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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복 ㅣ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모비딕과 북스피어의 합동 프로젝트인 세이초 월드의 일환으로 모비딕이 펴낼 세이초 단편 미스터리 컬렉션 총 여섯 권중 그 첫 번째입니다. 1955년 <소설 신쵸> 12월호에 발표한 작가의 첫 추리소설인 『잠복』을 표제작으로 '일본탐정작가 클럽상' 수상작인 『얼굴』등 1955년~1957년 사이에 발표한 여덟 편의 초기 추리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세이초는 (당시 유행하던) 트릭과 반전만을 위한 비현실적이고 작위적인 설정의 본격 추리물에 염증을 느껴 작가 스스로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나는 상황과 인물들로 인간미 넘치는 추리소설을 쓰게 됩니다. 인간의 뒤틀린 욕망이나 그릇된 사회적 동기등에 의해 범죄를 저지르고 결국에는 파멸의 길을 걷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추리소설로 그려냅니다. 일명 '사회파 추리'의 시작이죠.
단편들을 읽어보니 먼저 떠오르는 것이 제목만큼이나 간결한 문체입니다. 화려한 미사여구나 불필요한 곁가지없이 간결하고 정제된 문체로 딱 필요한 이야기만 글에 담습니다. 그 단순하고 절제된 문장에 작가의 모든 철학과 사상이 응축되어 있다고나 할까요.
또한 등장 인물을 최소화하고 시점을 단순화해서 몰입감을 극대화합니다. 이야기에 꼭 필요한 소수의 등장인물만 등장하고 메인 주인공의 단일화된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켜 흐름이 일관성있고 자연스럽게 진행됩니다. 그래서인지 몰입감이 뛰어나며 술술 읽힙니다. 등장인물 역시 사회파 추리소설답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본격 추리물이 트릭과 반전에 중점을 두느라 범행의 동기 부분을 등한시한다면 세이초의 '사회파 추리' 작품들은 범행이 시작되는 동기의 발생 과정과 필연성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합니다. 극히 평범하고 선한 사람들이 어쩔수 없이(?) 범죄의 늪에 발을 담그게 되는 사회적 환경이나 개인의 처지, 주변 인간 관계등을 세밀히 묘사하며 이것이 독자의 공감대를 끝어냅니다.
수록된 여덟 편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와 완성도를 보여주지만 그중에서도 범죄와 무관한 여인에 대한 형사의 배려심이 돋보이는 『잠복』과 추리와 반전 포인트가 빛나는 『지방신문을 구독하는 여자』와 『1년 반만 기다려』그리고 무소불위의 지방 시의원과 청렴한 토목 과장의 알력을 다룬 사건『투영』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세이초 작품은 딱히 자극적이거나 허황되지 않고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평범한 사람들의 범죄 이야기를 미스터리 방식으로 인간미 넘치게 그려냅니다.『잠복』은 1950년대 배경의 초기 단편 모음이지만 지금 읽어도 낡은 느낌이 전혀 들지않을뿐더러 이 작품만으로도 작가의 작품 세계와 매력을 충분히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비딕에서 준비하는 두 번째 추리 단편선인 『역로』 역시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