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리틀 선생의 바다 여행 네버랜드 클래식 27
휴 로프팅 지음, 소냐 라무트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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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친구 둘리틀 선생님께.

 

이곳은 겨울이 흔적없이 지나가려다 아쉬운지 차가운 칼바람으로 심통을 부리는 하루가 계속 되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랍니다. 아, 한국에서도 강원도, 그곳에서도 더 작은 그런 곳이랍니다. 이곳을 둘리틀 선생님께서 좋아하실거란 생각을 한답니다. 이곳에는 선생님이 본적없는 독특한 동물들이 많이 있거든요. 물론 아직 제가 보지 못한 동물들을 포함해서 말이지요.

 

아, 인사를 빼먹었네요. (가끔 선생님께서 그러시는 것처럼 말예요. 아, 절대 흉은 아니랍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알게 된 건 선생님이 쓰신 바다여행이란 책을 통해서랍니다. 그 책을 읽고 제가 선생님을 전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닥터 두리틀'이란 영화에서 봤더라구요. 그 영화 속 주인공과 선생님은 외모는 많이 다르지만 (선생님도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선생님보다는 아주 조금 영화 속 주인공 에디 머피가 잘 생겼더라구요. 아주 조금 말이예요.) 동물의 말을 알아듣고 동물을 치료해주는 건 똑같더라구요. 그래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낯설지 않았나봐요.

 

선생님의 바다여행 이야기를 읽는 동안 저는 선생님 같은 분을 내내 기다리고 찾아 헤매던 어린시절이 떠올랐어요. 현재 저희집에는 누렁이라는 강아지(실은 벌써 5살이랍니다.)가 한마리 사는데 어릴때는 기르던 강아지들이 6개월을 못 넘기고 죽어갔어요.쥐약을 먹고 죽은 강아지가 있어 목을 매어 놓으면 아파서 죽고 아파서 죽은 강아지가 있어 잡종임에도 예방접종을 해주면 까닭없이 죽어갔답니다. 그러기를 3~4번이 넘어가자 집 옆에 있는 계단에는 강아지들의 무덤이 되어가고 오빠와 저의 눈은 6개월 단위로 눈물로 가득찼답니다. 그때마다 오빠와 저의 빌었던 소원은 강아지들과 말이 통하면 얼마나 좋을까였어요. 이번에는 잘 자랄거란 마음으로 이웃들 집에서 얻어온 가아지가 까닭없이 죽어갈 때면 너무 미안해서 묻어주는 내내 미안하다고 마음으로 사과했답니다. 지금도 참 미안해요. 

 

그때 저는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정말로요. 동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만 있다면 저희집에서 아파하는 강아지들이 왜 아픈지를 알고 치료해 줄 수 있을테니까요. 그래서 선생님의 조수가 된 토미 스터빈스가 너무 부러웠어요. 토미는 집이 가난해 학교도 갈 수 없었지만 대신 선생님의 조수가 되어 동물들과도 친해지고 동물의 말도 배울 수 있었잖아요. 하지만 가장 부러웠던 건 역시 바다뱀이라고 불리는 바다유리달팽이를 타고 바닷속을 여행한 거랍니다. 실은 전 그 부분이 가장 재밌었어요. 선생님이 이야기 중에서 바다 여행이야기가 많았더라면 하고 얼마나 바랬는지 몰라요.

 

선생님도 알고 있으시죠? 바다로 떠나기 전까지 이야기가 너무 길었다는 것을요. 사실 저는 그때 하품을 한번, 딱 한번 했었답니다. 바다로 떠나 긴화살을 찾을 때는 재밌었어요. 선생님이 왕이 된 것도 신기했답니다. 저는 정말 선생님이 왕으로 눌러 앉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그럼 선생님 집에 사는 동물들은 어떡해요. 그 동물들은 선생님을 목이 빠져라 기다릴텐데 말에요. 제가 선생님이 저희 집 앞바다에 바다유리달팽이를 타고 나타나길 바라는 것처럼요. 선생님 그때는 꼭 바다유리달팽이를 타고 여행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주세요! 그 부분이 가장 재밌었는데 그 부분 이야기가 너무 짧아 아쉬웠어요. 아셨죠?!

 

동물들과 선생님 그리고 토미, 긴화살이 만들어가는 우정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어쩌면 저도 동물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동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도 있겠구나라고요. 동물의 말은 마음이 먼저 통해야 하는거 맞죠? 동물들의 마음을 헤아리도록 앞으로 더 노력해야 겠어요.

 

둘리틀 선생님.

선생님의 이야기로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답니다. 감사드려요.

선생님, 만약 이 편지를 받으실 때 한가하시다면, 아주 약간이라도 시간이 나신다면 이곳으로 놀러와 주시겠어요? 바다유리달팽이를 타고요. 부탁드려요.

그럼 선생님 다시 뵐 때까지 동물들과 토미랑 잘 지내세요.

 

추신.

선생님, 치치는 우리 마을에서 돌아다니기에는 눈에 띠는 동물이니(이곳에서는 원숭이가 흔치 않답니다) 예쁜 원피스를 입어서 데려와 주세요. 꼭 데려오신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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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훔쳐보는 선생님 일기
문현식 지음, 홍윤표 그림 / 철수와영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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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가장 하기 싫었던 방학숙제는? 단연코 매일 일기쓰기! 초등학교 다닐 때 싫어할 수 밖에 없었던 선생님은? 일기에 답해주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10줄이상 쓰라고 시키시는 선생님! 하지만 가장 아련하고 예쁜 기억으로 남은 숙제는 일기쓰기였고 가장 좋아했던 선생님은 내가 쓴 일기에 매번 답글을 달아주시던 선생님이셨다.

 

일기쓰기를 싫어하는 것은 내가 어린이였을 때나 요즘 아이들이나 같은 것 같다. 아이들은 하기 싫은 방학숙제가 무엇이냐는 내 말에 일기쓰기라고 답했다. 그래도 요즘은 아이들이 바빠서 일기쓰기도 내 경우처럼 매일 쓰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에 두번만 쓰면 된다고 한다. 내 경우를 들어서 너희들은 참 좋은 학교 다니는 거라고 말해줘도 아이들은 일기의 고달픔을 학교 선생님께서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아이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 생겼다. 바로 <엄마가 훔쳐보는 선생님 일기>이다. 얘들아! 선생님도 일기 쓴단다. 그것도 반 아이들 한명 한명에게!

 

#어떤 책이야?!

<엄마가 훔쳐보는 선생님 일기>는 문현식 선생님께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아이들의 일기를 읽으며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유쾌하게 때로는 가슴 뭉클하게 적어놓은 글이다. 초등학교 2학년을 가르칠 때의 일기라 아이들의 풋풋함이 뭍어나고 순수한 아이들의 일기를 보며 내 어린시절이 절로 떠오르기도 한다. 아이들의 일기 옆에는 선생님의 일기가 자리잡고 있는데 아이들의 일기보다 훨씬 더 재밌는게 사실이다. 내가 아이였을때 우리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했을까가 최대 관심사였는데 이제야 궁금증일 풀린다.

 

#읽고 나니 어때?

선생님은 완벽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초등학교를 보냈었다. 초등학생때만큼 선생님이 위대해 보일 때가 또 있을까? 엄마 말씀은 듣지 않아도 선생님 말씀은 정말 잘 듣는 아이였었다. 선생님의 일기를 보면서 아이들의 그런 시선이 선생님께는 힘이 들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완벽한 선생님이 되기 위해 얼마나 힘이 드셨을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내게는 단 한분의 선생님이셨지만 선생님에게는 나와 같은 학생이 50명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난 내가 선생님을 특별하게 생각하듯 선생님 역시 그러기를 원했었다. 그 힘든 일을 선생님께서는 항상 잘 해내셨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 책을 읽고 선생님이란 직업에 대해 생각해본다. 선생님의 명예와 위신이 떨어지는 요즘 얼마나 많은 선생님들께서 가슴을 아파하고 한숨을 쉬고 계실까? 선생님의 일기에는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어하는 마음이 가득하고 아이들에게 다가서고 싶은 선생님의 갈망이 담겨있다. 또한 아이들의 순수함에 선생님도 덩달아 순수해짐을 느끼며 아이들에게 고마워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담겨있다. 따뜻하고 소중한 일기장을 읽은 느낌이다. 할 수만 있다면 선생님의 일기에 답글을 달아 주고 싶었다.

 

 

#일기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대화 창구!

초등학교 일기를 검사하는 것이 아이들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문제로 거론 된 적이 있었다. 초등학생의 사생활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일기쓰기는 사생활 침해라며 일기 검사를 하지 말자라는 말에는 씁쓸함이 느껴졌다. 서로간의 교류보다 개인의 생활이 더 중요하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일기를 쓸 때 선생님께서 보신다는 생각에 솔직하게 쓰지 않았던 적도 있었지만 일기를 통해 선생님과 무언가를 함께 나누었던 기억은 아직도 내 기억속에 비밀스럽지만 너무나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선생님들은 일기를 검사하는 것이 아니다. 일기를 통해 아이들과 대화하고 서로의 마음을 마주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히고,

얘들아, 이제 알았으니 일기를 매일 쓰는 건 어때?라고 아이들에게 물어봤을 때 아이들의 얼굴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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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지 않는 진주
이시다 이라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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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다 이라, 그를 만난 건 <1파운드의 슬픔>이었다. 30대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며 나는 얼마나 안심했던가! 반짝반짝 빛이 나는 20대만이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적이 있었던 내게 그가 보여준 30대의 사랑은  서른으로 가는 길목이 두렵지 않게 해주었다. 아직은 서른이 아닌 나지만, 비틀거리며 20대를 보내고 있는 나지만, 이시다 이라의 말대로 진정한 성인식은 서른살에 하기로 결심했다.

 

"30대는 드디어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세상이란 게 어떤 건지 슬슬 보이게 되는 나이죠. 그제서야 처음으로 뭔가를 시작할 수 있게 된 사람이 아마 많을 겁니다. 그래서 전 성인식은 역시 서른살에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1파운드의 슬픔, 작가의 말)

 

30대의 사랑을 그린 이시다 이라가 이번에는 40대 중반의 여성의 사랑을 이야기 한다. 이시다 이라를 좋아하는 이유를 말하라고 한다면 그가 나이가 들듯 그의 주인공들도 나이가 드는 것이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그렇기에 그 나이가 될 때에도, 그 나이가 되기 전에도 두려움이 몰려오기도 한다. 그 나이의 내가 뜨거운 사랑을 하며 살 수 있을까? 내 일을 사랑하며, 삶을 감사해 하며 살고는 있을까?란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그런 내게 이시다 이라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게 해준다. 그것이 소설 속 이야기만이어도 좋다. 그 이야기 속에 들어가있는 내가 있기에! 그 속에서 나는 마음에 희망을 불어넣고 행복이란 포장지로 예쁘게 포장해서 현실로 가지고 나왔기에!

 

#검은색을 닮은 그녀-우치다 사요코

 

 
<검은색은 한없이 묘한 색이다.
불그스름한 빛을 띠기도 하고 녹색을 띠기도 한다.
반짝이는가 하면 노란색이다가 보라색을 띠기도 한다.
그 중에는 눈이 부셔서 고개를 돌리게 하는 검은색도  있다.
빛이 전혀 없는 정적을 검정이라고 한다면 모든색을 합쳐놓은 떠들썩함도 검정이다.>
 

 

바다가 아름다운 쇼난이란 곳에 45세의 판화가 우치다 사요코가 혼자서 살고 있다. 검은색과 흰색 종이로만 작품을 완성하는 그녀의 별명은 '검은 사요코'. 한번의 결혼에 실패한 후로 줄곧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녀는 검은색을 닮아있다. 얼핏보면 정지된 것 같은 그녀의 삶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움직이고 있으며 표면적으로는 단조로울 것 같은 삶은 들여다보면 여러가지의 감정들로 소용돌이 치며 어느 나이보다 마음에 울림이 강하게 들린다.

 

45세 이전의 그녀의 삶은 책 속에서도 비중이 크지 않다. 그녀의 과거는 이미 45세의 그녀에게 들어있기 때문에. 이 점이 참 좋았다. 그녀의 과거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지금의 그녀의 모습이 과거의 젊은 그녀가 담겨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기에 그녀는 젊은 그녀와 나이든 그녀로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그녀'는 '그녀'인 것이다.

 

#진주같은 여자-우치다 사요코

 

                                       

<"그래. 세상에는 두 종류의 여자가 있지.

다이아몬드 같은 여자와 진주 같은 여자.
밖으로 광채를 뿜어내는 타입의 여자와 광채를 안으로 품는 타입의 여자.
행복을 손에 쥐는 것은 누구한테나 금방 눈에 띄는 화려한 다이아몬드 같은 여자지.
좋은 진주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는 남자는 드물거든.">

 

 

우치다 사요코를 잘 알며 그녀에게 엄마와 같은 존재인 마치에는 그녀가 진주 같은 여자라고 말한다. 진주는 다이아몬드와 달리 빛을 반사하며 내뿜는 것이 아니라 빛을 내면으로 끌어들여 소중하게 간진한다. 속에서 빛을 내고 있기에 그 빛을 알아 보는 남자는 드물다. 사요코는 가끔 몸을 섞는  화랑의 매니저 이외에는 남자가 주위에 없다. 일하느라 집에만 있는 그녀가 남자를 만날 기회가 없으니 그녀 속에 품어진 진주를 발견할 남자 역시 없다. 사랑이라 부를 남자들은 전에는 몇 번 있었지만 현재의 그녀에게는 사랑이라고 부를 남자가 없었다. 모토키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진주와 검은색은 모두 사요코를 잘 설명해준다. 둘의 공통점 역시 같다. 모든 것을 흡수한다는 것! 검은색은 모든 색을 흡수해서 만들어진 색이기에 단색으로 보이지만 다양한 색을 뿜어내고 진주 역시 빛을 안으로 흡수하기에 더 은은하고 매력적인 빛을 보여준다.

 

#시리도록 맑은 사랑을 하는 여자-우치다 사요코

 

<"그렇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이 나를 제일  잘 이해해주기 때문이라거나 가장 적당하기 때문이 아니야.
잘 모르겠지만 함께 삶을 나누고 싶다,
그 사람의 일부가 되고 싶다,
그런 마음 때문이 아니겠어?">
 
45세의 우치다 사요코가 사랑하는 남자는 28살의 도모키이다. 영화감독을 하다가 한번의 실패를 맛본 후에 사요코가 자주 가는 카페에서 일하는 도모키는 사요코에게 오랜만의 두근거림과 기대를 안겨준다. 이미 객년기 증상인 핫플래시를 경험하는 나이인 사요코는 설레임이란 감정만으로 삶의 활력을 갖게 되지만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다. 도모키가 다가오기 전까지. 도모키가 내민 손을 잡는 사요코를 보며 읽는 동안 왜 한번도 말도 안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걸까!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 사랑, 현재에 충실하며, 타인을 위한 사랑을 하는 그 둘은 경험하게 된다. 사랑이라는 것만큼 사람을 행복하게, 열심히 살게하는 것은 없다고. 아픔이 가득함을 예고한 사랑은 눈이 시리도록 높은 가을 하늘과 가을 바다를 닮았다. 아름답지만 눈이 아파서 제대로 볼 수 없는 가을 하늘과 바다를 닮은 그들의 사랑에 몇번이나 가슴 졸이고 숨을 가다듬었는지 모른다. 사요코의 마음이 내 마음 같아서, 그녀가 아파서 그들의 사랑에 박수만을 보내고 싶어서, 현실이란 시간을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게 해주고 싶었다.
 
#어느 나이여도 아름다울 여자-우치다 사요코
 
 
"나도 아직은 잘 모르겠어.
그렇지만 바닷물의 흐름에 실려 오랜 세월을 헤매고 다니다 온  조각들에게 왠지 모를 무한한 애정이 느껴져.
상처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닳고 닳았고,
원래 무슨 색이었는지 알아볼 수도 없게 바랬으면서도 기본적인 모습은 간직하고 있는 걸 보면
아, 이 녀석들, 죽기 살기로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표면적인 생생함은 깨끗이 사라지고 없지만,
그래서 거꾸로 본연의 모습이 뚜렷이 드러나는 것 같아."
 
45세의 우치다 사요코를 보며 인간이란 나이에 걸맞는 모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시간들이 합쳐져 자신의 나이에 맞는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나이, 내가 살아온 시간, 어느 한 순간도 소중하지 않은 시간이 없는 것이다.
 
한때는 빛이 나는 시기가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20대의 사랑만이 빛나고 아름다울 거라는 생각을 했었고, 20대의 젊음만이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일 거라고 믿었던 적도 있었다. 책을 통해, 주변을 돌아보며 알게 된다. 가장 아름다운 나이는 바로 지금의 나이라고. 가장 아름다운 나이의 사랑은 언제나 빛이 난다고. 사요코와 모토키의 사랑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마도 그들의 사랑은 가장 빛나는 나이, 현재까지 오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을 시간들이 쌓여진 곳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얼마나 멋진가! 지금의 내 나이가 가장 빛나는 시간이라는 것! 더 멋진 건 나이가 들면서 내 미래의 나이는  분명 전보다 더 빛이 날 것이라는 것!
 
가슴을 울리는 사랑이야기와 함께 내가 얻은 것은 스스로 나를 사랑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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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 - Shakespeare's Complete Works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윤기.이다희 옮김 / 달궁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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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보지 않아도 다 안다고?! 천만에!

 

이윤기의 번역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그가 번역한 <로미오와 줄리엣>이 나왔다는 말에 친구가 생각나 책을 읽게 되었다. 어쩌면 책을 읽게한 건 이윤기의 한마디 말이었다. 영화를 본 것으로 원작을 읽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는 말에 가슴이 뜨끔했지만 애써 숨기며 반발한다. 영화랑 달라봤자 얼마나 다르다고 그래? 영화로 보나 책으로 보나 비슷하지 않겠어?라며 그에게 반발하고자 책장을 넘긴지 10분이 지나지 않아 백기를 들어 보였다. 그래, 영화와 원작 천지차이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읽지 않아도 읽은 듯한 기분이 든다. 사람들의 입을 통해 많이 들어와서 익숙한 귀가 뇌로 나는 이 작품을 읽었어라는 착각을 일으켜 신호를 보내게 한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 무엇인지도 알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줄거리도 술술 말할정도이고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명 판결을 아이들에게 활용할 줄도 알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중 완역된 책을 읽어 본 적이 없다. 그걸 이제야 안다. 이 책을 읽고 아무리 생각하고, 찾아봐도 내가  읽어봤다고 착각한 작품의 책을 찾아봐도 읽어본 기억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부끄러움이 몰려 들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고 독서감상문을 쓰는 아이들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한걸까란 부끄러움이 나의 얼굴을 달아오르게 하고 먼지가 쌓인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꺼내들게 만들었다.

 

#인도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진 셰익스피어, 그의 빛을 이제야 보다.

 

세계사 시간이었던 것 같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이 셰익스피어이다. 인도와도 바꾸지 않을 업적을 가진 대단한 이가 셰익스피어였다. 시험점수를 위해 암기한 셰익스피어는 자연스레 내 머리 속에서 인도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진 위대한 사람이란 것은 그저 한 문장에 불과했다. 이 책을 읽으며 그의 빛이 눈부셔 책을 보기 위해 눈을 비벼야 했다.

 

이 책을 번역한 이윤기가 말했다. 자신이 고등학교 때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다가 그리스 신화를 공부하면서 셰익스피어의 진가를 발견 했다고 한다. 전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가 귀에 거슬려서 그 영화가 별로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마친 후에 <로미오와 줄리엣> 영화 DVD를 구해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 상상의 무대만으로는 부족한 아름다운 눈부신 대사들을 귀에 들어보고 싶다. 생생하게! 기회가 된다면 셰익스피어의 극본 그대로 공연되는 연극을 보고 싶다. 꼭 한번 보고 싶다.

 

#이윤기표 <로미오와 줄리엣> 무엇이 다를까?!

 

1.책 머리와 책 꼬리가 달라요.

-이 책의 다른 <로미오와 줄리엣>과 비교해서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를 생각해봐도 다른 번역의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내용면에서는 얼만큼의 깔끔하고 멋스러운 번역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윤기가 전해주는 그리스 신화 <티스베와 퓌라모스> 이야기, 뒷부분에 위치한 셰익스피어, '압축파일'풀기는 그것만으로 재밌고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그리스 신화 티스베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로미와 줄리엣을 생각했었는데 이윤기가 꼼꼼히 되짚어 주는 것을 읽으며 맞아, 이 이야기가 셰익스피어에게 영감을 줄 수도 있겠구나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책 머리에 적힌 신화 이야기에는 사진과 그림들이 많이 담겨 있어서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흥미를 가지게 했다.

 

2.매끄러운 번역이란 말에는 높은 점수를!

-책에 대한 깊이가 없는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독서가는 번역의 차이를 확실하게 잡아내는 이들이다. 그런 분들의 말씀을 들으면 오역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겠고, 그것으로 인해 작품에 어떤 악영향이 미치는 지도 이해가 되는데 내가 오역을 찾아내기란 참 어렵다. 번역을 평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작품을 읽어야 할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그런 내게 이윤기의 번역이 다른 번역에 비해 어떻게 다른지를 말하는 것은 실수일 것이다. 솔직히 어떻게 다른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글이 걸리는 부분없이 매끄럽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의 번역에 따라 내 마음도 흘러갔으니 그건 확실하다.

 

#어린 나이, 짧은 기간,첫눈에 반한 사랑이라도 좋아! 사랑은 모든 것을 잊게 하니까!

그들의 나이 14세, 그들이 사랑한 시간 5일, 첫눈에 반한 사랑, 죽음까지 이른 사랑. 이런 제목으로 기사가 난다고 하면 실시간 인기 검색어가 될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것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인정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들을 진정한 사랑으로 만들어주는 마법을 가진 이가 바로 윌리엄 셰익스피어이다. 어느 누가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겠는가?! 그들의 대사 한문장마다 사랑의 빛이, 사랑의 설렘이, 사랑의 한숨이, 사랑의 아픔이, 사랑의 눈물이 담겨있다. 타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되게 하려면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에 우리의 마음이, 심장이 움직인 것처럼.

 

그들의 시대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현대와는 달랐을 것이다. 절제된 사랑의 표현이 말로, 글로 옮겨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글이나 말로도 표현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심장은 불타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셰익스피어가 적은 글들을 보고 닭살이 돋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은(바로, 나이다) 원작을 읽어봐야 한다. 그럼 그런 말들은 쏙 들어가버리고 만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앞에 상상의 무대를 만들고 주인공을 세우고 대사를 읊게 하느라 녹초가 되었다. 아니, 내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그시대가 펼쳐지고 멀리서 지켜보는 내가 보인다. 얕은 상상력을 탓하며 내가 바라는 것은 하나다. 극본 그대로의 연극이 열리는 것! 꼭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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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네야 테르시 지음, 유혜경 옮김 / 책씨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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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대한 생각을 한시도 멈추는 날이 없다.

이제는 볼 수 없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생각을 단 한순간도 그만 둘 수는 없다.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창의 피> 중에서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이 작은 책속에 무슨 내용이 들어있길래 책장을 열자마자 저렇게 가슴을 적시는 글이 적혀 있는 걸까?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찬 시간을 보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경험이 있는 이가 저 글을 보고도 책을 읽지 않고 덮을 수가 있을까? 없을 것이다. 나역시. 이미 빗물이 내리기 시작한 마음의 창문을 바라보며 책 속을 기웃거린다.

 

#일기를 쓸거야! 아빠를 잊지 않기 위해!

 

방긋 웃으며 유모차에 누워있는 아기의 곁에 서 있는 건 아빠다. 아장아장 걷다 쓰러진 아기를 일으켜주는 것도 아빠의 아름다운 손이다. 아이가 웃을 때, 울 때도 아빠의 따뜻한 품안에 있었다. 아빠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으며 잠 못드는 밤이면 아빠의 시곗소리를 들어야 잠이 들던 아이였다. 아이의 이름은 가브리엘 2세, 아빠의 이름은 가브리엘 1세이다. 얼마나 아들을 사랑했기에 같은 이름으로 정했을까란 생각이 든다.

 

그 아이의 삶에서 아빠가 사라졌다. 어른들은 모두 아빠가 죽었다고 했지만 아이는 아빠가 죽지 않았다고 말한다. 다만 아주 먼 여행을 따났을 뿐이라고. 언젠가는 돌아올 거란 기대를 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아이의 힘듬이 느껴진다. 다 알면서도, 돌아올 수 없음을 알면서도 누군가를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울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어야 하는 힘듬을. 울면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말을 하면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아이는 울지도 못하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힘듬을 이야기 하지도 못한다. 아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빠를 찾아 떠도는 섬이 된다.

 

일기를 쓰는 이들의 마음을 부실하다고 비웃던 아이가 일기를 쓰려고 한다. 아빠를 잊지 않기 위해, 아빠를 알아가기 위해, 아빠를 잊지 않고 싶은 자신을 위해 일기장에  아이는 아빠에게 편지를 쓴다. 부치지 못 할 편지를, 그러나 꼭 전해졌으면 하고 바라는 편지를.

 

#더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는데 할 일은 점점 많아져!

 

아빠를 위해 15살의 아이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니 가브리엘을 아이라고 부르면 안되겠다. 가브리엘은 아빠의 죽음으로 인해 더이상 아이인채로 머무를 수 있는 세계에서 떨어져 나왔기에. 떠난 이가 더 애달픈 건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네가 열심히 사는 것이 너를 위한 거야'라는 말은 마음에 와닿지 않고 그가 나에게 해준 것만 계속 생각나서 미안함, 후회로 가득차게 된다. 죽음이란 건 이렇게 아프다. 하물며 가족의 죽음은 그 이상이다.

 

가브리엘에게 아빠는 전부였다. 일하느라 바쁜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할만큼 아빠는 가브리엘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가브리엘은 이제 아빠를 남자로 볼 수 있는 나이로 올라서고 있는 지금이 너무 안타깝다. 남자대 남자로 아빠를 이해하고 싶고, 아빠의 이해를 받고 싶고, 아빠의 조언을 듣고 싶은 현실에 아빠는 없다는 것이 견디기 힘들다.

 

사랑하는 이에게, 여전히 가슴 속에서 살아 숨쉬는 이에게 더이상 해줄 일이 없다는 것, 그것만큼 아픈게 있을까? 그 아픔만으로도 벅찬데 삶은 가브리엘에게 해야할 일들을 넘겨준다.

 

#사랑해요, 아빠. 그말이 정말 하고 싶었어요!

가브리엘의 일기장에 적힌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는 마음의 창문에 비를 내리게 한다. 함께 맞아줄 수 없는 나는 그저 안에서 그 빗물을 보고 있다. 그 비가 가브리엘의 눈물임을 알면서도 함께 맞아줄 수 없다. 또래의 아이들보다 성숙한 가브리엘은 아빠의 죽음으로 한층 더 성숙해진다. 성숙에는 아픔이 따른다. 가브리엘은 이 성숙의 아픔을 가슴으로 삭힐려고 한다.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가브리엘은 아빠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그저 자신이 아빠를 위해 해주고 싶은 것들로 가득하다. 아빠가 자신에게 말한 것처럼 사랑한다고 말해보고 싶고, 아빠가 사랑해준 것처럼 아빠를 사랑하고 싶고, 아빠가 꼭 안아주었던 것처럼 아빠를 꼭 한번 안아주고 싶다. 아빠에게 쓰는 편지는 답이 없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알고 있다. 이미 답은 아빠가 전해주고 있음을. 가슴 속에 살아 숨쉬는 아빠가.

 

#아이의 세계와 어른의 세계를 건널 강에 빠진 가브리엘

가브리엘은 항상 같은 꿈을 꾼다. 아름다운 강에 홀로 배를 타고 있는 가브리엘이 원하는 것은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아빠도 엄마도 친구도 없는 그곳에서 가브리엘은 홀로 싸우고 있는 것이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성장의 강, 그 안에 가브리엘이 있다.

 

성장의 강에서는 누구도 손을 뻗어줄 수 없다. 스스로 앞으로 나가야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자신을 지탱해 온 뿌리는 무엇이었는지, 나만이 아닌 다른 이의 삶을 이해하고 직시할 수 있을 때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그때 깨닫게 될 것이다. 강에 가만히 서 있는 배라고 느꼈지만 실은 그곳은 늪이었다고. 그 배가 늪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부모가,  그를 사랑하는 이들이 그 배 밑에서 배를 들어올리고 있었던 것을. 자신 안에 살아있는 사랑하는 이들의 고마움을.

 

#성장소설은 사랑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가브리엘의 성장을 이야기 하면서 동시에 가브리엘의 엄마의 성장도 보여주고있다. 어떠한 나이이든 성장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죽기 전까지. 아빠의 삶을 돌아보며 가브리엘은 죽은 아빠의 뿌리도, 자신의 뿌리도 찾아내려 한다.

 

자신이 한그루 나무라고 생각했을 때 자신의 뿌리를 보기 위해 튼튼하게 받쳐주는 땅을 스스로 파헤치는 것은 분명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고통을 받아들이며 흙을 걷어낸다. 그 고통을 넘어서야 자신의 뿌리를 어느 곳으로 뻗어가야 할지를 알게 될테니. 나도 아직 내 뿌리를 보지 못했다. 언젠가는, 가브리엘을 알게 된 후로는 조금 더 빨리 나도 내 뿌리를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내 뿌리도 가브리엘처럼 내 부모가 흙 없이도 견딜만큼 옆에서 감아주고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10대의 이야기는 절대 10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성장소설에 그들이 주로 등장하는 건 아마도 그들은 힘이 약해 스스로 몸을 내던질만큼 열심히 성장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처럼 이것저것 재보고 지름길을 먼저 찾지는 않기 때문이다. 마음과 온몸으로 부딪히는 삶의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10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읽혀진다. 이 책 역시 우리 모두를 위한 책이다. 자신의 모습을 찾고 싶은 우리 모두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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