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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갈매기 섬의 등대 ㅣ 좋은책어린이문고 3
줄리아 엘 사우어 지음, 최승혜 그림, 김난령 옮김 / 좋은책어린이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없던 이곳에 세상사람들 하나둘 모여들더니
어느밤 폭풍우에 휘말려 모두 사라지고 남은것은 바위섬과 흰파도라네
(바위섬 노래)
이 책의 표지를 본 순간 어렸을 때 바다에 나가면 오빠가 불러주던 바위섬이란 노래가 떠올랐다. 뱃전에 부서지는 파도가 내 고향의 바다, 그리고 어린 나의 모습까지 함께 밀려오게 만든다. 유명 관광지의 바다가 아닌지라 고향의 바다는 여름 한 철만 지나면 갈매기와 바다에 나가노는 오빠와 나뿐일 때가 많았다. 하지만 오빠가 엄마를 따라 도시로 나갈 때면 바다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지고는 했다.
바다에 나가지 말라는 할머니의 말씀을 뒤로하고 하루종일 바다를 마주하고 앉아있다보면 파도소리에 잠이 들었다는 섬집아기가 내가 된 듯했고, 꾸벅꾸벅 모래사장이나 바위 위에서 조는 나를 할머니가 업어 데려오시고는 했다. 지금은 상상도 되지 않을 만큼 조용한 아이였던 내게 유일한 친구는 바다였기에 갈매기를 따라 날아오르는 연습도 하고 파도와 장난치면서 놀던 내게 어두운 밤 바다를 밝히는 등대는 내내 수수께끼였다. 등대 안까지 들어가보고 싶어 어린 마음에 낮에 등대 앞에 하루종일 앉아있어 보았지만 안에 들어가는 행운은 생기지 않았다. 그저 등대 주위를 빙그르 빙그르 돌고는 했다.
등대의 불을 밝혀보고 싶던 내 소망을 알았던 것일까?
큰 엄마와 함께 사는 열두 살 로니는 제비갈매기 섬이라는 외딴 섬의 등대지기의 부탁으로 12월 2일부터 2주동안 그곳에 가서 등대지기의 일을 맡기로 한다.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에는 움직이고 싶지 않은 로니였지만 큰 엄마가 돌아가신 큰 아빠와 함께한 소중한 추억이 그곳에 있음을 알기에 거절하지 못하고 제비갈매기 섬으로 떠난다. 12월 15일에 꼭 돌아오리란 등대지기의 약속을 믿기에.
<물새들이 끼룩끼룩 우는 소리, 파도가 바위 틈새로 세차게 쏠려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소리, 바위섬에 철썩 부딪쳐서 물보라를 일으키며 '쏴'하고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그 소리들은 마치 제비갈매기 섬이 빚어내는 관현악 같았습니다> -p.30
외딴 섬에 도착한 로니는 어린아이 답지 않게 차분하게 큰 엄마를 도와 등대지기 일을 거뜬히 해내고 자연을 벗삼아 노는 법을 알게 된다. 사람들과 단절된 공간, 그 공간은 외로움이 가득찬 공간이 아니라 자연을 친구로 삼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는 것이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 철이 일찍 든 아이여서 일까? 로니의 차분함이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사실 이 바위섬은 암초였단다. 등대가 지어지지 전까지 많은 배들이 암초에 부딪혀서 난파되었어. 정말 끔찍했지. 그러니까 이 바위섬은 암초와 난파선의 잔해들로 이루어진 셈이야. 나는 등대가 지어지기 오래전부터 이 바위섬을 지켜봐 왔단다. 로니야, 등대는 천국에서 내려온 은총의 손길과 같은 거란다. 그러니까 등대를 보살피는 일은 훌륭한 일이야. 아주 훌륭한 일이지> -p.43
등대지기란 노래를 배울 때 등대지기만큼 외로운 직업은 없겠구나란 생각을 했었다. 그래도 한번쯤은 꿈꿔본 직업이 등대지기였다. 한없이 봐도 질리지 않는 바다를 지켜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에. 생각해보니 등대지기가 바다를 지켜준 것이 아니라 바다가 등대지기를 지켜준 것이었다. 바다는 혼자서도 잘 살아가니까. 등대지기의 역할은 바다와 배 그리고 사람들이 있다면 꼭 필요한 역할이다. 등대지기는 로니의 큰 엄마 말씀대로 정말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평생을 등대지기로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외로울까? 그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12월 15일에 오기로 한 등대지기는 약속을 어기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도록 오지 않는다. 크리스마스를 섬에서 보내게 될거란 생각에 로니는 화가 나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아저씨에게 실망과 함께 큰 배신감을 느낀다. 그런 로니를 다독이고 약속의 진정한 의미와 포용력을 알려주는 큰 엄마가 있어 로니의 얼어붙은 마음도 조금씩 녹게 된다.
약속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가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거나, 거짓 약속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안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의 마음도 이해해주는 사람이 되는 길은 얼마나 힘든 것일까? 큰 엄마는 등대지기의 약속에 화가 났을텐데도 시종일관 안정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미 지켜지지 않은 약속에 자신의 감정까지 흐트러지는 일은 어리석은 일임을 상대방에게 무슨 사연이 있을거라 생각하며 배려하는 모습은 무작정 화부터 내고 보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기 전에 생각해보게 하는 습관을 길러줄 것이다.
등대지기의 편지가 공개되는 부분에서는 가슴이 아리기도 했다. 등대지기의 아픈 숙명이 이해가 되서. 그 마음을 내가 이해했듯 로니가 이해했을 때 내 아이인양 로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잔잔한 내용과 함께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한 일러스트가 책을 읽는 동안 바다를 꿈꾸게 한다. 로니가 켜 놓은 세상에서 가장 큰 촛불이 보이는 것도 같다. 그 촛불은 우리의 따뜻한 마음을 지켜주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