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 노인네가 읽을 책 내놓으라고 성화이기에 간만에 책더미를 뒤지다 보니, 책장 맨 아랫칸에 들어 있던 이문구 전집도 오랜만에 꺼내 보게 되어서 내친 김에 인증 사진까지 찍어 놓았다. 랜덤하우스중앙에서 전26권으로 간행한 전집을 눈에 띄는 대로 한두 권씩 사 모으기 시작한 지 20여 년 만인 작년에야 알라딘에서 <토정 이지함>을 구입해 완질을 갖추었다.
이것도 원래는 바깥양반의 재촉에 구입하기 시작했는데, 나귀님이야 한국 소설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서 이문구라면 단편집 한두 권 밖에 가진 것이 없었다. 바깥양반이 에세이 몇 권을 읽어보더니 소설까지 읽어야겠다며 도서관에서 빌려와서는 '이문구 전집 한 질 없는 놈의 집구석' 운운하기에, 이미 절판된 책들을 뒤늦게야 하나둘씩 사모으기 시작했던 것이다.
절판본이기는 하지만 처음 몇 권은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비교적 더 알려진 단편집은 그나마 쏠쏠하게 판매되었던 까닭으로 보이고, 비교적 덜 알려진 에세이는 딱히 사려는 사람이 없었던 까닭으로 보인다. 그런데 막상 한 자리에 모아놓고 보니, 무려 전26권이나 되는 책을 완간했다는 기특함 못지않게 영 아쉬운 점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일단 가장 눈에 거슬리는 것은 표지의 일관성 부재이다. 전26권에서 무려 4가지 디자인이 혼재되었기 때문이다. 다색 표지(1-3권), 흰색 표지(8, 12, 17권), 동시집 표지(23-25권), 회색 표지(4-7, 9-11, 13-16, 18-22, 26권)가 뒤섞여 있어서 한데 쌓아 놓으면 그야말로 꼴불견이다. 2003년과 2004년과 2005년에 연이어 표지가 바뀌었으니, 해마다 헛발질을 한 걸까.
물론 사전 계획 미비가 드러나긴 했어도 완간 자체는 사건이었다. 이문구 전집은 솔 출판사에서 이미 한 번 시도되었지만, <우리 동네>를 비롯하여 두어 권만 간행하고 중도작파했기 때문이다. 비록 표지가 들쑥날쑥이기는 해도, 전26권 완간에 추모문집과 연구론집까지 추가로 간행했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랜덤하우스중앙이 큰일을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성 싶다.
다만 교정 등에서는 여전히 아쉬움이 없지 않다. 각 권의 "일러두기"에서는 저자가 생전에 "첨삭, 가필, 개고"를 마무리한 판본이라고 적었지만, 한글 세대 편집자의 손을 거친 까닭인지 잘못된 한자가 대뜸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집 제15권 <유자소전> 수록 단편 "명천유사"에서 동료 작가인 "염평곡(廉平谷, 左萬)"을 언급할 때는 在를 左로 오기했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반노>의 작가 염재만을 가리키는데, '평곡'은 그의 호라고 한다. 염재만이 1975-1985년에 한진출판사에서 주간으로 근무했다 하니, 1977-1984년에 그곳에서 편집장으로 근무한 이문구와는 절친했을 듯하다. 물론 이문구의 회고에 따르면 한진영화사에 딸린 출판사이다 보니, 영화 원작 소설을 주로 펴내는 '얼치기'였다고 하지만.
물론 영화 못지않게 원작이 우수한 경우라면, 거꾸로 국내 출판이 불가능했을 법한 수작 소설이 영화 덕분에 소개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나귀님이 가진 책 중에서는 래리 맥머트리의 <애정의 조건>과 게리 브란트너의 <캣 피플>이 그런 경우였는데, 같은 시리즈로 스티븐 킹의 <캐리>는 물론이고, 원작까지는 아니지만 <에일리언>의 소설판도 나왔었나 그랬다.
여하간 이문구 전집을 다시 꺼낸 김에 읽어본 작품은 앞에 언급한 "명천유사"였다. 오래 전에 읽었을 때 한 대목이 각별히 인상 깊게 남았었는데, 이문구 작품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정확한 제목을 기억 못해 아쉬웠다. 그의 대표작 <우리읍내>와 <관촌수필>을 뒤져도 나오지 않기에, 혹시 다른 작가의 작품을 착각했었나 의구심마저 들었는데 <유자소전>에 있었다!
"명천유사"는 저자가 고향 마을의 지명인 '명천'을 호로 삼게 된 내력을 회고하는 자전적 단편이다. 어린 시절 전쟁 후유증으로 풍비박산난 집안에 끝까지 남아 일을 돕던 까막눈 머슴에 대한 이야기인데, 머지않아 화자도 어머니가 돌아가시며 상경하게 되자, 늙은 머슴도 졸지에 갈 곳 없는 신세가 되어 양로원에 들어가게 되고, 이후 피차 소식이 끊기고 만다.
화자는 몇 년 뒤에 고향에 왔다가 거지꼴을 한 머슴을 만나 측은한 마음에 주머니를 탈탈 털지만, 본인도 가난한 입장이다 보니 몇 푼 쥐어주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긴다. 이후 현재의 시점에서 화자는 자기 지갑을 다시 꺼내보며 다시 한 번 탄식한다. "아아, 그때는 왜 이까짓 단돈 몇 만 원도 내게는 없었던 것일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원통한 일이었다."
나귀님이 각별히 인상 깊었던 대목이 바로 여기였으니, 은인에게 작은 인심조차 쓸 수 없었던 신세를 한탄하는 모습에서, 과거 책 사기 바쁘다는 핑계로 남에게 인색하게 굴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간혹 인심 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모른 체 하고 넘어간 일이 없지 않았는데, 사실은 돈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마음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어려서는 받기만 하고, 자라서 줄 수 있었을 때에는 주지 못했으니, 또다시 늙어서 받기만 하는 입장이 되자,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나는 남에게 준 것 없이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나' 싶어 민망하기도 하다. 지금이라도 인심 쓰면 되지 않느냐 생각할 수 있지만, 이제는 곁에 남아 연락하는 사람도 얼마 되지 않으니 이래저래 한심한 일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