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간 전부터 유독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순정지 [오후]에는 그야말로 영광과 오욕... 까지는 아니더라도 유감의 나날, 이라는 정도의 수사가 어울릴 것 같다. 기존과 다른 판형, 부록으로 주는 팬시상품(덕택에 아직 쓰지 않은 수첩만 쌓이기는 했지만), 틴에이저들이 써내린 설익은 인터넷소설의 장르만 살짝 바꾼 형제같은, 마냥 가벼운 '요즘만화'와 차별을 이루는 작품 스타일-단적으로 말하면 보지 않고 '읽어야 한다'는 것- 등은 확실히 완전히 새롭다고는 할 수 없어도 용감한 시도였다.
유시진의 [온], 권교정의 [마담 베리의 살롱]의 양두마차를 필두로(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오후]팬들이 공감하리라 믿는다. 한편 판타지 성격의 두 작품과 다른 한 축이 되어 균형을 맞춰준 작품으로는 요시나가 후미의 [사랑해야 하는 딸들]을 꼽아야 한다) 그 외 송채성의 [미스터 레인보우]가 분투하며 그 이름처럼 뭔가 고즈넉한 이 잡지에 톡톡 튀는 명랑함을 불어넣었다. 확실히,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몇번째 권 부터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책장에 그 도톰한 책이 한 권씩 쌓여가던 어느날부터 "계속 사야하나 말아야하나"를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비단 나에 국한된 기억만은 아닐 것 같다. [마담 베리의 살롱]은 여전히 재미있으되 다음 호로 손을 척척 달라붙게 하는 스릴 혹은 흡인력에 있어서는 부족해보였다. 유시진표 '자아대서사시' [온]은 다음호를 가장 기다리게 하는 작품임에는 분명하지만 서사가 아닌 자아에 좀 너무 치우쳐 방점이 찍혔다. [사랑해야 하는 딸들]은 옴니버스구성이라는 맹점이 있고, 새로 수혈된 피들은 대부분 기대만 못했다. 가장 파워풀한 신진(어디까지나 비교적, 이지만)작가인 서문다미조차 [오후]에 와서는 다른 작품만 못한 단편을 그려냈다. 그런 와중에 들려온 [미스터 레인보우]의 송채성 작가의 갑작스런 부음도 빼놓을 수 없다. 오후는 여전히 단단해보였지만 생동감이 없었고, 한 호 한 호 구입할 때의 심경은 당초의 실망보다는 좀더 나아지기를 기다리는 쪽으로 바뀌었다.
오랫동안 만화기자생활을 한 혹자는 격월간이라는 주기가 작품페이스를 유지하는데 무리가 있다는 점을 가장 큰 원인으로 들었고, 그 외 걸맞는 비젼 확립에 실패했다, 역시 만화계의 문제 탓이다 등등 많은 점들이 [오후]의 지지부진의 원인으로 꼽혔다. [오후]와 [비쥬]를 발행하는 시공사(확실히 '전두환', '비자금' 등의 이미지가 따라다니는 이 출판사 자체가 늘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논점과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다)의 만화파트가 애초부터 안일하게 꾸려졌다는 뒷얘기도 있다. 그리하여 이 출판사의 만화사업부는 시간이 갈수록 적자만 누적되는 애물단지로 낙인찍히게 됐다는 얘기.
[오후]와 [비쥬] 두 잡지의 경우, 명색이 휴간이라지만 복간된 경우가 거의 전무했다는 선례에 비추어볼때 사실상의 [폐간]에 다름아니다. 장사가 되지 않으면 접어야 한다. 그건 '사업'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이상 재고의 여지없는 일이다. 그러나 슬프고 유감스러운 일. 앞서 언급한대로 실망도 많이 시킨 [오후]지만, 확실히 이렇게 빨리 그 잡지를 '회고'해야 할 줄은 몰랐다. 아직 할 일이 많은 만큼 더욱 더. 야심차게 시작했고, 막 애착을 붙여가던 한 순정지가 끝이 없어보이는 나락을 확인하게 하는 그저 증거로 끝나게 됐다는 것. 만화독자들이 느끼는 슬픔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