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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틱 리버 (1disc) - [할인행사]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숀 펜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발매된 DVD를 집어들며 극장에서 [미스틱 리버]를 보던 그날을 추억하다.
봐야돼 봐야돼 봐야돼를 뇌이다 결국은 놓쳐버린 나를 위해, 친애하는 아카데미 위원회는 숀 펜과 팀 로빈스에게 상을 안겨주었고 감사한 한국 극장은 깜부기불처럼 빌빌대다 스러져버린 흥행실패외화 미스틱 리버를 재상영해주었다. 이렇게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who cares? 극장은 여전히 극한산했지만, 놓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 간결하고 매끈하면서도 흡인력이 말도 못했다. 강바닥에 잠겨버린 아이들의 시체를 먹고 강은 더 검어진다. 연대해서 악몽의 기억을 지워버린 남은 자들은 그 강을 마시고 삶을 지켜낸다.
[미스틱 리버]는 현대식으로 다시 쓴 카프카의 [변신]이다. 그레고르 잠자의 가족들이 합심해 '그 갑충'을 죽여버린 후 소풍갈 준비를 하는 것처럼 과거의 악몽을 강바닥에 묻어버린 사람들은 자못 즐거운 얼굴로 퍼레이드에 참가한다. 그레고르의 경제능력이 사라지고, 방에 숨어 거동조차 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을 때 다 낡아버린 노인에 불과했던 잠자씨의 권위는 되살아난다. 상징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액면 그대로 강건해지고 힘세지는 것이다.
납치당한 그 때 이미 죽어버린 나는 뱀파이어, 라고 읊조리는 데이브(팀 로빈스)가 산송장처럼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시체가 되어 강바닥에 묻혀버렸을 때에야 남은 사람들은 비로소 행복해진다. 딸의 밤외출을 서운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미 늙은 아버지에 불과했던 지미(숀 펜)의 위압적인 근육과 파워는 비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시위를 당긴 활처럼 팽팽해졌다가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이 시점에 와서 모피어스 아저씨;가 지적한 '전과자 특유의 침울함'은 파멸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의 강함으로 바뀐다. 떠나버린 아내가 말없이 걸고 끊는 전화에 대고 주절주절 혼잣말을 지껄일 뿐인 숀(케빈 베이컨)은 비로소 진심을 말할 용기를 얻고, 두 팔로 아내와 딸을 끌어안는다.
죄의식때문에 멀어져버린 세 친구. 다행히도 피해자가 아니었던 두 친구가 사실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지미가 데이브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에 튀어나온다. "하지만 그 차에 탄 건 너야" 불행의 무게를 서로 비교한다는 것은 턱도 없는 일이지만, 사실 세상은 자주 그런 식으로 굴러간다. 방관자에서 벗어나 실제로 피해자가 되었을 때 두 친구는 가정법 과거완료-그게 네가 아니라 나였더라면-를 부인할 힘을 얻는다. 복수를 자행한 지미와 부인(로라 리니)이 침대 위에서 키스를 나누는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관능적인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마치 그들은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 같다. 과거는 곧 미래라지만, 그러나 현대의 맥베스는 더이상 파멸하지 않는다.
숀 펜도 멋지지만 진짜 굉장했던 건 팀 로빈스. 옛 친구 딸의 빛나는 젊음을 질투심 어린 피로한 눈으로 응시하고, 진짜 좀비처럼 거리를 헤매이는 데이브는 모두의 악몽이다. 아마 악몽이란, 무서운 꿈이기도 하지만 슬픈 꿈일 것이다. "그래. 내가 죽였어. 나는 저런 시절을 빼앗겨버렸기 때문에." 악몽은 스스로 악몽이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더욱 강건해져서 합심해 그것을 공격한다.
'그 날' 밤, 데이브는 자신의 인생 전체를 앗아가버린 놈들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아동 성학대범을 극히 본능적으로 죽여버린다. 아마도 그 순간에 그는 쥐가 들끓는 지하실에서 도망치던 스스로의 모습에 오버랩되는 어린 아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야구를 가르치고 잠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데이브가 살아있는 거의 유일한 목적은 아들의 행복이었겠지만, 누구도 반기지 않는 악몽이 살아 움직이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죽은 자 앞에서 산 자들이 흔히 하는 그 말이 얼마나 검고 어둡고 묵직한 것인지 다시 한 번 곰씹게 한 영화. 보면서도 또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도 속으로 몇 번이고 훌쩍였지만, 영화와 함께 한 완벽한 일요일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