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인터넷 헌책방에서 주문한 헤겔의 <철학사 1>이 도착했다. 예전에 신촌 지하 헌책방에서 (매장도 지하에 있고, 운영 방식도 일본의 지하 아이돌과 비슷해서, 구매액이 일정 한도를 넘어야만 사장님과 악수회도 가능하다) 계산을 마치고 보니 사장님 등 뒤의 책장에 그 책이 꽂혀 있는데, 누군가 예약한 것인 듯해서 놓쳤다가 이번에야 다른 헌책방에서 샀다.


<철학사 1>은 지식산업사에서 나온 '헤겔학총서' 제9권이다. 제목에 1이라고 나와 있으니, 혹시 2나 3은 없나 찾아볼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실제로는 1권만 나오고 말았다.(자매품으로 돈 드릴로의 <마오 II>가 있다). ISBN에 '세트' 표시를 한 모양인지 일부 도서관에서는 <철학사 1-2>라고 잘못 표기했는데, 심지어 서울대 도서관에서도 그렇게 잘못 적었다.


'헤겔학총서'는 대부분 임석진의 주도로 지식산업사에서 간행한 헤겔 관련서 시리즈를 가리키는데 지금은 모두 절판되었다. 그중에서 헤겔의 주저인 <정신현상학>과 <법철학>은 훗날 한길사에서 재간행되었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은 역시나 절판인데, 혹시 <대논리학>의 경우처럼 다른 출판사에서 재간행을 준비하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임석진의 헤겔 번역은 분도출판사에서 나온 <정신현상학>이 최초였으며, 이걸 나중에 지식산업사로 옮겨 재간행하면서 '헤겔학총서'라는 총서명을 쓰기 시작했다고 알고 있다. 현재 알라딘에서는 총서명이나 역자명으로 검색해도 일부만 나오므로 (물론 서지 정보는 등록되어서 '헤겔 + 지식산업사'로 검색하면 찾아볼 수 있다) 이번 기회에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2. <정신현상학 I-II>, 임석진 옮김, 1988

3. <헤겔 연구 4>, 한국헤겔학회 편저, 1988

4. <헤겔의 노동의 개념>, 임석진 지음, 1990

5-6. <법철학>, 임석진 옮김, 1989. (상하 분권에서 훗날 합본)

7. <역사 속의 이성>, 임석진 옮김, 1992

8. <피히테와 셸링 철학체계의 차이>, 임석진 옮김, 1989

9. <철학사 1>, 임석진 옮김, 1996

(10). <종교철학>, 최신한 옮김, 1999



'헤겔학총서'는 그 이름에 걸맞게끔 초기에는 임석진의 헤겔 번역서뿐만 아니라 헤겔 연구서며 학회지까지도 포함했지만, 나중에 가서는 임석진의 헤겔 번역서 위주로 굳어진 듯하다. 다만 마지막 권인 <종교철학>은 표지에 '헤겔학총서'가 아니라 '헤겔총서'라고만 나와 있고 연번도 나와 있지 않으므로, 어쩌면 별개의 단행본인지 시리즈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헤겔 저서를 넣어 둔 책장을 뒤지다 보니, 임석진의 저서도 두 권이나 나온다. <시대와 변증법: 헤겔철학의 한국적 수용과 그 전개>(청사, 1979)와 <헤겔 변증법의 모색과 전망>(종로서적, 1985)은 저자가 여러 지면에 기고한 철학 관련 에세이를 엮은 책들인데, 해외 학회 참석 당시 아도르노와 블로흐와 볼노브 등을 만난 일에 대한 회고도 짧게나마 실려 있다.


헤겔 번역서라면 예전 을유문화사의 <철학강요(백과)>와 삼성출판사의 <역사철학강의>와 지학사의 <대논리학>이 있었고, 이후 신학이며 자연과학 분야의 강의록도 간행되었다고 알고 있다. 최근 들어서도 <정신현상학>과 <백과>의 새로운 번역본을 비롯해서 관련서가 꾸준히 나오는 듯한데, 유독 임석진의 번역서만큼은 절판 상태가 지속되는 듯하니 의아한 일이다.


임석진은 독일 유학 당시 방북 사실을 박정희 정권에 제보해 이른바 '동백림 사건'의 단초를 제공했는데, '밀고자' 꼬리표가 달려서인지 이후로는 대외 활동보다 학술 연구에만 전념한 듯하다. 훗날 김형효도 전두환 정권에 협조했다가 '부역자' 꼬리표가 달려서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던데, 결과적으로는 양쪽 모두 자기 분야에서 대가가 되었으니 아이러니하다...



[*] 여하간 기회 있을 때마다 헤겔 책을 꾸준히 모아 온 나귀님이기는 한데, 막상 완독한 것은 몇 가지 안 되니 민망한 일이다. 가장 최근에 뒤적여 본 것은 <법철학>이었는데, 레드벨벳의 노래 "덤덤"에 나오는 "이성적인 감각"이라는 기묘한 표현이 무려 헤겔에게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즉 "이성적인 감각들을 헛갈리게 해"라는 저 가사의 맥락을 보면, 결국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이성적 사고가 불가능한' 상황을 묘사하는 것 같은데, '이성'이면 '이성'이고 '감각'이면 '감각'이지 어떻게 '이성적인 감각'이 가능한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구글링해 보니 의외로 "이성적인 감각"이란 표현이 헤겔의 <법철학> 제3부 "인륜" 제398절에 나온다고 하기에 부랴부랴 임석진 번역본을 펼쳐보게 되었다. "이성적 고찰을 위한 이념의 의식이란 구체적이며 또한 이런 한에서 그것은 스스로 이념의 감각이기도 한 바로 이 이성적 감각에 다름 아닌 참다운 실천적 감각과 합치되거니와 결코 이러한 감각은 단순히 기계적으로 수행되는 업무나 제한된 영역의 지평과 혼동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지식산업사, 480쪽). 가뜩이나 둔한 나귀님 머리로는 솔직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헤겔이 보증한 이상에는 레드벨벳이 노래한 "이성적인 감각"도 아주 근거 없지는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이 유일한 소득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레드벨벳은 헤겔주의자인가?'라는 또 다른 의문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 문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난번 말이 많았던 아이린의 '갑질' 논란부터 <정신현상학>에서 소개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의 현실 사례일 가능성이 없지 않아 보이니, 어쩐지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케이팝 문화 뒤편에 도사린 독일 관념론자의 짙은 그림자를 목격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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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나온 <박완서의 낱말들> 책 소개 글에서 하나 이상했던 것은 배우 고아성의 추천사이다. "사캐즘(sarcasm)이라 하는 현대식 비꼬기를 박완서 선생님은 옛날에 다 해냈다." 이 문장만 보면 '사캐즘 = 현대'이고 '박완서 = 옛날'이라는 주장 같은데, 문제는 "비꼬기"나 "빈정거림"이라고 흔히 번역되는 저 영어 단어가 박완서보다 훨씬 더 먼저 있었다는 거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박완서 이전의 한국 문학이나 세계 문학에서 '비꼬기'나 '빈정거림' 같은 표현이 전무했다 볼 수는 없을 텐데, 고아성의 추천사는 마치 '21세기에나 가능한 것을 박완서는 20세기에 미리 해냈다'며 격찬하는 듯하니 이상할 수밖에 없다. 혹시 저 영화배우의 말처럼 2026년 현재에 와서야 정립된 별도의 '새카즘'이 있는지까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고아성의 입장에서는 현재의 독자에게도 와닿는 박완서 작품의 탁월함을 강조하려는 뜻이었겠지만, 언젠가 이승철이 나이 어린 팬으로부터 '제2의 조성모가 되시라'는 격려를 들었던 것처럼, 또는 박완서가 과일장수로부터 '선생님도 불우 아동 수기 <저 하늘에도 슬픔이>처럼 좋은 책 많이 쓰시라'는 덕담 아닌 덕담을 들었던 것처럼 뭔가 살짝 어긋난 비유 아닐까.


박완서는 사변 직후 미군 PX에서 일하며 자기가 따낸 '오더'로 초상화를 그린 화가들을 (그중 하나가 무려 '박수근'이었다!) 멋모르고 하대했었다며 자책했었는데, 이에 착안해 '박완서는 21세기에 와서야 보편화된 갑질의 문제점을 20세기에 이미 통찰한 선각자'라며 추켜세운다면 민망할 것이다. 나귀님이 보기에는 고아성의 추천사도 이와 비슷하지 않나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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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노인네가 읽을 책 내놓으라고 성화이기에 간만에 책더미를 뒤지다 보니, 책장 맨 아랫칸에 들어 있던 이문구 전집도 오랜만에 꺼내 보게 되어서 내친 김에 인증 사진까지 찍어 놓았다. 랜덤하우스중앙에서 전26권으로 간행한 전집을 눈에 띄는 대로 한두 권씩 사 모으기 시작한 지 20여 년 만인 작년에야 알라딘에서 <토정 이지함>을 구입해 완질을 갖추었다.


이것도 원래는 바깥양반의 재촉에 구입하기 시작했는데, 나귀님이야 한국 소설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서 이문구라면 단편집 한두 권 밖에 가진 것이 없었다. 바깥양반이 에세이 몇 권을 읽어보더니 소설까지 읽어야겠다며 도서관에서 빌려와서는 '이문구 전집 한 질 없는 놈의 집구석' 운운하기에, 이미 절판된 책들을 뒤늦게야 하나둘씩 사모으기 시작했던 것이다.


절판본이기는 하지만 처음 몇 권은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비교적 더 알려진 단편집은 그나마 쏠쏠하게 판매되었던 까닭으로 보이고, 비교적 덜 알려진 에세이는 딱히 사려는 사람이 없었던 까닭으로 보인다. 그런데 막상 한 자리에 모아놓고 보니, 무려 전26권이나 되는 책을 완간했다는 기특함 못지않게 영 아쉬운 점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일단 가장 눈에 거슬리는 것은 표지의 일관성 부재이다. 전26권에서 무려 4가지 디자인이 혼재되었기 때문이다. 다색 표지(1-3권), 흰색 표지(8, 12, 17권), 동시집 표지(23-25권), 회색 표지(4-7, 9-11, 13-16, 18-22, 26권)가 뒤섞여 있어서 한데 쌓아 놓으면 그야말로 꼴불견이다. 2003년과 2004년과 2005년에 연이어 표지가 바뀌었으니, 해마다 헛발질을 한 걸까.


물론 사전 계획 미비가 드러나긴 했어도 완간 자체는 사건이었다. 이문구 전집은 솔 출판사에서 이미 한 번 시도되었지만, <우리 동네>를 비롯하여 두어 권만 간행하고 중도작파했기 때문이다. 비록 표지가 들쑥날쑥이기는 해도, 전26권 완간에 추모문집과 연구론집까지 추가로 간행했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랜덤하우스중앙이 큰일을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성 싶다.


다만 교정 등에서는 여전히 아쉬움이 없지 않다. 각 권의 "일러두기"에서는 저자가 생전에 "첨삭, 가필, 개고"를 마무리한 판본이라고 적었지만, 한글 세대 편집자의 손을 거친 까닭인지 잘못된 한자가 대뜸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집 제15권 <유자소전> 수록 단편 "명천유사"에서 동료 작가인 "염평곡(廉平谷, 左萬)"을 언급할 때는 在를 左로 오기했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반노>의 작가 염재만을 가리키는데, '평곡'은 그의 호라고 한다. 염재만이 1975-1985년에 한진출판사에서 주간으로 근무했다 하니, 1977-1984년에 그곳에서 편집장으로 근무한 이문구와는 절친했을 듯하다. 물론 이문구의 회고에 따르면 한진영화사에 딸린 출판사이다 보니, 영화 원작 소설을 주로 펴내는 '얼치기'였다고 하지만.


물론 영화 못지않게 원작이 우수한 경우라면, 거꾸로 국내 출판이 불가능했을 법한 수작 소설이 영화 덕분에 소개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나귀님이 가진 책 중에서는 래리 맥머트리의 <애정의 조건>과 게리 브란트너의 <캣 피플>이 그런 경우였는데, 같은 시리즈로 스티븐 킹의 <캐리>는 물론이고, 원작까지는 아니지만 <에일리언>의 소설판도 나왔었나 그랬다.


여하간 이문구 전집을 다시 꺼낸 김에 읽어본 작품은 앞에 언급한 "명천유사"였다. 오래 전에 읽었을 때 한 대목이 각별히 인상 깊게 남았었는데, 이문구 작품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정확한 제목을 기억 못해 아쉬웠다. 그의 대표작 <우리읍내>와 <관촌수필>을 뒤져도 나오지 않기에, 혹시 다른 작가의 작품을 착각했었나 의구심마저 들었는데 <유자소전>에 있었다!


"명천유사"는 저자가 고향 마을의 지명인 '명천'을 호로 삼게 된 내력을 회고하는 자전적 단편이다. 어린 시절 전쟁 후유증으로 풍비박산난 집안에 끝까지 남아 일을 돕던 까막눈 머슴에 대한 이야기인데, 머지않아 화자도 어머니가 돌아가시며 상경하게 되자, 늙은 머슴도 졸지에 갈 곳 없는 신세가 되어 양로원에 들어가게 되고, 이후 피차 소식이 끊기고 만다.


화자는 몇 년 뒤에 고향에 왔다가 거지꼴을 한 머슴을 만나 측은한 마음에 주머니를 탈탈 털지만, 본인도 가난한 입장이다 보니 몇 푼 쥐어주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긴다. 이후 현재의 시점에서 화자는 자기 지갑을 다시 꺼내보며 다시 한 번 탄식한다. "아아, 그때는 왜 이까짓 단돈 몇 만 원도 내게는 없었던 것일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원통한 일이었다."


나귀님이 각별히 인상 깊었던 대목이 바로 여기였으니, 은인에게 작은 인심조차 쓸 수 없었던 신세를 한탄하는 모습에서, 과거 책 사기 바쁘다는 핑계로 남에게 인색하게 굴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간혹 인심 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모른 체 하고 넘어간 일이 없지 않았는데, 사실은 돈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마음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어려서는 받기만 하고, 자라서 줄 수 있었을 때에는 주지 못했으니, 또다시 늙어서 받기만 하는 입장이 되자,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나는 남에게 준 것 없이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나' 싶어 민망하기도 하다. 지금이라도 인심 쓰면 되지 않느냐 생각할 수 있지만, 이제는 곁에 남아 연락하는 사람도 얼마 되지 않으니 이래저래 한심한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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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북펀드 중에 "일본에 철학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들어간 광고가 있기에 흥미를 느껴 클릭해 보니 도서출판 길에서 간행 예정이라는 <열도 철학사>라는 책이었다. 저 질문은 예전에 조동일이 <우리 학문의 길>에서인지 제기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또 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 정치사상사 연구>에서 번역자인 김석근이 나름대로 답변을 제기했었다고도 기억한다.


그런데 <열도 철학사>의 북펀드 페이지에 나온 소개글을 읽다 보니 황당한 오타가 눈에 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즉 '열도'에 갖힌 일본 철학자의 문제의식은 고스란히 '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갇힌'을 '갖힌'으로 쓸 만큼 맞춤법을 몰라 큰일이라더니, 이제는 책 만드는 사람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인가보다.


이런 사례를 접할 때마다 '인문학의 허상'에 대한 의문이 머리를 스칠 수밖에 없다. 번역이 잘못되고 문장이 이상해도 뭔가 잘도 의미를 이끌어내니, 사실상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놈들의 쑥덕공론 야바위판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열도 철학사>의 소개글만 봐도 온갖 어마어마한 개념어를 쏟아내다가 결국엔 '갖힌'으로 마무리한 셈이니까.


해외 저자라고 해서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아서, 자국 언어나 문화에서나 통할 뿐인 개념을 무리하게 확장하려다가 헛발질을 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희랍어와 라틴어의 어원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국어의 말장난까지도 들먹이며 어떤 개념어를 설명하는 경우가 그런데, 중국 한자와 일본 신조어 어원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나라 학계에는 안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서출판 길은 마르크스와 베버를 비롯한 인문학 고전을 전문적으로 간행하는 출판사이기는 한데, 번역과 편집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사실이 이번 오타로 다시 한 번 입증된 셈은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장 아메리의 저서인 <죄와 속죄의 저편>이 특히나 심각한 오역본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출판사를 옮겨 재간행된 신판은 그런 오역을 수정했는지 궁금하다.


번역 나쁜 것은 편집으로 어찌어찌 고칠 수 있지만, 편집 나쁜 것은 멀쩡한 번역조차 엉망진창으로 바꿔버릴 수 있으니 오히려 더 나쁘다고 봐야 한다. 옛날 을유문화사의 전설적인 편집부장 안춘근은 워낙 아는 게 많다 보니 웬만한 대학 교수들조차 그 앞에 가면 주눅이 들었다던데, 그 정도까지야 아니더라도 편집자라면 어느 정도 실력은 갖춰야 하지 않을까...



[*] 글을 쓰고 나서야 다시 확인해 보니, 조동일의 문제 제기에 대한 김석근의 답변은 <일본정치사상사연구> 역자후기가 아니라 <일본의 사상> 서두의 해제에 들어 있었다. 다만 그 답변 역시 핵심은 <일본정치사상사연구> 서두에 수록된 김용옥의 해제를 인용한 것이므로, '일본에 철학사가 있는가?'라는 주제에 대해서라면 김석근의 해제와 김용옥의 해제 모두를 읽어 볼 만하겠다. 그나저나 김석근의 설명만 놓고 보면 한국에서는 '철학'이라 부르는 것을 일본에서는 '사상'이라 부르는 것이므로, 용어 사용의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에 불과해 보이는 반면, 막상 김용옥의 추가 설명을 읽다 보면 '철학'과 '사상'은 비슷해 보이면서도 실상은 다른 것이므로, 결국 '일본에 철학사가 없다'는 지적도 아주 틀렸다고 볼 수는 없을 듯하다. 여하간 나귀님도 최근 창비의 '한국사상선' 완간을 계기로 '사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런저런 궁금증을 품었던 참이니, 이참에 관련 자료를 더 뒤적여 보든지 해야겠다. 이래저래 남의 '갖힌'을 흉보느라 정신이 팔려 정작 글의 내용을 '틀닌' 나귀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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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알라딘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펴보니 <박완서의 낱말들>이라는 책이 있었다. 그간 장편과 단편과 산문까지 전집이 다 간행되었다고 알고 있어서, 혹시 거기 포함되지 않은 미간행 유고를 모은 작품집인가 싶어 클릭해 보니, 유사한 편저서를 앞서 여럿 간행한 장녀 호원숙이 이번에는 모친의 저서에 나오는 단어 가운데 일부를 골라 해설한 모양이다. 


얼마 전 '완서학'인지 '완동학'인지 하는 책이 나온다기에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었는데, 아직까지는 연구에 앞서 자료의 정리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박완서 산문의 경우, 2021년에 전9권으로 박스세트까지 만들며 완간되었나 싶더니, 2025년에 뜬금포로 여행 에세이가 제10권으로 간행되었다. 결국 기존 박스세트를 산 독자만 손해를 본 셈이 아니려나. 


박완서 산문 전집은 저자 생전에 간행된 단행본 20여 권의 재편집일 뿐이고, 기간본 미수록 자료까지 모두 망라하지는 않았다고 알고 있다.(다만 이번 산문 전집 제10권에는 미수록 자료 5편이 추가되었다). 단행본 미수록 기고문 중에도 제법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다고 기억하는 나귀님이니, 그런 자료까지 취합한 진정한 의미의 '전집'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쉽다.


그런 미간행 기고문 중 2000년대 초쯤 <조선일보>인지 어딘지에 게재된 서평이 있었다. 거기서 박완서는 독일 소설가 지크프리트 렌츠의 <240개의 크림 스푼으로 만든 세상>(오청자 옮김, 전예원, 1980)을 소개했는데, 나귀님도 워낙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고, 이미 예전에 절판되어 헌책방에서도 눈에 잘 안 띄는 책을 언급한 셈이라 상당히 의외이고 또 반가웠다. 


지크프리트 렌츠라면 사뭇 진지한 분위기의 <독일어 시간>이 대표작이지만, 사실은 출세작인 <줄라이켄 사람들>부터 유머 단편집이니, 우스운 이야기에도 일가견이 있는 작가라고 봐야 할 법하다. 그러면서도 쿠르트 쿠젠베르크나 에프라임 키숀처럼 '배꼽 빠지게' 우습거나 부조리한 수준에 달한 정도의 유머까지는 아니고, 뭔가 살짝 '삼간' 듯한 수준의 유머다.


<240개의 크림 스푼>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의 궁핍한 시절에 암시장에서 활약한 남자의 회고록 형식을 취한다. 주인공 레만은 군대에서 복무하다 자국의 패전과 함께 전역하여 고향 함부르크로 돌아온다. 귀향 직전, 보상조로 뭐라도 챙길까 싶어 전우들과 부대 창고를 털러 갔는데, 다급한 와중에 기껏 챙긴 게 '크림 스푼' 240개가 들어 있는 상자뿐이었다.


식량이나 각종 기호품 같은 인기 품목에 비하자면 영 무용지물 같았던 크림 스푼이었지만, 전후의 암울한 상황에서는 의외로 수요가 없지 않아서 식대부터 뇌물까지 갖가지 용도에 현금 대용으로 써먹을 수 있었고, 이에 자신감을 얻은 레만은 암시장으로 진출해 갖가지 불가능하게만 보이던 물품 조달에 연이어 성공하면서 뒷세계의 거물로 이력을 쌓아 나가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전후의 혼란스러운 독일 경제 상황을 풍자했던 이 작품이 의외로 동시대 한국 작가에게도 창작의 영감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즉 박완서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자기도 전후에 암시장 등 유사한 상황들을 체험했음을 상기하고 차기작에 관련 내용을 넣었다고 했는데, 정확한 제목은 잊어버렸지만 렌츠의 번역서가 나온 1980년 이후의 작품일 듯하다.


혹시 한국전쟁 직후가 배경인 장편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일까 싶었는데, 확인해 보니 암시장 묘사까진 없었으니 어쩌면 단편 중에 하나였는지도 모르겠다. <240개의 크림 스푼> 뒷날개에는 당시 전예원에서 간행한 박완서의 장편 <살아 있는 날의 시작>의 광고도 나와 있으니, 어쩌면 출판사에서 렌츠의 책을 박완서에게 증정한 것이 영감의 계기였을 수도 있겠다.


여하간 나귀님 기억에는 박완서의 기간 에세이집에서도 렌츠의 저 소설에 대한 에세이만큼은 찾아볼 수 없었으니 (물론 눈 나쁜 나귀님이 못 보고 넘어갔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그 내용을 다시 읽어보려면 차후에 미발표 및 미간행 에세이 선집이 다시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어쩌면 그때가 되어야 비로소 온전한 형태의 '산문 전집'이 되지는 않을까.


박완서가 지크프리트 렌츠의 소설을 읽고 창작의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사실은 이번에 태동했다는 '완서학'인지 '완동학'인지에서도 충분히 흥미로운 연구 주제가 될 것 같다. <나목>을 설명할 때마다 박수근의 생애와 작품을 빼놓을 수 없듯이, 박완서의 다른 작품에도 영감이나 영향을 제공했던 국내외 작가며 작품에 대한 연구라고 치면 충분히 유의미해 보이니까.


물론 렌츠라고 해서 완전히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사람까지는 아니어서, 한 세대 위인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에게 영향을 받았다 한다. 이에 대해서는 <240개의 크림 스푼>을 번역한 충북대 교수 오청자의 논문 "지그프리트 렌츠와 어네스트 헤밍웨이", <독일 문학과 세계문학 1>(오한진 편저, 벽호, 1995)에서 그 영향 관계를 분석한 내용을 참고할 만하다.


전후 독일에서는 실존주의 열풍이 불면서, 젊은 작가 다수가 '전쟁'과 '죽음'이란 소재에 천착한 헤밍웨이의 소설에 크게 매료되었다고 한다. 렌츠의 작품 중에서는 <난파선>(1960)이 그 영향을 받았다는데, 우리나라에는 <등대선>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훗날 박완서와 렌츠의 관계에 대한 추가 연구가 이루어지면, 또 어떤 사실이 드러나게 될지 궁금해진다.




[*] 지크프리트 렌츠의 번역서는 꾸준히 간행되는 만큼, 또 꾸준히 절판되어서 지금 구할 수 있는 것은 의외로 많지 않다. 아울러 이번 기회에 도서관 보유 자료를 검색해 보니, 나귀님도 이제껏 본 적 없는 옛날 번역본이 여럿이어서 놀랐다!



1955 -- So zärtlich war Suleyken: masurische Geschichten

<줄라이켄 사람들>(문은숙 옮김, 달궁, 2003)


1960 -- Das Feuerschiff

<등대선>(안삼환 옮김, 심상사, 1979)

<등대선>(김유진 옮김, 도서출판 준, 1988/9? --- 판권면의 인쇄연도와 발행연도가 다르게 찍힘)


1964 -- Lehmanns Erzählungen, oder So schön war mein Markt: aus den Bekenntnissen eines Schwarzhändlers

<240개의 크림 스푼으로 만든 세상>(오청자 옮김, 전예원, 1980)


1964 -- Das Gesicht

<대통령의 얼굴: 지그프리트 렌쯔의 코메디>(김충식 역, 장문사, 1986)

-- 희곡


1968 -- Deutschstunde

<독일어 시간>(김승옥 옮김, 주우, 1983; 학원사, 1985)

<독일어 시간>(정서웅 옮김, 한길사, 1983; 민음사, 2000)


1996 -- Ludmilla

<루드밀라>(김재혁 옮김, 예문, 1995)

-- 단편집. 수록작은 "루드밀라", "숨쉬기 운동", "구해 낸 저녁", "공포", "구직 응모", "들름길".


1999 -- Arnes Nachlass

<아르네가 남긴 것>(박종대 옮김, 사계절, 2002)


2008 -- Schweigeminute

<침묵의 시간>(박종대 옮김, 사계절, 2002)


2009 -- Landesbühne

<유랑극단>(박종대 옮김, 사계절, 2002)



>> 아래는 원제나 연도를 정확히 확인하지는 못한 작품들이다:


"발라톤 호수의 물결", <어느 사랑의 실험: 독일>(임홍배 옮김, 창비, 2008)


<하룻밤의 여행>(교원, 2007)


"위험에 빠진 산타클로스", <(세상의 모든) 크리스마스>(폴 오스터 외 지음, 알베르토 망겔 엮음, 김석희 옮김, 황금나침반, 2006)


"사랑의 집", <휴일의 소설: 세계현대단편소설선>(이어령 편저 문학사상, 2005)


"즐거움을 처방하는 의사", <뚱뚱한 아이>(노혜옥 옮김, 경진문화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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