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관의 살인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
아오사키 유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작년말, 작가의 데뷔작인『체육관의 살인』을 접했을 때의 신선한 충격과 재미를 잊지 못한다. 라이트노벨스러운 만화 표지와 젊은 무명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선입견때문에 본격 추리의 겉만 맴도는 가벼운 터치의 학원 미스터리물인줄 알았는데 웬걸 읽어보니 대박이요 진국이었다. 과연 '차세대 엘러리 퀸'이라 불릴만한 작가의 수수께끼 풀이식 정통 미스터리의 묘미을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었다.『체육관의 살인』일년 후에 내놓은『수족관의 살인』은 제14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최종 후보에 오른 작품이다.

요코하마 외곽에 자리잡은 조그만 마루미 수족관에서 돌고래 사육사가 피투성이가 된 상태로 상어 수조에 빠져 상어밥이 되는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관람객이 들끓는 백두대낮에 벌어진 대범한 범행. 당시 사건 현장 주변에 있던 열한 명의 수족관 직원들이 용의자로 좁혀졌지만 경찰은 범인 색출에 애를 먹고...결국 한 달전 가제가오카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벌어진 밀실 살인사건 (체육관의 살인)을 훌륭히 해결한 구제불능 천재 만화 오타쿠 고등학생인 우라조메 덴마에게 긴급 도움을 요청한다.

덴마는 특유의 친화력과 넉살 그리고 비상한 추리 두뇌를 앞세워 범인이 조작한 알리바이 트릭과 물리적 트릭을 밝혀내며 용의자의 범위를 좁혀나간다.​ 이번 작품 역시『체육관의 살인』에서 선보였던 엘러리 퀸 스타일의 소거법 추리가 여과없이 발휘된다.『체육관의 살인』에서 우산 하나로 놀라운 추리를 선보였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현장에 남아있던 양동이, 대걸레같은 수족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도구를 가지고 신들린듯한 추리를 선보인다. 

이번 작품 역시 압권은 열한 명의 용의자를 불러놓고 철저한 논리에 의한 소거법으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 범인을 지목하는 라스트신이다. 하지만 시간대별 알리바이 검증과 물적 증거를 앞세운 철저히 범행 검증에 (하우던잇) 초점을 맞춘 작품인지라 사실 범인이 드러났을 때의 (후던잇) 쾌감은 떨어진다. 그만큼 작가는 수수께끼 풀이에 많은 지면을 할애할 뿐 용의자 개개인에 풍부한 캐릭터를 (범행 동기, 대인 관계 등) 부여하지는 않는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트릭이 풀리는 과정은 흥미로우나 막상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의 감흥은 크지 않다.

 

사건의 본질 외에도 만화 캐릭터같은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밝은 분위기의 개그 코드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덴마를 억지로 현장에 데려가다 졸지에 조수 역할을 하는 유노, 마지못해 불렀지만 경찰 체면이 말이 아닌지라 덴마가 눈엣 가시같은 센도 경부, 덴마에 의지하면서도 여동생 유노와의 관계를 의혹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유사쿠 형사 등등..

 

만화를 좋아하는 20대 중반의 신세대 젊은 작가답게 본격 미스터리의 진지함과 학원물의 상큼발랄함이 절묘하게 어루어진 작품이다. 역자 후기를 보니 체육관, 수족관에 이어 차기작으로『도서관의 살인』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덴마 탐정 - 유노 조수 콤비가 시리즈화되면서 그들이 과거 주변사람들과 얽힌 비밀스런 얘기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낼 조짐이다. 차기작에서는 또 어떤 기발한 트릭과 화려한 논리의 향연이 펼쳐질지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십자관의 살인
손선영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관시리즈'로 유명한 아야츠지 유키토 작가와 똑 닮은 (진짜로!) 손선영 작가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이다. 제목은『십자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 작가의 전설의 데뷔작『십각관의 살인』을 오마주한 작품이다. 몇년전 일본 미스터리 입문 당시에 읽었던 십각관의 기억을 떠올려본다. 평이하게 진행되다 막판 단 한 줄로 독자를 깜짝 놀래키던 추리소설...야구 경기로 비유하자면 0:0으로 지루하게 진행되던 경기가 9회말 투 아웃에 극적인 홈런 한 방으로 끝난다고나 할까. 섬과 육지를 번갈아 오가는 이중 구조에 등장인물 모두 추리작가 필명을 사용한 참신한 서술트릭이 돋보였던 십각관을 손작가는 어떻게 오마주했을까.

한 명의 지도교수와 일곱 명의 재학생들로 구성된 연추소(연희대학 추리소설연구회) 회원들이 추리 엠티를 떠난다. 미지의 섬 반구도에 위치한 십자관으로. 그들 모두 추리연구회 회원답게『십각관의 살인』과 마찬가지로 본명이 아닌 유명 추리 작가나 탐정의 이름을 사용한다. 도일, 아가사, 심농, 김전일 등으로...그리고 그들은 교통과 통신이 단절된 십자관에서 3박 4일간 살인 파티를 연다. 독극물과 칼, 스패너등 일곱 종류의 머더 키트(murder kit)를 앞세운 일종의 추리 살인 놀이인데 거기에서 실질적인 살인이 벌어지고 이 살인은 연쇄 살인으로 발전한다.

사실 이 리뷰를 쓴다는게 버겁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스포일러 또는 전체 내용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작가와 개인적인 친분이 조금 있는지라 만날 때마다 독자로서 늘상 이런 주문을 한다. "좀 쉬운 문체와 소재, 내용으로 술술 읽히는 글을 쓰라. 도진기 작가나 하가시노 게이고처럼..." 하지만 작가의 옹고집인지 아니면 추구하는 스타일이 그런지...이번에도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십자관은 정육면체 큐브 하나를 중심으로 네 개의 동일한 큐브가 동서남북 형태로 붙어서 마치 십자가 모양을 한다. 그런 것이 모두 세 개층으로 지하 일층과 지상 2층을 구성한다. 근데 이게 움직인다. 마치 영화 <큐브>에서처럼. 그리고 십자관내의 모든 시스템은 '시스템 아가사'라는 인공 지능을 지닌 최첨단 컴퓨터 제어장치가 관리, 통제한다.​ 

게임룰에 의거 카드 킹이 비밀리에 놓여지고 이어서 암호같은 수수께끼가 등장한다. 회원들이 연속된 암호를 풀어 "게임 클리어!"를 외치면 살인 파티가 끝나지만 만약 틀린다면 그 자리에서 아웃, 사망이다. 연속되는 살인속에서 서로간의 의심과 경계는 극에 달하고 합종연횡과 팀플이 난무하지만...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기존『십각관의 살인』을 떠올리면 오산이다. 작가는 독자의 예상을 비웃듯 완전히 다른 결말을 준비하고 있다.

 

문제는 작가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그리고 마지막 드러나는 반전과 결말이다. 이것의 수용 여부가 독자 개개인의 만족도를 좌우할 것이다. 일예로, 도착 첫 날 두 명이 사망한다. 범인은 당연히 나머지 여섯 명중에 있다. 하지만 충격과 공포의 패닉 상태에 빠져야 할 그들이 함께 모여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순문학과 대중문학에 대해 토론한다. 이러한 작가의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마지막 드러나는 반전과 결말 역시 전혀 예상밖이라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이다. 신선함과 허탈감이 공존한다고나 할까. 그래도 결말 부분은 흥미롭게 두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니 마치 영화 <매트릭스>나 <토탈 리콜> 또는 <인셉션>처럼 어디 머나먼 미지의 세계로 시간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다. 기분이 묘하고 정신이 혼미하다. 

기존『십각관의 살인』에서 기본 소재와 형식만 차용했을 뿐 메인 플롯과 결말은 작가의 창의성에 현대적 첨단 감각이 어우러진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추리소설이다. 과연 아야츠지 유키토가 이 작품을 읽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덧붙여서, 메인 줄거리외에 군데군데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작가가 들려주는 한국추리소설의 현주소와 위상, 순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등 추리소설 전반에 걸친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이론을 경청하는 것도 또다른 즐거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족의 탄생 진구 시리즈 3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다의 별』로 2014년 한국추리문학대상을 수상한 현직 판사이자 추리작가인 도진기 작가의 일곱 번째 장편이자 진구 시리즈 세 번째 작품. 2015년 신작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죽음을 눈앞에 둔 부자 노인의 상속 재산을 둘러싼 가족간의 갈등을 미스터리 형식으로 담고 있다.

상당한 자산가인 칠십대 노인 남현호의 집에는 그의 젊은 새부인, 세 딸과 두 명의 사위 그리고 한 명의 손녀가 살고 있다. 하지만 노인이 당뇨로 인해 임종을 앞둔 시점에서 결혼한 막내딸이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나머지 가족들은 본인의 상속 몫을 확실히 챙기고자 서로간의 불신과 경계가 극에 달한다. 그런 이유로 '백수 탐정' 진구와 '어둠의 변호사' 고진이 각자 막내 사위와 두 딸의 대리인 자격으로 이 상속 전쟁에 개입하고...과연 막내딸의 사망은 단순한 교통사고인가 아니면 상속 재산을 노린 누군가의 계획된 범행인가 그리고 부자 노인의 상속분을 차지할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일단 이 작품은 그동안 작가의 작품에 등장했던 주요 등장인물들이 총출동한다. 시리즈의 두 주인공 고진과 김진구를 필두로 진구의 여친 해미, 고진의 숙명의 라이벌인 이탁오 박사, 고진을 돕는 이유현 경감과 압상트의 매력적인 여사장 류경아까지. 작가는 이미 독자에게 친숙한 등장인물 캐릭터와 판사 업무로 인한 전공 분야에 갖가지 살을 붙여 한 편의 재미난 상속 관련 미스터리 드라마를 선보인다.

막내딸의 교통사고 사망 사건의 진상을 둘러싸고 각자의 입장과 견해를 대변하는 고진과 진구의 불꽃튀는 추리 대결이 벌어지고... 그 와중에 바람난 젊은 새부인, 자기 딸이라 주장하는 외항 선원의 출현등 간통과 불륜등으로 점철된 상속 문제에 변수가 될만한 추악한 사실들이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상속인의 자격이 계속해서 요동친다.

교통사고의 진상과 더불어 마지막 밝혀지는 결말을 보면 현직 판사답게 법에 정통한 해박한 법지식을 앞세워 상속에 관련된 예상외의 놀라운 반전을 선사한다. 하지만 마지막 결말 부분을 제외하고는 읽는내내 딱히 긴장감이 없이 조금은 심심한 느낌이다. 이유는『정신자살』의 이탁오 박사나 『유다의 별』의 용해운 같은 강력한 악당의 부재 그리고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엽기적인 살인이나 신선한 트릭이 없어서인지 모르겠다. 이야기가 물흐르듯 흐른다고는 하나 오히려 몇 쪽 안되는 분량을 차지하는 이탁오 박사의 등장 부분이 훨씬 강렬하니 임팩트있게 다가온다.

작품을 통해 상속에 관련된 법률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부가적인 즐거움이지만 목을 왼손으로 조르고 오른쪽 관자놀이를 맞았다고 꼭 범인이 왼손잡이라는 단순한 논리는 공감하기 어렵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나 할까.​ 법지식을 이용한 물고물리는 다양한 반전과 스토리텔링은 일품이지만 (전작들에 비해) 추리적 재미가 뛰어나다고 보지는 않는다. 어찌보면 전작『유다의 별』에 많은 힘을 쏟은 나머지 이번 작품은 이미 갖춰진 재료들에 작가의 주전공을 십분 살려 편안하게 집필한 느낌이다.

도진기 작가는 지금 현재 국내의 가장 인기있는 본격 추리소설 작가로 나 또한 작가의 열혈 팬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붉은집 살인사건』,『라 트라비아타의 초상』,『정신자살』,『유다의 별』로 이어지는 고진 시리즈가 사건의 엽기성, 강력한 악당, 번뜩이는 트릭, 큰 스케일, 풍부한 스토리텔링등으로 잔상이 오래남는 반면『순서의 문제』,『뮤즈의 계시』,『나를 아는 남자』등의 진구 시리즈는 (상대적으로) 소재의 경중, 내용의 엇비슷함 때문인지 기억에 오래남질 않는다.

작가 후기를 보니 작가는『정신자살』에 많은 애정을 품고 있으며 그러한 스타일의 작품을 쓰는 것이 집필 방향이자 성향으로 보인다. 아마도 작가는 이순간에도 고진과 이탁오 박사의 궁극의 대결 구상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으리라. 한편으론 CCTV와 핸드폰으로 인한 트릭 구상의 어려움, 일본 작품과의 경쟁에 대한 고민도 보인다. 김내성 작가의 유불란 탐정, 김성종 작가의 오병호 형사 이후로 고진, 진구같은 탐정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국내 추리작가가 몇이나 될까. 판사 업무로 바쁜 와중에도 완성도 높은 '한국형 본격추리소설'을 선사하는 작가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내며 여덟 번째 작품을 기다려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딧불 언덕 가나리야 마스터 시리즈
기타모리 고 지음, 김미림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서정적인 제목과 목가적인 분위기의 일상 미스터리를 보여준 기타모리 고의 가나리야 맥주바 마스터 구도 데쓰야 시리즈 3편이다. 1998년에 발표해서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 및 연작단편 부문상을 수상한 1편『꽃 아래 봄에 죽기를』을 무척 재밌고 감명깊게 읽었다. 5년뒤에 발표된 2편『벚꽃 흩날리는 밤』은 전작에 비해 조금은 아쉬운 작품이었지만.

맥주바 '가나리야'는 산겐자야역의 뒷골목에 위치한 자그마한 술집으로 열 명 정도 손님이 겨우 앉을 수 있는 L자형 카운터와 2인용 탁자가 전부이다. 이 맥주바에는 도수가 다른 네 종류의 맥주가 구비되어 있고 주인장 구도 데쓰야가 그날그날 싱싱한 재료로 내놓는 맛깔스런 안주를 즐길 수 있다. 이 좁디좁은 맥주바에서 단골 손님이 들고오는 소소한 일상의 미스터리를 주인장인 구도 데쓰야는 은근슬쩍, 넌지시 하지만 날카로운 추리력으로 풀어낸다. "단지 억측일 뿐입니다."라는 겸손한 멘트와 함께...

『반딧불 언덕』에는 표제작을 포함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사진사로 성공하기 위해 애인을 버리고 중동으로 떠나는 남자에게 애인이 보여준 반딧불 언덕의 정체와 의미는? ​만인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죽은 고양이의 현창비 건립에 얽힌 숨겨진 진실은? 도시 재개발 계획에 반대하며 토지 매각 가격 상승분까지 포기하면서 고미술상 여주인이 십삽 년간 가게를 지켜온 이유는? 작가로의 인생 전환을 꿈꾸는 한 실직자가 만난 부랑자의 정체 그리고 밝혀지는 두 얼굴의 미스터리,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사촌 오빠가 남긴 환상의 소주 고켄을 찾아달라는 유언의 의미는?

다섯 개의 단편 모두 맛깔스런 음식의 소개와 더불어 잔잔한 미스터리가 담긴 소품같은 이야기들인데 이 작품 역시 전작『벚꽃 흩날리는 밤』과 마찬가지로 미스터리의 깊이와 재미, 각 에피소드가 던지는 메시지와 울림, 여운등에서『꽃 아래 봄에 죽기를』의 명성에는 다소 미치지 못한다. 그만큼『꽃 아래 봄에 죽기를』이 수작이요 명작이다. 

어찌됐건 이 시리즈의 매력은 그 서정적인 은은함에 있다. 피튀기는 살인이나 흉악한 범죄자가 나오지도 않는다. 현대 장르 소설에서 필수인 속도감이나 긴장감이 흘러넘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런 점이 역설적으로 이 시리즈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기도 하다. 그저 퇴근후 맥주 한 잔 축이러온 소시민들이 늘어놓은 일상의 소소한 미스터리...하지만 그속에 그들의 삶의 애환과 인생의 비애가 묻어 있다. 

책을 읽는동안 섬세하게 표현되는 음식의 미각에 저절로 군침이 돌게되며 그들이 풀어놓는 애환과 비애가 깃든 기구한 인생 스토리가 적지않은 내 삶의 경로와 오버랩되면서 나도 모르게 그들의 희노애락에 깊히 동화된다. 늘상 자극적이고 엔돌핀 팍팍 도는 장르소설만 읽다가 가끔가다 이러한 서정적인 작품을 집어드는 것도 정서 순화에 도움이 되리라.​

작가는 구도 데쓰야 시리즈를 모두 네 편을 발표하고는 48세의 젊은 나이에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작품의 흥행에 상관없이(?) 꾸준히 시리즈를 내놓는 출판사의 뚝심에 격려를 보내며 숨겨졌던 주인장의 과거와 맥주바 '가나리야'란 이름의 유래가 밝혀진다는 마지막 4편인『가나리야를 아십니까』도 조만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녹스머신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박재현 옮김 / 반니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추리작가이자 평론가인 노리즈키 린타로의 2013년 신작으로 일본 출간 당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등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표제작『녹스 머신』과 2부격인『논리 증발 - 녹스 머신 2』,『바벨의 감옥』등 중단편의 SF 모험 소설 (개인적으로 미스터리 소설이라 부르기는 조금 어렵다) 세 편과『들러리 클럽의 음모』라는 중편 한 편이 수록되어 있다.

국내 출간된 작가의 작품은 - 최근 구매한『또 다시 붉은 악몽』을 제외하고는 - 모두 읽었다.『킹을 찾아라』와 단편『이콜 y의 비극』은 트릭과 반전에 공을 들인 본격 추리물이고 '비극 3부작'과『잘린머리~』는 등장인물간의 갈등에서 오는 긴장감을 섬세한 스토리텔링과 드라마틱한 전개로 풀어가는 추리소설이다. 추리소설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로 고뇌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는 작가의 고전 추리작품에 기반을 둔 SF소설은 어떤 내용일까. 

일단 표제작인 단편『녹스 머신』은 수작이다. 2058년의 미래를 배경으로 시간공학, 우주물리학, 양자역학 이론을 이용, 양방향 시간 여행이란 놀라운 과학적 실험을 통해 "탐정소설에 중국인을 등장시켜서는 안된다."는 녹스의 십계명을 만든 카톨릭신부이자 추리소설가인 로널드 A. 녹스를 만나러 1929년의 과거로 떠나는 모험담은 시종일관 흥미를 자아낸다. (사족이지만, 녹스의 십계에서 중국인 운운은 "그 당시 중국인은 마술을 부릴 줄 안다" 선입관이 있어서 그런 조항이 삽입된걸로 알고 있다. 아니면 말고...)

2부격인『논리 증발 - 녹스 머신 2』역시 양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주요 하드웨어인 전자 텍스트의 발화 사건에 엘러리 퀸의 국명 미스터리중 유일하게 '독자와의 도전'이 누락된『샴쌍둥이 미스터리』와 연계시킨 모험담으로 그 독특한 아이디어와 해결법에서 인상깊게 읽었다.​ 하지만 각종 물리학 이론이나 난해한 컴퓨터 용어등이 다소간 작품의 이해와 몰입을 방해한다.

유일하게 SF물이 아닌『들러리 클럽의 음모』는 명탐정의 친구이자 조수들의 모임인 들러리 클럽 멤버들과 당대 최고의 추리작가인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와의 한 판 대결을 풍자와 패러디로 꾸민 콩트 형식의 재미난 작품이다. 회장 왓슨부터 헤이스팅스, 밴 다인, 네로 울프의 조수 아처 굿윈 그리고 피터 웜지경의 집사 머빈 번터등 반가운 얼굴들이 등장하고, 정통 추리소설에서 감초 역할이자 없어서는 안될 존재인 그들에게 크리스티 여사의 걸작『애크로이드 살인사건』과『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로부터 그들의 존재감 및 나아가서는 정통 추리소설 기법의 뿌리까지 위협받고...실제 발생한 크리스티 여사의 실종 사건을 들러리 클럽의 음모와 연계시킨 아이디어는 신선했다. 막판에 가벼운 살인사건을 집어넣어 본격 추리의 맛을 조금이나마 느끼게한 작가의 재치도 돋보이고. 서양 고전 추리소설의 아련한 향수를 느낄 수 있었던 발칙하고 재미난 작품이다.

문제는 가장 짧은 단편인『바벨의 감옥』. 시공간의 감옥에 갇힌 '나'가 형상(거울에 비친 상)인 경상인격(또다른 나)과의 교신을 통해 탈출을 시도한다는 내용인데...일본어 세로글씨를 이용한 암호 트릭이라는데 두 번을 정독해 읽었지만 당체 이해 불가.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각기 다른 시공간이 조우하는 장면처럼 시각적 이해가 아니고서는...국내 독자가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작품으로 번역가의 고생이 눈에 선하다.

한마디로 (추리 소설) 매니아 작가가 매니아 독자를 위해 쓴 매니아적인 작품이다. 애거서 크리스티나 앨러리 퀸등 서양 고전 추리물에 친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이게 뭐지? 하고 읽을 수도 있지만 고전 추리물을 사랑하는 독자에게는 재미난 작품이지않나 싶다. ​

물론 2058년 배경의 SF물인만큼 우주물리학, 양자역학, 시간 공학등 각종 첨단 과학 이론과 난해한 컴퓨터관련 용어등이 독서를 어렵게 만든다. 오죽하면『흑사관 살인사건』을 완독했을 때의 악몽(?)이 떠올랐을까. 어쨌든 고전 추리소설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첨단 미래 과학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연구를 통해 기발한 상상력과 뛰어난 논리력으로 재미난 이야기를 창출해낸 작가의 실험 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