유난히 내 눈길을 끌은 책이 있었다. 척 봐도 해적판이었던 그 책의 제목은 '천사금렵구 天使禁獵區 (천사 사냥 금지 구역)'. 그게 내 굳어진 '관념'들을 묵사발로 만든 첫 번째 책이었다.

주인공 무도 세츠나의 영혼은 본래 유기천사 알렉시엘로서 신이 쌍둥이 동생 무기천사 로시엘만을 사랑하여 천계대전을 일으킨 전쟁의 여신이었다. 알렉시엘은 로시엘을 봉인하지만 반란이 진압되어 '몸과 영혼이 분리되고 영혼만이 수없이 윤회하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형벌'인 엔젤 크리스탈 형을 받게 된다. 그리고 지구가 멸망하는 그 날. 그처럼 비극적으로 죽게 될 무도 세츠나를 대신해 사랑하던 여동생 무도 사라가 저승으로 가게 되고, 세츠나는 지옥과 천상을 오가며 사라의 영혼을 찾는다. 그리고 사라의 영혼이 물의 천사 가브리엘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자피켈와 함께 다시 제 2차 천계대전을 일으킨다. 후에 세츠나와 사라는 다시 만나 맺어진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끝.
어른들이 이 만화를 봤다면 절대 보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수수께끼같은 말과 근친상간, 이단, 동성애, 걷잡을 수 없는 살인. 이것들의 반복이 <천사금렵구>의 주된 내용이었으니까. 세츠나와 사라는 친남매였지만 같은 피끼리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몰랐던 어린 나는 그것을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와도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왔으니 그와 같은 피가 아닌가. 또 고대 이집트에선 형제끼리의 결혼이 가능했고, 프랑스 왕정에서도 사촌과 결혼하는 일이 흔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내 머리 속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은 건 단 하나, '이 세계는 '신'이라는 존재가 만든 시나리오'라는 말이었다.

우리는 흔히 '천사'라고 하면 깨끗하고 선한 존재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카오리는 그 '관념'에 '왜?'라는 질문을 달아 우리에게 슬며시 던져 주었다. 깨끗한 척하는, 위선적인 천사보단 자신이 원하는 일을 이루려 하는 악마가 낫지 않느냐면서. 카오리는 '천사는 인간처럼 고통을 느끼고, 욕망을 가지고 있으나 단지 '신'의 사자라는 이름으로 신성하게 여겨지는 것 뿐이다'라는 말을 매개체인 만화로 전하고 있다. 오직 주만 섬기기 위해 기계처럼 만들어진 천사. 사랑하면서도 서로 안을 수 없는 그들. 자유롭지 못하면서 신의 종노릇을 하고 선의 편인 천사와, 신에게 버림 받아 그를 버리고 자신의 자유를 위해 싸우며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악마, 과연 더 나은 자는 누구일까?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볼 만한 내용의 만화는 아니었다. 아니, 보지 말았어야 할 만화였는지도 모른다. 시커먼 어둠 속에서 갑자기 엄청난 양의 빛을 보는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때 내가 '천사금렵구'를 선택한 건 분명히 필연이었을 거라고 믿는다. 그렇지 않았다면 난 지금까지도 분별없고 보수적인 사람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따지고 보면 '천사금렵구'가 예외적인 일도 금방 적응하고 까다로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

가끔 사람들은 자기가 정해놓은 상상에 휩쓸려 불안해하고 괴로워 한다. 또 시도 해보지도 않고 포기해 버릴 때도 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진실을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볼 수 있는 진실을 보려고 하지도 않고 도피해 버리는건 바보 같은 짓이다. 그렇다고해서 그 고통을 못 이겨 남에게 의지할 수는 없는 일. 어차피 사람은 혼자 태어나 혼자 돌아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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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잔상 - 유키 카오리 단편시리즈 4
유키 카오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1년 9월
평점 :
품절


보고나서 묘하다. 역시 유키 카오리는 일 벌려놓기의 천재. 끝 마무리가 약간 엉성한 사람이다. 그래도 유키의 단편 중에 이 'Boy's next door <소년잔상>'이 가장 마음에 든다. 다만 유키 카오리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대사, 잔혹하리만치 아름다운 대사를 읽을 수 없어 유감이다. 물론 그것들이 정확, 완전히 번역 되었더라면 나 같은 청소년은 읽을 수 없었겠지만. 어쩌면 좋은 작품은 엉망인 일본어 실력이라해도 원판을 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솔직히 유키 카오리는 그림 못지 않은 대사가 일품인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만화 주제는 잔혹한 살인자도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되나? 절정은 뭐, 여느 순정만화와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금단의 사랑일 뿐. 몇 년 전 작품이지만, 앞으로도 스토리를 더 탄탄하게 다듬을 수 있는 유키 카오리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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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 나무에게서 배운 인생의 소금같은 지혜들
우종영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생각해 보면 자주 잊고 지내는 것 같다. 우리 주위에 나무들이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이름모를 나무들과, 꽃들을 다시금 되돌아보고 그와 동시에 나의 생활도 돌아보게 되었다. 나무에게도 감정이 있고, 생명이 있다는 것을 몇몇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그래서 나무들에 대한 관심조차 없는 사람도 더러 있다.

이 책 저자의 꿈은 천문학자 였다. 그러나 색맹이라는 이유로 그 꿈을 접고 방황 끝에 북한 산에서 자살하기로 마음 먹었다. 죽으려고 할 때 그는 그 높은 정상에서 시야 끝까지 비치는 나무를 보았다. 그는 마치 나무들이 '나도 사는데 너는 왜 죽으려고 하니'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더라. 순간 그는 움직일 수 없는 나무도 사는데 사지도 멀쩡한 자신은 삶을 포기하려 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자살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나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나는 나무는 대나무. 대나무 꽃이라는 건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았다. 저자는 대나무 꽃을 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라고. 읽어보니 그럴 법도 했다. 대나무는 60~120년, 그 일생에 단 한 번 꽃을 피운다. 그리고는 죽시 죽는데 그 죽음이 무척이나 잔인해서 주위의 어린 싹들이 모두 죽어버린다고 한다. 나무에겐 번식이 무척 중요하다. 그래서 매년 꽃을 피우는데 왜 유독 대나무 꽃은 그리도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지.. 그리고 죽어버린다는 게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하지만 대나무는 그러한 운명을 받아들이고 태어난 나무였다. 대나무는 '받아들일 줄 아는 용기'를 지니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나무의 습성을 보면 그 나무의 취향을 알 수 있고 더불어 나무들이 사는 지혜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은행나무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같은 은행나무끼리 자라면 한 나무가 죽거나 둘다 죽게 되는데 이처럼 은행나무는 평생 혼자여야할 운명을 타고 나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있다.

한 때 아버지가 난을 좋아하셔서 제주도에 흔하디 흔한 돌들을 주워다가 풍란을 기른 적이 있다. 아버지가 꼭 풍란 꽃을 피워보고 싶어하셨는데 내가 물을 자주 주지 않고, 햇빛에 노출될 때가 많아 모두 죽어버렸다. 알고 보니 습기를 좋아하는 풍란의 습성을 모른 탓이었다.

적은 일조량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나무는 그 특유의 녹음을 자랑하고 있다. 인간은 숲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사람은 숲에서 진화했고, 숲에서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나무와는 가장 거리가 먼 동물이 되어버렸다. 나무를 사랑할 줄 알고, 나무를 배운다면 우리 삶이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나도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에 나오는 제제처럼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나무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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