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존 업다이크의 "토끼 4부작"에 관한 글을 올렸는데, 원래는 몇 달 전에 이미 써 놓았던 글이었다. 일단 초고를 쓰고 나서 다시 읽어 보니, 내용 중에 '펜(PEN) 대회 참석차 업다이크가 방한했을 때 동행한 선배 작가 존 치버의 술주정을 받아주느라 고생했다는 일화가 기억난다'고 적은 대목의 사실 확인이 필요해 보여서 뒤늦게야 다시 자료를 뒤적였다.


처음에는 치버의 일기나 서한집에서 쉽게 찾을 줄 알았는데, 막상 펼쳐 보니 한국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는 언급만 짧게 나오고 술주정 이야기는 없었다. 그러면 혹시 펜(PEN) 관계자의 책에서 봤나 싶어, 해당 단체에서 29년간 근무한 직원의 회고록인 <해외에서 온 엽서>(엘리자베스 패터슨 지음, 박해경 옮김, 선우미디어, 2001)를 뒤져 보았지만 없었다.


이쯤 되면 한국 펜(PEN)의 대표를 역임한 전숙희(1919-2010)의 회고록을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이걸 도대체 어디 두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있을 법한 곳의 책장을 서너 번이나 연달아 뒤져도 안 나오기에 결국 포기했는데, 두 달이 지나서야 바깥양반이 찾아내라는 또 다른 책을 찾다가 책더미 사이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전숙희 회고록을 발견하게 되었다.


책을 찾을 때의 역설 가운데 하나는, 늘 보고 지나치던 책인데도 막상 찾으려면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애를 쓰다 포기하고 나면, 그러니까 더 이상은 굳이 그 책을 찾지 않아도 그만일 때가 되면, 이상하게도 그때는 그 책이 딱 눈에 띈다. 오죽하면 헌책방에서도 '주인보다 손님이 책을 더 잘 찾는다'는 속설이 있으니, 나귀님만의 망상까진 아닌 듯하다.


여하간 나귀님이 발견한 전숙희의 책은 제목부터 <펜(PEN) 이야기>이며, 그 단체와 맺은 인연과 활동을 회고하는 내용이다. 물론 본격적인 회고록이라기보다는 관련 쪽글을 엮고 자료를 추가한 것이다 보니 생각만큼 체계적이지는 못해 아쉬운데, 차라리 대담 방식으로 그 생애와 활동을 차근차근 돌아보는 방식이었다면 훨씬 더 유용한 자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국제 펜클럽, 약칭 펜(PEN)은 1921년 영국에서 창립되어 세계 각국에 지부를 둔 문인 단체이다. 시인(Poet), 수필가(Essayst), 소설가(Novelist)의 머리글자를 따서 명칭을 지었고 H. G. 웰스, 모리스 마테를링크, 알베르토 모라비아, 아서 밀러, 하인리히 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등 노벨문학상 수상자 다수가 포함된 각국의 유명 문인이 번갈아 대표를 맡았다.


1960년에는 투옥 문인을 후원하는 산하 조직을 만들었고, 이후 각국을 돌며 열리는 총회마다 문인의 인권 문제에 대해 거론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다. 한국 지부는 1954년에 설립되었는데, 휴전 직후 파리의 UN 총회에 참석했던 시인 모윤숙이 우연히 런던에 들렀다 펜(PEN) 본부의 간판을 보고 호기심에 우연히 문을 두들겼던 것이 인연이 되었다는 비화가 전한다.


전숙희는 모윤숙을 보좌하다가 펜(PEN) 한국 지부의 대표를 맡았으며, 전쟁의 피해를 극복한 일본과 서독이 연이어 총회를 유치하는 것을 지켜보고 부러운 마음에 1970년 제37차 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하려고 추진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이라 김지하에 대한 탄압 문제가 대두했고, 독재 정권의 선전에 사용될 수 있다는 펜(PEN) 내부의 반대 여론도 만만치는 않았다.


문인을 탄압하는 국가는 안 된다며 한국 총회 반대 여론이 팽배한 가운데, 전숙희를 비롯한 한국 지부 회원들의 노력으로 우여곡절 끝에 한국 정부에 항의를 전달하는 선에서 타협하고 총회가 개최되었다. 나귀님이 얼마 전 업다이크의 "토끼 4부작"에 관한 글에서 언급했듯이, 업다이크와 치버가 미국 지부 대표단 자격으로 내한했던 것도 바로 이때의 일이었다.


예상대로 박정희가 개막 연설을 하고 자신과 정부를 선전하는 영문 책자까지 참석자에게 잔뜩 선물하는 등, 당시 정권의 입김을 아주 벗어날 수야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중에 전숙희가 호텔로 찾아가 보니, 각국 대표마다 문제의 홍보물을 도로 내놓으며 '이건 가져갈 필요가 없으니 알아서 처분해 달라'고 눈웃음과 함께 부탁을 남기더라는 민망한 일화도 전한다. 


이후 1988년 제52차 총회의 한국 유치 과정에서는 전두환 정권의 김남주 등 문인 투옥 문제가 또다시 대두했다. 이때 가장 거세게 반대했던 회원 중 하나가 미국 지부의 수전 손택이었는데, 전숙희의 회고에 따르면 한국에서의 총회 개최를 놓고 찬반 투표가 진행되어서 결국 찬성으로 결론이 나자, 분한 마음에 미국 지부의 동료와 함께 눈물(!)까지 흘렸다 전한다.


그래도 손택은 아들(!)까지 데리고 한국 총회에 참석했으며, 문학과 자유를 주제로 연설을 하기도 했다.(그 번역문 "작가의 시대적 사명"이 전숙희의 책에 수록되었다). 비록 성향도 확연히 다르고 종종 맞서기까지 했지만, 어쩌면 전숙희야말로 손택이 처음 만난 한국 여성 작가일 수 있으니, 과연 두 사람 사이에 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물론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펜(PEN)의 활동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우선 그 대표성 문제가 있고, 냉전 시대에는 동서 갈등에 편승해 정치 논리를 앞세웠다는 비판도 있었으며, 한국 총회처럼 본래 의도와 달리 독재 정권에 홍보 기회를 선사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 단체가 전세계 문인의 만남과 소통이라는 이상을 위해 나름 노력했던 것도 사실이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펜(PEN) 총회 활동을 통해서 한국 문학을 조금이나마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전숙희만 해도 해외에 나갈 때마다 한국 문학 번역서를 챙겨가고, 한국 문학 소개 행사를 개최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했으며, 특히 한국 총회를 통해서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해외 작가들의 인식을 바꿔놓았다고 회고하고 있으니 말이다. 


비록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을 망정, 이런 초창기의 무모한 노력이 한국 문학 번역 지원 사업 등의 제도를 낳았고, 그 결과 반세기 뒤에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이루어졌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남이 알아주기를 기다리는 대신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으니, 최근 각광받는다는 각종 K-문화가 나아갈 길을 미리 보여주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언젠가 자연스럽게 노벨문학상도 타게 될 것이고, 국제 사회에서 인정도 받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1992년 저서 <펜(PEN) 이야기> 말미에 덧붙인 이 바람은 결국 30년 뒤에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현실이 되었지만, 정작 전숙희는 그 모습을 지켜보지 못하고 15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예전의 활동을 기억하는 사람조차 드무니 안타깝다.


전숙희는 보통 '수필가'로 지칭되지만, 문인보다는 행정가로서의 능력이 월등했던 듯하다. 단체 운영과 행사 유치를 위해서는 추진력과 자금력이 필요한데, 지금 봐도 만만찮은 국제 행사를 유치했다는 점에서는 이른바 여장부 유형일 수도 있겠다. 물론 전숙희가 한국 전쟁 당시의 말 많았던 '낙랑클럽'과도 가까웠다 하니, 짐작컨대 정부 쪽의 연줄도 있었겠지만.


전숙희의 가장 큰 뒷배는 동생인 '카지노 대부' 전락원(1927-2004)이었다. 펜(PEN) 지부 운영에도 그의 지원이 있었다는 언급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서울 총회 당시 참석자를 위한 '기생 파티'이다. 존 치버도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 관련 언급을 남겼는데, 일기에는 그냥 '접대를 받았다'고만 나왔지만, 다른 기록에서는 '은밀한 곳을 주무르더라'고도 써 놓았다.


전락원은 워커힐 카지노로 시작해서 호텔 운영까지 사업 범위를 넓히면서 파라다이스 그룹을 현재 재계 100위권 내의 재벌로 성장시켰는데, 본인과 가족 모두 외부 노출을 꺼린 탓에 소문만 무성하다 보니 종종 사기꾼들의 사칭 피해를 입는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전청조 사건이 있는데, 이때에는 전락원의 아들이며 현재 회장인 전필립의 혼외자로 자처한 바 있다.


동생 전락원의 지원 하에 전숙희는 계원예중, 계원예고, 계원예대 등 학교를 설립하고, 잡지 <동서문학>을 창간하는 등 문화 방면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펜(PEN)의 두 번째 한국 총회로부터 불과 한 세대 만에 잠시 잊히기는 했지만, 향후 한국 문화의 세계 진출이라는 주제에 대해 다루려면 십중팔구 전숙희의 활동에 대해서도 재발굴이 불가피하지 않을까.


여하간 '내한 당시 업다이크가 치버의 술주정 때문에 고생했다'는 나귀님의 기억은 잘못된 듯해서 삭제했다. 어쩌면 더 먼저 열린 소련 총회 당시 두 작가의 부부 동반 여행의 일화를 서울 총회 당시라고 착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치버 못지않게 주정뱅이로 악명이 높았던 레이먼드 카버라든지 또 다른 작가의 비슷한 일화를 잘못 기억했을 수도 있겠고...



[*] 예전에 사다 놓은 책 중에 1970년 펜(PEN) 서울 총회 자료집도 있었다고 기억하는데, 지금 와서 다시 찾으려니 어디 있나 보이지 않는다. 위에서 말했듯이, 꼭 필요할 때에는 안 보이다가 나중에 필요 없어지면 슬그머니 나타나는 패턴이 또 반복되려는 모양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펜 선집: 독일편>(분도출판사, 1976)과 함께 다시 한 번 소개해 볼까...


[**] 대략 1년 전쯤에 존 업다이크 글 쓰면서 덩달아 쓴 글인데, 올릴까 말까 차일피일하다가 마침 8월 1일이 전숙희의 16주기 기일이라기에 생각나서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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