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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묘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흑묘관의 살인』은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시리즈 1기를 마감하는 작품입니다. 『십각관의 살인』(1987년)으로 시작한 관시리즈는 수차관(1988) → 미로관(1988) → 인형관(1989) → 시계관(1991)(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 → 흑묘관(1992)으로 1기를 마감하고 12년이 흘러 암흑관(2004) → 깜찍관(2006) → 기면관(2011)의 2기로 이어집니다.
저는 몇년전 구립도서관에서 다 헤져서 너덜너덜해진 학산판 흑묘관을 빌려와 읽었습니다. 책 모서리는 쥐가 갉아먹은 듯 삭아있고 온통 투명테이프로 땜빵한 겉표지에 속은 연필로 마구 낙서가 된 그러한 책으로 읽어서인지 그당시에는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빳빳한 한스미디어판 새 책으로 읽으니 기분이 업되는지라 책에 대한 평가와 만족도가 완전히 달라지네요.
『흑묘관~』은 불의의 사고로 기억을 잃은 흑묘관 관리인이 1년전 겪은 끔찍한 체험을 기록한 수기와 그 수기를 입수한 주인공 시시야 작가(겸 탐정)와 담당 편집자가 수기의 진위를 추적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기존의 대다수 관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교차 시점으로 진행되고요. 물론 그 공통분모에는 관시리즈의 숨은 주역인 전설적인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등장합니다.
단순히 시간순 나열이 아닌 사건의 경중과 독자의 흥미를 따져 일의 순서를 효율적으로 재배치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구성이 탁월합니다. 수기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한 편의 잘 짜여진 서스펜스를 보는 듯하고 주인공과 파트너가 흑묘관의 숨겨진 진실을 추적해가는 과정에서는 정통 추리소설의 묘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흑묘관은 기존의 관시리즈와는 조금 성격이 다릅니다. 먼저 발표된 십각관, 수차관, 시계관, 미로관등이 각각의 관이 지니는 특수한 구조속에 범인이 사용한 트릭을 밝혀내 진범을 찾는 정통 추리소설 형식이었다면 이 책 흑묘관에서는 조금은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책에 사용된 메인 트릭을 통해서 말이죠.
제가 좋아하는 트릭은 『시계관의 살인』에서의 트릭입니다. 십각관이나 수차관, 미로관에서 다소 평범한(?) 트릭이 사용되었다면 시계관에서 트릭을 접했을 때 '이게 바로 일본 추리소설과 유키토의 관시리즈에서만 볼 수 있는 트릭의 정수야."라고 감탄했지요.
하지만 흑묘관의 트릭은 시계관의 그것을 가볍게 뛰어넘습니다. 아마도 관시리즈 역사상 최대의 트릭이라 할 수 있겠네요. (암흑관도 만만치 않죠 ^^) 작가는 1기를 마감하는 작품에서 '어디 한번 맞혀봐라' 하는 심정으로 작가가 구상할 수 있는 착상의 최대치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바로 이 트릭의 수용 여하에 따라 독자의 책에 대한 평가 및 만족도가 달라질 것 같습니다.
관시리즈 특유의 음습한 분위기와 전방위적으로 다양하게 깔려있는 복선들, 수기의 진실과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추리적 재미는 물론이고 그것을 훌쩍 뛰어 넘는 작가가 창조한 독특한 세계가 잘 그려진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인형관의 살인』 역시 예전에 다 헤진 학산판으로 읽어서 별 감흥이 없었는데 조만간 새 책으로 출시된다고 하니 또 어떤 새로운 느낌을 맛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