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리그
주원규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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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가 공인 기관 중 가장 파워가 막강한 곳.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가져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곳. 그래서 우두머리를 청장이 아닌 '총장'이라 부르는 곳. 정치 검사, 표적 수사 등 수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그래서 검/경 수사 분리권, 공수처 신설 등 개혁을 불러일으키는 곳. 바로 대한민국 검찰이다. 그리고 서초동에는 그 중심부인 서울 중앙지방 검찰청과 대검찰청이 있다.

『서초동 리그』는 그런 검찰의 내부 암투를 그리고 있다. 불법 펀드 조성과 뇌물 수수 등 정, 재계에 밀착한 비리 기업인인 바이오닉 기업 대표가 자살한다. 대검찰청 특수1부 부장검사는 이 사건을 이용해 검찰 내부 개혁으로 자신을 치려는 검찰총장을 제거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 하수인으로 임용 5년차 평검사가 선택된다. 아무런 배경이 없는 평검사는 자신의 안위와 출세를 위해 직속상관인 부장검사의 명을 받들어 총장 기소 작전에 돌입한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총장이 아니다. 대통령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등에 업고 법무부 장관과 결탁하여 내부 쿠데타에 제동을 가한다. 총장을 기소하는 평검사, 방어 태세에 들어가 역공을 시도하는 총장, 쿠데타를 진두지휘하는 부장검사. 희대의 기소 건에 매스컴은 연일 수많은 추측성 보도 기사를 뱉어내고... 서초동 리그의 앞날은 풍전등화 그 자체이다.

오늘날의 검찰은 그 막강한 권력으로 인해 수많은 병폐를 양산해 낸다. 괜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 개혁의 목소리가 나오는 게 아니다. 마침 다가오는 대선의 유력 주자 한 명 역시 검찰총장 출신이다. 현 정권과 대립각을 세운 그의 출마 역시 모 법무부 장관 사태가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이 소설은 그런 점에서 현 시국과 적절하게 맞물려있다. 마침 대선 정국을 앞두고 검찰 내부의 일그러진 단면을 그린 이 소설을 통해 오늘날 검찰의 존재와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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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아웃
심포 유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크로스로드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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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눈 덮인 로키산에서 악당들에 맞서 홀로 싸우는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클리프행어>라는 산악 액션 영화가 있었다. 그리고 혼자 악당들에 맞선다는 점에서 부르스 윌리스 주연의 다이하드 시리즈도 있다. 그렇다. 이 책 <화이트아웃> 은 한마디로 '설산 위의 다이하드'이다. 댐을 점령한 테러 집단에 맞서 홀로 외롭게 싸우는 댐 운전원의 고독하고 처절한 사투를 그린...

일본 최대의 저수량을 자랑하는 댐이 무장한 테러 집단에 의해 점령된다. 유일한 통로인 터널은 폭발로 붕괴되고 현지 근무자들은 인질로 잡힌다. 테러리스트들은 댐 아랫마을 주민 20여만 명의 생명을 담보로 정부에 50억 엔의 거금을 요구한다. 하지만 철두철미한 그들의 계획에도 놓친 게 한 가지 있다. 바로 댐 운전원 도가시이다.

테러리스트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벗어난 도가시는 비록 맨몸이지만 그에게는 현지 지형에 익숙하고, 댐과 발전소의 각종 기계 설비에 능통한 이점이 있다. 도가시는 등반 도중 불의의 사고로 동료를 잃은 survivor's guilt (생환자의 죄책감)를 속죄하기 위해, 그리고 방문차 왔다 인질로 잡힌 동료의 약혼녀에게 그날의 진실을 전하기 위해 고독하고 외로운 투쟁의 길에 들어선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나도 모르게 주인공 도가시에 깊이 이입된다. 악당들이 그를 처치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지만 그때마다 도가시는 뛰어난 임기응변과 강인한 정신력으로 위기를 헤쳐나간다. 특히 압권은 폭발로 인해 밀폐된 발전소에서 속옷 한 장 걸치고 방수로 물길을 이용해 극적으로 탈출하는 장면이다. 영상으로 재현했으면 보다 멋진 장면이 연출됐으리라. 또한 동료의 약혼녀를 구하기 위해 부상과 탈진에도 불구하고 라스트신에서 보여주는 집념 어린 초인적인 행동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눈 내리는 고립된 설산... 댐을 점령한 테러리스트... 교섭하는 정부 당국... 그 틈을 파고들어 적진으로 침투해 인질로 잡혀있는 동료의 약혼녀를 구하려는 주인공 도가시. 설산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거대한 스케일과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생생하고 섬세한 묘사... 쫓고 쫓기는 테러리스트와 도가시의 손에 땀을 쥐는 팽팽한 긴장감... 거기에 감동을 담은 휴먼 드라마까지... 1995년도 작품이지만 지금 읽어도 그 재미와 감동은 여전하다. 역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에 빛나는 걸작 액션 스릴러이다. 눈 내리는 이 겨울에 읽어서인지 설산에서의 그 생동감 있는 액션 하나하나가 더욱 가슴에 와닿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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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의 아이
시게마쓰 기요시 지음, 권일영 옮김 / 크로스로드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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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독특한, 독창적이고 이색적인 소설이다. 내가 이 책을 집어 든 이유가 <목요일의 아이>라는 심상치 않는 제목과 표지, 그리고 나오키상 수상 작가의 작품이라는 화려한 이력 때문이데... 읽어보니... 그래서일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자극적인 스토리에 세상과 세계를 고찰하는 작가만의 심오한 철학과 사상이 수반되어 있다.

도대체 세상의 끝은 무얼까, 왜 세상의 끝을 보고 싶을까, 그 너머에 무엇이 있길래... 세상의 끝을 보기 위해서 살인이나 자살같이 자신 또는 타인의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것인가. 이 책에서 수도 없이 언급되는 세상의 끝에 대해 작가는 심오하고 철학적인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그것이 일면 공감을 얻을 수도 있고 아니면, 한낱 공허한 궤변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그리고 그 바탕에는 집단 괴롭힘이나 따돌림 같은 학내 문제나 부모와 자식 간의 불평등한 관계 등의 가정 문제가 깔려있다.

세상의 끝을 보기 위해, 그래서 스스로 신이 되기 위해 같은 반 급우들을 발키리라는 독극물로 집단 살해한 주범 우에다, 그의 절친이자 행동파 동지인 다카기, 그런 그들에게 정신적으로 포섭되어 방황하는 하루히코, 그런 하루히코를 구해내기 위해 필사의 모험을 하는 주인공 시미즈...

책의 전반부가 7년 전 전대미문의 집단 독극물 살인사건의 소개를 시작으로 결혼으로 인해 그 지역으로 이사 온 시미즈 가족 그리고 시미즈와 의붓아들 하루히코의 서먹한 관계, 우에다의 출소를 기점으로 들려오는 흉흉한 소식들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책의 후반부는 우에다 님으로 신격화된 추종자들로 인해 벌어지는 연속된 살인을 시작으로, 두 핵심 인물인 우에다와 다카기가 전면에 등장해서 그들에게 포섭되어 선택을 강요받는 위기의 하루히코를 구하기 위한 시미즈와의 정면 대결이 펄쳐진다. 전반부가 각종 미심쩍은 사건들을 미스터리 기법으로 풀어간다면, 후반부는 그야말로 두 명의 나쁜 놈과 주인공의 물러설 수 없는 사투를 그린 사이코 액션 스릴러이다.

책을 덮으니 오묘한 기분이 몰려온다. 세상의 종말이라는 묵시록적인 메시지, 그 끝을 보려는 자, 신격화된 존재와 동조하는 세력, 그에 맞서 자식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가정을 지키려는 자... 작가가 책에서 얘기하려는 것은 궁극적으로 무엇일까...정말 오랜만에 독특한 소재의 묵직한 소설을 읽어서 잔상이 오래 남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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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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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잃은 아버지의 통렬한 복수극을 그린 학원 미스터리 <죄의 여백>의 작가 아시자와 요의 미스터리 단편집이다. 수록된 다섯 개의 단편에는 고립되고 궁지에 몰린 다섯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런 그들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어쩌다 범죄에 발을 들여놓는다. 이 책은 그 과정과 결말을 미스터리 기법으로 흥미롭게 보여준다.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단편상 후보에 오른 표제작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는 궁지에 몰린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그런 그녀가 살인을 한다. 자신의 고달픈 운명을 스스로 벗어나기 위해... 일본 지방 특유의 관습을 토대로 한 결말이 애처로움을 자아낸다.

두 번째 단편 <목격자는 없었다>의 주인공은 영업사원이다. 잘못된 전표 집계로 인해 인사 고과의 불이익을 걱정한 주인공이 스스로 은폐를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일은 걷잡을 수 없이 꼬여만 가고... 자업자득의 결과란 이런 것일까...

<고마워, 할머니>는 아역 배우로 입문해 스타를 꿈꾸는 손녀와 그 매니저 역할을 지나치게 충실히 수행하는 할머니의 관계를 그린다. 먹는 것, 하는 것등 일일이 통제하고... 결국 빗나간 어린아이의 섬뜩한 행동이 비극을 낳는다.

경찰에 체포된 언니의 범행으로부터 자신도 <언니처럼> 되지 않을까 피해 망상에 시달려 노심초사하는 여동생이 등장한다. 교묘한 서술 트릭으로 반전을 이끌어내는 기교가 일품이다.

<그림 속의 남자>는 일본 소설 특유의 괴기스럽고 그로테스크한 일면을 추리 기법으로 보여준다. 부모와 자식까지 잃고 슬럼프에 빠진 여류 화가가 남편을 살해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섯 편 모두 재미있게 읽었다. 고립되고 궁지에 몰린 주인공들... 그들의 불안정한 심리와 위기를 타개해나가는 과정... 하지만 사소한 계기의 악재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마침내 가공할 범죄로 이어지고... 그 이면에는 보편적인 관점을 뒤엎는 예측불허의 섬찟한 동기가 숨어있다. 작가는 암시적이고 함축적인 문체로 독자가 한 번쯤은 머리를 쓰고 생각하게끔 한다. 무척 독특하고 색다른 분위기의 소설인지라 한동안 생각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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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윌리엄 브리튼 지음, 배지은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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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스의 코넌 도일을 시작으로 퀸, 카, 체스터턴, 크리스티, 반 다인 등등... 서양 고전 추리소설, 일명 '클래식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나에게 반갑고 재미난 책이 출간됐다. 바로 미국 고등학교 영어 교사이자 작가인 윌리엄 브리튼이 추리소설 거장과 명탐정을 모티브로 발표한 미스터리 단편집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이다. 이 책에는 작가가 1965년부터 1983년까지 <EQMM>에 발표한 시리즈 열한 편 전편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고등학교 과학 교사의 유쾌한 일상 미스터리를 다룬 '스트랭 씨 이야기'도 다섯 편 실려있다.

먼저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열한 편을 간략히 소개하면,

'밀실의 제왕' 존 딕슨 카도 울고 갈 완벽한 밀실 살인을 계획하는 <존 딕슨 카를 읽은 남자>

사소한 단서로부터 연역 추리로 사건을 해결하는 엘러리 퀸의 열혈 독자가 활약하는 <엘러리 퀸을 읽은 남자>

아내를 잃은 남자의 기막힌 복수극을 그린 <읽지 않은 남자>

네로 울프만큼 뚱뚱한 여자가 서커스단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렉스 스타우트를 읽은 여자>

에르퀼 푸와로의 상징인 팔자 콧수염을 재치있게 적용한 <애거사 크리스티를 읽은 소년>

셜록 홈스의 숨겨진 암호를 해독하는 <아서 코넌 도일을 읽은 남자>

현대판 브라운 신부의 재림을 보는 듯한 <체스터턴을 읽은 남자>

도서관의 숨겨진 희귀본을 추적하는 <대실 해밋을 읽은 남자>

매그레 경감 같은 예리한 눈썰미가 빛을 발하는 <조르주 심농을 읽은 남자>

다잉 메시지로부터 범인을 추적하는 <존 크리시를 읽은 소녀>

흑거미 클럽 후예가 금고 비밀번호를 풀어내는 <아이작 아시모프를 읽은 남자들>

거기에 과학 교사의 유쾌한 일상 미스터리를 다룬 '스트랭 씨 이야기'도 다섯 편 실려있는데 이게 또 물건이다. 단순히 가벼운 코지 미스터리 계열인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절도, 강도, 마약범 등 강력 사건이 등장하고 이야기도 제법 무게감이 있다. 스트랭 씨는 과학적 분석과 날카로운 추리로 강도 사건의 누명을 쓴 제자, 성추행범으로 몰린 동료 교사, 박물관 절도범으로 몰린 학생 등 곤경에 처한 주변인을 위기에서 구해주거나 경찰을 도와 마약범을 체포한다. 다섯 편의 스트랭 씨 이야기도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시리즈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다.

수록된 단편 대부분이 빼어난 수작들이다. 사건은 흥미진진하고 추리는 명쾌하다. 거기에 유명 추리작가와 명탐정을 소환해서 회상하는 보너스까지...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그래서 만족감 최고이다. 아마도 올해 읽은 최고의 추리소설이 아닐까 싶다. 처음엔 시리즈를 달랑 열한 편만 집필한 작가를 원망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이 정도 완성도 높은 단편을 열한 편이나 발표한 작가의 능력이 새삼 놀랍다. 그만큼 뛰어난 미스터리 단편집이다.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는 클래식 미스터리 즉, 서양 고전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그야말로 축복 어린 선물이다. 이 책을 통해 단편의 미학은 기본이고, 정통 추리소설에 대한 향수, 미스터리 거장과 명탐정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시대적 낭만과 해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이런 걸작 추리 단편집을 만나서 너무나 기쁘고, 서양 고전 추리소설 팬이라면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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