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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추리소설 걸작선 2 ㅣ 한국추리소설 걸작선 2
곽재동 외 지음, 한국추리작가협회 엮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8월
평점 :
75년 한국추리문학사를 집대성한 단편 모음집입니다. 2권에는 특히 한국추리작가협회 소속 젊은 작가들의 대표작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750쪽의 두툼한 분량에 본격추리, 범죄물, 서스펜스(스릴러)등 22편의 다양한 소재와 장르의 국내 미스터리 단편들이 들어있고 부록으로 한국추리작가협회 역사 및 각종 수상작 소개 그리고 작품 해설이 뒤를 잇습니다. 마침 금년 한국추리작가협회 주최의 '2012년 여름추리소설학교'에서 만나뵌 작가분들의 작품이 많아서인지 더욱 책에 애정이 가는군요. 개인적인 간단평입니다.
『안락사』(곽재동) 옆집에 이사온 할머니가 고급 도자기의 처분과 함께 자신의 안락사를 도와달라고 요청하는데....사기 범죄자와 할머니의 치열한 두뇌 싸움이 볼만한 수작
『그대 안의 악마』(김연) 외딴 별장에서 벌어진 광란의 파티속에 벌어진 살인 그리고 저택이 갖는 어두운 역사가 음습하게 드리우진 섬뜩한 공포 추리물. 수작.
『체류』(한이) 소식이 끊긴 베트남 여성 노동자의 행방을 추적하는 여정을 통해 불법 외국인 체류자의 문제점을 추리적 기법으로 짚어보는 드라마.
『오리엔트 히트-스푼 메이커스 다이아몬드』(김재희) 터키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도난당한 다이아몬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첩보 스릴러물. 작가의 초기작인지 구성, 전개, 억지스러운 반전등 모든 것이 아쉽다. 본격추리물인『명품탐정 김고로』시리즈에 기대를 해본다.
『알리바바의 알리바이와 불가사리한 불가사의』(이대환) 마치 김내성의 걸작『타원형의 거울』을 보는 듯한 소설 구조속에 밀실 트릭 퀴즈를 다룬 본격추리물. 구성과 전개는 참신하고 흥미로우나 해결의 논리성에는 의문이 든다. 두 가지 해답이 제시됐는데 판단은 독자의 몫.
『흙의 살인』(정명섭) 황궁에 쓰이는 기와를 만드는 와공장에서 기와 장인이 대들보에 목매달린 시신으로 발견되자 고구려 을지문덕이 범인 찾기에 나서는데...인간의 탐욕이 빛어낸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본격 역사 추리물. 수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설인효) 길이 끊기고 폭우가 쏟아지는, 조명 하나없이 칠흙같이 어두운 버려진 산장에 비를 피해 삼삼오오 모여든 등산객들...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숨막히는 공포의 서스펜스. 수작.
『아내마저 사기 친 남자』(최종철) 사기꾼, 애인, 섹스, 질투, 다이아몬드등이 등장하는 통속적인 소재와 줄거리의 범죄 수사 드라마.
『마지막 장난』(박하익) 장난질을 좋아하는 대학생 세 명이 일생일대의 커다란 장난을 준비하는데...마치 기리오 나쓰오의 『아웃』을 보는듯한 스릴러. 반전을 위한 후반부의 다소 억지스러운 전개가 흠.
『목 없는 인디언』(김재성) 현직 치과원장인 작가가 교환교수 시절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 여성의 돌고도는 불운한 운명을 차분하게 그려낸 심리 스릴러. 명탐정 월셔 홈즈와 조수인 치과의사 라왓슨 콤비가 활약하는 본격 추리물인 『노끈』과『유령 여기자』를 추천한다.
『사랑합니다, 고객님』(송시우) 무리한 환불을 요구하는 한 여성 고객의 진상짓에 화가 난 텔리마케터가 직접 고객 집을 찾아가 담판에 돌입하는데....생각치 못한 반전이 기다리는 서스펜스물. 코믹 수사물인『5층 여자』와 호러적 색채에 오싹한 여운을 주는 심리 스릴러『아이의 뼈』를 추천한다.
『다이어트 클럽』(최지수) 고도비만으로 항시 남편에게 구박받던 부인이 신종 다이어트 클럽에 등록한 뒤 어느날 몰라보게 날씬한 모습으로 귀가한다. 하지만 그리고는 계속해서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는데...스토리, 긴장감, 몰입감, 서스펜스, 마지막 반전등 나무랄데 없는 수작 스릴러.
『그들의 시선』(신재형) 범죄 전문 기자 출신 작가답게 사건 현장의 리얼리티가 생생히 살아있다. 작가 특유의 거친 말투와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범죄 수사물. 다소 매끄럽지 못한 전개는 작가의 장편『흔한 일들』에서 말끔히 해결된다.
『탈출』(김주동) 학창시절 짱이었던 동창 친구가 감옥에서 출소한 뒤 주인공에게 접근하고 급기야는 마음이 떠나간 와이프에게까지 눈독을 들이는데...꼬봉이었던 주인공은 이 두 위기를 어떻게 슬기롭게 '탈출'할 것인가...인간의 이기심과 인간성의 한계를 여과없이 보여주는 액션 스릴러.
『선택』(도진기) 폭우가 몰아치는 밤, 칠흙같이 어두운 고속도로에서 운전중 왼손 손목을 메스로 긋고 어린 딸과 함께 가드레일을 뚫고 벼랑으로 추란사한 여성 외과의사...사건은 자살인가, 타살인가 아니면 사고사인가...자살로 결론지은 경찰과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보험회사를 상대로 여변호사는 진상 파악에 나서는데...현직 판사답게 법률에 관한 전문적인 식견과 날카로운 추리가 빛을 발하는 수작.
『빛이 닿지 않는 세계의 남자』(정혁) 동창이 운영하는 카페에 하루 간격으로 이혼한 부부가 찾아와 그들이 겪은 이상한 일과 서로에 대한 사랑의 관점에 대해 얘기하는데...몽환적이고 감성적인 미스터리
『세 번째 표적』(장세연) 30대 건장한 남성들이 동일한 아파트에서 얼굴에 총을 맞는 엽기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는데...초반부의 흡입력있는 전개와는 달리 치정 드라마 스타일의 통속적인 결말로 마무리되어 아쉽다.
『여자는 한 번 승부한다』(김남) 애인을 죽인 남자가 부인을 설득해 사체 은닉을 시도하는데...반전이 돋보이는 서스펜스 드라마. 예전에 <한국 서스펜스 걸작선>에『한 남자와 두 여자』로 발표된 작품의 후반부 내용을 정서적인(?) 이유로 각색한 작품이 아닌지 궁금하다.
『살인의 가치』(이승영) 조직의 손아귀에서 탈출하려는 한 여인과 그녀를 사랑하게된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스토리가 담긴 스릴러물. 등장인물의 시점을 달리한 독특한 구성이 이야기에 긴장감을 불어넣어준다. 수작.
『그녀는 알고 있다』(손선영) 11년차 소설가 남편은 사회적 성공 가도를 달리는 부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고, 결국 세 명의 외도 상대남을 찾아 응징에 들어가는데...다중 인격의 충격적인 반전이 돋보이는 수작.
『포인트』(조동신) 원룸텔에서 벌어진 전직 사형집행수 밀실살인사건. 도서관 사서 탐정과 여형사가 25년전 사건을 연계시켜 범인의 동기와 수법을 찾아 나서는데...사형제도의 진지한 고찰이 돋보이는 본격 추리물. 수작
『B사감 하늘을 날다』(홍성호) 까탈스런 기숙사 사감 언니를 수면제로 잠재운 뒤 예약된 호텔과 클럽에서 광란의 밤을 보내고 복귀한 여대생 4명을 기다리는 건 싸늘한 사감 언니의 주검 뿐...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젊은 세태의 놀이문화에 현대 문명의 물리적 트릭을 덧붙인 신세대 본격 추리물. 수작.
작가 개개인의 강한 개성이 묻어나는 다양한 소재와 장르의 추리 단편 22편을 그야말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일단 책 전체의 만족감이 무척 뛰어납니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수록된 작품들은 모두 (처음 발표되는 작품들이 아니라) 한국추리작가협회 기관지인 <계간 미스터리>나 매년 출간되는 '올해의 추리소설', 황금가지의 <한국 추리 스릴러 걸작선>, 한스미디어의 <12인 12색>등 각종 단행본등을 통해 기발표된 작품들中에서 재미와 완성도면에서 검증받은 작품들만 추려모은 것이니까요.
많은 수작들중에서 개인적으로는, 전문가적 식견과 날카로운 추리, 따스한 모성애가 빛을 발하는『선택』과 사형제도를 되짚어보는 본격추리물인『포인트』를 '최우수작'으로, 독창적인 소재와 흥미로운 전개, 뛰어난 반전이 돋보인 『다이어트 클럽』과 본격 추리에 공포와 서스펜스를 적절히 가미한 『그대안의 악마』를 '우수작'으로 뽑고 싶네요.
단지 아쉬운 점은, 대부분의 단편들이 치정, 원한, 금품같은 인간 관계나 그 주변 환경으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을 추리적 기법으로 승화한 서스펜스(스릴러)물이 주류를 이루는 반면, 트릭과 반전 그리고 범인 맞히기의 재미가 들어있는 본격 추리물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입니다. 김재성 작가님 같은 경우 『노끈』같이 훌륭한 본격 추리 단편이 실리지 않은게 아쉽구요. 본격 추리물이 더욱 많이 발표되고 실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저로서는 '올해 제가 읽은 최고의 추리소설'로 꼽고 싶습니다. 영미권이나 일미쪽에서 추리 대작이 뜸한 지금 이 정도 분량의 재미와 만족도를 주는 책은 사실 찾기가 쉽지 않거든요. 두고두고 생각날 때 꺼내서 곶감 빼먹듯 한 편 한 편 재독해 보는 소장가치 역시 뛰어나고요. 한국 추리소설의 트렌드와 현주소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며 수록된 작가분들 모두 뛰어난 장편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만점을 주고 싶으나 본격 추리물이 다소 적어 아쉽지만 별 반 개를 뺍니다. 별 네 개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