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즘의 심리학 - 사랑이라는 이름의 감옥에서 벗어나기
샌디 호치키스 지음, 이세진 옮김 / 교양인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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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책이라 무거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그런데 놀랍게도 어렵다고 느껴졌던 나르시스즘에 대하여 저자는 자신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쉽게 풀어 써 놓았다.

현대 사회에서 절반이 나르시스트이고 역병처럼 번지고 있는 수많은 사회적 병폐 뒤에 바로 나르시스즘이 도사리고 있다고 한다.또한 저자는 나르시스트들이 허영심으로 가득차고 탐욕스러우며 다른 사람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인격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정의 했다.

나르시스트 부모는 나르시스트 아이를 길러낸다.그 아이들이 또 나르시스트를 길러낸다.결국 돌고 도는 것이다.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타인에 대한 배려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아이들이 똑같은 사고방식을 지닌 아이들을 길러낸는 것이다.

그들은 사회에서 다른 구성원들이 자기에게 봉사하기를 원한다.뜻대로 안되면 화를 내다가 좌절하고 증오심을 갖는다. 다른 구성원들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그들은 나르시스트들에겐 이용과 착취의 대상일 뿐이다.항상 남보다 뛰어나야하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이 자기에게 없는 그 어떤 것을 지녔을때 나르시스트들은 그순간 돌변하며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무기를 선택한다.바로 '경멸'이다.그들은 타인을 깍아내리고 더럽히며 타인에 대한 우월감을 되찾으려한다.

부모의 강압적인 학습에 의해,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오늘도 수많은 나르시스트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들과 적절히 밀고 당기기를 하며 포옹하였을때 이들도 이타적인 사회에 적응할 수 있으리라 본다.

또한 우리 아이들이 건강한 사고방식의 소유자로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들이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깊어가는 가을 밤에 내가 나르시스트 기질이 있는지 시험해 보는 것도 재미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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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은 속삭인다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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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를 넘기면서부터 미야베 미유키의 언어의 마술에 빠져들었다.

술술 넘어가는 문체로 인해 다른 책과는 달리 밤을 세워 보게 되었다.

서로 연관성이 없는 듯한 세명의 죽음을 마모루는 연관성을 가지게 만들었다.

교통 사고를 낸 삼촌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피해자의 집에 몰래 숨어들어 사고 피해자와 다른 두 명의 죽음이 서로 관련이 있음을 밝혀내고 실종된 아버지를 죽인 가해자를 용서 아닌 용서를 하게 된다.

마술사는 최면이라는 환상을 이용해 피해자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고 마모루는용서라는 최면으로 마술사의 환상을 깼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각 등장 인물들의 에피소드들이 나를 즐겁게 해주었고 전혀 예상 외의 결말이 나를 흐믓하게 해주었다.

책을 덮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마모루의 발걸음이 틀림없이 가벼웠을거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오늘 언어의 마술사의 미야베 미유키의 환상에 빠져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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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물만두 > 왜 체인지링이어야 하는가?
체인지링 오에 겐자부로 장편 3부작 1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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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노벨상을 탄 작가의 작품은 안 읽는 편이다.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도 <나의 나무 아래서>인가 하는 작품 한편밖에 읽은 것이 없다. 그 작품도 읽으려고 읽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데 어쩌다 이 작품을 읽게 되었을까?


그것은 작품 속에서 처음 시작되고 작품의 큰 흐름이 되는 저자의 처남의 자살 사건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의 사생활을 엿보기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단지 이해할 수 없었을 뿐이다. 영화감독이라는 위치에 나이가 예순이 넘은 남자가 단순히 스캔들 때문에 억울하다고 자살을 선택할까?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 그 사람만이 지니고 있는 말할 수 없는 사연이 있을 것 같았고 그것이 궁금했다. 나는 그 미스터리를 읽고 싶었던 것이다.


처남이기 이전에 오랜 동안 함께 했던 친구이기도 한 고로의 자살 이후 유명한 작가인 고기토는 매스컴에 시달리다 못해 베를린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묘령의 여인을 만나 암묵적 폭력 같은 매스컴 앞에 또 한 번 마주하게 된다. 베를린으로 쿼런틴하게 된 이유는 고로가 유언처럼 남긴 테이프를 고기토가 듣는 것을 부인 치카시가 싫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저쪽, 바깥 세계 너머로 간 친구와 소통하는 유일한 그만의 방법이었다.


고기토는 어쩔 수 없이 봉인해두었던 소년 시절의 기억을 풀어 놓으려 한다. 그것은 그가 열일곱, 고로가 열여덟에 겪었던 일이다. 또 한 치카시가 겪었던 일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것으로 인해 변했고 치카시는 그것으로 인해 고로가 체인지링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이 갑작스런 화자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고기토와 고로의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완전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짐작하게만 한다. 폭력적이었을 거라는. 그들의 인생이 폭력에 휘둘러진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폭력의 시작점이었을 거라는 점만을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 장식은 죽은 자는 죽은 자의 곳에서 살게 하고 산자는 살고 있는 곳에서 살아가자고 체인지링을 엮어서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고로의 ‘그것’을 알 수 없기는 고기토도 마찬가지니 치카시가 화자가 되든 상관은 없다. 그렇다면 이 또 다른 화자 체인지링은 고로에 대한 고기토의 마침표 없는 회상에 치카시가 찍는 마침표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고기토가 어린 시절 겪은 이야기 속에서도 그에게 체인지링을 이야기해주던 사람은 그의 어머니였으니 체인지링이란 어쩌면 여성의 전유물이고 여성만이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그런 가슴 속에 묻을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누구나 변화를 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치카시에 대한 고로의 마음이다. 첫 아들을 낳을 때 아름다운 오빠를 다시 낳을 거라 생각하고 또 다시 다른 여자에게 고로심기를 결심한 누이동생의 마음은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이를 향한 어쩔 수 없는 마음 같다. 우상이었다고 해도 좋지만 낯설게 느껴지는 희망이다.


언젠가 한 아이가 암에 걸렸다. 그 아이는 엄마에게 말을 한다. “엄마, 내가 죽으면 다시 나를 낳아줘.”이 작품을 덮으며 그 아이가 한 말이 생각났다. 바깥 세계로 갈수밖에 없는 아이의 절실함과 함께 체인지링이 아니더라도 그렇게라도 다시 한 번 못다 한 삶을 살고 싶은 어린 아이의 마음이 이 작품 속의 폭력에 의해 자기 파괴로 맞서고 다시 그 파편 주어 담기로 희망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말보다 더 와 닿는다.


결국 내가 읽고자했던 미스터리는 파악하지 못했다. 아마 그건 미스터리인체로 남겨두어야 할 것인 모양이다. 남편은 부서진 인간을 고치는 일로 완성된 인간 만들기를 하고 아내는 부서진 인간을 체인지링으로 믿고 새로운 탄생으로 또 다른 체인지링을 감행하려 한다. 부부가 같은 것을 바라보는 방식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도 놀랍다. 아마 이것은 남자와 여자의 근본적 차이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아닐까.


이 작품에서 그래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고로가 고기토에게 백년에 대한 의미를 고기토의 나이와 고기토의 아들 나이를 합쳐서 말하는 장면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나이가 합쳐서 백 살이었다. 부자는 합쳐서 백년을 서로를 완성해가며 나아갔다. 이것이 바뀐 아이라 생각하고 또 다른 체인지링을 꿈꾸는 것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체인지링을 모르는 지도 모르겠다. 무에서 유의 근원적 창조와 유에서 유의 변화의 차이가 체인지링일까 싶기도 하고. 하지만 여전히 내 안에서는 그 체인지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모든 불완전한 우리는 완벽과 체인지링을 꿈꾼다. 하지만 그것이 행복은 아니다. 인생의 목표도 아니다. 다만 살아감 자체가 그런 것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절망과 희망은 늘 반복되는 일이다. 큰 틀에서 봐도 작은 틀에서 봐도 마찬가지다. 때론 그것으로 묻어두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가슴 속에 담아 온 것을 풀어내는 것도 또 다른 묻어두기의 다름이고 희망을 이야기하며 나아가는 것도 묻어두기일 뿐이다. 이 작품은 고로 묻기 그 자체였다. 아직 가슴속에서 묻지 못했던 것까지. 하지만 완전히는 여전히 아닐 것이다.


나는 체인지링을 행복에 대한 환상의 대체물로 보고 싶지 않다. 희망의 메시지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인간의 이어짐이 끝없는 생명의 탄생에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죽음에서 탄생을 말하고자 한 것이었다면 체인지링이 아니어도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죽은 고로가 원한 것이 자신에 대한 이런 체인지링이었을지 의문이다. 그리고 작가에게 묻고 싶다. 왜 체인지링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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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의 정원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13
사라 스튜어트 글, 데이비드 스몰 그림, 이복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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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처럼 잔잔한 그림체와 짧은 편지 속에서 내용을 이어가는 이 책은 비록 저학년용으로 출판이 되었지만 사춘기 아이들에게도 권해줄 만한 책입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밝은 마음을 잃지 않는 리디아는 분명 다른 모든 소년소녀 이야기의 주인공들처럼 식상한 모티브일수도 있습니다..하지만 그들 중 유독 리디아가 마음에 남는 이유는 어두운 상황 속에서 빛을 찾아내는 그런 마음이 아닐까요...

그리고 웃지 않는 삼촌은 묵뚝뚝하지만 분명 마음이 따뜻한 분일거라고 믿고 외삼촌을 위해 비밀 계획을 세우는 리디아를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외삼촌이 웃게 되고 리디아가 집으로 돌아가게 되어 역에서 깊게 포옹하며 헤어지는 장면은 가슴이 찡해지게 됩니다.그리고 집으로 돌아간 리디아는 분명 행복하게 살았을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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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하고 통쾌한 교사 비판서
로테 퀸 지음, 조경수 옮김 / 황금부엉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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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교를 다닐땐 선생님이란 존재는 하늘 그 자체였다.

부모님이 선생님을 어려워하니 자연 우리들도 선생님을 어려워할 수 밖에 없었다.-그렇다고 그건 절대 존경의 감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나보다 어리거나 아니면 조금 나이가 많거나 하는 선생님들을 대하면서 세월 참 좋아졌구나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열린 교육이니 참교육이니 하면서 교사들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다 못해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교실에선 선생님의 목소리보다도 학부모의 목소리가 더 높고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가르치기보다 학교 운영위원회와 어머니회의 눈치를 보기에 바쁘다.내 아이가 조금이라도 혼나고 오면 자잘못을 가리기 전에 교사에게 왜 혼냈냐고 아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 않냐고 따진다.물론 모든 선생님이 다 훌륭하진 않다.그렇지만 훌륭하지 않은  몇몇 선생님들만 보고 모든 선생님들이 훌륭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성급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기대를 가지고 읽은 이 책은 군데군데 은근히 반감을 가지게 한다.저자는 네 아이의 엄마이고 네번의 아이들의 입학식-별로 변한것이 없는-에 참석하고 자질이 없는 교사에 대해서 가혹한 비판을 한다.그들은 고집세고 권위적인 교사들이다.가르치지 않는 교사는 교사가 아니다.좋은 교사는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해주면서 인성을 길러주고 지식을 키워줘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교사가 없다...

이 책을 보면 독일의 교육이나 우리 나라의 교육이나 똑같다는 생각이든다.우리의 교사들도 권위적이다.

내 아이는 소중하다.그런 소중한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것은 학교를 믿고 선생님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리고 자질이 없는 나쁜 교사들보단 자질이 풍부한 좋은 교사가 더 많을거라고 ,우리 아이는 지금 좋은 교사에게서 배우고 있다고 작은 희망을 가져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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