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묘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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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흑묘관의 살인』은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시리즈 1기를 마감하는 작품입니다. 『십각관의 살인』(1987년)으로 시작한 관시리즈는 수차관(1988) → 미로관(1988) → 인형관(1989) → 시계관(1991)(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 → 흑묘관(1992)으로 1기를 마감하고 12년이 흘러 암흑관(2004) → 깜찍관(2006) → 기면관(2011)의 2기로 이어집니다. 

 

저는 몇년전 구립도서관에서 다 헤져서 너덜너덜해진 학산판 흑묘관을 빌려와 읽었습니다. 책 모서리는 쥐가 갉아먹은 듯 삭아있고 온통 투명테이프로 땜빵한 겉표지에 속은 연필로 마구 낙서가 된 그러한 책으로 읽어서인지 그당시에는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빳빳한 한스미디어판 새 책으로 읽으니 기분이 업되는지라 책에 대한 평가와 만족도가 완전히 달라지네요.

 

『흑묘관~』은 불의의 사고로 기억을 잃은 흑묘관 관리인이 1년전 겪은 끔찍한 체험을 기록한 수기와 그 수기를 입수한 주인공 시시야 작가(겸 탐정)와 담당 편집자가 수기의 진위를 추적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기존의 대다수 관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교차 시점으로 진행되고요. 물론 그 공통분모에는 관시리즈의 숨은 주역인 전설적인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등장합니다.

 

단순히 시간순 나열이 아닌 사건의 경중과 독자의 흥미를 따져 일의 순서를 효율적으로 재배치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구성이 탁월합니다. 수기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한 편의 잘 짜여진 서스펜스를 보는 듯하고 주인공과 파트너가 흑묘관의 숨겨진 진실을 추적해가는 과정에서는 정통 추리소설의 묘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흑묘관은 기존의 관시리즈와는 조금 성격이 다릅니다. 먼저 발표된 십각관, 수차관, 시계관, 미로관등이 각각의 관이 지니는 특수한 구조속에 범인이 사용한 트릭을 밝혀내 진범을 찾는 정통 추리소설 형식이었다면 이 책 흑묘관에서는 조금은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책에 사용된 메인 트릭을 통해서 말이죠.

 

제가 좋아하는 트릭은 『시계관의 살인』에서의 트릭입니다. 십각관이나 수차관, 미로관에서 다소 평범한(?) 트릭이 사용되었다면 시계관에서 트릭을 접했을 때 '이게 바로 일본 추리소설과 유키토의 관시리즈에서만 볼 수 있는 트릭의 정수야."라고 감탄했지요.

 

하지만 흑묘관의 트릭은 시계관의 그것을 가볍게 뛰어넘습니다. 아마도 관시리즈 역사상 최대의 트릭이라 할 수 있겠네요. (암흑관도 만만치 않죠 ^^) 작가는 1기를 마감하는 작품에서 '어디 한번 맞혀봐라' 하는 심정으로 작가가 구상할 수 있는 착상의 최대치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바로 이 트릭의 수용 여하에 따라 독자의 책에 대한 평가 및 만족도가 달라질 것 같습니다.

 

관시리즈 특유의 음습한 분위기와 전방위적으로 다양하게 깔려있는 복선들, 수기의 진실과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추리적 재미는 물론이고 그것을 훌쩍 뛰어 넘는 작가가 창조한 독특한 세계가 잘 그려진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인형관의 살인』 역시 예전에 다 헤진 학산판으로 읽어서 별 감흥이 없었는데 조만간 새 책으로 출시된다고 하니 또 어떤 새로운 느낌을 맛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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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도조 겐야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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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괴담에 호러적 색채의 본격 미스터리라는 신선한 장르적 재미를 선사한 미쓰다 신조의 '방랑환상소설가 도조 겐야 시리즈'의 첫 출발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에 이어서 『잘린머리처럼 불길한 것』, 『산마처럼 비웃는 것』등이 발표됐지만 국내 출시는 이 책이 제일 늦다.

 

책은 국내 기출시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30명이 넘는 엄청난 등장인물에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가계도, 마귀촌이라 불리는 가가구시촌의 역사와 유래, 흑과 백으로 대립되는 가미구시가(큰신집)와 가가치가(윗집) 두 가문, 거기서 분가한 가운데집, 아랫집, 새신집등과의 힘과 견제의 역학 관계, 염매와 허수아비님으로 대표되는 가가구시촌 고유의 민속 괴담 등 책 초반부터 수많은 이야기거리가 독자의 넋을 뺀다.

 

거기에 여자 쌍둥이로 태어나 '사기리'라는 이름의 무녀와 혼령받이로 자라나는 아이들, 실종된 아이, 이혼과 재혼을 거듭하는 어른들, 정체불명의 하인과 수행자 등 등장인물의 구성 역시 상당히 복잡해서 정신 바짝차리지 않으면 책의 흐름을 놓치기 쉽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가계도 들여다보랴, 마을 지형도 살피랴 정신이 없다.  

 

책은 3인칭 작가 시점, 도조 겐야의 취재 노트, 사기리 6과  렌자부로의 수기로 번갈아 전개되는데 이게 화자의 시점을 달리한다는 신선한 맛과 나름의 복선을 깐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일관성있는 호흡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또한 지요의 혼령 든 얘기, 사기리 6이 히센천에서 겪은 괴이한 체험, 렌자부로가 형과 구구산에서 벌어진 불가사의한 일등 초반부터 독자를 오싹하게 만드는 흥미진진한 얘기들이 줄을 잇지만 정작 (독자가 기다리는) 살인사건은 240쪽 정도 지나야 발생한다. 그리고는 연쇄살인사건이 봇물터지듯 터져 독자의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데...사건을 효율적으로 균등히 배치했으면 더 재밌는 소설이 되지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일견 자살 또는 타살로도 보일 수 있는, 입에 기이한 물건을 머금은 채 삿갓에 도롱이 차림의 허수아비님 형상으로 죽은 의문의 살인사건들을 풀어내는 도조 겐야의 추리가 빛을 발하고 그 와중에 진범의 정체가 여러 번 바뀌는 반전이 일어난다. 하지만 밀실트릭, 독살사건, 오갈데 없는 길에서 사라진 범인 등 독자의 호기심을 잔뜩 불러일으킨 사건의 정황들에 비해 밝혀지는 진상은 조금 단순하고 허탈한 감이 있다. 트릭과 반전 요소등도 전작 『잘린머리~』나 『산마~』에는 다소 못미치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 책이 도조 겐야 시리즈의 첫 작품임을 명심할 것. 민속 괴담을 이용한 작가 특유의 으스스한 분위기에 독자의 정신을 쏙 빼놓는 추리적 재미는 충분히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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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자동차 - 자동차 저널리스트 신동헌의 낭만 자동차 리포트
신동헌 지음 / 세미콜론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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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헌 자동차 저널리스트의 자동차에 관한 리포트 겸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모터바이크 기자 생활을 시작으로 모터스포츠 담당 기자를 거쳐 '조이라이드'라는 네이버 파워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이 책은 자동차에 관한 단순한 지식 나열이 아니라 작가의 주관적인 견해가 개입된 개인적인 에세이이다.

 

먼저 여는 글에서 저자는 '남성이 차를 좋아하는 이유'를 재미나게 설명한다. "강력한 힘을 추구하는 원초적인 욕망, 사냥감을 쫓아야하는 생존본능, 여체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곡선등이 인간 수컷이 바퀴 네 개 달린 물건에 정신을 뺏기는 이유"라고 말한다. 같은 남자로서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이다.

 

책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2,3,4부는 보고 즐기는 섹션으로 명차와 슈퍼카 소개에 이어 유명 자동차 경주 및 관련 산업체 견학과 취재, 시승기등 저자의 해외 체험을 그렸고 1,5,6부는 배우고 느끼는 섹션으로 국산차와 해외차를 바라보는 저자의 솔직한 단상을 시작으로 차 구입부터 유지, 관리 요령까지 일반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다.

 

일단 저자는 국산차에 별로 안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아니 극도로 혐오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관련 기사도 쓰지않는다고 한다. 저자는 국산차가 철학과 꿈이 없다고 쓴소리를 내뱉는다. 그러면서 단순히 일제차를 베껴서 생산한 역사, 내수용과 수출용의 차이 등 국산차 산업의 문제점을 기탄없이 꼬집는다. (저자는 생애 첫 차인 BMW 320i를 시작으로 렉서스, 폭스바겐 골프, BMW 3시리즈를 탄다.)

 

저자의 견해와 주장에 일부 눈쌀이 지푸려지기도 하지만 해박한 이론과 분석을 앞세운 전문가의 말에 딱히 반박의 논리를 찾지는 못하겠다. 단순히 외제차는 유지 관리비 포함 무조건 비싸다는 편향된 시각과 맹목적인 국산차 선호에 대한 관점이 저자의 말에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생각할거리를 던져줌에는 틀림없다.

 

2부와 3부는 명차와 슈퍼카 섹션으로 길가다 나도 모르게 멈춰서서 침흘리고 바라보던, 또는 뉴스의 국제모터쇼등에서나 볼 수 있는 호화로운 고급 외제차들, 예를 들어, 캐딜락, BMW, 벤츠, 벤틀리같은 명품차들로부터 포르쉐, 람보르기니, 페라리 같은 슈퍼카들이 줄줄이 소개된다. 마치 살아움직일듯한 선명한 사진들과 저자의 생생한 시승기에 눈이 즐겁고 몸이 반응을 한다. 그간 언감생심으로 바라봤던 입이 떡~ 벌어지는 값비싼 외제차들을 맘껏 눈요기하고 대리만족을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4부에서는 영국의 벤틀리 공장과 독일의 벤츠 박물관 견학, 영암에서 열린 F1 레이스, 프랑스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 스웨덴의 볼보 아이스 드라이빙, 아프리카 나미비아 8일간의 BMW 투어, 핀란드의 아우디 설원 레이스, 스웨덴의 볼보 아이스 드라이빙 등 저자의 다양한 해외 체험(취재 및 시승기)을 보여준다. 차를 진정 사랑하고 자동차 저널리스트로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저자가 한껏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5부와 6부에서는 자동차를 선택하고 유지 관리하는 법, 여성에게 좋은 차등 자동차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재미있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부록에 나와있는 엔진 기통별, 자동차 유형별, 굴림 방식의 유형과 특징등 자동차 관련 상식도 두고두고 알아두면 좋은 지식들이다.  

 

자동차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차에 대한 관심과 친밀감을 갖게하고,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전문적인 지식과 시야를 갖게해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그저 형편에 맞게 일부 대중적인 국산차에만 관심있던 나에게 보다 다양한 자동차 세계를 알게해준 지침서같은 책이었다. 생각날때 한 번씩 꺼내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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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 잔혹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김봉석의 하드보일드 소설 탐험 1
김봉석 지음 / 예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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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평론가이자 영화평론가인 김봉석씨가 쓴 개인 서평집입니다. 개인의 서평집을 읽는 것은 작고한 물만두 님의 『물만두의 추리책방』이후로 두 번째네요. 사실 개인의 서평집을 읽을땐 약간의 모험이 따릅니다. 일단 저와 저자 사이에 어느 정도 작품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않고 취향이나 가치관등에서 괴리감이 존재한다면 그 서평집을 읽는 저 역시 썩 유쾌하지만은 않겠지요. 

 

이 책에는 저자가 읽은 장르소설 총 38편의 서평이 실려 있습니다. 『불야성』,『붉은 수확』,『아웃』같이 책 제목에 걸맞는 하드보일드 작품들로부터 『탄착점』, 『스노우맨』, 『워치맨』, 『본콜렉터』같은 최신 영미권 추리/스릴러물 그리고 『우부메의 여름』,『고백』,『짐승의 길』,『조화의 꿀』,『제노사이드』같은 최신 일본 미스터리까지. 제가 세어보니 이중에서 정확히 50%, 19편을 읽었네요^^.

 

책을 읽어보니 확실히 전문가의 서평답게 수록된 38편의 소설속 주인공의 심층적인 캐릭터 분석을 통해 책이 쓰여진 배경, 책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등을 밀도있고 친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저자는 단순 서평에 그치지않고 작가가 책을 통해 독자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하는데 많은 애를 씁니다. 근데 여기에 그치지않고 38편의 다양한 서평속에는 한 가지 일관된 기조가 흐르고 있습니다. 바로 저자가 이 서평집을 통해 독자에게 전하려는 메세지, 바로 하드보일드의 세계와 정신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를 상당히 비관적, 부정적, 냉소적인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저자가 바라보는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도 친절하지도 않습니다. 고난과 역경에 처해도 누구 하나 손을 내밀지 않습니다. 그만큼 비정하고 냉정합니다. 그러한 철저히 고립된 비정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오로지 믿을건 자기 자신뿐이라고 역설합니다.

 

풀어 말하면, 바로 이러한 비정하고 냉정한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혼자 힘으로 갖은 역경과 고난을 꿋꿋하게 헤쳐나가는 것이야말로 하드보일드 정신, 하드보일드의 힘이라고 말합니다. 누구하나 믿을 이 없는 이 고독한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하드보일드의 정신과 힘을 일깨워주는 지침서 같은 얘기죠. 그러면서 저자는 소개하는 38편의 소설을 통해 코너에 몰린 약자인 주인공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기지와 힘으로 그러한 온갖 난관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서평집은 장르소설을 단순히 표피적으로, 엔터테인먼트적 재미로만 읽는 저에게 장르소설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와 너른 통찰력을 가르쳐 줍니다. 확실히 '아는만큼 보인다'고 많이 알아야 그만큼 훌륭한 서평이 나오나 봅니다. 제일 인상깊은 구절은 바로 책 날개의 저자 소개에 있습니다. "주로 좋아하는 것을 읽고 보고 들으며, 가급적 좋아하는 것에 대해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이 얼마나 멋지고 당당한 삶일까요. 이게 바로 현사회를 생존해가는 저자만의 고유한 하드보일드 정신, 하드보일드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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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추리소설 걸작선 2 한국추리소설 걸작선 2
곽재동 외 지음, 한국추리작가협회 엮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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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한국추리문학사를 집대성한 단편 모음집입니다. 2권에는 특히 한국추리작가협회 소속 젊은 작가들의 대표작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750쪽의 두툼한 분량에 본격추리, 범죄물, 서스펜스(스릴러)등 22편의 다양한 소재와 장르의 국내 미스터리 단편들이 들어있고 부록으로 한국추리작가협회 역사 및 각종 수상작 소개 그리고 작품 해설이 뒤를 잇습니다. 마침 금년 한국추리작가협회 주최의 '2012년 여름추리소설학교'에서 만나뵌 작가분들의 작품이 많아서인지 더욱 책에 애정이 가는군요. 개인적인 간단평입니다. 

 

안락사』(곽재동) 옆집에 이사온 할머니가 고급 도자기의 처분과 함께 자신의 안락사를 도와달라고 요청하는데....사기 범죄자와 할머니의 치열한 두뇌 싸움이 볼만한 수

 

그대 안의 악마』(김연) 외딴 별장에서 벌어진 광란의 파티속에 벌어진 살인 그리고 저택이 갖는 어두운 역사가 음습하게 드리우진 섬뜩한 공포 추리물. 수작.

 

『체류』(한이) 소식이 끊긴 베트남 여성 노동자의 행방을 추적하는 여정을 통해 불법 외국인 체류자의 문제점을 추리적 기법으로 짚어보는 드라마.

 

『오리엔트 히트-스푼 메이커스 다이아몬드』(김재희) 터키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도난당한 다이아몬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첩보 스릴러물. 작가의 초기작인지 구성, 전개, 억지스러운 반전등 모든 것이 아쉽다. 본격추리물인『명품탐정 김고로』시리즈에 기대를 해본다.

 

『알리바바의 알리바이와 불가사리한 불가사의』(이대환) 마치 김내성의 걸작『타원형의 거울』을 보는 듯한 소설 구조속에 밀실 트릭 퀴즈를 다룬 본격추리물. 구성과 전개는 참신하고 흥미로우나 해결의 논리성에는 의문이 든다. 두 가지 해답이 제시됐는데 판단은 독자의 몫.

 

『흙의 살인』(정명섭) 황궁에 쓰이는 기와를 만드는 와공장에서 기와 장인이 대들보에 목매달린 시신으로 발견되자 고구려 을지문덕이 범인 찾기에 나서는데...인간의 탐욕이 빛어낸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본격 역사 추리물. 수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설인효) 길이 끊기고 폭우가 쏟아지는, 조명 하나없이 칠흙같이 어두운 버려진 산장에 비를 피해 삼삼오오 모여든 등산객들...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숨막히는 공포의 서스펜스. 수작.

 

『아내마저 사기 친 남자』(최종철) 사기꾼, 애인, 섹스, 질투, 다이아몬드등이 등장하는 통속적인 소재와 줄거리의 범죄 수사 드라마.

 

『마지막 장난』(박하익) 장난질을 좋아하는 대학생 세 명이 일생일대의 커다란 장난을 준비하는데...마치 기리오 나쓰오의 『아웃』을 보는듯한 스릴러. 반전을 위한 후반부의 다소 억지스러운 전개가 흠.

 

『목 없는 인디언』(김재성) 현직 치과원장인 작가가 교환교수 시절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 여성의 돌고도는 불운한 운명을 차분하게 그려낸 심리 스릴러. 명탐정 월셔 홈즈와 조수인 치과의사 라왓슨 콤비가 활약하는 본격 추리물인 『노끈』과『유령 여기자』를 추천한다.

 

 『사랑합니다, 고객님』(송시우) 무리한 환불을 요구하는 한 여성 고객의 진상짓에 화가 난 텔리마케터가 직접 고객 집을 찾아가 담판에 돌입하는데....생각치 못한 반전이 기다리는 서스펜스물. 코믹 수사물인『5층 여자』와 호러적 색채에 오싹한 여운을 주는 심리 스릴러『아이의 뼈』를 추천한다.

  

『다이어트 클럽』(최지수) 고도비만으로 항시 남편에게 구박받던 부인이 신종 다이어트 클럽에 등록한 뒤 어느날 몰라보게 날씬한 모습으로 귀가한다. 하지만 그리고는 계속해서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는데...스토리, 긴장감, 몰입감, 서스펜스, 마지막 반전등 나무랄데 없는 수작 스릴러.

 

『그들의 시선』(신재형) 범죄 전문 기자 출신 작가답게 사건 현장의 리얼리티가 생생히 살아있다. 작가 특유의 거친 말투와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범죄 수사물. 다소 매끄럽지 못한 전개는 작가의 장편『흔한 일들』에서 말끔히 해결된다.

 

『탈출』(김주동) 학창시절 짱이었던 동창 친구가 감옥에서 출소한 뒤 주인공에게 접근하고 급기야는 마음이 떠나간 와이프에게까지 눈독을 들이는데...꼬봉이었던 주인공은 이 두 위기를 어떻게 슬기롭게 '탈출'할 것인가...인간의 이기심과 인간성의 한계를 여과없이 보여주는 액션 스릴러.

 

『선택』(도진기) 폭우가 몰아치는 밤, 칠흙같이 어두운 고속도로에서 운전중 왼손 손목을 메스로 긋고 어린 딸과 함께 가드레일을 뚫고 벼랑으로 추란사한 여성 외과의사...사건은 자살인가, 타살인가 아니면 사고사인가...자살로 결론지은 경찰과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보험회사를 상대로 여변호사는 진상 파악에 나서는데...현직 판사답게 법률에 관한 전문적인 식견과 날카로운 추리가 빛을 발하는 수작. 

 

『빛이 닿지 않는 세계의 남자』(정혁) 동창이 운영하는 카페에 하루 간격으로 이혼한 부부가 찾아와 그들이 겪은 이상한 일과 서로에 대한 사랑의 관점에 대해 얘기하는데...몽환적이고 감성적인 미스터리

 

『세 번째 표적』(장세연) 30대 건장한 남성들이 동일한 아파트에서 얼굴에 총을 맞는 엽기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는데...초반부의 흡입력있는 전개와는 달리 치정 드라마 스타일의 통속적인 결말로 마무리되어 아쉽다.

 

『여자는 한 번 승부한다』(김남) 애인을 죽인 남자가 부인을 설득해 사체 은닉을 시도하는데...반전이 돋보이는 서스펜스 드라마. 예전에 <한국 서스펜스 걸작선>에『한 남자와 두 여자』로 발표된 작품의 후반부 내용을 정서적인(?) 이유로 각색한 작품이 아닌지 궁금하다.

 

 『살인의 가치』(이승영)  조직의 손아귀에서 탈출하려는 한 여인과 그녀를 사랑하게된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스토리가 담긴 스릴러물. 등장인물의 시점을 달리한 독특한 구성이 이야기에 긴장감을 불어넣어준다. 수작.

 

『그녀는 알고 있다』(손선영) 11년차 소설가 남편은 사회적 성공 가도를 달리는 부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고, 결국 세 명의 외도 상대남을 찾아 응징에 들어가는데...다중 인격의 충격적인 반전이 돋보이는 수작.

 

『포인트』(조동신) 원룸텔에서 벌어진 전직 사형집행수 밀실살인사건. 도서관 사서 탐정과 여형사가 25년전 사건을 연계시켜 범인의 동기와 수법을 찾아 나서는데...사형제도의 진지한 고찰이 돋보이는 본격 추리물. 수작 

 

『B사감 하늘을 날다』(홍성호) 까탈스런 기숙사 사감 언니를 수면제로 잠재운 뒤 예약된 호텔과 클럽에서 광란의 밤을 보내고 복귀한 여대생 4명을 기다리는 건 싸늘한 사감 언니의 주검 뿐...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젊은 세태의 놀이문화에 현대 문명의 물리적 트릭을 덧붙인 신세대 본격 추리물. 수작.

 

작가 개개인의 강한 개성이 묻어나는 다양한 소재와 장르의 추리 단편 22편을 그야말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일단 책 전체의 만족감이 무척 뛰어납니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수록된 작품들은 모두 (처음 발표되는 작품들이 아니라) 한국추리작가협회 기관지인 <계간 미스터리>나 매년 출간되는 '올해의 추리소설', 황금가지의 <한국 추리 스릴러 걸작선>, 한스미디어의 <12인 12색>등 각종 단행본등을 통해 기발표된 작품들中에서 재미와 완성도면에서 검증받은 작품들만 추려모은 것이니까요.

 

많은 수작들중에서 개인적으로는, 전문가적 식견과 날카로운 추리, 따스한 모성애가 빛을 발하는『선택』과 사형제도를 되짚어보는 본격추리물인『포인트』를 '최우수작'으로, 독창적인 소재와 흥미로운 전개, 뛰어난 반전이 돋보인 『다이어트 클럽』과 본격 추리에 공포와 서스펜스를 적절히 가미한 『그대안의 악마』를 '우수작'으로 뽑고 싶네요. 

 

단지 아쉬운 점은, 대부분의 단편들이 치정, 원한, 금품같은 인간 관계나 그 주변 환경으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을 추리적 기법으로 승화한 서스펜스(스릴러)물이 주류를 이루는 반면, 트릭과 반전 그리고 범인 맞히기의 재미가 들어있는 본격 추리물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입니다. 김재성 작가님 같은 경우 『노끈』같이 훌륭한 본격 추리 단편이 실리지 않은게 아쉽구요. 본격 추리물이 더욱 많이 발표되고 실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저로서는 '올해 제가 읽은 최고의 추리소설'로 꼽고 싶습니다. 영미권이나 일미쪽에서 추리 대작이 뜸한 지금 이 정도 분량의 재미와 만족도를 주는 책은 사실 찾기가 쉽지 않거든요. 두고두고 생각날 때 꺼내서 곶감 빼먹듯 한 편 한 편 재독해 보는 소장가치 역시 뛰어나고요. 한국 추리소설의 트렌드와 현주소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며 수록된 작가분들 모두 뛰어난 장편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만점을 주고 싶으나 본격 추리물이 다소 적어 아쉽지만 별 반 개를 뺍니다. 별 네 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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