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 언덕 가나리야 마스터 시리즈
기타모리 고 지음, 김미림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서정적인 제목과 목가적인 분위기의 일상 미스터리를 보여준 기타모리 고의 가나리야 맥주바 마스터 구도 데쓰야 시리즈 3편이다. 1998년에 발표해서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 및 연작단편 부문상을 수상한 1편『꽃 아래 봄에 죽기를』을 무척 재밌고 감명깊게 읽었다. 5년뒤에 발표된 2편『벚꽃 흩날리는 밤』은 전작에 비해 조금은 아쉬운 작품이었지만.

맥주바 '가나리야'는 산겐자야역의 뒷골목에 위치한 자그마한 술집으로 열 명 정도 손님이 겨우 앉을 수 있는 L자형 카운터와 2인용 탁자가 전부이다. 이 맥주바에는 도수가 다른 네 종류의 맥주가 구비되어 있고 주인장 구도 데쓰야가 그날그날 싱싱한 재료로 내놓는 맛깔스런 안주를 즐길 수 있다. 이 좁디좁은 맥주바에서 단골 손님이 들고오는 소소한 일상의 미스터리를 주인장인 구도 데쓰야는 은근슬쩍, 넌지시 하지만 날카로운 추리력으로 풀어낸다. "단지 억측일 뿐입니다."라는 겸손한 멘트와 함께...

『반딧불 언덕』에는 표제작을 포함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사진사로 성공하기 위해 애인을 버리고 중동으로 떠나는 남자에게 애인이 보여준 반딧불 언덕의 정체와 의미는? ​만인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죽은 고양이의 현창비 건립에 얽힌 숨겨진 진실은? 도시 재개발 계획에 반대하며 토지 매각 가격 상승분까지 포기하면서 고미술상 여주인이 십삽 년간 가게를 지켜온 이유는? 작가로의 인생 전환을 꿈꾸는 한 실직자가 만난 부랑자의 정체 그리고 밝혀지는 두 얼굴의 미스터리,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사촌 오빠가 남긴 환상의 소주 고켄을 찾아달라는 유언의 의미는?

다섯 개의 단편 모두 맛깔스런 음식의 소개와 더불어 잔잔한 미스터리가 담긴 소품같은 이야기들인데 이 작품 역시 전작『벚꽃 흩날리는 밤』과 마찬가지로 미스터리의 깊이와 재미, 각 에피소드가 던지는 메시지와 울림, 여운등에서『꽃 아래 봄에 죽기를』의 명성에는 다소 미치지 못한다. 그만큼『꽃 아래 봄에 죽기를』이 수작이요 명작이다. 

어찌됐건 이 시리즈의 매력은 그 서정적인 은은함에 있다. 피튀기는 살인이나 흉악한 범죄자가 나오지도 않는다. 현대 장르 소설에서 필수인 속도감이나 긴장감이 흘러넘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런 점이 역설적으로 이 시리즈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기도 하다. 그저 퇴근후 맥주 한 잔 축이러온 소시민들이 늘어놓은 일상의 소소한 미스터리...하지만 그속에 그들의 삶의 애환과 인생의 비애가 묻어 있다. 

책을 읽는동안 섬세하게 표현되는 음식의 미각에 저절로 군침이 돌게되며 그들이 풀어놓는 애환과 비애가 깃든 기구한 인생 스토리가 적지않은 내 삶의 경로와 오버랩되면서 나도 모르게 그들의 희노애락에 깊히 동화된다. 늘상 자극적이고 엔돌핀 팍팍 도는 장르소설만 읽다가 가끔가다 이러한 서정적인 작품을 집어드는 것도 정서 순화에 도움이 되리라.​

작가는 구도 데쓰야 시리즈를 모두 네 편을 발표하고는 48세의 젊은 나이에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작품의 흥행에 상관없이(?) 꾸준히 시리즈를 내놓는 출판사의 뚝심에 격려를 보내며 숨겨졌던 주인장의 과거와 맥주바 '가나리야'란 이름의 유래가 밝혀진다는 마지막 4편인『가나리야를 아십니까』도 조만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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