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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의 살인 ㅣ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
아오사키 유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작년말, 작가의 데뷔작인『체육관의 살인』을 접했을 때의 신선한 충격과 재미를 잊지 못한다. 라이트노벨스러운 만화 표지와 젊은 무명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선입견때문에 본격 추리의 겉만 맴도는 가벼운 터치의 학원 미스터리물인줄 알았는데 웬걸 읽어보니 대박이요 진국이었다. 과연 '차세대 엘러리 퀸'이라 불릴만한 작가의 수수께끼 풀이식 정통 미스터리의 묘미을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었다.『체육관의 살인』일년 후에 내놓은『수족관의 살인』은 제14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최종 후보에 오른 작품이다.
요코하마 외곽에 자리잡은 조그만 마루미 수족관에서 돌고래 사육사가 피투성이가 된 상태로 상어 수조에 빠져 상어밥이 되는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관람객이 들끓는 백두대낮에 벌어진 대범한 범행. 당시 사건 현장 주변에 있던 열한 명의 수족관 직원들이 용의자로 좁혀졌지만 경찰은 범인 색출에 애를 먹고...결국 한 달전 가제가오카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벌어진 밀실 살인사건 (체육관의 살인)을 훌륭히 해결한 구제불능 천재 만화 오타쿠 고등학생인 우라조메 덴마에게 긴급 도움을 요청한다.
덴마는 특유의 친화력과 넉살 그리고 비상한 추리 두뇌를 앞세워 범인이 조작한 알리바이 트릭과 물리적 트릭을 밝혀내며 용의자의 범위를 좁혀나간다. 이번 작품 역시『체육관의 살인』에서 선보였던 엘러리 퀸 스타일의 소거법 추리가 여과없이 발휘된다.『체육관의 살인』에서 우산 하나로 놀라운 추리를 선보였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현장에 남아있던 양동이, 대걸레같은 수족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도구를 가지고 신들린듯한 추리를 선보인다.
이번 작품 역시 압권은 열한 명의 용의자를 불러놓고 철저한 논리에 의한 소거법으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 범인을 지목하는 라스트신이다. 하지만 시간대별 알리바이 검증과 물적 증거를 앞세운 철저히 범행 검증에 (하우던잇) 초점을 맞춘 작품인지라 사실 범인이 드러났을 때의 (후던잇) 쾌감은 떨어진다. 그만큼 작가는 수수께끼 풀이에 많은 지면을 할애할 뿐 용의자 개개인에 풍부한 캐릭터를 (범행 동기, 대인 관계 등) 부여하지는 않는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트릭이 풀리는 과정은 흥미로우나 막상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의 감흥은 크지 않다.
사건의 본질 외에도 만화 캐릭터같은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밝은 분위기의 개그 코드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덴마를 억지로 현장에 데려가다 졸지에 조수 역할을 하는 유노, 마지못해 불렀지만 경찰 체면이 말이 아닌지라 덴마가 눈엣 가시같은 센도 경부, 덴마에 의지하면서도 여동생 유노와의 관계를 의혹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유사쿠 형사 등등..
만화를 좋아하는 20대 중반의 신세대 젊은 작가답게 본격 미스터리의 진지함과 학원물의 상큼발랄함이 절묘하게 어루어진 작품이다. 역자 후기를 보니 체육관, 수족관에 이어 차기작으로『도서관의 살인』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덴마 탐정 - 유노 조수 콤비가 시리즈화되면서 그들이 과거 주변사람들과 얽힌 비밀스런 얘기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낼 조짐이다. 차기작에서는 또 어떤 기발한 트릭과 화려한 논리의 향연이 펼쳐질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