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양반이 암베드카르 이야기를 하기에 저서 한 권, 전기 두 권, 만화 한 권을 꺼내 주었더니, 예상대로 그중 가장 얇고 만만해 보이는 <버려진 자들의 영웅>만 집어든다. '다른' 출판사의 만화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데, 한때 알라딘에서 정가 인하로 염가 판매할 때 구입했던 물건이다. 지금도 파나 검색해 보니 이미 절판되어서 악성 재고 취급을 받는 모양이다.


내용은 좋지만 그림이 영 낯설어서 나귀님도 읽고 나서는 버릴까 말까 고민스러웠던 책인데, 이번에는 어쩐지 예전에 구입한 <나무들의 밤>이라는 책이 떠올라서 꺼내 보았더니만, 두 권 모두 같은 일러스트레이터가 참여한 책이었다. <버려진 자들의 영웅>에서 그림을 담당한 '두르가바이 브얌'이 <나무들의 밤>에도 '두르가 바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이 여성 일러스트레이터의 본명은 '두르가 바이'(Durga Bai)이고, 나중에는 <버려진 자들의 영웅>을 함께 그린 '수바시 브얌'(Subhash Vyam)과 결혼해서 '두르가 바이 브얌'(Durga Bai Vyam)이 된 모양이다. 하지만 한쪽은 '두르가 바이'로 표기하고, 또 한쪽은 '두르가바이 브얌'으로 표기하니, 알라딘에서는 같은 사람으로 등록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나무들의 밤>은 두르가 바이의 출신 부족인 인도 곤드족의 전통 그림 기법을 이용해서 수작업으로 제작한 것이라서 책값도 '싯가'로 받는다. 즉 쇄당 2,000부씩 한정본으로 번호를 매겨 제작하며, 이후 물가 상승율(?)을 반영해서 가격이 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귀님이 가진 3쇄본은 정가 41,000원인데, 현재 5쇄본은 45,000원으로 가격이 더 올랐다.


<버려진 자들의 영웅>도 곤드족의 전통 그림 기법을 이용한 작품인데, 아무래도 일반적인 만화의 그림체와는 확연히 다르다 보니 영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차라리 인물 묘사 등에서는 일반적인 만화 그림체를 따르고 배경이나 장식에서만 전통 그림체를 섞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나무들의 밤>의 독자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만하지만.


'다른' 출판사의 만화 시리즈는 동명 애니메이션을 만화로 재구성한 <바시르와 왈츠를>부터 시작해서 에릭 드루커의 <대홍수>까지 제법 흥미로운 작품들을 여럿 간행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판매 부진 때문인지 한동안 재정가도서로 떨이 판매를 했었고, 지금은 어느 헌책방마다 몇 권씩 쌓여 있어서 권당 1천 원짜리 악성 재고 취급을 받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바깥양반이 새삼스레 암베드카르를 뒤적인 까닭은 얼마 전 번역된 아룬다티 로이의 <박사와 성자> 때문이다. 간디라면 '성자'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정치인'으로서는 꽤나 노회한 인물이었다는 평가도 있다고 알고 있다. <간디와 맞선 사람들>이라는 책에 그런 사정이 잘 나왔다고 기억하는데, 암베드카르에 대한 내용도 있다. 그나저나 이 책은 또 어디 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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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세계문학전집 500권 돌파 기념으로 자화자찬하는 책까지 펴내면서 대대적으로 축하하는 듯하기에, 그렇잖아도 잔뜩 벼르던 차에 '이놈들, 잘 걸렸다'는 생각이 들어서 본격적으로 '세계문학전집 까는 글'이나 써 볼까 생각 중이다. 애초에 '세계문학전집' 자체가 '신성로마제국'만큼이나 실체 없는 퇴행적 출판 관행이니 자축보다 반성이 먼저이지 않을까.


사실은 200권 돌파 때에도 그 기획물 자체에 내재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려다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중단했었는데, 이제는 그 분량부터 곱절로 늘어나고 보니 기간 도서의 국적/작가별 권수(종수) 통계 같은 기초적인 작업부터 번거롭고 귀찮다. 심지어 민음사가 자사 홈페이지(https://app.minumsa.com/)에 올려놓은 목록부터 자승자박 수준으로 오류가 많다.


맨 먼저 지적할 점은 무려 500권 돌파를 자축하는 상황에서 자사 홈페이지의 세계문학전집 목록에는 497권밖에 등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번호로는 앞서지만 출간은 늦었던 493권 <패싱>과 497-8권 <백치>가 목록에서 빠져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 옆에 나와 있는 국가별 분류 수치를 참고할 때에도 미국과 러시아의 경우에는 각각 숫자 1과 2를 더해주어야 되겠다.


그런데 국가별 분류에서도 잘못된 점이 적지 않다. 국가별 분류에서 "미국"을 눌러보면 84권이라고 나오지만, 해당 목록에는 제프리 초서와 버지니아 울프도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울프의 경우,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된 4권 중 <자기만의 방>, <등대로>, <댈러웨이 부인>은 정확히 "영국"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버지니아 울프 단편선>만큼은 "미국"으로 분류되었다.


초서와 울프야 단순 실수라고 볼 수도 있지만, '멕시코' 작가 푸엔테스를 굳이 '파나마' 국적으로 분류한 것은 영 의문이다. 파나마 태생은 맞지만 부친이 멕시코 국적 외교관이라서 그랬을 뿐, 이후로는 멕시코 국적을 지닌 것으로 알고 있다. 출생지 기준으로만 국적을 분류하자면 만주 태생인 황석영은 '중국' 작가, 또는 만주국 시절이니 '일본' 작가라 해야 할까.


국가별 분류에서는 '러시아' 작가 불가코프를 굳이 '우크라이나' 작가로 분류했던데, 오늘날의 국가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고골도 역시나 '우크라이나' 작가로 분류해야 하지 않을까. 마찬가지 맥락에서라면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국적으로 분류된 카프카나 '로마제국' 국적으로 분류된 오비디우스도 현대 국가 '체코'와 '이탈리아'의 작가로 분류해야 맞을 것이다.


대강 살펴보아도 오류가 속출하니, 이래저래 영 믿을 수 없는 민음사 자체 통계가 되겠다. 단순 오타도 흔해서 고골 번역자 '조주관'을 '조주권'으로 잘못 적고, 심지어 세계문학전집 500권째라는 <압록강은 흐른다>의 소개 글에서는 저자 "이미륵"을 "이미룩"으로 4군데나 잘못 적었다. 결국 자기네가 뭘 펴내는지도 모르고 자화자찬부터 늘어놓았던 셈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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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의 이력 중에는 1968년에 페르난도 아라발의 희곡 <환도와 리스>의 영화판에서 감독을 맡은 것도 있었다. 원작도 <고도를 기다리며> 유형의 난해한 부조리극이었는데, 영화는 한 술 더 떠서 갖가지 기괴한 이미지를 등장시킨 까닭인지 흥행은 고사하고 비평 면에서도 참패를 면하지 못하며 한동안 호도로프스키의 흑역사가 되었다.


페르난도 아라발(1932년생)은 에스파냐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극작가이며, 앙토냉 아르토의 '잔혹극' 유파에서 영향을 받은 '공황극' 운동을 1962년 호도로프스키 등과 함께 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훗날 컬트로 추앙된 호도로프스키의 <엘 토포>와 <신성한 산> 같은 영화며, <잉칼> 같은 만화도 어쩌면 '공황극'의 맥락에서 살펴봐야 할지도 모른다.


<환도와 리스>는 예전에 삼성출판사 세계문학전집 <세계희곡선 3: 현대편>에 수록된 김정옥 번역으로 처음 읽었는데, 워낙 부조리한 내용이다 보니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다른 선집에서 다른 작품도 몇 편 읽어보았는데, 나중에 장정일의 희곡을 읽어보니 아라발 작품의 영향이 두드러진 느낌이 나서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다 헌책방에서 세로쓰기로 간행된 <아라발 희곡집>(구글링해 보니 1권은 1975년에 한국연극사, 2-3권은 1981년에 유림사에서 각각 간행되었다고 나온다)을 발견해 구입해서 읽었는데, 나중에 미번역 작품까지 포함해서 <아라발 희곡 전집>(전7권, 고글, 1998)이 재간행되었기에 구입하고 구판은 헌책방에다 처분했다.(자료 가치를 생각하면 그냥 둘 걸 그랬나).


아라발의 <희곡집>과 <희곡 전집> 모두 동의대 불문과 교수 김미라가 번역했다. 대학생 시절인 1975년에 아라발의 연극을 보고 매료되어 아예 전공하게 되었으며, 저자를 여러 차례 직접 만나기도 했다고 전한다. <희곡 전집> 서두에는 자기 작품의 한국어 판권을 김미라 교수에게 위임한다는 아라발의 친필 편지가 나오는데, 당시에는 그게 일종의 판권 계약이었다.


김미라 교수는 1975-1981년에 아라발의 희곡 23편을 번역해서 <희곡집>(전3권)으로 간행했고, 1998년에 희곡 32편을 수록한 <번역 전집>(전7권)을 간행했다.(역자 서문에서는 50편이라 했는데, 부록의 편수까지 합친 듯하다). 동의대 퇴임 이후에는 '김라'라는 예명으로 단편 영화 제작 및 지원에 전념했다 하는데, 안타깝게도 2025년 2월 10일 별세하고 말았다.


구글링해 보니 김미라의 남편인 동의대 영문과 교수 김창호와 관련해서도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그는 1989년에 대학 입시 비리를 폭로해 해직되었는데, 그 여파로 그해 5월 3일에 '동의대 사태'가 벌어져서 농성 중인 동의대 학생들을 진압하러 들어간 경찰관 7명이 화재로 사망했다. 나귀님도 여전히 '동의대' 하면 이 사건을 떠올릴 만큼 사회적 파장이 컸었다.


김창호는 해직 17년 만인 2006년에야 복직했는데, 독문과 교수였던 장희창도 함께 해직되었다가 역시나 함께 복직했다고 한다. 그렇잖아도 장희창의 번역서를 보면 이력에 현직 교수까진 아닌 것으로 나오기에 무슨 사연일까 궁금했는데,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던 모양이다. 김창호의 번역인 테리 이글턴의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도 해직 기간 중의 작업인 듯하고.


나귀님이야 아라발의 열혈 독자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여느 극작가보다 그의 작품을 더 많이 소장하고 읽어볼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김미라 교수의 노력이 일찍부터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알라딘에 등록된 "아라발 희곡전집 (전)7권"의 서지 정보에도 "김미라"라는 이름은 나와 있지 않은 것이 민망하여 뒤늦게나마 두서없이 적어본다.




[*] "아라발 희곡 전집"(전7권, 김미라 옮김, 고글, 1998) 목차


제1권

백색의 사랑

네 개의 입방체

빨간 풍선

질투의 스트립 쇼

사랑의 삽화

구름 위의 염소

신이 미쳐 버렸나?

검붉은 여명

달걀 속의 협주곡

20세기의 대 시사극


"공황 연극"(훼르난도 아라발)

"<검붉은 여명>의 초연에 대한 연극평"(J. GX)

"아라발 희곡에 나타난 악몽의 이미지"(김미라)

"아라발의 전기"(김미라)


제2권

기도

천년 전쟁

피살된 흑인을 위한 의식

게르니까

오늘의 젊은 야만들


"천년 전쟁"(훼르난도 아라발)

"천년 전쟁"(조르주 라벨리)

"분노의 연극"(에스피나스 호랑좌스)[인터뷰]

"표현의 불꽃"(알랭 쉬프르)[인터뷰]


제3권

유령 기차의 발라드

사형수의 자전거

건축사와 아씨리 황제


"연극의 르네쌍스"(훼르난도 아라발)

"아라발의 <혼돈>의 의식"(알랭 쉬프르)

"아라발과의 인터뷰: 아라발과 감옥"(알베르 쉐노 & 엔헬 베렌구에르)


제4권

바벨 탑

싸움터의 산책

대관식


"바벨 탑"(도미니끄 쎄르벵)

"아라발의 낮과 밤"(김미라)

"신과 성의 문제"(김미라)


제5권

환도와 리스

삼륜자전거

페가서스의 바이올린

쾌락의 정원


"쾌락의 정원"(꺄미이으 아마리)

"아라발과의 인터뷰: 훼르난도 아라발의 연극 세계"(김미라)


제6권

...그리고 그들은 꽃에 수갑을 채웠다

미궁

장엄한 예식


"아라발의 신화"(삐에르 마르까브뤼)

"아라발의 세계"[1992년 60세 기념 전시회의 헌사 모음]

나는 왜 아라발을 좋아하는가 (이오네스코)

눈이 날카로운 안경 장사 (미쉘 비토르)

천재적인 악마 (베르나르 앙리 레비)

그림 같은 천사 (조르쥬 라벨리)

현상 (밀란 쿤데라)

밤의 발굴자 (김미라)


제7권

예수, 마르크스, 셰익스피어가 얻은 의외의 성과

두 사람의 사형집행인

도스토예프스키란 이름의 거북이

자동차 묘지


"희곡의 새로운 형태"(즈느비에브 쎄로)

"작가 아라발"(프랑스어문학 사전, 보르다스 출판사)

"작품연보 및 참고도서"


[**] <희곡 전집> 각 권 말미에는 아라발 본인의 글을 비롯해서 저자와 작품에 관한 비평 같은 참고 자료가 덧붙었는데, 그중 6권 말미에 수록된 아라발의 60세 기념 전시회 당시 이오네스코가 보내 온 헌사가 흥미로워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왜 아라발을 좋아하는가?"(이오네스코)



프랑코 장군이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아라발은 자기가 태어난 스페인에 가 볼 생각이었다. 그래 그곳에 갔다. 그리고 자기 책에 증정 사인을 했다. 프랑코 장군한테는 모욕이었다. 누가 프랑코에게 책을 갖다주었는지 모르겠다. 그는 아라발을 감옥에 가두었다. 바로 그 감옥에서 아라발이 나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내 아내가 아라발의 석방을 위해 이름 있는 작가들이 탄원 서명서를 내야 한다는 생각을 내었다.


당연히 사르트르나 다른 극좌파 작가들한테서 서명받기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아내는 장 아누이와 프랑수아 모리악(가톨릭 신자였기에)과 몇몇 작가들에게 달려갔다. 가브리엘 마르셀한테도 청원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아라발이 감옥에 있기 때문에 서명할 뿐이다. 나는 아라발의 연극을 좋아하지 않아서 한 손으로만 서명을 한다." 한 손으로든 두 손으로든 가브리엘 마르셀도 서명을 했다. 다른 사람들도 진심으로 서명했다. 서명서는 스페인에 보내졌다. 우익 작가들이라고 판단되는 사람들이 서명을 한 덕에 아라발은 석방될 수 있었다.


이로부터 [알 수 있듯이?] 나는 아라발을 무척 좋아한다. 서명이 좌익이든 우익이든 중간이든 무엇이든 간에 나는 또 서명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다신 없어야 한다.


내가 왜 아라발을 좋아하는지, 어째서 그의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그의 바로크적인 정신을 좋아하는지, 해박한 그의 문화 정신을 좋아하는 이유가 뭔지, 무엇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지를 한 번은 얘기하고 싶다.


1992. 6.


(김미라 번역, <아라발 희곡 전집> 제6권, 286-287쪽)




[***] 마르셀이 아라발에 대해 분개한(?) 이유가 무엇인가 궁금해 구글링해 보니 <뉴욕 타임스> 1982년 3월 28일자 기사 "페르난도 아라발의 귀환"에 희한한 일화가 소개된다. 한 번은 마르셀이 아라발의 희곡 <자동차 묘지>의 공연을 보러 갔는데, 중간에 벌거벗은 여배우가 실수로 넘어지는 바람에 객석으로 떨어져 마르셀의 무릎 위에 앉아버렸다는 것이다. "그 양반, 공연 끝나고 고해성사하러 갔지요." 아라발은 이렇게 말했지만, 그의 평소 기질이며 인터뷰 분위기를 보면 농담인지 진담인지는 알 수 없겠다. 


이 기사에는 또 하나 흥미로운 구절이 나온다. 기고자가 파리에 있는 저 극작가의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한국 여성 두 명이 그의 희곡 전집 번역에 참고할 내용을 받아 적고 있었다"기 때문이다. 혹시 김미라 일행이었을까? 기사에 따르면 아라발은 두 여성을 친절하게 대했으며, 그들이 가져온 한국어 번역본이 세로쓰기라는 사실에 흥미를 보이며 농담까지 했다고 전한다.(나중에 김미라가 아라발의 아파트로 찾아가 인터뷰하며 보니, 자기가 번역한 <작품집> 세 권이 책장에 나란히 꽂혀 있더라 한다). 


인터넷 시대가 되고 구글 세상이 되니까 이런 옛날 기사도 클릭 한 번에 검색되는구나 싶다. 김미라 교수도 생전에 이 기사를 보았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타계 전에 만나볼 기회가 있었다면 아라발의 작품이며 일화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볼 게 많았을 텐데. 그 와중에 1932년생으로 김미라보다 20세 연상인 페르난도 아라발은 93세로 아직 생존 중이며, 2025년에는 한때 옥살이까지 당했던 모국 스페인에서 최고 수준의 수훈인 왕실 훈장을 받는 등, 그 명성에서 비롯된 영예를 한껏 누리는 중이라고도 전한다.




[****] 김미라(김라)가 자택을 매각하고 연금까지 바쳐 가며 운영했다던 부산 광안리의 문화 공간 '공간나라'는 결국 김 교수의 타계와 함께 운영을 종료한 모양이다. 아쉽지만 유튜브로 검색해 보면 고인의 생전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지는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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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교황 레오 11세의 가우디 성가족성당 방문 실황을 유튜브로 살펴보니, 미사를 마치고 아예 밖으로 나가서 성당을 바라보며 축복식을 거행하는 장면도 나온다. 144년간 이어진 공사가 막바지에 도달한 상황에서 건축가를 기린 행사였으니 참으로 감동적이기도 했지만, 주책맞은 나귀님은 그 모습을 본 순간 장 클로드 갈의 만화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죽음의 행군>에 수록된 그 단편에서는 중세의 한 위대한 건축가가 가톨릭 대주교에게 사로잡혀 억지로 대성당을 만들게 된다. <콰이 강의 다리>의 줄거리와 유사하게, 함께 붙잡힌 자국민 포로들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대주교의 명령을 선뜻 받아들인 건축가였지만, 정작 강제 노동에 시달리게 된 포로들은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며 건축가를 원망했다고 전한다.


대주교는 자신의 권력을 자랑하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건축물을 요구하고, 이에 건축가는 신기하게도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거대한 대성당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기뻐하던 대주교가 완공된 대성당 앞 제단에 놓인 술잔을 집어들자, 이제껏 저 육중한 돌덩어리를 물 위에 띄워 놓았던 교묘한 균형이 깨어지며 대성당과 대주교와 건축가 모두 바다에 수장된다.


가우디의 성가족성당만 해도 일반적인 종교 건축물과는 상당히 다른 외관 때문에 마치 아웃사이더 아트마냥 뚜렷한 계획 없이 임기응변으로 석재를 쌓아올려 만들어내기라도 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쉬운데, 실제로는 그 거대하고 색다른 구조물에 최적의 균형을 찾아내고자 축소 모형에 모래 주머니를 잔뜩 매달아서 실험에 실험을 거듭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죽음의 행군>에 수록된 작품은 가상의 중세를 배경으로 삼는데, 그중에서도 "아른의 복수" 같은 것은 영화 <야만인 코난>과도 비슷한 느낌이 두드러진다. 물론 시기상으로는 장 클로드 갈의 만화가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미국 영화보다 살짝 빨랐다지만, 영화의 원작인 로버트 하워드의 소설 시리즈는 훨씬 더 먼저 나왔기 때문에 그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장 클로드 갈이 그린 또 다른 작품으로는 <디오자망트의 열정>이란 것도 번역되었다. <죽음의 행군>에 묘사된 것과 유사한 가상의 중세를 배경으로, 미모와 지혜 못지않게 무력과 육욕도 어마어마한 야만인 나라의 여왕이 깨달음을 얻으려고 방랑길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제목의 "열정"(passion)은 "시련"이나 "수난"을 가리키는 중의적인 단어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디오자망트의 열정>의 글쓴이가 무려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라는 것이다.(예전에는 '알렉산드로 조도로프스키'라고 표기하다 보니, 지금도 알라딘에는 그 표기로만 검색되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컬트 영화 감독으로 가장 유명하지만, 만화 분야에서도 꾸준히 활동해서 <잉칼>, <테크노 사제>, <라마 블랑> 등의 작품에서 스토리를 담당했다.


호도로프스키의 영화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난해하다는 소문이 있어서 굳이 찾아서 보지는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구글링해 보니 그의 작품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일종의 '필수 요소'가 눈에 띄었다.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고행이며 해탈과도 유사한 상황 전개인데, 나귀님이 본 만화 몇 종에서도 물론이고 아직 보지 못한 영화에서도 이런 내용이 반복되는 듯하다. 


저 유명한 <잉칼>을 예로 들어 보자면, 평범한 주인공이 뜻하지 않게 거대한 힘을 손에 넣게 되자 그를 돕거나 저지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단합하여 사건 해결을 위한 탐색에 나서고, 물질 세계에서 시작된 여정이 영적 차원으로 접어들면서 일행은 각자의 욕망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아까지 완전히 내버리는 과정을 거친 끝에야 우주적 존재와 합일을 이룩한다.


<테크노 사제>는 <잉칼>에서 주인공을 뒤쫓는 세력 가운데 하나인 '테크노 교단'을 소재로 한 외전으로 (우리나라에는 1권만 나왔다) 저 교단에 입회한 소년이 수련 끝에 대사제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렸고, <라마 블랑>은 티벳 성자 밀라래파의 고행과 해탈에 대한 유명한 일화에 백인 주인공을 등장시켜 (화이트워싱일까?) 불교의 가르침을 아예 전면에 내세웠다.


영화 중에서도 <성스러운 산>의 줄거리는 <잉칼>과도 유사해 보이니, 결국 불교의 고행과 해탈, 힌두교의 우주적 존재와의 합일 같은 동양 사상을 호도르프스키가 유독 선호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물론 그의 작품들을 다 보진 못했으니 이게 전부라고 단언하기는 곤란하겠지만, 적어도 나귀님이 본 작품들은 일종의 '수난극'이나 '고행담'으로 요약되는 듯하니까.


호도로프스키의 이력을 보면 페르난도 아라발과 '공황극' 운동을 시작한 것도 있는데, 한편으로는 부조리극의 전통을 계승하고, 또 한편으로는 20세기 중반 서양의 동양 사상 및 종교 열풍을 반영하여 나름대로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낸 것인가 싶기도 하다. 물론 전부 그렇다고 단언하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나귀님이 본 작품들에서는 그런 경향이 뚜렷해 보이니.


여기서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호도로프스키가 거듭해서 말하려는 내용이 정작 동양권 독자들에게는 친숙하다 못해 심지어 진부한 것일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동양 사상 및 종교가 서양에서 '뉴에이지'라는 이름으로 변용되어 인기를 끌었을 때, 막상 그 내용을 보면 불교와 도교 등 우리에게는 체화되다시피 친숙한 내용이어서 살짝 실망스러웠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지금 와서는 한자를 모르는 세대도 많고, 서양식 사고방식에 익숙해진 세대도 많다니, 불교 박람회가 신기하고 서울도서전도 신기하게 느껴지듯, 호도로프스키의 작품 내용조차도 새삼스럽게 대단히 신기하고도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다. 마치 '박카스'가 바다를 두어 번 건너자 '레드불'이 되어 돌아오더라는 일각의 주장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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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중에 로런스 스턴의 <감성 여행>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같은 저자의 대표작 <트리스트럼 샌디>야 워낙 유명한 작품이니 어느새 번역서가 무려 3종이나 중복 간행되어 있어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지만, 어쨌거나 후속편이자 미완성작이기 때문에 비교적 주목도 덜 받는 <감성 여행>까지 번역될 수 있으리라고는 애초부터 기대조차 안 했기 때문이다.


지금 다시 생각하면 <트리스트럼 샌디>의 번역도 대단한 사건이었다. 소설 이론서를 뒤적일 때마다 파격적인 구성과 서사의 대표 사례로 언급되기에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브리태니커 그레이트북스의 영어판을 어찌어찌 한 권 얻어 놓고도 과연 어디서부터 파먹어 들어가야 할지 막막한 느낌에, 한동안 갖고만 있다가 문지 번역본을 구하고서야 처분했나 그랬다.


쉽게 말해 '라떼는' 제목만 들어 보았을 뿐, 번역서는 고사하고 원서를 구경하기도 힘들었던 고전이 즐비했는데, 지금은 <톰 존스>며 <숫코양이 무어>며 하다못해 <소돔 120일>도 번역본이 여러 종이니 그저 격세지감일 뿐이다. 비록 완간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듯한 상황이기는 해도 <마하바라타>조차 원문 완역이 진행 중이니 정말 세상 참 좋아졌구나 싶다.


예전에 바깥양반이 주로 술자리에서 만나 친해진 철학과 교수님의 대학원 수업을 청강하는데, 하루는 이분이 강의실에 들어오자마자 '요놈들아, 이렇게 좋은 책을 이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세상인데, 왜 공부들을 열심히 안 하느냐'면서, 당신이 출근길에 교보문고 들러서 사온 책 한 권을 보여주시는데, 바로 막스 슈티르너의 <유일자와 그 소유> 영역본이었다 한다.


그래서 바깥양반도 도대체 무슨 내용인가 궁금하기에 집에 오는 길에 교보문고 들러서 바로 그 책을 사왔는데, 어차피 자기 전공도 아니니 금세 관심을 잃어버렸다. 나귀님도 그간 발췌문만 접했을 뿐 비록 영역본이라도 전문은 구경도 못한 상태라 반가웠지만, 역시나 당장 긴요한 내용은 아니니 언젠가 읽어보려고 쌓아만 두었다가 세월만 흘러 먼지만 쌓였다.


지금은 <유일자와 그 소유>도 번역서가 2종이나 나왔고, 심지어 출간 당시의 논쟁에 대해서 저자가 직접 반박한 책까지 번역되었다니 또다시 격세지감이다. 대중적 글쓰기나 오만 데 나서기보다는 본인 전공 분야의 공부와 집필에만 전념하던 저 교수님도 정년 퇴임 후 얼마 되지 않아서 돌아가셨다 전해 들었으니, 새삼스레 인생이란 참 짧고 허무하구나 싶다.


그나저나 로런스 스턴의 대표작 <트리스트럼 샌디>와 <감성 여행>이 모두 번역되었으니, 그렇다면 이제는 저 이상한 그림책도 다시 한 번 꺼내 펼쳐볼 만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말하는 '이상한 그림책'은 에디시옹 장물랭에서 나온 <끝없는 여행>으로, <골리앗>과 <카프카와 함께 빵을>처럼 단순하면서도 파격적인 만화를 그린 톰 골드의 작품이다.


이 책은 형식부터 파격적이다. 오늘날 일반화된 코덱스 형태가 아니라 낱장 카드 여러 장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나귀님은 알라딘 중고샵에서 저자 이름만 보고 무작정 주문했었는데, 별다른 사전 정보가 없었던 상태이다 보니 실물을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 상자를 열자마자 무슨 연필 케이스 같은 것이 나와서 '사은품인가' 싶었는데, 그게 바로 그림책이었다!


알라딘 서지정보에는 엉뚱하게도 가로세로 길이가 "165x840밀리"라고 잘못 나왔는데, 실제로는 일반적인 책갈피보다 살짝 넓은 가로 7센티에 세로 16.5센티의 카드 12장이 종이 상자에 들어 있다. 카드마다 앞뒤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딱히 순서라고는 없고 좌우에 어떤 카드를 놓더라도 배경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에 얼마든지 다양한 조합이 가능해진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19세기에 발명된 이런 카드식 그림책을 '미리오마라'라고 하는데, 번역하자면 "수천 개의 풍경"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톰 골드의 <끝없는 여행>의 경우, 카드 12장 앞뒤로 24개의 장면이 들어 있기 때문에, 배열에 따라 무려 "479,001,600종"의 조합이 가능하다고 한다.(정확한 숫자인지는 나귀님도 직접 계산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만).


형식도 특이하지만 내용은 더 특이한데, 왜냐하면 카드에 묘사된 장면이 로런스 스턴의 소설 속 내용이라기 때문이다. 제목에 "여행"에 들어간 까닭이었는지, 나귀님은 <끝없는 여행>이 <감성 여행>을 그림으로 옮긴 것인가보다 착각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다시 살펴보니 <트리스트럼 샌디>를 비롯해서 스턴의 작품에 나오는 대표적인 사건들을 망라한 것이라 한다. 


톰 골드가 저 소설가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그 연구 단체인 '로런스 스턴 협회'에 먼저 연락해서 이런 책을 만들자 제안했다는데, 파격과 실험이라는 단어가 늘 따라다니는 소설가임을 감안하자면 딱 어울리는 헌정품 같기도 하다. 다만 애초부터 스턴을 좋아하는 독자를 겨냥해 만든 물건이다 보니, 그냥 톰 골드가 좋아 이것까지 산 독자들에게는 쉽지 않을 법하다.


나귀님조차도 구입 당시에는 <트리스트럼 샌디>를 읽은 지 워낙 오래이다 보니, 카드 속 장면이 무엇을 묘사한 것인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 단지 그 소설뿐만 아니라 스턴의 작품 전반에서 가져온 내용이라고 하니, 십중팔구 우리나라에 번역되지 않은 <감성 여행>이나 다른 저술의 장면도 섞여 있다고 치면, 어쩌면 영영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일단 이처럼 파격적인 내용과 형식의 책을 굳이 번역해서 나귀님의 '괴작' 컬렉션에 또 한 권 더해준 에디시옹 장물랭의 용기와 노력만큼은 칭찬하면서도, '이건 뭐, 갖고만 있지 이해는 불가능한 책 아닌가' 싶어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데, <감성 여행>도 번역되었다 하니 이참에 스턴을 다시 읽고서 <끝없는 여행>도 다시 꺼내보아야 하나 싶은 것이다.


톰 골드 역시 파격과 신선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만화가인데, 아쉽게도 절판된 <골리앗>과 <달과 경찰> 같은 작품에서는 무엇보다 고독 묘사가 훌륭했다고 기억한다. <카프카와 함께 빵을>과 <24카툰>에서는 뛰어난 재치도 살펴볼 수 있었는데, <새만화책>에 수록되었던 "왕국의 파수병들"처럼 단행본에 없는 인상적인 작품도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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