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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관의 살인
손선영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관시리즈'로 유명한 아야츠지 유키토 작가와 똑 닮은 (진짜로!) 손선영 작가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이다. 제목은『십자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 작가의 전설의 데뷔작『십각관의 살인』을 오마주한 작품이다. 몇년전 일본 미스터리 입문 당시에 읽었던 십각관의 기억을 떠올려본다. 평이하게 진행되다 막판 단 한 줄로 독자를 깜짝 놀래키던 추리소설...야구 경기로 비유하자면 0:0으로 지루하게 진행되던 경기가 9회말 투 아웃에 극적인 홈런 한 방으로 끝난다고나 할까. 섬과 육지를 번갈아 오가는 이중 구조에 등장인물 모두 추리작가 필명을 사용한 참신한 서술트릭이 돋보였던 십각관을 손작가는 어떻게 오마주했을까.
한 명의 지도교수와 일곱 명의 재학생들로 구성된 연추소(연희대학 추리소설연구회) 회원들이 추리 엠티를 떠난다. 미지의 섬 반구도에 위치한 십자관으로. 그들 모두 추리연구회 회원답게『십각관의 살인』과 마찬가지로 본명이 아닌 유명 추리 작가나 탐정의 이름을 사용한다. 도일, 아가사, 심농, 김전일 등으로...그리고 그들은 교통과 통신이 단절된 십자관에서 3박 4일간 살인 파티를 연다. 독극물과 칼, 스패너등 일곱 종류의 머더 키트(murder kit)를 앞세운 일종의 추리 살인 놀이인데 거기에서 실질적인 살인이 벌어지고 이 살인은 연쇄 살인으로 발전한다.
사실 이 리뷰를 쓴다는게 버겁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스포일러 또는 전체 내용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작가와 개인적인 친분이 조금 있는지라 만날 때마다 독자로서 늘상 이런 주문을 한다. "좀 쉬운 문체와 소재, 내용으로 술술 읽히는 글을 쓰라. 도진기 작가나 하가시노 게이고처럼..." 하지만 작가의 옹고집인지 아니면 추구하는 스타일이 그런지...이번에도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십자관은 정육면체 큐브 하나를 중심으로 네 개의 동일한 큐브가 동서남북 형태로 붙어서 마치 십자가 모양을 한다. 그런 것이 모두 세 개층으로 지하 일층과 지상 2층을 구성한다. 근데 이게 움직인다. 마치 영화 <큐브>에서처럼. 그리고 십자관내의 모든 시스템은 '시스템 아가사'라는 인공 지능을 지닌 최첨단 컴퓨터 제어장치가 관리, 통제한다.
게임룰에 의거 카드 킹이 비밀리에 놓여지고 이어서 암호같은 수수께끼가 등장한다. 회원들이 연속된 암호를 풀어 "게임 클리어!"를 외치면 살인 파티가 끝나지만 만약 틀린다면 그 자리에서 아웃, 사망이다. 연속되는 살인속에서 서로간의 의심과 경계는 극에 달하고 합종연횡과 팀플이 난무하지만...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기존『십각관의 살인』을 떠올리면 오산이다. 작가는 독자의 예상을 비웃듯 완전히 다른 결말을 준비하고 있다.
문제는 작가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그리고 마지막 드러나는 반전과 결말이다. 이것의 수용 여부가 독자 개개인의 만족도를 좌우할 것이다. 일예로, 도착 첫 날 두 명이 사망한다. 범인은 당연히 나머지 여섯 명중에 있다. 하지만 충격과 공포의 패닉 상태에 빠져야 할 그들이 함께 모여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순문학과 대중문학에 대해 토론한다. 이러한 작가의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마지막 드러나는 반전과 결말 역시 전혀 예상밖이라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이다. 신선함과 허탈감이 공존한다고나 할까. 그래도 결말 부분은 흥미롭게 두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니 마치 영화 <매트릭스>나 <토탈 리콜> 또는 <인셉션>처럼 어디 머나먼 미지의 세계로 시간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다. 기분이 묘하고 정신이 혼미하다.
기존『십각관의 살인』에서 기본 소재와 형식만 차용했을 뿐 메인 플롯과 결말은 작가의 창의성에 현대적 첨단 감각이 어우러진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추리소설이다. 과연 아야츠지 유키토가 이 작품을 읽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덧붙여서, 메인 줄거리외에 군데군데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작가가 들려주는 한국추리소설의 현주소와 위상, 순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등 추리소설 전반에 걸친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이론을 경청하는 것도 또다른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