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 잔혹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김봉석의 하드보일드 소설 탐험 1
김봉석 지음 / 예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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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평론가이자 영화평론가인 김봉석씨가 쓴 개인 서평집입니다. 개인의 서평집을 읽는 것은 작고한 물만두 님의 『물만두의 추리책방』이후로 두 번째네요. 사실 개인의 서평집을 읽을땐 약간의 모험이 따릅니다. 일단 저와 저자 사이에 어느 정도 작품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않고 취향이나 가치관등에서 괴리감이 존재한다면 그 서평집을 읽는 저 역시 썩 유쾌하지만은 않겠지요. 

 

이 책에는 저자가 읽은 장르소설 총 38편의 서평이 실려 있습니다. 『불야성』,『붉은 수확』,『아웃』같이 책 제목에 걸맞는 하드보일드 작품들로부터 『탄착점』, 『스노우맨』, 『워치맨』, 『본콜렉터』같은 최신 영미권 추리/스릴러물 그리고 『우부메의 여름』,『고백』,『짐승의 길』,『조화의 꿀』,『제노사이드』같은 최신 일본 미스터리까지. 제가 세어보니 이중에서 정확히 50%, 19편을 읽었네요^^.

 

책을 읽어보니 확실히 전문가의 서평답게 수록된 38편의 소설속 주인공의 심층적인 캐릭터 분석을 통해 책이 쓰여진 배경, 책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등을 밀도있고 친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저자는 단순 서평에 그치지않고 작가가 책을 통해 독자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하는데 많은 애를 씁니다. 근데 여기에 그치지않고 38편의 다양한 서평속에는 한 가지 일관된 기조가 흐르고 있습니다. 바로 저자가 이 서평집을 통해 독자에게 전하려는 메세지, 바로 하드보일드의 세계와 정신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를 상당히 비관적, 부정적, 냉소적인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저자가 바라보는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도 친절하지도 않습니다. 고난과 역경에 처해도 누구 하나 손을 내밀지 않습니다. 그만큼 비정하고 냉정합니다. 그러한 철저히 고립된 비정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오로지 믿을건 자기 자신뿐이라고 역설합니다.

 

풀어 말하면, 바로 이러한 비정하고 냉정한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혼자 힘으로 갖은 역경과 고난을 꿋꿋하게 헤쳐나가는 것이야말로 하드보일드 정신, 하드보일드의 힘이라고 말합니다. 누구하나 믿을 이 없는 이 고독한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하드보일드의 정신과 힘을 일깨워주는 지침서 같은 얘기죠. 그러면서 저자는 소개하는 38편의 소설을 통해 코너에 몰린 약자인 주인공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기지와 힘으로 그러한 온갖 난관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서평집은 장르소설을 단순히 표피적으로, 엔터테인먼트적 재미로만 읽는 저에게 장르소설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와 너른 통찰력을 가르쳐 줍니다. 확실히 '아는만큼 보인다'고 많이 알아야 그만큼 훌륭한 서평이 나오나 봅니다. 제일 인상깊은 구절은 바로 책 날개의 저자 소개에 있습니다. "주로 좋아하는 것을 읽고 보고 들으며, 가급적 좋아하는 것에 대해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이 얼마나 멋지고 당당한 삶일까요. 이게 바로 현사회를 생존해가는 저자만의 고유한 하드보일드 정신, 하드보일드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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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추리소설 걸작선 2 한국추리소설 걸작선 2
곽재동 외 지음, 한국추리작가협회 엮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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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한국추리문학사를 집대성한 단편 모음집입니다. 2권에는 특히 한국추리작가협회 소속 젊은 작가들의 대표작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750쪽의 두툼한 분량에 본격추리, 범죄물, 서스펜스(스릴러)등 22편의 다양한 소재와 장르의 국내 미스터리 단편들이 들어있고 부록으로 한국추리작가협회 역사 및 각종 수상작 소개 그리고 작품 해설이 뒤를 잇습니다. 마침 금년 한국추리작가협회 주최의 '2012년 여름추리소설학교'에서 만나뵌 작가분들의 작품이 많아서인지 더욱 책에 애정이 가는군요. 개인적인 간단평입니다. 

 

안락사』(곽재동) 옆집에 이사온 할머니가 고급 도자기의 처분과 함께 자신의 안락사를 도와달라고 요청하는데....사기 범죄자와 할머니의 치열한 두뇌 싸움이 볼만한 수

 

그대 안의 악마』(김연) 외딴 별장에서 벌어진 광란의 파티속에 벌어진 살인 그리고 저택이 갖는 어두운 역사가 음습하게 드리우진 섬뜩한 공포 추리물. 수작.

 

『체류』(한이) 소식이 끊긴 베트남 여성 노동자의 행방을 추적하는 여정을 통해 불법 외국인 체류자의 문제점을 추리적 기법으로 짚어보는 드라마.

 

『오리엔트 히트-스푼 메이커스 다이아몬드』(김재희) 터키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도난당한 다이아몬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첩보 스릴러물. 작가의 초기작인지 구성, 전개, 억지스러운 반전등 모든 것이 아쉽다. 본격추리물인『명품탐정 김고로』시리즈에 기대를 해본다.

 

『알리바바의 알리바이와 불가사리한 불가사의』(이대환) 마치 김내성의 걸작『타원형의 거울』을 보는 듯한 소설 구조속에 밀실 트릭 퀴즈를 다룬 본격추리물. 구성과 전개는 참신하고 흥미로우나 해결의 논리성에는 의문이 든다. 두 가지 해답이 제시됐는데 판단은 독자의 몫.

 

『흙의 살인』(정명섭) 황궁에 쓰이는 기와를 만드는 와공장에서 기와 장인이 대들보에 목매달린 시신으로 발견되자 고구려 을지문덕이 범인 찾기에 나서는데...인간의 탐욕이 빛어낸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본격 역사 추리물. 수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설인효) 길이 끊기고 폭우가 쏟아지는, 조명 하나없이 칠흙같이 어두운 버려진 산장에 비를 피해 삼삼오오 모여든 등산객들...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숨막히는 공포의 서스펜스. 수작.

 

『아내마저 사기 친 남자』(최종철) 사기꾼, 애인, 섹스, 질투, 다이아몬드등이 등장하는 통속적인 소재와 줄거리의 범죄 수사 드라마.

 

『마지막 장난』(박하익) 장난질을 좋아하는 대학생 세 명이 일생일대의 커다란 장난을 준비하는데...마치 기리오 나쓰오의 『아웃』을 보는듯한 스릴러. 반전을 위한 후반부의 다소 억지스러운 전개가 흠.

 

『목 없는 인디언』(김재성) 현직 치과원장인 작가가 교환교수 시절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 여성의 돌고도는 불운한 운명을 차분하게 그려낸 심리 스릴러. 명탐정 월셔 홈즈와 조수인 치과의사 라왓슨 콤비가 활약하는 본격 추리물인 『노끈』과『유령 여기자』를 추천한다.

 

 『사랑합니다, 고객님』(송시우) 무리한 환불을 요구하는 한 여성 고객의 진상짓에 화가 난 텔리마케터가 직접 고객 집을 찾아가 담판에 돌입하는데....생각치 못한 반전이 기다리는 서스펜스물. 코믹 수사물인『5층 여자』와 호러적 색채에 오싹한 여운을 주는 심리 스릴러『아이의 뼈』를 추천한다.

  

『다이어트 클럽』(최지수) 고도비만으로 항시 남편에게 구박받던 부인이 신종 다이어트 클럽에 등록한 뒤 어느날 몰라보게 날씬한 모습으로 귀가한다. 하지만 그리고는 계속해서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는데...스토리, 긴장감, 몰입감, 서스펜스, 마지막 반전등 나무랄데 없는 수작 스릴러.

 

『그들의 시선』(신재형) 범죄 전문 기자 출신 작가답게 사건 현장의 리얼리티가 생생히 살아있다. 작가 특유의 거친 말투와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범죄 수사물. 다소 매끄럽지 못한 전개는 작가의 장편『흔한 일들』에서 말끔히 해결된다.

 

『탈출』(김주동) 학창시절 짱이었던 동창 친구가 감옥에서 출소한 뒤 주인공에게 접근하고 급기야는 마음이 떠나간 와이프에게까지 눈독을 들이는데...꼬봉이었던 주인공은 이 두 위기를 어떻게 슬기롭게 '탈출'할 것인가...인간의 이기심과 인간성의 한계를 여과없이 보여주는 액션 스릴러.

 

『선택』(도진기) 폭우가 몰아치는 밤, 칠흙같이 어두운 고속도로에서 운전중 왼손 손목을 메스로 긋고 어린 딸과 함께 가드레일을 뚫고 벼랑으로 추란사한 여성 외과의사...사건은 자살인가, 타살인가 아니면 사고사인가...자살로 결론지은 경찰과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보험회사를 상대로 여변호사는 진상 파악에 나서는데...현직 판사답게 법률에 관한 전문적인 식견과 날카로운 추리가 빛을 발하는 수작. 

 

『빛이 닿지 않는 세계의 남자』(정혁) 동창이 운영하는 카페에 하루 간격으로 이혼한 부부가 찾아와 그들이 겪은 이상한 일과 서로에 대한 사랑의 관점에 대해 얘기하는데...몽환적이고 감성적인 미스터리

 

『세 번째 표적』(장세연) 30대 건장한 남성들이 동일한 아파트에서 얼굴에 총을 맞는 엽기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는데...초반부의 흡입력있는 전개와는 달리 치정 드라마 스타일의 통속적인 결말로 마무리되어 아쉽다.

 

『여자는 한 번 승부한다』(김남) 애인을 죽인 남자가 부인을 설득해 사체 은닉을 시도하는데...반전이 돋보이는 서스펜스 드라마. 예전에 <한국 서스펜스 걸작선>에『한 남자와 두 여자』로 발표된 작품의 후반부 내용을 정서적인(?) 이유로 각색한 작품이 아닌지 궁금하다.

 

 『살인의 가치』(이승영)  조직의 손아귀에서 탈출하려는 한 여인과 그녀를 사랑하게된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스토리가 담긴 스릴러물. 등장인물의 시점을 달리한 독특한 구성이 이야기에 긴장감을 불어넣어준다. 수작.

 

『그녀는 알고 있다』(손선영) 11년차 소설가 남편은 사회적 성공 가도를 달리는 부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고, 결국 세 명의 외도 상대남을 찾아 응징에 들어가는데...다중 인격의 충격적인 반전이 돋보이는 수작.

 

『포인트』(조동신) 원룸텔에서 벌어진 전직 사형집행수 밀실살인사건. 도서관 사서 탐정과 여형사가 25년전 사건을 연계시켜 범인의 동기와 수법을 찾아 나서는데...사형제도의 진지한 고찰이 돋보이는 본격 추리물. 수작 

 

『B사감 하늘을 날다』(홍성호) 까탈스런 기숙사 사감 언니를 수면제로 잠재운 뒤 예약된 호텔과 클럽에서 광란의 밤을 보내고 복귀한 여대생 4명을 기다리는 건 싸늘한 사감 언니의 주검 뿐...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젊은 세태의 놀이문화에 현대 문명의 물리적 트릭을 덧붙인 신세대 본격 추리물. 수작.

 

작가 개개인의 강한 개성이 묻어나는 다양한 소재와 장르의 추리 단편 22편을 그야말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일단 책 전체의 만족감이 무척 뛰어납니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수록된 작품들은 모두 (처음 발표되는 작품들이 아니라) 한국추리작가협회 기관지인 <계간 미스터리>나 매년 출간되는 '올해의 추리소설', 황금가지의 <한국 추리 스릴러 걸작선>, 한스미디어의 <12인 12색>등 각종 단행본등을 통해 기발표된 작품들中에서 재미와 완성도면에서 검증받은 작품들만 추려모은 것이니까요.

 

많은 수작들중에서 개인적으로는, 전문가적 식견과 날카로운 추리, 따스한 모성애가 빛을 발하는『선택』과 사형제도를 되짚어보는 본격추리물인『포인트』를 '최우수작'으로, 독창적인 소재와 흥미로운 전개, 뛰어난 반전이 돋보인 『다이어트 클럽』과 본격 추리에 공포와 서스펜스를 적절히 가미한 『그대안의 악마』를 '우수작'으로 뽑고 싶네요. 

 

단지 아쉬운 점은, 대부분의 단편들이 치정, 원한, 금품같은 인간 관계나 그 주변 환경으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을 추리적 기법으로 승화한 서스펜스(스릴러)물이 주류를 이루는 반면, 트릭과 반전 그리고 범인 맞히기의 재미가 들어있는 본격 추리물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입니다. 김재성 작가님 같은 경우 『노끈』같이 훌륭한 본격 추리 단편이 실리지 않은게 아쉽구요. 본격 추리물이 더욱 많이 발표되고 실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저로서는 '올해 제가 읽은 최고의 추리소설'로 꼽고 싶습니다. 영미권이나 일미쪽에서 추리 대작이 뜸한 지금 이 정도 분량의 재미와 만족도를 주는 책은 사실 찾기가 쉽지 않거든요. 두고두고 생각날 때 꺼내서 곶감 빼먹듯 한 편 한 편 재독해 보는 소장가치 역시 뛰어나고요. 한국 추리소설의 트렌드와 현주소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며 수록된 작가분들 모두 뛰어난 장편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만점을 주고 싶으나 본격 추리물이 다소 적어 아쉽지만 별 반 개를 뺍니다. 별 네 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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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경감 듀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피터 러브시 지음, 이동윤 옮김 / 엘릭시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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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얼마나 (독자를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문구인가. 그리고 책 표지에 써 있는 "깨알같은 재미가 톡톡튀는 선상 미스터리" 란 설명과 '영국추리작가협회 골드대거상 수상작'이란 자랑스런 타이틀.  

『가짜 경감 듀』.  예전부터 익히 명성을 들어오고 관심을 가져오던 책이다. 하지만 진지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내게 왠지 가볍고 러브스토리가 가미된 코믹 추리소설 느낌이 들어 책을 읽기에 일말의 망설임이 있었다. 가끔 구립도서관에 들렀을 때도 은연중에 이 책을 집어들고 빌릴까말까 망설이기도 여러번...그러다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미스터리 책장' 엘릭시르란 브랜드로 이 작품을 최신판으로 새롭게 출시했다. 그래서 약간의 고민끝에 과감히 구매했다. 과연 나의 선택은 성공할 것인가...

'플롯의 제왕'이란 작가의 별명답게 정말 플롯은 훌륭하다. 책 시작부터 깔리는 복선은 나중에 책을 다 읽고는 감탄의 무릎을 치게 한다. 한 여자의 애끓는 순애보와 한 남자의 수동적인 미래에 대한 거부감이 결합되서 일어나는 계획된 살인. 하지만 사건의 전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꼬여만 가고...

살인자인 주인공이 졸지에 명탐정으로 둔갑, 선상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을 단 5일만에 해결한다는 기막힌 설정도 재밌고, 그 엉터리(?) 탐정이 소 뒷걸음치다 쥐잡는 식으로 살인사건을 완벽히 해결해 나가는 과정 역시 무척이나 명쾌하고 논리적이다. 그리고 마지막 밝혀지는 사건의 전말 역시 작품의 명성에 걸맞게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여러 남녀 주인공들의 얽히고설킨 이중, 3중의 러브스토리가 소설의 뼈대를 이룬 가운데 대부호부터 사기꾼,  소매치기까지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등장해 이야기를 복잡, 풍부하게 만든다. 메인 배경이 되는 호화 유람선 포함 1920년대 격변기의 영국의 시대상을 철저한 고증과 자료 조사를 통해 훌륭히 묘사했고 중간중간 들어간 삽화들 (수하물 태그, 고급 자동차 등) 역시 당시 생활상에 대한 독자의 이해도를 높여준다.  

모든 것이 좋다. 하지만 문제는 분위기다. 이 책은 아주 느긋하고 낭만적이다. 마치 호화 유람선 연회에서 젊은 남녀가 행복한 얼굴로 무도회를 즐기는 것처럼 또는 1등급  손님들이 호와로운 식사후에 흡연실에 모여 맛있게 여송연을 태우거나 카드를 하며 담소를 나누는 것처럼 그렇게 느긋하고 낭만적으로 흘러간다.

탈출이 불가능한 망망대해 선상에서 살인사건과 살인미수가 행해지지만 탑승자들은 누구하나 공포에 떨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것을 듀 경감에게 맡긴 채 예정된 가면무도회에 태연히 참가하고 남녀간의 오고가는 러브스토리는 중단됨이 없다. 시종일관 흐르는 밝고 경쾌한 분위기가 말해주듯 추리소설이 주는 묵직한 긴장감은 없다. 한마디로 연애와 추리가 정교한 플롯으로 기막히게 결합된 너무나 느긋하고 낭만적인 연애추리소설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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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형사 베르호벤 추리 시리즈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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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름다운 여성이 한 남자에 의해 폭행, 납치되고 급기야는 모종의 장소에서 공중에 매달린 자그만 궤짝안에 알몸으로 갇힙니다. 마치 새장의 새처럼 말이죠. 남자는 그저 그녀가 말라비틀어 죽기를 바랄 뿐 영문도 모른 채 궤짝안에 짐승처럼 갇힌 그녀는 하루하루를 죽음의 공포와 싸웁니다. 그녀의 이름은 알렉스... 

 

한편 카미유 베르호벤 형사반장은 목격자의 제보에 따라 납치범의 신원과 피해자가 갇힌 장소를 찾기위해 두 부하와 급히 수사에 착수합니다. 마침내 감금 장소를 찾아내지만 그녀는 가까스로 탈출한 후였고 납치범과의 관계에 따른 그녀의 예전 행적을 추적하다보니 피해자인줄로만 알았던 그녀에게서 알 수 없는 범죄의 냄새를 맡게됩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의 '형사 반장 카미유 베르호벤 3부작'중 두 번째 작품으로 알렉스라는 연쇄살인범의 얘기를 다룬 추리 스릴러물입니다. 530여쪽의 두툼한 분량이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납치를 당하는 알렉스와 납치범을 쫒는 수사팀의 애기가 그려지고 2부에서는 단순 피해자인줄 알았던 알렉스란 여성의 무시무시한 연쇄살인 행각이 이어집니다. 과연 무슨 이유로 이 아름다운 아가씨는 계속해서 신원을 바꾸면서 그러한 잔인한 연쇄살인을 벌이는 걸까요. 그 충격적인 실체와 결말은 마지막 3부 카미유 반장팀의 끈질긴 수사와 날카로운 추리로 밝혀집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두 명입니다. 한 명은 바로 피해자이자 연쇄살인마인 그녀 알렉스 그리고 또 한 명은 추리소설 역사상 최단신 캐릭터인 145cm의 형사반장 카미유 베르호벤입니다. 책은 사건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연쇄살인을 일으키는 알렉스의 시점과 그러한 연쇄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카미유 반장의 시점으로 교차 서술됩니다.  그리고 전혀 안닮은 것 같은 두 주인공에게는 과거 가족사로부터 치유할 수 없는 커다란 상처와 고통이 있다는 공통점이 존재합니다.

 

작가는 프랑스 문학과 영문학을 강의하는 교수답게 프랑스 문학 특유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추리 스릴러물을 탄생시킵니다.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알렉스란 여성의 섬세한 심리 묘사와 아내를 범죄로 잃은 카미유 반장의 일상적 고뇌를 훌륭하게 그려냅니다. 과거 어린 시절의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인이 돼서 어떻게 표출되는가를 보여주는 섬뜩한 드라마네요. 마지막 3부에서 밝혀지는 충격적인 사실을 보면 지금까지의 알렉스의 행동에 대한 충분한 공감과 연민의 정이 밀려옵니다.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2,3부에 비해 알렉스가 위기에 처한 1부가 너무 세밀히 서술되어 조금 속도감이 처지는 점, 아마도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인『세밀한 작업』의 연장선상의 내용인듯한 카미유 반장의 죽은 부인과 어머니의 미술품 얘기등이 약간 몰입을 방해한 점을 제외하고는 어릴적 잔인하고 악마스런 성범죄가 한 사람의 일생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지를 추리 스릴러물로 잘 표현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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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복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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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과 북스피어의 합동 프로젝트인 세이초 월드의 일환으로 모비딕이 펴낼 세이초 단편 미스터리 컬렉션 총 여섯 권중 그 첫 번째입니다. 1955년 <소설 신쵸> 12월호에 발표한 작가의 첫 추리소설인 『잠복』을 표제작으로 '일본탐정작가 클럽상' 수상작인 『얼굴』등 1955년~1957년 사이에 발표한 여덟 편의 초기 추리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세이초는 (당시 유행하던) 트릭과 반전만을 위한 비현실적이고 작위적인 설정의 본격 추리물에 염증을 느껴 작가 스스로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나는 상황과 인물들로 인간미 넘치는 추리소설을 쓰게 됩니다. 인간의 뒤틀린 욕망이나 그릇된 사회적 동기등에 의해 범죄를 저지르고 결국에는 파멸의 길을 걷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추리소설로 그려냅니다. 일명 '사회파 추리'의 시작이죠. 

 

단편들을 읽어보니 먼저 떠오르는 것이 제목만큼이나 간결한 문체입니다. 화려한 미사여구나 불필요한 곁가지없이 간결하고 정제된 문체로 딱 필요한 이야기만 글에 담습니다. 그 단순하고 절제된 문장에 작가의 모든 철학과 사상이 응축되어 있다고나 할까요.

 

또한 등장 인물을 최소화하고 시점을 단순화해서 몰입감을 극대화합니다. 이야기에 꼭 필요한 소수의 등장인물만 등장하고 메인 주인공의 단일화된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켜 흐름이 일관성있고 자연스럽게 진행됩니다. 그래서인지 몰입감이 뛰어나며 술술 읽힙니다. 등장인물 역시 사회파 추리소설답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본격 추리물이 트릭과 반전에 중점을 두느라 범행의 동기 부분을 등한시한다면 세이초의 '사회파 추리' 작품들은 범행이 시작되는 동기의 발생 과정과 필연성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합니다. 극히 평범하고 선한 사람들이 어쩔수 없이(?) 범죄의 늪에 발을 담그게 되는 사회적 환경이나 개인의 처지, 주변 인간 관계등을 세밀히 묘사하며 이것이 독자의 공감대를 끝어냅니다.  

 

수록된 여덟 편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와 완성도를 보여주지만 그중에서도 범죄와 무관한 여인에 대한 형사의 배려심이 돋보이는 『잠복』과 추리와 반전 포인트가 빛나는 『지방신문을 구독하는 여자』『1년 반만 기다려』그리고 무소불위의 지방 시의원과 청렴한 토목 과장의 알력을 다룬 사건『투영』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세이초 작품은 딱히 자극적이거나 허황되지 않고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평범한 사람들의 범죄 이야기를 미스터리 방식으로 인간미 넘치게 그려냅니다.『잠복』은 1950년대 배경의 초기 단편 모음이지만 지금 읽어도 낡은 느낌이 전혀 들지않을뿐더러 이 작품만으로도 작가의 작품 세계와 매력을 충분히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비딕에서 준비하는 두 번째 추리 단편선인 『역로』 역시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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