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취안은 부상당해 버려져 사망에 이른 병사들 사이를 다니며 아는 얼굴을 찾아 눈 뭉치로 시신의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다시 참호로 돌아오던 중에 총을 맞는다.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라오취안. 그의 죽음에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여기가 어디야?"
나와 춘성은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았지. 하지만 우린들 거기가 어딘지 어찌 알겠나? 하는 수 없이 다시 그를 바라보았지. 그가 눈을 한 번 꾹 감았다가 다시 천천히 뜨는데, 글쎄 눈이 점점 커지는 거야. 입은 잔뜩 일그러져 쓴웃음을 짓는 것 같았고 말이야.
잠시 후 우리는 쇳소리 같은 그의 목소리를 들었지.
"이 몸은 어디서 죽는지도 모르고 죽는구나."
라오취안은 말을 마치고는 곧 눈을 감았네. 머리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걸 보고, 나와 춘성은 그가 죽었다는 걸 알았지. 우리는서로 한참을 바라보다가 춘성이 먼저 울음을 터뜨렸고, 그 모습에나도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네.

"온몸이 점점 굳어 가는데, 딱 한 군데만 날이 갈수록 부드러워진다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웃고 말았다. 아래쪽으로 불룩 튀어나온 그의 바지를 보니 몇 가닥의 풀이 붙어 있었다. 그도 허허웃으며 내가 자기 뜻을 이해한 걸 무척이나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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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 내전을 묘사하는 푸구이.
전쟁의 실상은 이런거야.

당시엔 가장 흔한 게 총알이라 어디에 누워도 총알에 긁혀 다치곤 했다.. 사방의 집이란 집은 다 부수고 나무도 깡그리 베어낸뒤, 온 천지의 국민당군은 총검을 들고 마른 풀을 베러 갔어. 농번기에 벼를 베는, 딱 그 모양새였지. 어떤 이들은 얼굴 전체가 땀으로 범벅이 되도록 나무뿌리를 파냈다네. 또 어떤 이들은 무덤을 파헤치기 시작했는데, 무덤에서 꺼낸 관을 땔감으로 쓰기 위해서였지. 그렇게 관을 꺼내 쓴 뒤에 죽은 사람의 뼈는 그냥 참호 밖으로내버렸다네. 다시 묻어주는 일 같은 건 없었어. 그런 지경에 이르면 누구도 죽은 사람의 뼈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게 되거든, 아마그 뼈들을 옆에 두고 잠을 잔다고 해도 악몽을 꾸는 일은 없었을거야. 그런 식으로 땔감은 점점 줄어들고, 쌀은 오히려 점점 많아졌지. 그렇다 보니 이제 누구도 쌀을 차지하려 다투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셋은 쌀 몇 부대를 지고 와 참호 바닥에 깔고는 침대인 양 했지. 그렇게 하고 누우면 총알 때문에 몸이 쑤실 일은 없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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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한 문단에는 중심 문장이 하나만 있어야 합니다.
② 새로운 중심 문장을 쓰고 싶다면 다른 문단을 만들면 됩니다.
③ 줄(행)을 바꾸면 새로운 문단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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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삶 안에도 측량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할테니까

"그때만 해도 세상이 그랬어. 딸 가진 죄인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아니었다. 시댁에 책잡혀서 좋을 게 뭐가 있니. 아버지 문제로 이미책잡힌 딸이 나 때문에 공연히 더 난감해지는 걸 바라지 않았지. 지는게 이기는 거라고 생각했어. 그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면 된다.
고 생각했지. 그게 미선이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어."
‘맞서다 두 대, 세 대 맞을 거, 이기지도 못할 거, 그냥 한 대 맞고

끝내면 되는 거야. 나는 그 말을 하던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지는게 이기는 거다. 너를 괴롭힌다고 똑같이 굴면 너도 똑같은 사람 되는 거야. 그냥 너 하나 죽이고 살면 돼.‘ 패배감에 젖은 그 말들. 어차피 맞서 싸워봤자 승산도 없을 거라고 미리 접어버리는 마음. 나는그런 마음을 얼마나 경멸했었나. 그런 마음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발버둥쳐야 했었나. 그런 생각을 강요하는 엄마가 나는 미웠다.
그런 식의 굴욕적인 삶을 원하지 않는다고 저항했다. 하지만 왜 분노의 방향은 늘 엄마를 향해 있었을까. 엄마가 그런 굴종을 선택하도록만든 사람들에게로는 왜 향하지 않았을까. 내가 엄마와 같은 환경에서 자라났다면, 나는 정말 엄마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내 생각처럼 당당할 수 있었을까. 나는 엄마의 자리에 나를 놓아봤고 그 질문에 분명히 답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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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은 증조모로부터 온 것이기도 했다. 할머니가 조금이라도 좋다, 행복하다, 만족스럽다, 같은 표현을 하면 증조모는 부정 탄다고 경고했다. 자식이 예쁠수록 못났다고 말하고, 행복할수록 행복하다는 말을 삼가야 악귀가 질투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돌이켜보면살면서 후회되는 일은 늘 그런 것이었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함께 웃고 즐거워하고 따뜻함을 나누는 시간을 그대로 누리지 못하고 불안에

"착하게 살아라, 말 곱게 해라, 울지 마라, 말대답하지 마라, 화내지 마라, 싸우지 마라. 귀에 딱지가 앉도록 그런 얘길 들어서 난 내가화가 나도 슬퍼도 죄책감이 들어. 감정이 소화가 안 되니까 쓰레기 던지듯이 마음에 던져버리는 거야. 그때그때 못 치워서 마음이 쓰레기통이 됐어. 더럽고 냄새나고 치울 수도 없는 쓰레기가 가득 쌓였어.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나도 사람이야. 나도 감정이 있어."
눈물이 관자놀이를 따라 귓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조용히 흐느꼈다. 그랬니, 그랬구나, 나도 마음이 아프다…… 아주 단순한 말로라도 엄마가 내게 공감해주기를 나는 기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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